벤츠 G클래스 타고 떠난 영국 오프로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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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G클래스 타고 떠난 영국 오프로드 여행
  • 맷 프라이어(Matt Prior)
  • 승인 2017.04.1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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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었다. 마치 속임수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는데 영국의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이어 달리는 것이었다. 영국에서 폭이 가장 넓은 곳은 서부 웨일스에서 동부 앵글리아이다. 그래도 기껏 650km에 불과하다. 정상적인 각종 도로, 이른바 공도(公道)를 이용할 계획이라면 문제가 될 리 없었다. 일부 B급 도로와 고속도로 M4, M25와 A12가 끼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왕국을 가로지르면서 공도에는 단 한 뼘도 들어가지 않을 계획을 짜고 있었다. 옥스퍼드셔주에서 모든 차량에 개방된 오프로드를 찾으려 했다면 그 고역을 알 수 있을 터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북쪽 브리튼섬의 폭이 가장 좁은 곳을 찾아갔다. 이 섬은 개미허리가 아니라 개미목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스코틀랜드 인버네스 북쪽 1시간 반 거리. 도로망이 꽉 들어차지 않고 개발이 덜 된 한적한 지방이어서 험로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았다.
 

이 지방의 동해안에서 서해안까지는 100km 남짓이었다. 특히 가장 잘록한 지점을 골라 출발지점은 바다가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곳이었다. 물론 크로머티 퍼스의 동쪽 끝은 바다를 눈앞에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오직 오프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그래서 바다와 이어진 로흐브룸의 항구마을 울라풀에서 여행은 끝났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저런 공도는 자동차가 나오기 전부터 있었다. 그 뒤 차를 몰고 다닐 때는 으레 이런 도로를 이용했다. 편리하다는 점을 비롯해 그 이유는 뻔했다. 여기서 고속도로 A385를 타면 약 1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험한 길을 일부러 고른 처지라 여유있게 2일을 잡기로 했다.
 

이번 여행을 기획한 메르세데스-벤츠에 따르면 영국에서 동서해안을 잇는 자동차 여행은 처음이다. 1941년 이후 독일차가 동서해안을 잇는 영국 횡단여행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글쎄,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튼 이 도발적인 여행을 실행에 옮기는 데 자그마치 2년이 걸렸다.


이처럼 한적한 영국의 북쪽 땅에서도 동서 두 해안을 잇는 오프로드 코스를 잡기는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한 가지 실례로 11명의 지주에게 그들의 사유지 통과 허가를 받아내야 했다. 그들이 우리 계획에 동의한 까닭은 각기 달랐다. 어느 지주는 자기 소유의 광활한 땅에 숲을 조성하려는 계획을 널리 알리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거기에다 늑대를 들여 놓기로 했다(늑대는 불과 5마리라도 돌아다니며 살려면 약 200㎢ 땅이 필요하다). 아울러 늑대와 맞붙을 곰도 풀어놓을 작정이었다. 그러면 영국의 상류층이 좋아하는 사냥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그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실제로 다리를 놓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일반인들이 함부로 개인소유의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쌓아놓은 거대한 돌담을 치우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이번 계획의 기획자는 내게 우리 루트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신 당부했다. 나로서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철도를 피할 수 없는 3개 구간이 있었다. 네트워크 레일 철도는 함부로 옮길 수 없었다. 게다가 메르세데스의 철도주행장치를 피하기 위해 동해안을 출발한 뒤 곧 철도를 돌아가야 했다. 뒤이어 경치가 떨어지는 아스팔트를 타지 않는 한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낭떠러지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종착점인 울라풀 골프장을 앞선 몇 백 미터는 정상적인 도로 이외로는 갈 수 없었다.
 

이쯤 되면 몇 군데서 속임수를 썼다고 꼬집어도 딱히 변명하기 어렵다. 문제의 3개 구간은 폐쇄됐다. 그러니까 모두에게 개방된 ‘공도’가 아닌 셈이었다. 한 구간은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앞장선 ‘행진’을 위해 폐쇄돼 약간 무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째 구간은 정기 랠리를 위해 다른 차를 막았다. 평균시속 27km가 목표였다(분명히 말해두지만, 이 특별한 경기에서 필자가 제일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마지막 구간은 양치기가 목초지를 가르고 지나가는 곳. 양을 몰고 지나가도록 길을 막았다. 양몰이 개 몇 마리와 메르세데스 4×4가 그 일을 도왔다.
 

실로 숨막히는 경치와 험악한 지형을 따라가는 현란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도보가 아니면 같은 길을 더듬어 볼 수조차 없다. 게다가 곧 늑대를 경계해야 할 일이 벌어진다. 주디스 차머스는 영국 TV계에서 최고의 여행해설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그녀도 이런 여행은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함부로 권장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기꺼이 이 도전을 받아들였다.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크로스오버나 경량 오프로더가 아니었다. 우리 앞에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가 나타났다. 랜드로버 디펜더가 단종된 뒤 시장에는 오직 2개 모델의 ‘오리지널 구식’ 오프로더가 남았을 뿐이었다. 지프 랭글러와 G클래스(라다 니바도 그중 하나라는 주장이 있지만). 물론 내 주장에 과학적이거나 기술적인 근거가 있다고 우길 생각은 없다. 그렇게 느낄 따름이니까…. 다른 차들은 일생 중 엄청난 변화를 거쳤다. 그러나 G클래스, 랭글러, 모건과 케이터햄은 다르다. 물론 지금의 G클래스는 토요타 랜드크루저처럼 1세대와 깊은 유대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내 주장을 굽힐 의사가 없다.
 

그렇다, G클래스의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1979년 G클래스는 G바겐(Wagen) 또는 겔랜더바겐(Gelandewagen)으로 태어났다. 이 독일어를 번역하면 ‘크로스컨트리’라는 뜻이다. 지금처럼 그때도 분리형 레더-프레임 섀시였고, 본격적인 오프로더였다. 농사일을 했으나 랜드로버와 같은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다재다능했지만 다양한 장비를 단 보디스타일을 갖춘 트랙터가 아니었다. 태어난 지 겨우 한 살이 됐을 때 교황이 한 대를 개조해서 썼다.
 


지금처럼 그때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만들었다. 그곳은 바로 슈타이어-다임러-푸흐 공장. 그 뒤 페이스리프트가 있었고, ‘전설적’과 ‘아이콘’이라는 관형사가 붙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주목해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었다. 첫째, 한 해 판매량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1979년에 태어나 지난해 2016년까지 38년동안 겨우 25만대가 팔렸다. 게다가 2016년 기록을 세워 처음으로 한 해 2만대를 넘어섰다.
 

둘째, 그럼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G클래스는 메르세데스 판매량에 비춰 틈새제품에 불과하다. 그렇더라도 고객들이 좋아하고 G클래스와 더불어 미래의 계획을 세운다. 영국에서 V6 3.0L 디젤 G350d의 기본 가격은 옵션을 제외하고 8만8800파운드(약 1억3059만원). 여러 지역에서 업그레이드한 G350d와 AMG 모델에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인다. 그럼에도 G바겐 장사는 이익이 짭짤하다. 나아가 영국에서 한해 약 180대가 오너를 찾아간다. 그중 약 60%는 AMG이다. 성공의 비결은 G클래스가 시대의 변화에 자신있게 적응해왔다는 데 있다. 메르세데스에 따르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랜드로버가 디펜더에 똑같은 투자를 했더라도 그처럼 낙관적인 전망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현행 G클래스는 좁은 실내와 높은 운전위치가 나이를 말해준다. 디펜더에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윤택한 소재를 썼다. 여기저기에서 38년 된 뿌리가 드러났다. 반응이 느린 스티어링과 흔들리는 승차감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온로드와 오프로드 어느 쪽에서도 운전하기에 불쾌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대적 모델에 비해 콤팩트한 너비로 좁은 코스를 누비기에 알맞았다.
 


게다가 오프로드에서는 최고였다. 저비율 트랜스퍼케이스와 잠김 앞·중간·뒤 디퍼렌셜을 갖췄다. 우리 시승차는 진창대비 타이어를 신었다. 오프로드 100km 코스는 때론 무난하고 때론 상당히 심각한 각종 포복장비가 아니면 돌파할 수 없는 늪이 있었다. 그러나 단 한번도 발목이 잡히지 않았다. 7단 자동변속기는 매끈했고, 엔진은 당연히 목청이 컸다. V6 3.0L은 회전대를 힘차게 오르내릴 때 세련된 사운드를 자랑했다.
 

요컨대 이번 여행에 이보다 더 좋은 차를 찾기는 어려웠다. 조직과 기술면에서 고난도 도전이었다. 이제 모험은 끝났다. 다리는 해체되고 거대한 돌담은 되살아났다. 두 번 다시 되풀이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독특하고, 도전적이며 반복불가능하다는 말은 G클래스에 딱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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