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를 일으켜 세운 ‘호랑이 얼굴’ 주역, 피터 슈라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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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를 일으켜 세운 ‘호랑이 얼굴’ 주역, 피터 슈라이어
  • 리차드 브레멘(Richard Bremner)
  • 승인 2017.04.1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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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는 10년 전, 합리적인 가격으로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를 줬지만, 스타일링은 다소 부족했다. 그 이전엔, 더 많은 한계를 갖고 있었다. 차는 싸구려였고, 다소 이상한 이름을 가진 차(세피아)도 있었다. 또, 브랜드 이름은 영화관에서 파는 오렌지 쥬스(Kia-Ora)를 상기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한 브랜드는 아니었다. 2006년 전세계 판매량은 114만1000대이며 영국에선 3만6000대가 팔렸다. 특히 ‘쏘렌토’라는 모델은 디자인이 꽤 세련됐으며, SUV로서의 트렌드에도 적합했다. 2006년은 바로 기아차가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수석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고용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기아차의 피터 슈라이어 영입은 자동차 업계의 큰 이슈였으며, 기아차가 더 멋진 차를 생산하고 새로운 콘셉트카를 내놓게 되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피터 슈라이어는 실제로 기아차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뿐 아니라 브랜드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까지 맡았다.
 

번성한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를 놔두고 아시아의 자동차 회사로 발길을 돌린 피터 슈라이어에게는 서양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그는 독일어와 영어를 구사하며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했고, 기아차를 더욱 널리 알렸다. 그리고 기아차에 피터 슈라이어의 첫 작품이 나오자 미디어들은 더욱 열광했다.
 

10년 뒤, 기아차는 그를 통해 큰 성장을 이뤘다. 올해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판매량이 총 300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영국에선 약 8만7000대가 팔렸다. 전 세계 자동차 제조업체 중 9번째로 많이 판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성공을 위해서는 매력적인 디자인 외에도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기아차의 진보에는 현대차와의 플랫폼 및 파워트레인 공유, 그리고 탄탄한 딜러 네트워크를 비롯한 마케팅 등이 뒷받침한다. 그러나 2006년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슈라이어를 영입한 것을 보면 디자인 역시 회사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멋진 외관은 구매자를 유혹해 판매량을 늘릴 뿐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까지 구축하게 된다.
 

피터 슈라이어는 “오래전 일이지만, 우리는 디자인을 개선하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라며 10년 전을 회상했다. 그리고 “당시 정의선 사장은 디자인이 매우 중요함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한국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슈라이어는 2013년 현대차 디자인까지 담당하게 되면서,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그룹 내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정 사장과 함께 두 브랜드의 디자인 캐릭터에 관해 논의를 펼치며, 앞으로의 전략을 세웠다. 슈라이어는 두 브랜드를 상징하는 디자인 언어가 ‘눈송이와 물방울’이라고 말한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영감은 우리의 디자인 철학이며, 현재 제품 디자인의 배경이기도 하다. 눈은 건축적이지만, 물은 또 다른 방식의 성격을 갖는다.”

 

슈라이어는 이전에 근무하던 아우디와 폭스바겐에서도 크게 기여했지만, 기아차에 입사하면서 그의 능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그의 손으로 탄생한 자동차들이 많았는데, 폭스바겐 차 중에서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비틀과 마이크로버스 콘셉트 그리고 골프 Mk4, Mk5, 파사트 등이 있었고, 아우디에서는 TT, A2, A3, A4, A6, A8 등이 대표적이었다. 슈라이어의 채용은 의심할 여지 없는 쿠데타였으며, 폭스바겐 그룹에는 큰 후회를 남기는 일이었다. 2012년 당시 폭스바겐 그룹 회장이었던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우리는 그를 보내는 게 아니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아차는 길 위에서 눈에 띄지도 않으며, 별 특징이 없는 브랜드였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비교적 분명했다” 슈라이어의 말이다. 그는 항상 그래왔듯이 자동차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담아내길 원했다. 그리고 그는 기아의 차들에 ‘호랑이 코’를 그려 넣었고, 그 인상적인 얼굴은 기아차만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그가 기아차에서 처음으로 작업한 차는 ‘씨드’다. 해치백의 대표 골프에 도전하는 모델로, 기아차 프랑크푸르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주도했으며, 슈라이어의 손길이 담겼다. 씨드는 강력한 인상을 주지는 않지만, 모던한 디자인에 실용적이며, 유러피언 스타일로 꾸민 차였다.
 

“나는 기아차에 들어오면서 브랜드를 변화시키고, 멋진 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업문화를 파악하지 못했으면 결코 실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슈라이어는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슈라이어는 현재 기아차 디자인뿐만 아니라 현대차와 새로운 브랜드 제네시스의 디자인을 총괄한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그가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뿌리 깊은 전통과 현대적인 삶이 공존하는 나라다. 이런 점은 상당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웠다. 나는 한국 문화를 더욱 깊이 있게 느껴보고자 많은 한국인을 만나려고 노력했고, 한국의 다양한 장소를 돌아다녔다”고 슈라이어가 말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그가 한국에서 접한 많은 경험은 일을 함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됐고, 디자인에도 많이 반영됐다. “사람들은 우리의 차가 매우 유럽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가치를 더한다. 이것은 그들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며, 기아차를 세계 자동차 업체 순위 톱 10에 올릴 수 있게 한 요소이기도 하다.”
 

슈라이어는 입사 후 다양한 차를 감독했다. 쏘울에서 스포티지, 옵티마에 이르는 양산차 개발에 참여했고, 수많은 콘셉트카까지 그의 손을 거쳤다. 시작부터 여러 프로젝트를 맞으면서 기존 디자이너들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을 터. “기본적으로 그들은 매우 오픈되어 있었다. 한국을 비롯한 독일, 미국, 일본에 기반을 둔 디자인팀도 적극 도왔다”고 슈라이어가 말했다. 또한, 그는 디자인 철학으로서 직선의 단순성을 강조한다. “자동차에는 직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직선은 눈의 결정처럼 깨끗하고 심플하다. 기아차는 ‘눈의 결정’ 같은 브랜드가 되어야 하고 디자이너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기아의 몇몇 자동차들은 눈에 띄는 디테일을 갖고 있다. 옵티마의 C필러와 이전 세대 스포티지의 크롬 윈도 라인 등이 대표적이다. “모든 기아차에 이런 특징적인 요소들을 넣고 싶었는가?”라는 질문에 슈라이어는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옵티마(K5)의 디자인은 개성이 뚜렷하고 멋있다. 그렇다고 이 디자인 요소를 모든 차에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다. 각각의 차에 맞게 기아의 상징적인 디테일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슈라이어는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얘기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멀리서 지나가는 차의 윈드 스크린을 본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단번에 그 차가 기아차임을 알 수 있었다.”
 

슈라이어는 디자인 총괄로서 직접 디자인하기보다는 여러 디자이너에게 가이드와 지시를 내린다. 바로 이 점이 기아차의 디자인을 더욱 창조적이게 만드는 비법이며, 성공으로 이끄는 방법이다. “디자이너들과 경쟁하는 입장에서 차를 직접 디자인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봤어?’ 아니면, ‘이 라인을 올리거나 내려보면 어때?’라는 식으로 디자인의 방향을 이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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