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신사들의 맞대결, 컨티넨탈 GT 스피드 vs DB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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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사들의 맞대결, 컨티넨탈 GT 스피드 vs DB11
  • 앤드류 프랭클(Andrew Frankel)
  • 승인 2017.04.20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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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애스턴 마틴 DB11과의 만남을 위해 고속으로 질주했다. 그때 이들의 싸움판이 어떻게 벌어질지 짐작이 갔다. 내 오른 발 아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이미 13년이라는 환갑을 넘긴 벤틀리 컨티넨탈 GT 스피드가 대단한 자질을 발휘했다. 갈아치워야 할 차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13년이 됐으나 그 사이 너무나 놀랍게 개선되어 새 차였던 2003년의 라이벌보다 더 뛰어났다.

그런데 상당히 낡은 벤틀리로 비교시승을 한답시고 몰아붙인다니 생뚱하기는 했다. 더구나 완전신형 애스턴 마틴(그 날씬한 어깨로 메이커의 운명을 크게 짊어질 결정판)과 정면대결해야 했다. 나는 여기서 감히 독자 여러분에게 지긋이 참고 읽어달라 말하고 싶다. 사실 이 대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러분과 내가 이 도전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눈앞의 증거 - 두 라이벌의 무게당 출력, 스타일, 무게와 연령차 너머를 보아야 한다. 견고성과 구조 통일성에서 벤틀리는 지금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품질을 갖췄다. 그와는 달리 이 잡지의 한 페이지에도 다 적지 못할 숫자를 담고 있다. 이 같은 재능은 압도적일뿐 아니라 애스턴 마틴이 여기서 이기려면 극복해야 할 숫자이기도 했다.

 

<오토카> 취재진이 차 옆구리에 묻은 도로의 먼지를 닦아냈다. 그때 DB11은 산기슭의 길가 쉼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DB11은 21세기의 당연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현대적이고 역동적이며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얽매이지 않았다. 벤틀리 옆에서는 작아 보였으나 실제로 작다고 할 수 없었다. 길이는 70mm 남짓, 폭은 5mm쯤 짧았으나 휠베이스는 더 길었다. 거의 120mm 더 큰 키가 두 라이벌의 눈에 띄는 외형적인 차이였다.


둘 다 대용량 4캠 12기통 트윈터보 엔진으로 무장했다. 다같이 8단 자동변속기로 동력을 노면에 전달했다. 벤틀리는 V6 두 개를 합친 신기한 W 형태를 단일 크랭크샤프트와 연결됐고, 파워를 네바퀴에 보냈다. 그와는 달리 애스턴은 전통적인 V12로 뒷바퀴를 굴렸다. 두 엔진은 다 같이 혈통을 멀리 거슬러 오른다. 벤틀리는 2001년, 애스턴 마틴은 1999년까지. 하지만 둘 다 실로 넓고 깊게 손질하여 신형이나 마찬가지였다.

 

컨티넨탈 GT 스피드는 크기와 파워 사이에 균형을 잡았다. 6.0L에서 635마력, 경이적인 85.4kg·m를 뿜어냈다. 그에 비해 5.2L DB11은 608마력에 71.2kg·m. 여기다 무게를 계산에 넣기로 하자. 벤틀리는 어마어마한 2320kg. 거기 비해 애스턴은 단정한 1910kg이다. 사실 2톤에 가까운 승용차를 두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벤틀리에서 나와 바로 애스턴 마틴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그들은 파워, 가격과 차급에서 공통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둘은 고전적 영국 투어링카의 아주 다른 유형을 대표한다. 컨티넨탈과 DB11의 낙차가 너무 커서 조금 전에 벤타이가를 타고 온 느낌이 들었다. 벤틀리 실내는 2003년만해도 그토록 힘들이지 않고 매력적이었으나 지금은 전통주의에 빠져 푸석해보였다. 스타일은 여전히 매혹적이었지만 아날로그 다이얼과 신석기시대의 멀티미디어 시스템은 나이를 말해주는 뚜렷한 유물이었다.
 

DB11의 실내를 하늘까지 추켜세우기는 어렵지 않았다. 상당히 큰 키의 어른이라도 운전위치가 편안했고, 계기판은 읽기 쉬웠다. 게다가 말 잘 듣고 똑똑한 내비게이션이 드라이버를 즐겁게 했다. 사실 DB11이 DB9의 허점을 개선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아무튼 오늘날의 기준에도 애스턴 마틴의 실내는 돋보였다. 굳이 아방가르드 흉내를 내지 않아도 스타일은 현대적이었다. 보조 스위치와 메인 인포테인먼트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뿌리를 쉽게 드러냈다. 모두 직관적이고 능률적으로도 제 구실을 했다. 벤틀리, 그리고 좀 더 폭을 넓혀 마세라티와 페라리에 비해 효과적인 해법이었다. 다만 신형 포르쉐 파나메라의 예술적 경지의 실내를 흔들 수준은 아니었다. 파나메라 실내는 내년에 나올 완전신형 컨티넨탈 GT를 멋지게 장식할 채비를 하고 있다.

 

컨티넨탈과 DB11은 다 같이 뒷좌석이 아주 좁아 쓸모가 없다. 그중에도 벤틀리가 좀 더 넓고 트렁크도 더 크다. 하지만 둘 다 앞좌석을 좁혀 앉지 않으면 뒷좌석은 짐칸으로 쓸 수 있을 뿐이다. 애스턴의 새 엔진은 시동을 걸 때 벤틀리보다 소리가 컸으나 DB9보다는 훨씬 작았다. 드라이버가 좋아할 리 없지만, 이웃사람들은 아주 반가워할 일이었다. 컨티넨탈은 보닛 밑의 아득하고 은은한 우레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DB11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다층적이며 영락없는 V12였고, 결코 터보 사운드가 아니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DB11을 힘차게 몰아붙였다. 왜? 이 차는 역사상 가장 부드러운 스프링을 얹힌 애스턴 마틴이었다. 그처럼 부드러운 세팅에도 애스턴 마틴답게 달리는지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DB11이 있었고, 그 뒤에 산이 있었다. 애스턴 마틴과 산길을 맞붙여야 할 때가 됐다.


출발하고 처음 5초 동안 숨이 가빴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 DB11을 세웠을 때 좀 더 길게 숨이 가빴다. 첫 번째는 이 물건의 순수한 스피드 탓이었다. 스타트라인에서 애스턴은 벤틀리보다 훨씬 빨랐다. 한데 파워와 트랙션이 벤틀리의 스타트 스피드에 각기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알려주는 데이터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 등판은 당장 알아챘다. 컨티넨탈은 제대로 당당하게 빨랐다. 그러나 전력으로 출발할 때 애스턴 마틴의 승객은 갑자기 괴성을 터트렸다. 벤틀리는 그럴 수 없었다. 게다가 파격적 배열의 12기통은 애스턴의 심포니적 포효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DB11 엔진은 최저 회전대의 약간 느린 스로틀 반응에만 터보 기미가 드러났다.

 

다음 과제는 2톤에 가까운 DB11이 까다로운 커브를 들어갈 때의 최적속도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무게, 휠베이스와 스프링률이 모두 보수적인 접근을 권했다. 하지만 도로를 요리한 우리 차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직관에 따라 대처하면 기대 이상의 안정감, 그립 그리고 밸런스로 보답했다. 스프링을 부드럽게 유지하면서도 내가 체험한 가장 좋은 댐퍼로 과도한 보디운동을 완화했다. 애스턴 마틴 섀시 기술진은 최근까지 불가능했던 일을 해냈다. 승차감은 아름다웠고, 고난도 코너의 고속 보디 컨트롤은 더할 나위 없었다. 스티어링은 애스턴 마틴의 첫 번째 전자식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감각이 풍부했다. 따라서 자동적으로 정확히 주행라인을 그었다. 덕택에 이런 도로에서 최고속도와 운전재미를 결정하는 최대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벤틀리는 이처럼 확고한 성능 앞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이로 미뤄 그동안 이 차가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고속주행은 GT 스피드의 본성과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다. 도로를 유기적 전체가 아니라 직선구간과 코너를 구분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애스턴보다 덩치가 더 크고 기동성이 떨어졌다. 따라서 직선구간에서는 전속으로 질주하지만 커브에서는 제동이 잦았다. 애스턴보다 덩치가 더 크고 기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컨티넨탈의 장점을 살려 조심스레 턴인하고 좀더 일찍 액셀을 밟아 환상적 트랙션을 살렸다. 그럴 때도 벤틀리의 잔잔한 포즈가 재미있었다. 아무튼 애스턴 마틴이 드라이버즈카로 더 뛰어났고, 그 차이는 상당히 뚜렷했다.

 

그럼 벤틀리만큼 크루징에서도 뛰어날까? 그렇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DB11은 내가 몰아본 동급의 어느 차보다 승차감이 좋았다. 아주 정숙하여 하루 800km 여행을 참기보다는 즐길 수 있었다. 벤틀리는 그보다 좀 더 정숙했다. 승차감이 초기 버전보다 상당히 개선됐으나 애스턴만큼 날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벤틀리의 실내는 난공불락.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차가 분명했다. 사실 컨티넨탈보다 안전하고 안정된 경우를 찾기 어려웠다. 온갖 재능에도 애스턴은 그럴 수 없었다. 심지어 DB11의 양산 전 상태를 감안하고 삐그덕거리는 대시보드,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다니는 바람소리도 봐주기로 했다. 그래도 벤틀리처럼 단단한 소재를 깎아 만들었다기보다는 일반차의 부품을 조립한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벤틀리가 애스턴이 꽉 물고 있는 승리를 빼앗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21세기에 막 들어서 디자인된 GT 스피드에 맞선 DB11은 비록 압승은 아니지만 승리를 거뒀다. 컨티넨탈 GT 스피드는 육중한 무게, 낡은 텔레메틱스에 발목이 잡혔다. 따라서 더 값싼 V8 S가 훨씬 좋고, 몰고 다니기에 한층 맛깔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애스턴 마틴이 느긋하게 승리를 즐길 수 있다. 10여년 만에 나온 가장 중요한 제품이 여유있게 첫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그보다 위협적인 도전자가 등장할 것이다. 바로 포르쉐 파나메라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완전신형 플랫폼을 깔고 나올 완전신형 컨티넨탈 GT가 그중 하나다. 한데 지금은 마음껏 축하하자. DB11은 2003년의 DB9 혹은 1994년의 DB7보다 좋고, 1959년 DB4 이후 최고의 완전신형 그랜드 투어러. 애스턴 마틴은 전통적인 스포츠카와 GT만 아니라 SUV부터 하이퍼카에 이르는 강적들이 우글거리는 용감한 신세계에 뛰어들었다. 지금 당장은 이보다 뛰어난 판단력을 바탕으로 만든 라이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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