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를 여는 애스턴 마틴 DB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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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여는 애스턴 마틴 DB11
  • 맷 프라이어(Matt Prior)
  • 승인 2017.01.1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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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 마틴 DB11은 브랜드의 다음 100년을 이끌어갈 계획에서 출발했다. 앞서 나온 모든 DB 모델의 당연한 후계 모델로서 가장 전통적인 그랜드 투어러여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애스턴 마틴의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애스턴 마틴 CEO 앤디 팔머(Andy Palmer)는 이렇게 말했다. “DB11은 애스턴 마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차입니다.”

애스턴 마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표현은 언뜻 과장되게 들린다. 그러나 뒤이어 팔머에게는 중요한 과제가 주어졌다. 애스턴 마틴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다. 과거 애스턴 마틴 총수들 중에 그 과제를 제대로 푼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지하다. 그 이유는 팔머가 내세운 계획에 있다. 지금부터 2022년에 라인업을 다시 재정비할 때까지 1년에 하나씩 일곱 개의 새 모델을 내놓는 것이다. 야심찬 계획이지만, 애스턴 마틴의 첫 네 개 모델 - DB11, 밴티지, 뱅퀴시, DBX SUV - 을 내놓을 수 있는 7억파운드(약 1조24억원)의 자금을 확보하면서 제시한 계획은 충분한 설득력을 얻었다. 그 뒤로 들어오는 수익은 나머지 모델을 위한 자금이 된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차가 DB11이다. DB11은 완벽한 새차다. 애스턴 마틴은 최근 대저택을 관리하는 사람처럼 엄격하고 더딘 속도로 바뀌어 왔다. 지금은 새로운 후원자가 힘을 보탠 덕분에 충분한 자금을 바탕으로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DB11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일단 뼈대가 되는 구조부터 다르다. 여전히 알루미늄을 쓰지만, 전에는 압출 성형된 부분이 많았던 것과 달리 지금은 프레스 성형한 부분이 많다. 뼈대 상태의 섀시를 보면 전체 크기는 DB9보다 약간 더 클 뿐이지만 곡면으로 이루어진 부분이 많아 차체 안쪽에 실내 공간이 차지하는 부분이 더 크다.

앞 서스펜션은 더블 위시본이지만, 뒤쪽에는 애스턴 마틴 중 처음으로 멀티링크가 쓰인다. 스티어링 역시 처음으로 유압식이 아닌 전동 파워 스티어링이 들어간다. 엔진도 새로운 것이다. DB11의 엔진으로 애스턴 마틴이 설계하고 개발한 V12 5.2L 트윈터보 엔진이 올라간다. 현재 메르세데스-벤츠가 애스턴 마틴의 지분 5%를 소유하고 있으며 기술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메르세데스-AMG V8 엔진은 훗날을 기약해야 한다. 그때까지는 두 회사 모두 여러분이 이 차를 정통 애스턴 마틴이라고 생각하기를 원할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 차는 10여 년만에 처음으로 나온, 겉으로 보기에 다른 애스턴 마틴과 닮아보이지 않는 새 애스턴 마틴이기도 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아닐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비례는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휠베이스는 DB9보다 65mm 길어졌지만 전체 길이는 겨우 50mm만 늘어났다. 앞 오버행은 16mm 짧고 뒤 오버행은 11mm 길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트랙 너비다. DB11이 DB9보다 근육질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면 전체 너비는 불과 28mm 넓어졌으면서도 앞은 74mm, 뒤는 43mm 넓어진 트랙 너비 덕분이다.


 

실내는 DB9와 비슷한 분위기로 많은 장비를 이어받았다. 차체를 닮은 모습의 카페트와 표면으로 이루어진 실내에는 곡면이 늘어났고 조형미가 강조되는 한편 더 자연적인 소재와 유기적인 느낌이 물씬하다. 내장재의 선택이 분위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독특한 무늬로 마무리된 가죽은 보는 사람이 소재 특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값싼 소재로 분위기만 그럴싸하게 낸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소재를 썼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다임러와의 협력관계가 드러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실내이기도 하다. 스티어링 컬럼 스위치는 하나뿐인데, 메르세데스-벤츠의 부품을 가져온 것이다. 15만파운드(약 2억810만원)짜리 애스턴 마틴으로서는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대시보드 가운데 놓인 대형 스크린도 메르세데스-벤츠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애스턴 마틴으로서는 화려해 보인다.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니다. 아래쪽을 직선으로 다듬은 스티어링 휠 너머에는 완전히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된 계기판이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것임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해상도가 낮아 실망스럽고 몇몇 부분에서는 색이 어색하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의 애스턴 마틴 계기들보다는 한눈에 보기에 훨씬 더 수월하다.
 

사라진 것 중에 약간 불만스러운 것이 또 하나 있다. ‘이모셔널 컨트롤 유닛’이라고 부르는 시동 키가 그것이다. 대시보드에 집어넣어야 하는 그 시동 키는 시동을 걸 때 처음 넣었던 위치에서 누른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집어넣었다가 다시 빼야 하는 번거로운 장치였다. 이제는 일반적인 키리스 고 기능이 그 장치를 대신하고 콘솔에는 제대로 된 시동 버튼이 달렸다. 확실히 편해졌다. 물론 시동 버튼에도 두 가지 기능이 있다. 버튼을 누르고 있는 시간에 따라 시동 때 배기음을 우렁차게 선택할 수도, 조용하게 선택할 수도 있다. 부드럽게 출발하고 싶으면 조용한 시동을 택하면 된다.


어쨌든 우렁찬 배기음은 무척 멋지다. 다운사이징의 결과가 5.2L에 머문 것과 두 개의 터보차저가 더해진 것이 아주 반갑다. 이것은 V12 엔진의 최고봉으로, 6500rpm에서 608마력의 최고출력을 내고 1500rpm부터 5000rpm까지 71.3kg·m의 최대토크를 유지한다. 구동력은 뒤 차축에 연결된 8단 ZF 자동변속기를 거쳐 뒷바퀴로만 전달된다. 엔진이 한참 뒤쪽으로 물러나 설치되었다는 사실 -  휠베이스가 길어지면서 엔진 블록 전체가 앞 차축 뒤에 놓이게 되었다 - 과 트랜스액슬 방식 변속기를 쓴 덕분에 앞뒤 무게 배분 비율이 51:49가 되었다는 것이 애스턴 마틴의 설명이다. 
 

대수롭지 않을 정도는 아니지만, 애스턴 마틴은 보기에 다를 뿐 아니라 감각적으로도 다른 차를 만드는 것을 점점 더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애스턴 마틴은 이 차가 가장 부드러운 모델 - 스포츠카가 아니라 GT - 인만큼, 민첩함과 날카로움이 더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시동을 걸고 천천히 움직이면 - 이렇게 움직일 때에는 ZF 자동변속기가 여전히 최고다 - 승차감이 탁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DB11에는 파워트레인과 섀시를 모두 독립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주행 모드가 있다. GT, 스포트, 스포트 플러스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고, 세 가지 모드가 모두 뚜렷한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댐퍼(모든 모드에서 주행 상태에 맞춰 조절된다)의 영리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시스템들이 대부분 그렇듯, 주행 모드를 전환할 때 일시적으로 댐퍼 반응의 변화가 뚜렷하게 느껴지고, 그런 뒤에 익숙해진다. GT 모드에서는 승차감이 무척 편안하다. 
 

GT 모드에서는 차체 움직임을 제어하기가 아주 좋다. 긴장감이 훨씬 더 커야한다고 생각할 일이 별로 없다. 무게가 1900kg인 DB11이 충격을 흡수하면서 거칠고 울퉁불퉁한 노면을 지날 때 차분함을 유지하는 능력은 정말 걸출하다. 그리고 2+2 좌석 구성에 무게 1900kg인 V12 엔진 차로서는 믿기 힘들만큼 탁월한 민첩성을 보여준다. 


애스턴 마틴은 스티어링 기어비를 줄였다. 다행스럽게도 페라리만큼은 아니지만 대단히 반응이 빨라, 운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반길만하다. 그저 코너를 향해 가볍게 힘을 주어 정확하게 스티어링을 돌리면 DB11은 그대로 움직인다. V12 밴티지 S보다 노면에서부터 전달되는 감각이 부족하지도 않다.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서도 킥백은 훨씬 덜하다. 이따금 감각이 어색해지기는 하지만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드물다. 이 차는 GT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피드백이 넘쳐흐르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고속도로에서 오랜 시간 달려도 나긋나긋하고 안정감 있게 달리기를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 DB11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킨다.
 

분명한 사실은, 그러면서도 이 차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점이다. 시승하는 동안 짧은 구간에서 그랬듯, DB11이 젖은 노면을 지날 때에는 기어가 몇 단에 물려 있든지 관계없이 구동력 제어장치가 작동해 괴롭힐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터보차저가 있다 보니 낮은 회전수일 때에는 터보 랙이 약간 나타나지만 1500rpm부터 71.3kg·m의 최대토크를 낸다. 눈깜빡할 정도로 짧은 시간동안, 쓸 수 있는 토크가 41.5kg·m 정도에 그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회전수는 원하는 만큼 깔끔하고 뚜렷하게 높아진다. 그 과정이 매우 중독성이 크기 때문에 누구라도 회전수를 높이고 싶을 것이다.


섀시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속도도 감당해 낸다. 한계에 가까울 때에도 차를 다루기 쉽다. 승차감은 아주 편안하면서 민첩하다.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다. 민첩성에서는 맥라렌 650S나 페라리 488 GTB의 90%, 승차감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90% 수준이면서 이 정도 무게의 차에서 어우러질 수 없는 두 가지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이런 차가 만들어진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보다 더 섀시가 뛰어난 GT 카는 몰아본 적이 없다. 터보차저가 없고, 더 뛰어난 엔진을 얹은 GT 카는 있다. 그러나 이 V12 엔진은 정말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아마도 실내 요소들이 좀 더 만족스러운 GT 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 차를 불평하는 것은 지나치게 심술궂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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