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애호가의 천국, 헥사곤 모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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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애호가의 천국, 헥사곤 모던 클래식
  • 스티브 크로폴리(Steve Cropley)
  • 승인 2016.11.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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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즐겁고 독창적인 자동차 박물관이 영국 수도 런던에 등장했다. 가장 소중한 전시차 - 적어도 그중 일부 - 는 현장에서 새 오너가 사서 몰고 나갈 수 있다. 그곳은 재래식 박물관보다 훨씬 생기가 넘쳤다. 차와 고객과 돈이 들락거리느라 출렁이는 장터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차를 사지 않는 관람자들도 사방을 둘러보느라 법석이었다. 언젠가 자신도 이런 차를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남몰래 들떠서…. 이처럼 새로운 자동차 컬렉션은 폴 마이클스가 소망하던 바로 그런 박물관으로 이어졌다. 그는 영국 최고의 클래식카 전문가로 꼽힌다. 최근 그는 활동근거지인 북부 런던의 하이게이트에 박물관을 열었다. 바로 옆 그레이트 노스 로드의 놀랍도록 조용하고 수목이 울창한 거리에는 그가 공동소유하고 있는 로터스 딜러가 있다.


참신한 개인 박물관 헥사곤 모던 클래식(Hexagon Modern Classic)은 이미 문을 열었다. 최근 우리가 찾아갔을 때 관람자와 클래식카 고객들이 웅성거렸다. 공사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었다. 마이클스에 따르면 앞으로 2년간 더 손을 봐야 완공된다. 헥사곤 모던 클래식이 완성되면 자동차 애호가의 완전한 천국으로 탈바꿈한다. 레스토랑 2개, 델리, 카페바, 아트 갤러리, 그리고 자동차 용품점이 들어선다. 뿐만 아니라 마이클스 자신의 개인 소장 명차 일부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따로 마련하고, 현행 최고의 클래식카를 보고 살 수 있는 매장이 뒤따른다.
 

일부 전시차는 예술과 실용차의 경계에 걸터앉아 있었다. 마이클스가 어떤 차를 내놓으려는지를 알려주는 본보기였다. 박물관에 들어선 지 불과 몇 분 만에 놀랍도록 주행거리가 짧은 한 쌍의 1965 E-타입이 눈에 들어왔다. 주행거리 약 1만4000km의 로드스터와 1만6900km의 쿠페였다. 마이클스는 “이런 수준의 차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차를 팔려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이곳을 찾아온다”고 말한다. 이런 차와 함께 영국 최고의 자동차 예술 작품들 -포스터, 그림과 사진 - 을 곁들였다. 그리고 마이클스의 집무실에는 실로 놀랍도록 유서 깊은 자동차 관련 기념품이 진열돼 있었다. 모두 다 감상하려면 며칠 걸릴 정도였다. 게다가 그에 따르는 매력적인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마이클스가 헥사곤(Hexagon) 브랜드를 쓰게 된 것은 아주 역사가 길다. 1963년 벨사이즈 파크의 작은 가계에서 자동차를 거래하기 시작할 때부터다. 그의 아버지는 지칠 줄 모르고 집에 재미있는 기계를 들고 오는 자동차광이었다. 마이클스는 학교를 마쳤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1963년 사업에 착수했고, 자동차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자동차사업에 열정적인 마이클스는 다각적인 현대식 프랜차이즈 사업에 착수했다. 런던에서 그런 사업방식이 유행하기 오래 전이었다. 그리고 알파로메오, 로터스, 릴라이언트, 마르코스, BMW와 심지어 몬테베르디도 거래대상에 들어갔다.
 

그때마다 언제나 변함없이 헥사곤이라는 상호를 썼다. 헥사곤이라는 상호를 쓴 것은 트라이던트, 콰드런트와 펜터스타라는 이름은 벌써 다른 업자들이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그는 헥사곤 튠(Hexagon Tune)이라는 이름으로 밴의 고성능 튜닝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지의 피아노 소유자들이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자동차 튜닝이라는 의미로 튠(Tune)을 붙였으나 피아노 조율 업체로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업체의 성격을 한층 뚜렷이 구별할 이름을 찾아야 했다. 


그의 사업은 급속히 성장했다. 현대의 온갖 흥미있는 머신을 다루게 됐고, 런던에서 BMW 최대 딜러로 자리를 굳혔다. 그리고 자금이 돌아가자 레이싱이 그의 또 다른 열정의 대상이 됐다. 먼저 그는 D-타입으로 레이스를 시작했고, 고난도의 화려한 F5000으로 승격했다. 그러다가 1973~1974년 모터스포츠의 정상 F1으로 뛰어올랐다. 스스로 헥사곤의 ‘가장 모험적 시기’라고 한 이때 먼저 이상한 노즈(마이클스팀이 직접 손질해 고쳤다)의 마치 한 대를 사들였다.
 

그 뒤 팀 오너였던 버니 에클레스톤으로부터 브라밤 BT44를 사들이고 존 웟슨을 드라이버로 받아들였다. 그랑프리 활동기간은 짧았으나 기억에 깊이 남았다. 헥사곤 집무실의 벽에 걸린 당대의 수많은 사진이 증거로 남아있었다. 마이클스는 그 작은 팀이 이룩한 업적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1974년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 4위에 입상해 무한히 값진 챔피언십 6점을 움켜쥐었다. 레이스는 여전히 그의 열정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하이게이트 쇼룸에는 지금도 16년 전에 사들인 거의 완벽한 1987 포르쉐 962를 간직하고 있다. 이 차는 세계최고의 내구레이스 르망 24시간에서 4위에 올랐고, 뒤이어 8위를 기록했다. 물론 팔려고 내놨으나 마이클스의 손아귀에서 빼내려면 거액을 들여야 할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마이클스 자신의 복합적인 개인 소장품 20여대는 움직이는 축제였다. 그의 집무실 밖의 칠판에는 백묵으로 리스트를 적어놨다. 그 안에는 4.7L 이글 E-타입 로드스터, 애스턴 마틴 DB4 자가토 생션 쓰리, 1952 피아트 픽업, 포드 경량 GT, 랜드로버 시리즈 1, 애스턴 DB2와 다양한 재규어 XK120이 줄지었다. 그리고 각종 포르쉐가 즐비했다. “나는 딜러였다. 따라서 차를 보면 품질이 어느 정도인지 당장 알 수 있다.”


마이클스는 브렉시트 이후 경매가가 전보다 내려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클래식카가 줄줄이 영국을 빠져나갈 것이라고 했다. 영국 파운드의 가치가 갑자기 떨어져 외국인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BMW Z8 두 대를 독일에 팔았다. 독일 고객은 차가 싸다고 했다.” 한편 마이클스는 영국 파운드의 가치가 단기간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통적 클래식카 시장은 상당히 단단하리라 예상했다.

 

 

폴 마이클스의 보물
헥사곤의 총수는 중요한 자동차 관련 공예품을 엄청나게 모았다. 여기 가장 사랑하는 물건이 모여 있다.
 

부가티 바이스
“위대한 부가티를 만들 때 실제로 쓰인 공구다. 1980년대 초에 샀는데 정확성에 홀딱 반했다. 차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페라리 GTO 모델
“이 차는 굿우드의 투어리스트 트로피를 받았다. 나는 레플리카 한 대를 갖고 있었는데 팔아버렸다. 얼마나 완벽한지 수많은 사람이 섀시 넘버를 물어왔다. 나는 해체할 수 없었다.”
 

부가티 타입 59
“나는 늘 타입 59 한 대를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에게 한 대를 만들어달라고 의뢰했다. 그는 내 돈을 가지고 튀었고, 이런 부품들만 남았다.” 
 

마치 F1 레이싱카
“여기 제대로 된 노즈를 달고 있는 마치가 있다. 원래는 괴기한 모양이었는데 우리가 그걸 바꿨다. 그런 다음 브라밤으로 차를 갈았다. 그동안 짜릿한 스릴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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