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자가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다. 그리고 맞은편에서는 젊은 남자가 다급한 얼굴로 마주 달려오고 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혹시, 너무도 사랑해서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일까? 누군가들의 반대로 저렇게 서로를 그리워하며 달리는 걸까?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의 손이 맞닿으려는 순간 퍽, 쓰러져버린 여자의 몸을 부둥켜안고 ‘엄마’라 부르며 절규하는 남자를 보면서 관객들은 묘한 충격에 휩싸인다.
시간이 화폐인 시대, 시간이 화폐인 이곳. 사람들은 25살이 되면 더 이상 늙지 않는다. 그리고 팔에 새겨진 타이머가 작동되면서 1년의 시간이 카운트되기 시작한다. 어느 시대, 어느 곳이나 빈부의 차이는 있는 법.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타임존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의 시간을 채워 산다. 어제 3분이었던 커피는 오늘 4분이 되고 어제 1시간이었던 버스요금은 오늘 2시간이 된다. 그래서 이들은 꿈을 꿀 수 없다. 무언가 해보겠다는 계획도 세울 수 없다. 자신의 시간, 삶이 얼마나 남아있나 수시로 타이머를 들여다보고 언제나 뛰어다닌다. 일당을 받을 때도 1초가 아쉬워 앞의 사람이 지체되는 것을 보지 못하며 빈민가의 자선단체에는 언제나 ‘시간 없음’이 표시된다.
뉴 그리니치에 사는 부유한 사람들은 풍족한 시간 덕에 영생을 누릴 수 있다. 늙는 법도 없고 넘쳐나는 시간을 사지 못할 것도 없다. 자녀들에게 엄청난 시간을 물려주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다. 그런데 이들은 꿈을 꿀 수 없다. 무언가 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25살,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머물러 유유자적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써대기 때문이다. 타이머가 얼마나 남았나 들여다볼 일도 없고 느긋하고 한적하게 걸어 다니며 최고급 스포츠카를 몰면서도 가장 느리게 운전한다. 시간은 금고에 저장해두었고 그것을 지켜주는 타임키퍼들이 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의 무섭고 치명적인 비밀을 알게 된 빈민가 출신의 윌은 와이즈 시간은행 총재의 딸 실비아와 함께 시간을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윌이 결심을 하고 뉴 그리니치로 가서 구입하는 차는 재규어 XKE 로드스터. 무려 59년이라는 시간을 주고 산 차다. 이 차는 와이즈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신분의 표시가 되어주며 그로 인해 이후 벌어질 사건들의 디딤돌이 된다. 초대받은 윌은 재규어를 타고 와이즈의 집으로 진입한다. 그곳에서 그의 딸 실비아와 운명적으로 만나 실비아를 데리고 도피하며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오는 일련의 사건을 만들어간다.
글 · 신지혜(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