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인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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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인 타임>
  • 아이오토카
  • 승인 2011.12.2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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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4분, 버스요금 2시간, 스포츠카 59년


젊은 여자가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다. 그리고 맞은편에서는 젊은 남자가 다급한 얼굴로 마주 달려오고 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혹시, 너무도 사랑해서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일까? 누군가들의 반대로 저렇게 서로를 그리워하며 달리는 걸까?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의 손이 맞닿으려는 순간 퍽, 쓰러져버린 여자의 몸을 부둥켜안고 ‘엄마’라 부르며 절규하는 남자를 보면서 관객들은 묘한 충격에 휩싸인다.

시간이 화폐인 시대, 시간이 화폐인 이곳. 사람들은 25살이 되면 더 이상 늙지 않는다. 그리고 팔에 새겨진 타이머가 작동되면서 1년의 시간이 카운트되기 시작한다. 어느 시대, 어느 곳이나 빈부의 차이는 있는 법.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타임존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의 시간을 채워 산다. 어제 3분이었던 커피는 오늘 4분이 되고 어제 1시간이었던 버스요금은 오늘 2시간이 된다. 그래서 이들은 꿈을 꿀 수 없다. 무언가 해보겠다는 계획도 세울 수 없다. 자신의 시간, 삶이 얼마나 남아있나 수시로 타이머를 들여다보고 언제나 뛰어다닌다. 일당을 받을 때도 1초가 아쉬워 앞의 사람이 지체되는 것을 보지 못하며 빈민가의 자선단체에는 언제나 ‘시간 없음’이 표시된다.

뉴 그리니치에 사는 부유한 사람들은 풍족한 시간 덕에 영생을 누릴 수 있다. 늙는 법도 없고 넘쳐나는 시간을 사지 못할 것도 없다. 자녀들에게 엄청난 시간을 물려주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다. 그런데 이들은 꿈을 꿀 수 없다. 무언가 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25살,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머물러 유유자적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써대기 때문이다. 타이머가 얼마나 남았나 들여다볼 일도 없고 느긋하고 한적하게 걸어 다니며 최고급 스포츠카를 몰면서도 가장 느리게 운전한다. 시간은 금고에 저장해두었고 그것을 지켜주는 타임키퍼들이 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의 무섭고 치명적인 비밀을 알게 된 빈민가 출신의 윌은 와이즈 시간은행 총재의 딸 실비아와 함께 시간을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영화는 영리하고 교묘하게 시간이 화폐가 된 사회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삶이 지금 우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 놀라게 된다. 1초만 있었더라면 윌은 엄마의 손을 잡고 타임 트랜스퍼를 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 텐데.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1초가 그렇게 커다랗고 의미 있는 실체로 다가오다니. 윌이 속해있던 빈민가에서 자동차는 찾아볼 수 없다. 단 하루 정도 혹은 몇 시간만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차를 살 수 있을 리 없다. 실비아가 속해있던 뉴그리니치에는 자동차가 넘쳐난다. 그것도 고급스러운 클래식 카가.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수명과 젊음의 여유가 있으니 보다 아름다운, 보다 가치 있는, 보다 값비싼 것들에 눈을 돌리는 것은 일면 당연한 것이다.

윌이 결심을 하고 뉴 그리니치로 가서 구입하는 차는 재규어 XKE 로드스터. 무려 59년이라는 시간을 주고 산 차다. 이 차는 와이즈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신분의 표시가 되어주며 그로 인해 이후 벌어질 사건들의 디딤돌이 된다. 초대받은 윌은 재규어를 타고 와이즈의 집으로 진입한다. 그곳에서 그의 딸 실비아와 운명적으로 만나 실비아를 데리고 도피하며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오는 일련의 사건을 만들어간다.

이밖에도 1961년산 링컨 타운카, 1970년산 다지 챌린저, 1985년산 캐딜락 세빌 등 멋진 차들이 중후하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뉴 그리니치를 누비며 관객들의 눈을 홀린다. 그러나 이 명품차들은 최소한 59년의 시간을 주어야 살 수 있는 차들이니 입맛만 다시는 수밖에.

글 · 신지혜(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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