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의 분명한 길, S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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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의 분명한 길, S90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6.12.1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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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리 오스카(Lee Oscar)의 ‘My Road'. 그 서정적인 하모니카 선율 속에는 비장함과 단호함이 묻어난다. ‘나의 길’에는 그러한 점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볼보 S90을 타고 이 곡이 떠오른 이유는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는 볼보의 의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S90을 처음 본 느낌은 볼보인데, 볼보 같지 않다는 것. 많은 변화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왔지만 가장 새로운 이미지의 볼보라는 점이다. 
 

볼보가 지리자동차 산하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회의적이었던 시선은 XC90 이후 180도 바뀌었다. 역시 제조업의 승부수는 제품이 말한다. 이제 바통은 S90으로 넘어왔다. 볼보의 자신감은 역시 제품력. 과거 S80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제품력으로 독일 프리미엄 중대형차와 맞붙겠다는 것. 그리고 이 지점에서 품질경쟁력은 이미 갖추었으니 독자노선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 독자노선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볼보의 하칸 새무엘손 CEO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아한 북유럽 디자인에서부터 독일차와 방향을 달리한다. 시장에서 독일차들과 물량경쟁에는 관심 없다. 우리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의 가치를 제공할 것이다”는 말로 함축된다.
 

자, 이제 그 자신감을 들여다보자. 도어를 열고 실내에 들어서면 XC90과 인테리어가 똑같다. 승용에서 먼저 본 디자인을 SUV에서 발견하는 일은 잦아도 그 반대의 경우는 드물다. 볼보로서는 이 간결하고 상큼한 디자인을 전 모델에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나무를 나무답게 살리는 것은 그 주변의 간결함이다. 간결함은 기능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는 디지털 시대에 익숙한 그것에 다름 아니다.
 

가구 느낌이 나는 단아한 인테리어 디자인은 현대적이면서도 미래로 한발 더 나아간 느낌이다. 갤러리의 모던한 의자에 앉아 터치스크린으로 원하는 메뉴를 고르는 기분, 그런 기분을 운전하는 동안 줄곧 유지시켜주는 것이 새로워진 볼보다.
 

S90 D5는 직렬 4기통 2.0L 트윈터보 디젤 235마력 엔진을 얹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새로운 볼보 이면에는 새로워진 파워 트레인이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모듈화 엔진이다. 기존의 직렬 5기통, 직렬 6기통을 대체하는 직렬 4기통 2.0L 엔진은 디젤과 휘발유 두 가지로 자동 8단 또는 수동 6단과 짝을 이룬다. 배기량은 한 가지지만 출력 범위가 넓어 일반 모델부터 고성능 모델까지 아우른다. D4, D5, T5, T6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같은 볼보의 드라이브-E 엔진 시리즈는 i-ART(Intelligent Accuracy Refinement Tech nologies) 기술이 포인트다. 커먼레일 방식 연료분사 기술로 각 인젝터마다 설치된 소형 컴퓨터 칩으로 각 실린더에 분사할 최적의 연료량을 계산한다. 각 인젝터의 개별 조절이 가능함에 따라 경제성과 성능, 정숙성을 향상시킨다. D5는 여기에 또 볼보만의 파워펄스(power pulse) 기술이 더해진다. 저속에서 빠르게 속도를 높이고자 할 때 즉각적인 터보 반응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터보랙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S90 D5가 디젤이라는 느낌은 시동이 걸릴 때, 그리고 공회전을 하고 있을 때다.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껄끄러운 디젤 느낌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가속이 부드럽고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디젤 터보라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가속 이후의 끈기라는 측면에서도 디젤의 단점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초기 가속 이후 폭발적이라는 느낌은 없다. 좋게 말하면 상큼하고 달리 말하면 밋밋하다. 핸들링도 이와 같아서 날카로운 맛은 살짝 부족하다. 
 

독일차와 다르다는 점이 바로 이런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적극적이고 날카로운 핸들링은 찾기 힘든 대신 어느 영역에서나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다는 것. 독일차에서 추구하는 운전재미를 찾는다면 확실히 번지수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편안하고 안정적인 또 다른 성격의 고급 주행감각을 찾는다면 해답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느낌은 오토파일럿을 작동시키면서 굳어졌다. 반(semi)자율주행 기능은 자율주행의 최종 5단계중 2단계에 있는 레벨 2 기술이다. 최근의 신차들을 통해 유사한 기능을 경험해보았지만 작동방식은 볼보가 가장 단순하고 빠른 것 같다. 그냥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스티어링 휠 위의 작은 버튼 하나면 누르면 바로 작동한다. 그런 다음 아래 위 화살표를 따라 속도를 맞추면 된다. 오른쪽 화살표는 스티어링 휠을 그에 연동시키는 장치다. 그러면 자동으로 차선을 인식해 앞차를 따라 달린다.
 

차선 인식 기능은 다른 차보다 앞서는 느낌이다. 제법 각도가 큰 코너에서도 비교적 정확하게 차선의 중심을 지키며 따라갔다. 앞차가 멈춰서 시속 0km가 되었다 해도 곧바로 다시 움직이면 액셀러레이터를 밟지 않아도 따라 나아간다. 정체가 이어진 도로에서 매우 요긴한 기능이다. 다만 앞차가 갑자기 속도를 높일 경우 순발력 있게 따라가기는 어렵다. 이 경우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올려야 한다. 느긋하게 이 기능을 즐기기에는 우리의 도심이 너무 다이내믹하다.
 

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달리다가 조금만 차의 흐름이 더뎌지면 오토파일럿 버튼을 찾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이다. 정체구간에서야 그렇다 치고 비교적 차들의 흐름이 뜸한 외곽에서도 이 기능을 찾게 되는 것. 그야말로 중독성이 있는 기능이다. 자율주행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살짝 바꿔놓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다시 오토파일럿을 끄고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는다. 주행모드를 컴포트에서 다이내믹으로 바꾸자 기다렸다는 듯 하체가 응축되며 탄력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가속은 한층 세차지만 회전질감은 여전히 부드럽다. 패들 시프트는 없어도 아쉽지 않은 것이 S90의 성격. 수동 변속을 즐기고 싶다면 플로어의 기어 레버를 이용하면 된다. 그런다고 스포티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뒷좌석은 보기보다 무릎 공간에 여유가 있다. 조금 높게 위치하는 센터 암레스트는 푸시버튼형 듀얼 컵홀더와 스마트폰 거치대, 약간의 수납공간 등 기능에 충실하다. 무엇보다 위치가 딱 알맞아 왼쪽 도어 암레스트와 함께 좌우 팔걸이가 있는 의자처럼 편안한 자세를 만든다. 앞좌석과 마찬가지로 모던한 갤러리에 앉은 느낌을 준다. 트렁크는 넓고 깊지만 높이는 조금 낮다. 플로어 매트 아래 컨템포러리 타이어를 마련해 두었기 때문이다.
 

잠시 차를 세워두고 다시 시동을 거는데, 벽면에 비친 S90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치켜든 눈처럼 두 줄의 선이 올라가는 끝에 해머가 달려있다. 바로 토르의 망치다. 무언가 짜릿한 느낌. 이처럼,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각도에서 매력을 발견하는 것도 즐거움을 더해주는 요소다. 볼보 S90은 은근한 매력으로 여운을 남기는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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