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몬스터, 캐딜락 CT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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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몬스터, 캐딜락 CTS-V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6.11.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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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멸종 위기에 내몰렸던 아메리카산 V8이 그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우리 앞에 섰다. 새로운 시대는 오다가 가버렸을까 아니면 그 모든 게 구름 잡는 이야기였을까. 평범한 세단에 얹은 V8 6.2L 648마력이라는 괴물. 캐딜락 CTS-V를 보며 이 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저 친환경과 효율성의 시대에 불쑥 등장한 희귀종일까. 아니면 혼돈의 시대를 조롱하기 위함인가. 단순히 생각하면 이런 게 바로 자동차 세상... 잡념을 걷어차고 시동을 건다.
 

시동을 걸 때는 주변을 살펴야 한다. 갑자기 소리에 놀라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요란한 소리로 시동이 걸리고 나면, 가만히 서 있어도 으르릉 대기 시작한다. 세단이지만 하체는 바닥에 바싹 달라붙어 있다. 조심스럽게 골목길을 빠져나와(속도방지턱은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넓은 도로로 나선다. 

 

가속은,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가속은 속도계를 자주 확인해야 한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그래서 유용하다. 아니면 계기판을 들여다보느라 바빴을 것이다. rpm 게이지의 바늘은 상승하는 영역에 붉은색을 칠하고 다닌다. 그런데 생각보다 rpm이 아랫물에서 논다. 기어비를 넓게 심어놓은 자동 8단 변속기 덕분이다. 투어 모드에서는 저 rpm에서 느긋하게 투어링을 즐길 수 있는 세팅이다. 저 rpm 이라고는 하지만 시속 100km는 가볍게 넘는다. 그리고 스포트 모드에서 rpm을 높게 쓰기 시작하면 무서울 정도의 가속력이 불을 뿜는다.
 

레카로 시트는 몸을 꽉 잡아준다. 잡아주는 건 좋은데 너무 조여서 갈비뼈가 아프다. 앞서 시승한 운전자가 아마 마른 체형이었던 모양. 시트 옆 파워버튼을 더듬어 사이드 볼스터를 풀어준다. 최대한 푼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옆구리를 확실하게 지지해 주는 구조다. 트랙에서라면 마음 놓고 코너를 세차게 감아 돌 수 있을 것이다.
 

실내 레이아웃은 그대로지만 스티어링 휠과 기어 레버, 천장 등에 쓰인 스웨이드 가죽이 V의 특별함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운전자와 교감하는 스티어링 휠을 감싼 스웨이드 가죽이 달리는 내내 좋은 느낌을 전해준다. 손에 땀이 차지 않아 쾌적하고 핸들링도 한층 상쾌해진 기분을 더한다. 그리고 애플 카플레이가 장착되어 전화와 음악이 연결된다. 메시지는 음성으로 읽어준다. 마찬가지로 음성으로 답장을 보낼 수도 있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모니터, 그 아래 온도 공조 스위치도 터치 방식인데 손가락으로 누를 때 퉁퉁 튕기듯 반응한다. 섬세한 조정보다는 성큼성큼 나아가는, 이른바 아메리칸 스타일이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차선 이탈 및 사각지대 경고를 비롯한 각종 경고는 시트가 진동하는 햅틱 반응인데 깜짝 놀랄 만큼 진동이 크다. 말로 하기보다 어깨를 툭 치는, 그야말로 터프한 스타일. CTS-V를 몰면서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운전중 졸음이 와 살짝 차선을 넘을 때 시트 진동만으로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릴 것이다.
 

센터 콘솔 안에는 2개의 USB 포터가 자리하는데 소지품을 수납할 공간으로서는 무척 좁다. 센터페시아 아래에도 듀얼 컵홀더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수납공간이 없다. 컵홀더 커버는 자동으로 열고 닫을 수 있지만 플라스틱 재질로 고급감은 떨어진다. 굳이 커버는 필요 없어 보인다. 뒷좌석은 쓱 보기에도 넓다. 근데 후방카메라는 낡은 TV를 보는 듯 화면이 희뿌옇다. 이건 확실히 선명도를 높여야 한다.
 

D 모드에서 패들 시프트를 건드리면 수동 변속이 가능하지만 주춤하면 곧 D 모드로 돌아가 버린다. 하지만 기어레버 위의 M 버튼을 누르면 완전 수동 모드로 바뀐다. 직선도로에서는 워낙 강력한 파워에 빠르게 반응하고 브레이크 응답성 또한 좋기 때문에 수동 변속의 쓸모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와인딩 로드에 접어들면 패들 시프트를 채찍 삼아 야수를 조련하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V8 6.2L 640마력 엔진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압도적인 파워는 자동 8단 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를 굴린다. 여기에 ZF 스티어링 시스템이 민첩하게 방향을 잡는다. 이만한 고성능을 견디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강건한 섀시. 쉐보레 카마로에도 적용되는 GM의 새로운 알파 플랫폼은 일반 세단보다 섀시 강성이 20% 이상 더 높다. 새로운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MRC) 댐퍼는 이전 세대보다 40% 더 빠르게 반응한다는 설명이다.
 

노면정보를 읽어내고 빠르게 대응하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의 기능은 인정하지만 승차감이 매끈한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파워가 너무 세다. 풀가속과 더불어 집중하면 순식간에 6천rpm을 넘어 레드존에 도달한다. 폭풍처럼 거친 달리기는 결코 매끈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체는 바닥에 착 붙어 달리지만 엉덩이는 들썩이는 느낌. 그런데도 안정적인 느낌은 유지된다. 보닛 중앙의 V형 에어벤트가 엔진 열을 식혀주고 리프 스포일러가 고속에서 차체가 뜨는 것을 억눌러준다. 무언가 들뜬 것 같은데 이상하게 차분한 느낌이다. 분명 독일차와는 감각이 다른 재미다.
 

CTS-V를 타고 있으면 그야말로 풍요로운 시대로 돌아간 듯하다. 뚝뚝 떨어지는 연료 게이지에 신경 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시승차를 받을 때 연비표시 3.8km/L였던 것을 6.7km/L 상태에서 돌려주었다. 우연이지만 CTS-V의 복합연비와 정확히 일치했다. 뿌듯함을 느껴야 할까. 고속으로 달릴 때는 사실 3.6km/L까지 내려가기는 했다. 스포트 모드에서는 연비가 눈에 띄게 나빠졌고 투어 모드에서 투어링을 이어가면 연비가 좋아졌다. 연비에 관련해서는 운전자가 개입할 여지가 큰 성격이다. 문제는 CTS-V를 몰고 얌전히 다니기가 쉽지 않다는 점.
 

CTS-V와 헤어지기 전 잠시 뒷좌석에 앉았다. 뒷좌석에서 보니 레카로 시트가 한층 선명하게 경주차의 것처럼 보인다. 그 시트에 앉아있을 때는 좋았지만 뒤에서 보니 기분이 묘하다. 뒷좌석 공간은 넉넉하지만 어쩐지 뒷좌석을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CTS-V는 철저하게 운전자를 위한 차. 대형 세단이지만 만약 패밀리카로 이 차를 쓸 생각이라면 매우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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