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에서 만난, 더 뉴 콰트로포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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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에서 만난, 더 뉴 콰트로포르테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6.12.2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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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요란한 소리에 깨어 창 밖을 내다보니 바다 건너편 산 위로 마른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린다. 여기는 이탈리아의 남쪽 섬 시칠리아. 그중에서도 북서쪽에 자리한 팔레르모다. 이 물설고 낯선 땅에 온 이유는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신형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를 만나기 위해서. 어둠도 생경한 곳, 섬광으로 번쩍이며 흔들리는 바다 물결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라도 나타난 것일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다시금 잠을 재촉하는데 커다란 빗소리가 들린다.
 

시칠리아로 떠나기 직전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 <대부2>를 봤다. 예전에 본 영화지만 모든 장면이 새롭게 다가왔다. 젊은 알 파치노는 낯설었고 지나간 시절을 그립게 만들었다. 영화의 출발선이 되는 시칠리아의 아름다운 풍경은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었을 때 황량했고 그 이면의 삶은 잔인했다. 그래서였을까. 팔레르모 공항을 통해 시가지로 가는 길가의 시칠리아 풍경이 다소 거칠게 느껴진 것은.
 

근래의 팔레르모를 방문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복잡하고 지저분하며 퇴색된 도시로 묘사했지만 괴테의 시대에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괴테는 이곳을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의 도시’라고 말했다. 나는 예전에는 하루키, 지금은 괴테가 더 좋아졌지만 이 도시에 대한 평가는 하루키가 맞는 것 같다. 아무튼 팔레르모는 9세기에서 11세기를 거쳐 아랍 및 노르만의 지배를 받으며 번성했다. 그래서 지금도 도시 곳곳에 아랍풍의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신형 콰트로포트테 시승 출발점은 ‘중국 궁전’(chiness palace)이라 불리는 오래된 건물 앞마당에서. 브루봉 왕조의 페르디난트 4세와 그의 아내 마리 카롤니네(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자의 딸들 중 한명, 마리 앙트와네트와 자매지간)의 여름 별장으로 쓰인 곳이란다. 붉은빛이 감도는 건물은 고딕 스타일과 중국풍이 혼재된 양식이다. 이런 스타일은 실내 장식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궁전 내부를 잠시 둘러보는데 마세라티가 보였다. 과거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활약한 마세라티 티포(Tipo) 경주차들의 사진을 이젤에 걸어놓은 것이다.
 

마세라티의 의도, 그러니까 시칠리아를 신형 콰트로포르테의 글로벌 시승 장소로 선택한 이유가 분명해진 순간이다. 1905년~1973년까지 시칠리아 일대에서 열린 타르가 플로리오는 가장 매력적인 레이싱 경기중 하나로 손꼽히며 포르쉐 타르가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관계자는 타르가 플로리오의 트랙 중 일부가 시승 코스에 포함된다고 귀뜸해 주었다. 살짝 가슴이 뛴다. 이제 새로운 콰트로포르테에 집중할 시간이다.
 

마세라티의 아이코닉 기함으로서 72개국에 판매되는 콰트로포르테는 이탈리아 스포츠 세단의 전형을 보여주는 모델. 1963년부터 역사를 쓰기 시작해 이번 변경은 6세대 페이스리프트에 해당한다. 차체에 알루미늄을 60% 적용한 하이브리드 보디지만 무게 변화는 없다. 부분적으로 가벼워진 곳, 또는 무거워진 곳이 있기 때문. 전체적인 부품 변경폭은 5~10% 정도. 공기저항을 줄이면서 주행속도를 향상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데이비드 클루저(Davide kluzer) 홍보총괄은 “새로운 콰트로포르테는 상당한 변화를 겪었지만 마세라티 고유의 개성과 성격은 그대로 두었다”고 설명했다. 상당한 변화라고 하지만 첫눈에 달라진 모습은 확 와 닿지는 않는다.
 

마세라티를 상징하는 프론트 그릴은 알피에리 콘셉트에서 영감을 받은(이미 르반떼에도 반영된) 것으로 디테일에 변화를 주었다. 세로로 꺾어진 버티컬 크롬 바가 명암을 깊게 만들고 앙다문 입 같은 범퍼 디자인이 전체적인 앞모습을 ‘상어 코’(shark nose)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는 과거의 경주차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앞뒤 범퍼 형상을 바꾸면서 거둔 성과는 공기저항계수(Cd) 0.28로 나타났다. 이는 이전 모델(Cd 0.31)에 비해 공기역학성능을 10% 향상시켰음을 의미한다. 또한 고속도로에서의 연료효율도 3% 향상되었다.
 

에어 벤터와 엔진 라디에이터 사이에 있는 에어셔터는 전자식으로 조절가능하다. 에어셔터는 고속에서 닫혀 공기저항을 최적화시키는데 V8 530마력의 경우 시속 310km에서, V6 410마력의 경우 시속 286km에서 닫힌다. 각각 최고속도가 나오는 구간이다. 실제 그런 속도로 달릴 일이 얼마나 있을까만 그 설정만으로 콰트로포르테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이번 콰트로포르테의 또 다른 특징은 모델 가짓수가 종전 5개에서 14가지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V8 3.8L 트윈터보 530마력을 비롯해 V6 3.0L 트윈터보 410마력, V6 3.0L 트윈터보 350마력 세 가지 휘발유 엔진과 V6 3.0L 터보 디젤 엔진 등 총 4가지 엔진에 뒷바퀴굴림 또는 네바퀴굴림 그리고 그란 루소와 그란 스포트 등 모델 레인지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성격의 콰트로포르테가 완성된다. 모든 엔진 설계는 마세라티와 페라리 공동, 그리고 생산은 페라리에서 한다.
 

그중 내게 배당된 차는 V6 3.0L 트윈터보 410마력 엔진을 얹은 콰트로포르테 SQ4 AWD 그란 루쏘. ATC(액티브 토크 컨트롤 시스템)을 단 마세라티 최초의 AWD 시스템이 특징이다. 셀프 잠금 기능의 리어 디퍼렌셜, 토크배분은 앞뒤 0:100에서 앞바퀴에 구동력이 필요할 때 50:50으로 나누어진다. 평소에는 뒷바퀴굴림 특성 그대로다.
 

마침내 출발하는데 맨 앞 선도차가 현지 경찰차다. 출근길 시가지의 길은 좁고 복잡하다. 여러 대의 차량 행렬이 한 방향으로 한 번에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른 차로의 통행을 제어해야 하는 상황.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뚫고 한참 만에 시가지를 벗어난다. 시가지를 벗어나도 도로의 흐름은 녹록치 않다. 2차선 도로는 차선이 좁고 텃세를 부리는 차들은 그다지 양보가 없다. 그리고 터널이 자주 나타났다.
 

그런 길 위에서 콰트로포르테는 본색을 드러냈다. 카랑카랑한 배기음을 울리며 서서히 도로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V6 트윈터보 엔진은 회전질감이 매끈하면서도 반응이 빠르다.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토크밴드가 1,750~5,000rpm대로 영역이 넓다. 저속에서부터 가속이 빠르고 꾸준한 세기로 힘을 뒷받침한다. 파워는 주먹 끝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뱃심에서부터 모아진 힘이 강력한 한방을 날린다. 풀 액셀러레이터의 순간은 중후한 4도어 세단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탄력적이다. 그리고 화살처럼 튕겨나가는 순간에도 중후한 승차감을 유지한다. 이것이야말로 스포츠 4도어 세단이라는 ‘콰트로포르테’ 이름의 속성이고 존재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개발팀은 신형 콰트로포르테에서 NVH(noise, vibration, harshness)가 향상되었음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마세라티 특유의 사운드는 약화시켰다는 의미일까. 이에 대해서는 ‘에어 카비티’(air cavity) 테크놀로지를 사용해 차내에서 느끼는 NVH의 감소에 중점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사운드 시스템은 기존 그대로이지만 타이어 소음 등 주행중 잡음을 잡아서 사운드의 질감을 높였다는 것.
 

서스펜션은 앞 더블 위시본, 뒤 멀티 링크 구성으로 정확한 핸들링과 안정적인 승차감을 뒷받침한다. 마세라티의 스카이훅 쇼크업소버는 노멀 모드에서 부드럽게, 스포트 모드에서 단단하게 바뀌며 주행모드의 변화에 대응한다. 스포트 모드로 옮기면 rpm 상승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변속이 빨리 이루어지고 가속도도 향상된다. 무엇보다 전자식 주행안정장치의 간섭이 줄어드는 만큼 차체를 컨트롤하는 재미가 더 커진다. 수동변속은 기어레버를 왼쪽으로 밀고 할 수도 있지만 패들 시프트를 사용하는 게 더 재미있다.
 

번번이 나타나는 코너에서의 기민한 대응, 그리고 빠른 브레이크 응답성은 확실히 이전 모델보다 향상된 느낌이다. 직진가속성 역시 한층 빠르고 안정적이다. 네바퀴굴림의 굼뜬 움직임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잠시 스쳐 지나갔다. 온전히 콰트로포르테에 집중하는 순간 조금씩 달라진 실내가 눈에 띈다. 바다를 상징하는 푸른색 바탕의 계기 구성은 그대로, 가장 큰 변화는 애플 카플레이 등 미러링 기능을 추가한 8.4인치 터치 스크린(앱 기능은 물론 픽셀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새로 디자인된 로터리 다이얼 등이다. 차선이탈경고와 스톱&고 기능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도 기본이다.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콰트로포르테는 그란 루쏘와 그란 스포트로 트림이 나뉘게 된다. 모델 가짓수가 많아진 만큼 세부적인 구성도 다양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패션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협업한 시트도 눈에 띄는 특징중 하나다. 데이비드 클루저는 “마세라티는 운전재미를 강조하는 브랜드지만 편의, 안전장비를 중시하는 시장에서 지분을 넓혀가야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7시리즈와 S클래스에 직접 대응해야 한다는 것. 신형 콰트로포르테는 그런 고민을 담아낸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마침내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의 현장이다. 팔레르모의 레이스 트랙 이름은 ‘라 페이보리타’(La Favorita). 여기서 마세라티는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939/1940년에는 또한 인디애나폴리스 500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마세라티 레이스 역사에서 그야말로 황금기를 보낸 시기였다. 근래에 새로 단장했다는 패독 그리고 과거 레이스 장면을 그린 대형 걸개그림이 그날의 영광을 반추하고 있다.
 

레이스 역사의 기념비적인 순간들,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그러한 장소에 와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이윽고 신형 콰트로포르테 SQ4와 함께 그 코스의 일부를 달린다. 낡은 포스터에서 본 듯한 먼지 나는 시골길, 길섶에서 손 흔드는 사람은 없지만 연속으로 이어지는 코너를 콰트로포르테는 날렵하게 감아 돈다. 어느새 태양은 아득한데 길은 더 선명해지며 집중력 또한 높아진다. 아스라한 들판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멀어져간다. 마침내 시칠리아의 풍경이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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