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레이서, 알렉스 자나르디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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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레이서, 알렉스 자나르디의 삶
  • 마크 티쇼(Mark Tisshaw)
  • 승인 2016.10.2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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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자나르디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나오는 화제를 잘 알고 있다. 그 사고. 누구의 마음에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제이기도 하다. 2001년 독일 라우지츠링에서 열린 CART(뒷날 챔프카 시리즈) 레이스를 13주 남겨놨을 때였다. 당대 최고의 드라이버로 꼽혔던 이탈리아 드라이버에게 두 다리를 잘라내야 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눈을 떴을 때 내가 살아있어 행복했다.” 자나르디는 사고 직후를 되돌아봤다. “나는 이전과 같은 질의 삶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혹은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을 바랐다.” 그토록 자나르디는 유명했고, 그 충돌사태를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감동을 줬다. 따라서 수많은 저널리스트가 베를린 병원으로 그를 찾았다.
 

“첫 질문이 아닌 경우는 있다. 하지만 반드시 나오게 돼 있는 질문이었다.” ‘다시 레이스에 나가겠느냐’의 문제는 생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술문제만 해결하면 100%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거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내게 최우선 과제는 우선 자족적인 생활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내 힘으로 소변도 볼 수 없는 처지였다.”
 

그 뒤 실로 감동적인 인생실화가 전개되었다. 2003년 그는 챔프카 시리즈의 라우지츠링 레이스에 돌아왔다. 손으로 조작하는 경주차를 몰고 2001년 운명의 레이스에서 완주하지 못한 13주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의 페이스는 예선 5위 수준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WTCC(세계 투어링카 챔피언십)에 진출해 5년간 활동하는 데 성공했다.
 

“요즘 알렉스 자나르디라는 내 이름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자나르디가 말했다. “일종의 특권이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그럴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가장 최근의 사례가 레이스 드라이버에서 올림픽 선수로 전환한 것이었다. 그는 최근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선수로 출전했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그는 금메달 2개를 따냈다. 그의 옛 싸움터였던 브랜즈해치 서킷에서 열린 패러사이클링에서 거둔 성과였다. 자나르디는 리우에서 열린 패럴림픽에 참가해 또 한 번 금메달에 도전했다. 자나르디는 패러사이클링 팀 릴레이 부문에 이탈리아 대표로 나서 동료들과 함께 멋지게 금메달을 따는데 성공했다.
 

패러사이클링은 아직도 유아단계. 자나르디는 라이벌을 압도할 기회를 여기서 찾고 있다. “선수에 따라 사이클의 좌석이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다. 그리고 대형 렌치를 쓰는가 하면 소형 렌치를 쓰기도 한다.” 그의 설명이다. “사이클의 세팅은 모두 다르다. 한데 성능은 비슷하다. 이로 미뤄 모두가 어딘가 부족한 데가 있다. 레이스의 배경과 호기심이 내게 큰 도움을 줬다.”
 

수많은 라이벌은 그보다 젊고 체력이 강하다. 하지만 50에 가까운 자나르디는 근력이 떨어지지만 “지혜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장배경에서 엄청난 영감을 받고 있다. 최고의 부모를 모시고 자신이 바라는 가장 좋은 교육과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경제적 지원을 받지는 않았다. “그게 어려운 문제였다.” 
 

17살에 돌파구가 열렸다. 그때 아버지가 오직 모터스포츠에 몰두하는 알렉스의 집념을 눈여겨봤다. “아버지는 내 친구들이 밖에서 노는 것을 보고 집에 와서 내게 알려줬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었다. 나는 카트 안에서 잠을 잤다. 아버지는 내가 그런 열정을 보여주는 한 나를 뒷받침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런 열정을 갖고 있는 한, 뭔가 해낼 기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1991년 자나르디는 이처럼 헌신적 자세로 F1에 진출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드날린 무대는 미국의 CART 시리즈였다. 칩가내시 레이싱팀에 들어가 1997과 1998 시즌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우리 머신은 경이적이었다.” 자나르디가 말을 이었다. “대단한 재미를 선사했고, 놀라운 드라마를 연출했다. 많은 사람들이 머신과 씨름하느라 허둥댔다. 하지만 나는 DRS나 KERS의 도움을 받지 않고 기어를 오르내리며 승리를 거뒀다. 파워와 그립이 믿음직했고, 가감속과 코너링 스피드가 눈부셨다. 하지만 그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는 미국 CART의 성공을 발판으로 F1에 돌아왔다. 1999년 윌리엄즈팀에 들어갔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프랭크(F1 윌리엄즈팀 오너)는 칩(CART 칩가내시팀 오너)과 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해 실망했다. 그러나 험악한 도로를 달린 뒤 매끈한 도로를 달리는 기쁨이 더 크다. 올바른 인생이란 평탄한 길과 험한 길을 잘 아우르는 데 있다.”
 

자나르디의 최근 출전기록은 지난해의 GT 레이스였다. BMW팀에서 Z4 GT3을 몰았다. 리우 패럴림픽 뒤에 다시 BMW에서 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페이스보다 1초 빠르거나 느리거나 하면 감탄사 ‘와우’를 연발했다. 스파프랑코르샹의 테스트에서 나는 페이스보다 1.8초 느렸다. 그러자 기술진이 달려와 차가 엉망이었다며 사과했다. 그 뒤로 나는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나르디는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인기 있는 드라이버로 꼽힌다. 그의 페이스는 너무나 뛰어나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린다. 어느 땐가, 가족 친척이 한 자리에 모인 뒤에 일어난 유명한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내 처남이 자기 아들 이야기를 했다. 그는 F1 머신을 몰다가 알렉스 아저씨처럼 두 다리를 잃고 싶다고 했다. 그 아이의 마음속에 그토록 멋진 인물로 내가 박혀있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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