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스터의 정상 진화, 포르쉐 718 박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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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스터의 정상 진화, 포르쉐 718 박스터
  • 강병휘 본지 로드 테스터
  • 승인 2016.10.0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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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터는 포르쉐에서 가장 순수하게 드라이브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차다. 엔진을 중앙에 품었고 무엇보다 가볍다. 911과의 간섭을 피하려고 의도적으로 출력을 묶은 엔진도 되려 장점이 되었다. 드라이버에게 출력을 쥐어짜며 주행에 몰입하게 하는 실마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순식간에 접을 수 있는 멋진 루프를 지녔다는 점. 루프가 열리는 순간, 운전자와 가장 가깝게 앉아 있는 박서 엔진을 온 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과거 수평대향 6기통은 비단 레드존을 향해 치달을 때 뿐 아니라 낮은 회전수에서도 근사한 심포니를 연주했다. 981 박스터 GTS의 배기음은 개인적으로 최근 포르쉐 중 가장 멋진 배기 사운드로 손꼽힌다. 독일산 순수 스포츠카로 분류할 수 있었던 박스터가 이번 982로 큰 변화를 맞았다. 두 개의 기통을 떼어내고 터보와 토크를 더했다. 박스터가 사랑스러웠던 이유가 상당 부분 사라져버린 셈. 과연 718 박스터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배기량을 2.0L로 파격적으로 줄인 박스터를 시험대에 올렸다.
 

718이라는 이름까지 부활시켰으나 외형상 718과의 연결고리는 쉽게 찾기 어렵다. 오리지널 718의 측면 아가미 형태의 루버 디자인이나 헤드램프 디자인이라도 받아들였다면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결국 4기통 미드십 엔진 형태만이 718 이름의 유일한 명분인 셈이다. 982 박스터는 범퍼 디자인 변경으로 더 넓고 낮아 보이는 실루엣을 완성했다. 새로운 옵션 사양의 LED 헤드램프를 선택하면 919 레이스카 같은 4개의 LED 주간주행등의 네모난 눈매를 갖는다. 뒷모습은 한층 고급스럽게 존재감을 더한다. 테일램프 사이를 연결하는 검은 스트립에 포르쉐 뱃지를 달고 그 위로 넓은 전동식 스포일러를 배치해 스타일과 공력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박스터 S는 수평대향 6기통 3.8L 엔진에서, 박스터는 수평대향 6기통 3.0L 엔진에서 2기통을 잘라내는 것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박스터는 2.0L 배기량으로 300마력의 최고 출력을 낸다. VTG까지 적용한 2.5L 350마력의 박스터 S와 비교해도 리터당 출력에서 기본형 박스터가 앞선다. 최고 부스트 1.4바로 S의 1.1바보다 더 높게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스트가 높아질수록 반응성과 유연성에 대한 대책이 중요해진다. 넓어진 측면 흡입구는 과급 공기를 빨아들일 뿐 아니라, 흡기 인터쿨러를 냉각시키고 라디에이터로 들어가는 냉각수까지 식히는 기능을 담당한다.
 

후륜 림폭은 0.5인치 늘고 리어 서브프레임 보강과 용량을 키운 댐퍼 피스톤 및 로드 적용으로 서스펜션 강성을 끌어올렸다. 982 박스터는 981 박스터 S의 브레이크 시스템을 물려받아 전륜 330mm, 후륜 299mm의 커진 디스크를 기본으로 한다. 강력한 고속 제동을 반복하자 전륜에서 미세한 진동이 감지됐지만 다행히 제동력 자체는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선택 가능한 20인치 휠은 당당한 자신감을 연출하지만, 휠과 디스크 사이 공간이 너무 커 휠하우스 안쪽 구조물이 다 노출되는 문제점이 있다. 어느 크기의 휠을 선택하건 타이어 폭은 앞 235 뒤 265로 변함이 없다. 접지력의 향상보다 스타일링적 요소로 접근해야 한다.
 

납작한 후드에서 양 헤드램프 위로 불룩하게 솟아오르던 펜더 윙의 높이가 낮아졌다. 때문에 시트를 낮게 설정해 앉으면 우측 윙은 거의 보이지 않아 포르쉐 고유의 전방 시야와 다른 느낌이다. 한글 지원 PCM 터치스크린은 지붕을 연 상태에서도 가독성이 좋다. 918 스파이더에서 빌려 온 스포츠 스티어링 휠과 로터리식 주행 모드 스위치도 새롭다. 주행 중 시선을 돌리지 않고도 4가지 주행모드를 직관적으로 신속하게 선택할 수 있다. 사이드 볼스터를 조절할 수 있는 어댑티브 스포츠 시트까지 갖춘 시승차에서 운전 자세의 흠을 잡기란 불가능했다. 루프를 닫았을 때 외부 소음 유입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에어컨 토출구는 모양을 다시 잡았으면 좋겠다. 포르쉐라면 모든 디자인에 합당한 기능이나 이야기가 스며 있어야 한다.
 

4기통 2.0L 엔진이라 해도 718 박스터의 스피드에 대한 의심은 없었다. 주요 기술 제원에서 현저한 수치적 향상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0→시속 100km 가속은 론치 컨트롤의 도움을 받아 4.7초까지 줄어들었다. 20년 전 데뷔한 986 박스터는 팁트로닉을 달고 7.6초였고 최신 박스터 GTS가 4.7초를 기록했으니 718 박스터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 박스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수치가 아니다. 인상적인 수치를 넘어 도파민 가득한 드라이빙을 가능케 하던 컨트롤의 즐거움과 감성을 지켜내야 한다. 718은 2.0L로 작아진 배기량 탓에 기존 모델의 출력을 뛰어넘기 위해 고압 부스트를 피할 수 없었던 상황. 기어를 고정한 채 풀스로틀을 하면 부스트 게이지를 다 채우는데 약간 기다림이 필요하다. 최대토크는 2000rpm 이전에 시작해도 터보 회전수가 최고조에 이르는 3000rpm 내외부터 맹렬하게 rpm 바늘을 상승시킨다.
 

박스터의 웨이스트 게이트는 자연흡기 같은 반응성을 구현하기 위해 몇 가지 제어 프로그램을 가진다. 급격히 가속 페달을 떼는 경우, 바이패스 밸브를 닫고 스로틀은 약간 열어 0.2바 내외의 부스트를 형성, 재가속에서 터보랙을 제거한다. 같은 조건에서 스포츠 리스폰스 기능을 활성화하면 0.4~0.5바까지 부스트를 채우며 가속 페달 밟기만을 기다린다. 랠리카에서 쓰던 미스파이어링 시스템과 목적을 같이 하는 셈이다. 덕분에 공도 주행이나 트랙 데이를 찾는 드라이버 입장에서 엔진의 반응에 불만을 갖긴 어렵다. 다만 스로틀 컨트롤이 시시각각 변하는 드리프트 상황에서만은 과거 자연흡기 엔진의 날카로움이 그리웠다.
 

사운드는 어떤가? 터널 속에서 지붕을 열고 달리노라니 우렁찬 배기음에 도취된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6기통 포르쉐 노트는 아니지만 르망 24시에서 오랜 시간 들었던 919의 4기통 F4 엔진 노트를 닮아 낯설지 않은 음색이다. 몇 년 후에는 이 소리가 새로운 포르쉐 노트로 인식되진 않을까 생각해본다. 배기음을 최고로 즐기고 싶다면 스포츠 플러스 대신 스포츠 모드를 추천한다. 스로틀 오프시 머플러에서 터져나오는 기침 소리가 매력적인데 이는 오직 스포츠 모드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스포츠 모드는 낭만주의자, 스포츠 플러스 모드는 첨단 공학도를 위한 세팅으로 전자가 박스터의 본질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박스터는 30 시리즈의 20인치 타이어를 신고서도 국내 도로 노면에 여유롭게 대응했다. 심지어 PASM 댐퍼를 단단하게 변경해도 승차감에 큰 손해가 없었다. 이제 일반 도로에서 취향에 따라 댐퍼 세팅을 조일 수 있게 되었다. 신형 911보다 너그러운 섀시 반응이다. 루프 이음매 부근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뱅크가 심한 코너에서 복합적 G포스에 대항하며 몰아대도 바디의 강성이 아쉽다는 느낌은 없다. 스티어링 휠은 선명하게 노면의 정보를 전달해 운전자에게 일체감을 준다.
 

뉘르부르그링 코스를 한밤중에 고속으로 내달릴 때는 시각 정보 외에 다른 감각에 의존해 코스를 읽어야 하는데 718의 실력이라면 스티어링 피드백을 적극 활용해 달릴 수 있겠다. 운전대를 돌리면 엔진이 노면에 닻을 내리듯 배를 묵직하게 깔고 타이어를 노면으로 잡아당긴다. 네 바퀴 스트럿 타입의 구조로 어떻게 이런 수준의 안정감이 가능한 것인지 놀랍다. 언제나 한계라고 느껴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돌아나간다. 미드십이 접지 한계를 넘어서면 난폭해진다는 이야기는 모두 과거사일 뿐, 거동은 항상 선형적이고 직관적이다. 심지어 후륜이 슬라이드를 시작해도 여전히 통제 가능한 접지력을 쉽사리 놓지 않는다.
 

718 박스터는 정상 진화의 길을 걷고 있는가? 그렇다. 하지만 911 시리즈가 카레라와 터보 라인업으로 추구하는 성향이 나뉘듯, 이번 박스터는 981의 터보 라인업에 더 부합하는 차가 되었다. 982 박스터는 분명한 진화이나, 순수 스포츠카의 명맥을 잘 살려나가려면 또 다른 접근법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가령 GT3의 파워유닛처럼 고회전이 가능한 자연흡기 엔진 말이다. 향후 박스터 가지치기 모델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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