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계로 데려다주는 르노 스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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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세계로 데려다주는 르노 스포르
  • 앤드류 프랭클(Andrew Frankel)
  • 승인 2016.10.2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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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처럼 오래된 차들을 한 자리에 모아 시승할 때에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차들을 떠나보낼 무렵에 슬픈 기분에 젖어드는 일이 다반사다. 빌린 차들을 몰아본 멋진 하루가 끝났다는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다. 떠나보낸 차들의 빈 자리가 사라지지 않는 괴로움으로 채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술적으로는 더 뛰어날지언정, 요즘 차들은 이전 모델들만큼 운전이 즐겁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째서일까? 소비자들이 폭넓게 늘어나는 안전 시스템과 마냥 편안한 기능들에 너무 빠져버린 나머지 자동차들이 세대가 바뀔 때마다 운전의 즐거움을 편리함과 기꺼이 맞바꿔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가운데에서도 다른 관점에 호소하는 두 가지 작은 의견들이 있었다. 두 의견들은 다른 모든 자동차들과는 상관 없이, 설령 같은 엠블럼을 달고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차들조차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다를 것이라고 이야기해왔다.
 

우리는 절대 개성을 잃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우리를 훌륭하게 만든 가치들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관행을 거부하고, 다른 회사처럼 중심을 잃고 유행을 따라 가더라도 우리는 운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차를 만든다는 핵심 사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목소리를 내는 곳 중 하나는 포르쉐, 특히 911 GT3과 카이맨 GT4를 만드는 모터스포츠 부문이다. 다른 한 곳은 르노 스포르를 꼽을 수 있다.
 

두 브랜드는 서로 시장에서 다른 영역을 차지하고 있지만 철학만큼은 같다. 모든 시대에 걸쳐 고성능 포르쉐가 자동차 관련 매체에 수시로 등장했듯이, 우리는 고성능 클리오 RS16가 출시된 지금이 르노 스포르에서 나온 최고의 차들을 기념하는 시기로 알맞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언제부터 나온 차를 꼽느냐 하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보면 르노 스포르는 1970년대 중반부터 있었고, 르노의 스포티한 모델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나왔다.
 

랠리와 힐클라임 경주에서부터 투어링 카 경주와 포뮬러 1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동차 경주에 통달했고, 르망 레이스에서도 우승했다. 그러나 우리는 시작점을 스파이더(Spider)로 잡기로 했다. 때마침 딱 20년 전에 생산을 시작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르노 스포르 엠블럼을 붙이고 생산된 첫 일반 도로용차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나간 시간의 반대편에 해당하는 차로는 작년에 나온 메간(Megane) 275 트로피-R이 나왔다. 그러면 그 중간에는 어떤 차를 놓는 것이 좋을까? 우리는 클리오 182 트로피를 찾아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차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르노 스포트라는 브랜드로 나올 신세대 차들의 방향을 제시하기에는 스파이더의 정체성은 그리 뚜렷하지 않았다. 뭔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서 온듯한 거대 곤충을 연상시키는 생김새는 종말 이후 세계의 자동차 미학 일부를 바탕에 깔고 있는 듯, 온통 둥근 형태에 들어 올리는 도어를 갖췄고 실용성은 무시되었다. 일반 도로용 모델은 앞 유리가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이 있었고, 다른 차들은 제이슨 플래토(Jason Platon)와 앤디 프리올(Andy Priaulx) 등 레이서들이 참가하는 원메이크 경주 시리즈에 투입되었다.
 

내가 그 차를 마지막으로 몰아본 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웨일즈주 언덕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반가울 따름이었다. 프랑스 남부에서 있었던 스파이더 출시 행사에 가기 위해 캐이터햄을 몰고 밤새 달려가 곧바로 비교 시승을 했던 일이 기억난다. 나는 스파이더가 형편없이 진 과정은 떠올리지 않으려 한다. 최상의 능력을 한계점까지 파헤치려고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아니다. 멋진 길에서 멋진 차들을 몰아본다는 것, 그보다 더 나은 이유가 있을까?
 

신기하게도 그런 일은 자주 생긴다. 몇몇 올드카들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반면 어떤 차들은 훨씬 더 형편없는 이유를 절대 알 수 없다. 그러나 새차였을 때 뛰어난 차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장점들이 더 커지고, 마찬가지로 그렇지 않은 차들은 단점들이 더 커진다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스파이더는 단점들의 늪에 빠졌다. 이상할 정도로 좌석이 높은 탓에 차체가 얼마나 낮은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계기는 확인하기 어렵고, 스티어링은 너무 무거운데다 운전 자세도 최적의 상태에는 확실히 미치지 못한다. 2.0L 엔진의 출력은 150마력이지만, 앞 유리같은 선택사항을 더하지 않아도 무게가 1톤 가까이 나가는 차에 그런 엔진을 올리면 놀랍다고 할 수준의 성능은 내지 못한다.
 

코너에서는 노면에 착 달라붙은 채로 활기차게 빨리 달리지만, 섀시가 주는 감성은 충분하지 않고 변속은 지나치게 덜컥거린다. 게다가 제동감은 너무 뻣뻣하다. 이런 차들이 강요하는 모든 불편함을 참고 견디려면 아주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스파이더는 그런 이유를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이제 클리오 182 트로피로 옮겨 타 보자. 이 차는 많은 이들이 가장 순수한 고성능 클리오의 궁극적 버전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3세대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그 이후의 르노 스포르 클리오들은 현행 모델처럼 터보차저와 변속 패들, 전동 파워스티어링을 갖추지 않았는데도 더 무겁고 더 편안하면서 주행특성에 초점을 완전히 맞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 2세대 모델들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182 모델은 오리지널 고성능 르노 스포르 클리오(르노 스포르 시대 이전의 클리오 16V와 클리오 윌리엄즈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에 처음으로 대대적인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 모델이다. 당시까지 여전히 훌륭했던 클리오 172의 후속 모델로 2004년에 출시된 클리오 182는 최고출력이 10마력 올라가며 배기구가 두 개로 늘었고, 낮아진 서스펜션과 독특한 보디킷이 포함된 컵 모델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르노는 특별히 단연 최대 시장이던 영국용으로 500대의 트로피 모델도 만들었다(스위스에도 25대가 배정되었다). 트로피는 훨씬 더 스포티한 서스펜션이 쓰였는데, 그 중에서도 경주차 스타일 분리형 레저버를 갖춘 고정밀 삭스(Sachs) 쇼크업소버가 돋보였다. 모든 차는 빨간색에 트로피 로고로 치장되었다. 당시에 이 차는 시판되는 핫해치 중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스파이더와는 달리, 시간이 흘러도 클리오 182는 퇴색하지 않았다. 사실, 이 차는 무척 충격적이다. 충격적일만큼 뛰어날뿐 아니라 충격적일만큼 재미있다. 젊은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성형수술할 생각은 잊어버려도 좋다. 이 트로피 모델을 타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아마도 훨씬 더 저렴할 테고, 누가 보아도 좋게 받아들일 것이다.
 

우선 엔진부터 느껴보자. 4800rpm을 넘어서 캠 프로파일과 더불어 엔진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고 7000rpm 너머까지 치솟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그리고는 변속의 짜릿함에 이어 마침내 섀시의 높은 수준이 느껴진다. 액셀러레이터로 힘차게 코너로 집어던진 뒤 페달 조작만으로 방향을 조절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차다. 무난한 해치백이지만 민첩함은 넋이 나갈 수준이다. 마치 다른 차원의 차를 모는 느낌이다. 기본형 컵 모델도 좋기는 거의 비슷한 정도지만 독특한 매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메간 트로피 R은 한 수 위다. 클리오가 장난감이라면, 메간은 제대로 된 무기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마어마한 추가 비용과 형편없는 실용성을 지닌 이 차 대신 뒤쪽에 최소한 좌석이라도 있는 275 컵 S를 고집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진짜 핫해치 중 가장 광적인 모델을 원한다면 트로피 R이 바로 그런 차다. 복합소재 앞 스프링, 올린즈(Ohlins) 쇼크업소버가 포함된 완전 조절식 서스펜션, 티타늄 아크라포빅(Akrapovic) 머플러가 포함되어 있고 보통 ‘편의장비’라고 일컫는 모든 것을 걷어낸 실내 등 차에 관한 설명을 몇 시간이고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직접 달려보면 몇 분 만에 이 모든 것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훨씬 더 잘 알게 된다.
 

현실적으로 ‘겨우’ 275마력이라는 부족한 출력으로 뛰어난 접지력과 도마뱀같은 민첩함을 발휘하는 이 차 와 어울리기 껄끄러워하는 진짜 슈퍼카들이 있을 것이다. 달리는 내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고 변속할 때마다 배기구에서 연료가 깔끔하게 폭발하는 소리를 듣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하지만 내가 몰아본 모든 일반도로용 앞바퀴굴림 승용차 중에서도 이 메간이 돋보이는 이유는 진짜 경주용 차처럼 차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쇼크업소버와 그럼에도 여전히 납득할만한 승차감에 있다. 토션 빔 방식 뒤 서스펜션을 비롯해 하체가 무척 별볼일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차는 기술이 만들어낸 기적이나 다름없다.
 

이번 기사는 르노 스포르의 역사를 되짚어보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 이번에 소개한 세 대의 차는 특별히 제작된 스포츠스터에서부터 저렴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포켓 로켓을 거쳐 모든 해치백 중 아마도 가장 스포츠 드라이빙에 초점을 맞춘 해치백에 이르기까지 지난 20년 동안 르노 스포르가 야심을 펼쳐온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 바란다.
 

솔직히 말하면 스파이더에는 실망했지만, 클리오와 메간은 놀라웠다. 꽤 큰 시간과 개념, 값 차이를 두고 만들어진 차들 가운데에서 승자를 고르는 것은 어이 없는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꼭 가져야할 차를 고른다면 그 주인공은 메간일 것이다. 모든 것이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 다른 회사는 제쳐두고, 르노 스포르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차들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 그런 발전이 오랫동안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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