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데몰리션 - 데이비스의 포르쉐 카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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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데몰리션 - 데이비스의 포르쉐 카이엔
  • 신지혜
  • 승인 2016.09.30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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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 그는 장인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 곳에서 유능하고 냉철한 회사원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고 모던하고 고급스러운 주택에서 아내와 잘 지내고 있다. 누구라도 부러워할만한 삶이다. 실력과 부와 명예와 좋은 집안에서 나고 자란 아내와 그 자신의 능력과... 이만하면 꽤 괜찮은 인생 아닌가.
 

그런데 바로 그 날 생각지 못한 사고로 아내가 목숨을 잃고 데이비스의 내면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내가 운전하던 차, 아내는 냉장고에 물이 샌다고 고쳐달라고 했고 데이비스는 바쁘고 긴장된 일상 속에서 약간은 멍한 상태로 아내에게 응하고 있었는데, 그 때 느닷없이 옆에서 달려온 차가 그들의 차를 받아버렸다.
 

아내의 죽음. 병원. 장인의 목소리. 얼떨떨하고 멍한 정신. 바작바작 금이 가기 시작한 그의 마음. 미처 깨닫지 못한 마음의 균열. 문득 향방을 잃어버린 그의 정신 ...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것들이 그에게 보내진 신호라는 것을. 스스로 고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마치 꿈을 꾸는 듯 뭐가 뭔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배가 고파진 그는 자판기에서 스낵을 뽑으려 하지만 고장난 자판기는 그에게 음식도 돈도 돌려주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데이비스는 자판기 회사에 편지를 쓴다.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스스로의 마음을, 스스로의 지난 시간을 정리하듯 그렇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그 편지는 자판기 회사의 캐런에게 도달하고, 캐런과 그의 아들 그리고 데이비스는 서로에게서 고쳐야 할 것들을 느끼고, 완벽하지 못한 자신들의 불완전함을 서로에게 기대며 진실한 친구가 된다.
 

장 마크 발레의 <데몰리션>. 파괴, 분쇄... 무슨 제목이 이럴까? 더구나 포스터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헤드셋과 선글라스, 어딘가 자유로워 보이는데 말이다. 첫 장면부터 쇼킹하다. 느닷없이 달려와 가차없이 받아버리는 차, 아내의 즉사. 이런... 몸과 마음이 긴장된다. 하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치유된다. 데이비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이해가 아니라 동감 또는 동의가 되어버리고, 그러다 보면 그가 스스로와 스스로의 내면을 고치기 위해 분쇄하고 파괴하고 해체하는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 그렇게 모든 것을 풀어놓고 내려놓고 난 뒤에 비로소 데이비스는 스스로를 재조립하고 아내와 장인 장모와 스스로에게 ‘고쳐진’ 자신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수년 전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있어 최대의 화두는 바로 치유, 힐링이 아닌가. 영화 <데몰리션>은 바로 그 치유, 힐링을 향한 영화다. 데이비스의 시간과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신없이 달려오면서 잃어버리고 삐걱거리고 흐트러져버리고 금가고 뻑뻑해진 나 자신과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데이비스의 ‘고침’의 과정에 동참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힘을 얻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것이 아마 감독인 장 마크 발레의 힘일 것이다.
 

데이비스의 차는 포르쉐 카이엔. 그의 나이, 그가 하는 일, 그의 경제력, 그의 성향 등과 잘 어울리는 카이엔. 단단하고 탄탄한 카이엔은 그를 언제나 안전하게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고 집으로 데려온다. 그 믿음직한 외형은 남들이 알아채지 못한 그의 균열을 차단해주었을 것이고, 어쩌면 하루 중 가장 편안하고 무방비인 상태로 혼자만의 시공간을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카렌과 그녀 아들, 크리스의 집을 오가면서 그들과 동지애가 싹트도록 도왔을 것이며, 결국엔 크리스에게 방탄복을 내주며 목숨을 나눌 정도로 우정을 쌓게 해주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듯 카이엔은 어딘가 고장 난 인간들이 서로 보듬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그저 겉보기에만 멋진 차가 아니라 묵묵히 데이비스의 삶의 과정을 지켜보는 친구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잠시 멈추고 스스로의 내부를,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마음을 들여 공을 들여 그것을 고쳐야 하는 것이다. 회복을 위해 잘못된 부분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이 데이비스에게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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