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V, 수입차 시장의 적시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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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V, 수입차 시장의 적시타 될까?
  • 나윤석 자동차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9.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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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과 수입차를 통틀어 지난 몇 해를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하면, 첫째는 B-SUV이고 둘째는 디젤 게이트일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디젤 엔진 위주인 SUV의 새로운 부류, 컴팩트 B-SUV가 급격하게 성장했지만 디젤 게이트로 위기를 맞은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등장한 혼다 HR-V는 일견 기회는 잡고 위기는 피한 묘수처럼 보인다. 즉 B-SUV이면서 가솔린 모델이다. 마치 쌍용 티볼리가 1.6L 가솔린 엔진과 함께 B-SUV 시장을 활짝 연 것과 같은 접근 방법이다.
 

다만 티볼리는 트랙스가 시작했지만 지지부진하던 국내 B-SUV 시장을 본격화한 것이었고, HR-V는 디젤 게이트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수입 B-SUV에 가솔린 엔진을 단 모델로서 구원투수가 될 수도 있다는, 시점과 임무의 차이가 있기는 하다.

 

HR-V의 외모는 도시적이고 현대적이며 앙증맞다. 도시형 크로스오버 모델로 매우 적합하다. 그러나 동시에 경쟁자들보다 본격 SUV의 분위기가 있다. 약간 높은 해치백을 연상시키는 대부분의 B-SUV들과는 차별된다. 길이도 길 뿐더러 높이도 가장 높다. 뒷문 창문의 모양만 보면 쿠페형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체 차체의 모양은 소형 SUV의 비율에 충실하다. 존재감이 있다는 것은 일단 구매욕을 북돋운다는 뜻이므로 바람직하다.
 

일단 테일 게이트를 열어본다. 적재함의 크기와 그 너머 보이는 넓고 높은 실내 공간이 실내를 본 뒤 차체의 크기를 다시 확인하게 만들 정도로 대단히 넓다. 약간 과장하자면 영드 ‘닥터 후’에 나오는 바깥보다 안이 넓은 타임머신인 ‘타디스’가 연상될 정도.
 

트렁크는 넓을 뿐더러 바닥이 낮고 천정이 높아서 활용도가 매우 크다. 그리고 큰 화물을 실을 때 적재함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적재함 커버가 처치곤란일 경우가 많은데 HR-V의 적재함 커버는 유리창에 붙이는 망사 햇빛가리개처럼 아주 얇고 둘레가 와이어로 만들어져 있다. 실제로 햇빛가리개처럼 두 번 정도 돌려 접으니 실내 어디든 보관할 수 있어서 정말 편리했다.
 

뒷문을 열고 혼다가 자랑하는 매직시트 기능을 확인해 본다. 대부분의 SUV들은 뒷시트 등받이를 앞으로 접는 기능만 된다. 그런데 HR-V는 뒷시트 등받이를 세운 채 반대로 쿠션을 위로 접을 수가 있다. 이렇게 하면 실내의 발 공간부터 천정까지 매우 높은 화물을 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아가 있는 젊은 부부의 경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마트에서 장을 본 뒤 트렁크에는 장 본 물건들을 싣는다. 카시트에 아이를 태우고 나면 유모차가 처치곤란이다. 하지만 HR-V는 반대쪽 뒷시트의 쿠션을 위로 접으면 높이 1.2미터의 적재 공간이 생기니까 이곳에 유모차를 싣고 안전벨트로 고정하면 된다. 이전에는 물건과 유모차를 함께 트렁크에 실을 수 있는 대형 SUV가 필요했었는데 HR-V면 만사 오케이.
 

게다가 뒷시트 등받이를 앞으로 접을 때는 시트 쿠션이 저절로 아래로 내려가서 완전히 평평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것도 고급 SUV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기능이다. HR-V는 공간 활용에 관한 한 대형차 급이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뒷시트 등받이 윗부분의 모서리가 스펀지로만 채워져 있었던 것. 급제동시 또는 충돌 사고시에 트렁크에 무겁고 가는 물건이 있다면 좌우 등받이 윗부분을 비집고 실내로 밀려들까 걱정이 된다.
 

운전석에 앉는다. 시트 높이는 보통 수준. 앞서 매직시트 기능을 확인하면서 봤던 실내 바닥 높이를 생각하면 조금 높은 듯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유가 있었다. 실내 뒷부분의 공간을 더 활용할 수 있도록 보통 뒷시트 아래에 놓이는 연료 탱크를 앞시트 아래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형 크로스오버 SUV의 평균보다 높지는 않으므로 전혀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눈앞의 대시 보드는 매우 단정하다. 고급스러운 소재나 장식은 보이지 않지만 우수한 조립 품질이 인상적이다.
 

눈에 잘 들어오는 계기반은 실용적인 반면, 물리 버튼이 거의 사용되지 않은 인포테인먼트 화면과 자동 에어컨 패널은 미래적이다. 하지만 물리버튼이 너무 없어서 기능적인 면에서는 실용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시트는 골조가 작고 푹신한 편이어서 장거리보다는 역시 단거리 시가지 주행에 적합하다는 느낌이다. 뒷좌석 공간도 시원한 헤드룸과 발을 놓기 편한 실내 바닥으로 전혀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역시 실내 공간의 귀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1.3톤의 가벼운 차체를 움직이는 데에 1.8L 143마력 엔진과 무단 변속기의 조합은 충분 이상이다. 도시형 SUV로는 더 할 나위가 없다. 소형 B-SUV의 콘셉트에는 디젤 엔진보다는 가솔린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HR-V와 달리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매끈하고 포근한 주행 감각이었다. 충분히 경쾌하면서도 동시에 매끈하고, 포근하면서도 야무진 아주 질감이 좋은 주행 감각이었다. 즐겁고 상쾌하다. 고속 주행보다는 시가지 주행에서 훨씬 즐겁고 무서울 것도 없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역시 가격이다. 3,20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이 수입 B-SUV로는 그다지 비싼 편이 아닐 수도 있지만, 국산 B-SUV들의 최고 가격은 디젤 엔진을 선택하고 추가할 수 있는 옵션을 모두 더해도 2400~3000만원 수준이다.
 

3000만원 짜리 티볼리에는 네바퀴굴림 시스템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가격 차이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미국 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HR-V는 상품성이 있는 잘 만든 차다. 아기가 있는 젊은 부부가 타고 있는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유모차와 카시트가 거뜬한, 그리고 트렁크의 커버를 가뿐하게 해결하고 공간을 마음껏 사용하는 행복한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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