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의 고단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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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의 고단한 여정
  • 리차드 웨버(Richard Webber)
  • 승인 2016.08.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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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중동부의 항구도시 선덜랜드에 닛산 자동차공장이 있다. 반짝이는 백색등 아래 끝없는 캐시카이와 리프가 줄지어 트림&섀시 1라인 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검사요원이 일본의 택시운전기사처럼 흰장갑을 끼고 그들보다 더 조심스럽게 각자 담당한 부분을 60초의 짧은 시간동안 살펴봤다. 그러면 컨베이어벨트가 차량을 크고 넓은 세상으로 내보냈다. 이곳은 영국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공장. 한시간에 116대, 1년에 거의 50만대를 만들어낸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3대중 1대는 여기서 나오고, 생산인력은 6700명에 이른다.
 

이 공장에서 만드는 5개 모델은 각기 다른 디자이너의 스케치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생산하는 캐시카이는 크로스오버 혁명을 일으킨 선구적 모델. 그보다 작은 쥬크(선덜랜드의 제2 생산라인을 노트 및 인피니티 Q30과 함께 쓴다)도 그 계열에 들어간다. 이들의 디자인은 영국에서 태어났다. 런던 중심부 패딩턴에 있는 닛산 유럽 스튜디오가 구상하고 다듬었다.
 

생산라인은 나중에 취재하기로 했다. 우리가 선덜랜드를 찾은 목적은 스케치에서 양산단계에 이르는 디자인 과정을 심층취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토카>의 디자인 전문가를 데려왔다. 벤 서머렐-유드는 <오토카>의 미래형 모델을 예측해 그려왔다. 지금까지 그가 예측한 디자인 적중률은 놀라울 정도.


우리는 진취적인 그립즈(Gripz) 컨셉트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9월 닛산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그립즈는 Z카 크로스오버의 아이디어로 띄운 모델. 닛산의 주요 디자인 프로젝트가 모두 그렇듯 닛산의 4대 디자인 센터에 똑같은 과제를 맡겨 경쟁에 들어갔다. 패딩턴(영국), 샌디에이고(미국), 베이징(중국)과 아쓰기 창작 본부(일본). 이들은 디자이너의 성명과 소속 스튜디오를 밝히지 않고 작품을 제출했다. 그러면 심사위원들은 오직 창작 디자인만을 대상으로 평가작업에 들어간다. 아무튼 그립즈의 외부 디자인 당선작은 런던 스튜디오에서 나왔다. 1971년 동아프리카 사파리 랠리에서 우승한 워크스 240Z를 참고했다.
 

‘고성능 크로스오버’ 그립즈의 요구사항은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쥬크를 태어나게 한 2009 카자나 컨셉트의 경우 자동차의 크기는 대체로 고정됐지만 디자인 개요는 단 한마디밖에 없었다. ‘로바이오틱’(Robiotic). 곤혹스럽게도 그 낱말은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었다. 패딩턴 스튜디오에서 디자인팀은 이 컨셉트를 ‘남성적이고 민첩한’ 방향으로 확대했다. 그런 다음 무드 보드와 이미지 제작법의 도움을 받아 컨셉트를 발전시켰다. 웰리 부츠와 닛산 GT-R을 대비시키는 파격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양산 쥬크가 이같은 이미지의 정신을 파고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이 방식이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분명했다. 지난해 쥬크는 영국에서 4만대 이상 팔렸다.
 

그립즈로 다시 화제를 돌려보자. 패딩턴에서 활약하는 크로아티아계 디자이너 고란 오즈볼트가 있다. 그는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적 명문 로얄 칼리지 오브 아트를 나왔다. 그는 디자인 과정을 알려줬다. “우리는 바퀴 위치에서 시작해 높이를 결정한다. 그런 다음 디자인팀이 외부 스타일을 논의한다. 그뒤 각자 제 자리로 돌아가 어디서 영감을 찾을지 면밀히 검토한다. 때로는 능동적이고 성능지향적인 모델이 되기도 한다. 다른 경우에는 한층 느긋하고 실용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만들고자 하는 모델을 반영한 온갖 제품을 참고한다. 그런 다음 스케치에 들어간다.”
 

이때 서머렐-유드가 나섰다. 으레 구세대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그건 ‘속임수’라고 했다. 그러자 오즈볼트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출발점은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구세대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나는 낙서를 하듯 아무거나 끄적거려본다. 100m쯤 떨어졌을 때 좋은 스탠스가 어떨지를 상상하며 그린다. 그건 어떻든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결과적으로 나온 모델의 품질이다. 예술작품과 같다. 어떤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오즈볼트는 스케치에서 바로 3D 모델로 들어간다. 이때 픽사가 에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쓰는 것과 똑같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한다. 그러나 동시에 스케치를 포토샵으로 스캔하고 한층 상세한 2D 디자인(몇시간만에 만들 수 있다)으로 바꾼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도 양산차의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고 오즈볼트가 말했다. “최종 디자인은 시장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제안은 옆모습과 앞과 뒤 쓰리쿼터 이미지로 바뀐다. 그런 다음 각 스튜디오의 작품 한두개를 골라 클레이 모델 단계로 들어간다. 이때 스티브 랜섬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공식 직책은 디지털 프로젝트 리드. 한데 랜섬은 ‘디지털 조각가’라는 명칭이 그 역할에 더 어울린다고 했다. 그는 CAD(컴퓨터 지원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그 디자인을 3D 모델로 바꾼다. 그러면 영국 남동부 인구 5000명의 소도시 크랜필드의 닛산 유럽기술센터로 넘어간다. 거기서 랜섬이 디자이너의 스케치를 그 모델에 맞춰 손질한다.


처음에 그는 큼직한 브러시로 조잡한 3D 영상을 스크린에 그린다. 그런 다음 실로 현란한 속도로 로터리 컨트롤러를 써서 가상의 그립즈를 돌리고 확대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한편 다른 손으로 키보드를 조작하며 그 모델의 수없이 복잡한 표면을 매만졌다. “자동차보다 더 복잡한 기하학적 제품은 이 세상에 다시 없다”고 오즈볼트가 말했다. 랜섬의 작업이 바로 그 사실을 뒷받침했다.
 

일단 3D 이미지를 매끈하게 다듬은 뒤 디자인을 5축 밀링머신에 맡겨 처음으로 실물을 만들었다. 4분의 1 축소 그립즈 클레이 모델은 4시간에 만들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모형제작자는 디자인팀이 어느 것이 가장 좋은가를 시험하도록 도와줬다. 뒤이어 그 모형은 3D 스캔을 거쳐 디지털 이미지로 바뀌어 랜섬에게 돌아갔다. 이때 랜섬은 기술패키지를 담아낼 수 있는지를 점검했다.


서머렐-유드와 나는 모델 제작을 직접 해보기로 했다. 서머렐-유드는 따뜻한 클레이 덩어리를 잘라낸 뒤 그립즈 도어의 앞쪽 가장자리의 V그래픽에 수평 스트레이크를 추가했다. 그러자 모형제작자 조애나 본드와 폴 래트클립이 잘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머렐-유드가 그 밑에 보다 작은 제2의 스트레이크를 달았으나 별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클레이는 융통성이 아주 크기 때문에 금방 떼낼 수 있었다.
 

나는 또 다른 역사적 랠리카 란치아 037을 떠올렸다. 그 차의 스키점프 스포일러를 클레이 모델에 달았다. 한번은 내가 닛산 내부에서 만든 공구를 써서 넛메그 그레이터를 붙였다. 그러자 래트클립이 잽싸게 손질해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무척 재미가 있었고, 그 일에 흠뻑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공력장비를 추가하다가 놀림을 받았으나 점차 가벼운 칭찬을 듣게 됐다.


실제 모형제작 과정에 모형제작팀이 강철 프레임의 완형 클레이 모델을 깎고 다듬어 비닐을 씌워 밖으로 실어냈다. 모형 표면이 자연광을 어떻게 반사하는가를 보기 위해서였다. 모터쇼에 등장하는 다수의 컨셉트카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닛산에서는 컨셉트카 디자인을 완성하는 데 대략 9개월이 걸린다. 그뒤 양산모델을 만드는 데 다시 18개월이 필요하다. 추가되는 9개월간 패딩턴과 크랜필드 스튜디오가 번갈아 끝손질을 한다. 기술진은 구체적인 기술문제를 결정한다. 무게, 성능, 공력기능, 실내공간, 차체 내구성, 경제적 제작법과 안전이 그들의 과제다. 아울러 디자인팀과 손잡고 아름다운 자태를 훼손하지 않고 기술 패키지를 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제2세대 캐시카이의 ‘디자인 동결’에 약 4주일 단위로 11회 순환검토를 거쳤다.


이때 차의 이미지가 결정되고 디자인팀은 물러났다. 그 역할을 잘하면 오리지널 컨셉트가 그대로 빛난다. 오즈볼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양산모델에 살아남을 가장 대담한 테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양산 모델에 첫 스케치의 자취가 보인다면 성공한 것이다.” 
 

벤이 그린 닛산 컨셉트카

<오토카>의 벤 서머렐-유드는 코번트리 대학교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는 앞으로 나올 모델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설명했다. 사실 그의 가상도는 섬뜩하리만큼 정확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앞으로 나올 차를 그릴 때 그 메이커의 최신 컨셉트를 자세히 살핀다. 디자인 언어가 어떻게 발전하는가를 추적한 다음 시장을 떠나는 구형에 적용한다. 크기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컨셉트의 헤드램프와 같은 디테일을 받아들인다. 시험용차의 몰카 사진도 쓸모가 있다. 위장으로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지만 휠베이스, 창문 디자인과 헤드램프 위치를 알 수 있다. 이같은 가상도는 으레 사진으로 나온다.


“생산단계를 몇 년 앞둔 컨셉트카나 모델은 손으로 스케치하는 작업이 늘어나고 디테일은 줄어든다. 가령 애스턴 마틴-레드불 하이퍼카의 경우 아주 막연한 윤곽 스케치를 내놨을 뿐이다. 하지만 일부 스타일과 윈드쉴드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최신 애스턴 마틴 컨셉트를 바탕으로 완성차의 디자인을 그릴 수 있었다.”

 

작업라인 체험

닛산의 선덜랜드 공장은 1986년 블루버드의 녹다운 생산에서 출발했다. 그뒤 먼길을 달려왔다. 이제 강철 프레스, 엔진 조립,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시설, 한 개의 보디샵과 2개의 트림+섀시 라인 등 완전한 생산시설을 갖췄다.


우리는 능률의 모범시설인 1라인을 방문했다. 노동자들은 최고 5가지 서로 다른 과제를 소화할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같은 작업일에 2.5시간 단위로 3회 순환교대작업을 한다. 길이 504m 생산라인에서 새로 교대할 때 생산 재개 시간은 단 2분에 불과하다.


대시보드는 삽입하고, 엔진은 올리고, 브레이크는 연결하며 도어는 건다. 다양한 작업이 일정한 시차로 완성된다. 현재 소요시간은 56초. 표준작업표는 각 단계를 기준시간으로 분할하고 어느 손이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봇이 발레처럼 우아하게 움직인다는 틀에 박힌 표현은 그대로 적중했다. 한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로봇, 부분조립된 차와 작업원 서로간의 정확한 협동작업이었다. 작업속도는 환상적이었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치열한 신간의 압력에도 서두르거나 당황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서머렐-유드와 내가 거들 때까지는…. 우리 둘은 다같이 생산라인 기량테스트에 합격했다. 정해진 시간에 세밀한 지시를 해낼 수 있는 수작업 능력을 시험했다.


1라인의 소용돌이속에 한 자리를 차지한 우리는 캐시카이 보닛의 앞쪽에 길다란 고무밀폐재를 달아야 했다. 그때 10개의 플라스틱 클립으로 금속부분에 고정시켰다. 담당 작업자는 철저한 훈련과 습관화된 동작으로 침착하게 해냈다. 우리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나는 밀폐재를 받아들고 보닛으로 다가갔다. 놀랍게도 클립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다급했다.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클립을 하나씩 정확한 각도로 눌렀다. 10번이 끝났고, 그동안 시계가 재깍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일을 마쳤을 때 지정된 시간이 조금 넘어 다른 작업위치의 작업자가 자기 일을 하기 위해 몰렸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연하게 작업방법이 결정된 생산라인이었다. 거기서 심장박동이 분당 80회를 넘는 것은 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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