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곡성 - 현대 그랜저 XG, 쌍용 무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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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곡성 - 현대 그랜저 XG, 쌍용 무쏘
  • 신지혜
  • 승인 2016.08.0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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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구
크지 않은 시골마을 곡성의 경찰관이다. 덩치만 봐서는 충분히 직업과 어울리는 듯한데, 그 소심한 성격이나 현장에서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경찰이 되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경찰직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종구. 그래서 그 마을에 첫 번째 사건이 터졌을 때 그는 아마도 난감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사건이 이상하고 기묘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사건 현장에서도 종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구경나온 사람처럼 군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사를 진행해야 할지, 도대체 이 사건은 어떤 경우인지 그로서는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리고 스멀스멀 마을의 괴담이 떠돌기 시작하고, 연이어 터지는 사건과 사람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괴담들이 종구의 꿈과 연결되면서 서서히 종구는 사건의 중심부로 끌려들어간다. 그는 애초부터 경찰로서의 사명이나 능력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고, 그가 입고 있는 경찰복은 누가 봐도 겉도는 느낌이다. 하지만 경찰이라는 번듯한 직업과 경찰복이라는, 공권력을 가진 자라는 것을 알려주는 유니폼은 종구의 마음에 뿌듯함을 심어주고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기에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종구의 차는 그랜저 XG. 그랜저 XG는 그런 종구에게 또 하나의 엄폐물이다. 아주 거창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은 마을의 경찰관이 타기에는 근사한 차. 마을 사람들 대개가 종구를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어른들과 친구들이니 그들에게 종구는 경찰임과 동시에 그저 종구다. 그의 행동과 삶의 방식으로 미루어 보아 어릴 때부터 평범하기 그지없고 특별한 면모를 보인 적이 없을 테다. 그런 종구이기에 그랜저는 이제 종구도 다 큰 어른이며 경찰이라는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고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꽤 나쁘지 않은 지위를 가지고 살고 있다는 이미지를 덧씌워주는 도구가 된다. 게다가 종구는 차를 타고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종구의 차는 소심하고 겁 많고 별다른 관심거리를 갖지 않는 종구와 같다.
 

일광.
종구가 마을의 사건에 휘말려 들어가게 되면서 일광을 만나게 된다. 용한 무당이라고 소문난 그는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견을 담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종구의 집을 찾아오자마자 집안 곳곳에 숨어있는 불길한 징조들을 찾아내곤 곧바로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다. 절대적으로 종구와 마을 사람들의 편이며 선한 쪽이라고 생각되었던 일광은,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미심쩍고 경계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 되어간다.
 

그의 차는 쌍용 무쏘. 강인한 이미지를 가진 차다. 무쏘는 일광을 곡성으로 데려오고 곡성에서 데리고 나가며 다시 곡성으로 데려오면서 그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단박에 뒤엎는 도구가 된다. 일광이 처음 곡성을 찾아올 때 무쏘는 굽이치는 산길을 돌며 순탄치 않은 길을 함께 헤쳐나가 줄 것처럼 보인다. 긴장과 공포가 마을을 뒤덮어가는 그때, 무쏘는 일광을 태우고 당신들을 도우러 가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감을 내보이며 큰소리를 치고 있다. 하지만 일광은 결정적인 순간에 굿판을 멈추게 되고 마을을 떠난다. 그때 일광은 관객들에게 큰 상대를 만나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자, 이제 어떻게 하나, 관객들이 슬슬 걱정하며 불안감이 증폭된다. 그때 무쏘는 일광을 태우고 훌쩍 떠나버린다.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말이다.
 

그리고 일광이 다시 곡성을 찾아 올 때 무쏘는 또 한 번 그와 동행한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마치 일부러 늦게 온 듯 모든 상황이 끝나버리고 종구의 집을 찾은 일광은 묘하게 뻔뻔한 얼굴로 종구의 집을 들여다보고 현장을 점검한다. 무쏘는 알았을 것이다. 이제 그때가 되었다는 것을. 일광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라는 것을. 모든 것이 종결되는 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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