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변속기의 진화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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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변속기의 진화 경쟁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6.07.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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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면, 자동변속기가 자동차의 대중화에 아주 큰 공헌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운전의 기쁨도 이 순간만큼은 예외다. 짜증이 치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수동변속기를 내 맘대로 다루는 재미도 교통체증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동판 클러치를 끼워 넣은 튜닝카의 무거운 클러치 페달을 계속 밟다보면 자동변속기가 더욱 간절해진다. ‘아마도 교통체증이 시작되면서 자동변속기가 개발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다.
 

하지만 틀렸다. 자동변속기의 개발 역사는 생각 외로 길다. 이는 과거 수동변속기 차들의 변속이 아주 어려웠기 때문. 현재 거의 모든 수동변속기에 쓰이는 싱크로 방식이 이때는 아직 적용되지 않았다. 게다가 각 변속기마다 다루는 방식도 달랐다. 자동차 초창기 시절에는 정해진 규격이라는 것이 없었던 까닭이다.
 

원심력을 이용하는 유성 기어(Planetary Gear) 방식의 자동변속기 시제품은 1900년대 초부터 보이지만, 처음으로 적용된 것은 1908년 등장한 포드 모델 T였다. 이동의 자유를 선사했다는 찬사를 받는 모델 T다운 일이다. 포드 모델 T의 자동변속기는 저속과 고속의 2단 유성 기어 방식이었다. 왼쪽 페달을 밟아 변속하는 구조. 클러치 페달이 아니다. 후진을 위해서는 가운데 페달을, 감속을 위해 오른쪽 페달을 밟는 등 지금과는 크게 다른데, 이는 스로틀을 페달이 아닌 레버로 여는 방식을 채택했기에 가능한 것. 기존 모델에 비해 포드 모델 T는 상대적으로 변속이 쉽다는 평을 받았다. 물론 부드럽게 출발하긴 어렵다는 한계도 있었다.
 

유성 기어를 떠나, 현대적 자동변속기의 시조를 GM으로 봐야할지, 크라이슬러로 봐야할지는 견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플루이드 커플링’(유체 클러치)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은 크라이슬러였다. 케이스 안에 2개의 터빈을 마주보게 배치하고 오일을 채워 넣은 방식. 엔진의 힘을 받은 터빈이 움직이면 오일 또한 움직여 구동축 쪽 터빈도 움직이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자동변속기에 쓰이는 토크 컨버터의 초기 구조에 가까운 형태다. 토크 컨버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유속을 조절하는 스테이터 등의 장비를 더해 효율을 높인 형태다.
 

이후 GM은 플루이드 커플링 방식을 발전시켜 1939년에 세계 최초의 양산형 자동변속기인 하이드라 매틱(Hydra-Matic)을 내놓았다. 연비와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야 있었지만, 출발이 매끈해져 안락하다는 평을 받았다. GM은 캐딜락, 올즈모빌 등 GM의 고급 브랜드에 자동변속기를 우선 적용했다. 이후 벤틀리, 롤스로이스도 이를 도입하게 됐다. 자동변속기가 고급차를 가르는 기준이 된 셈. 다만 메르세데스-벤츠는 직접 자동 4단 변속기의 제작에 들어갔다. 이후 GM은 1956년에 하이드라 매틱의 후속인 제타웨이 하이드라 매틱(Jetaway Hydra-Matic)을 선보였다. 1950년대 제트엔진(Jet Engine) 비행기가 도입된 사회 배경을 생각하면 제트기가 빠르고 강력한 운송수단을 상징하기에, 제트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에 터보라는 이름을 아무 곳에나 사용했던 것처럼. 
 

아무튼 제타웨이 하이드라 매틱은 한결 개선된 성능을 뽐냈다. 플루이드 커플링 구조를 개선해 변속은 더 부드러워졌고, 현재 주차 시 쓰는 ‘파킹’(P) 기어도 처음 도입됐다. 물론 다른 제조사들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보그워너는 토크컨버터 방식의 3단 자동변속기를 선보였다. 크라이슬러는 자체 개발에 나서 토크컨버터 방식 2단 자동변속기를 선보인다. 포드는 잽싸게 보그워너의 것을 도입했다. 1960년대 미국 3사는 자사의 자동변속기 이점 알리며 경쟁에 나섰다. 이와 같은 경쟁이 자동변속기 선호를 부추겼다.
 

이후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맞으며 자동차는 연비를 향상하는 쪽으로 진화한다. 자동변속기 또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항속 주행에서 연비를 높여줄 오버 드라이브 기능을 적용하는 등 4단 이상의 변속기 개발이 시작된다. 또한 ECU를 통해 자동차에 컴퓨터 제어시스템이 도입되며 자동변속기는 극적인 변화를 더한다. 변속기의 밸브 바디를 컴퓨터를 통해 조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 변속기에 지능을 더한 셈이다. 컴퓨터가 운전자의 취향을 분석, 이에 맞는 변속 패턴을 정하거나, 스포츠 주행 시 변속 시점을 조정하는 등 주행 품질을 위한 대규모 개선을 거쳤다. 팁트로닉 등 수동 모드를 더하며 스포츠 성능을 강조하는 변화도 있었다.
 

지금과 같은 다단화 경쟁의 시작은 2001년 시작됐다. 불과 15년 사이의 이야기다. 2001년 BMW가 ZF와 손잡고 7시리즈에 자동 6단 변속기를 얹었다. 2년 후인 2003년, 벤츠는 자동 7단 변속기를 E-클래스, S-클래스 등에 얹어 반격에 나섰다. 첫 자동 8단 변속기는 2007년에 등장했다. 렉서스 LS 460에 자동 8단 변속기를 얹은 것. 이후 자동 8단 변속기는 많은 브랜드에 두루 사용되었다. BMW 그룹의 스텝트로닉, 폭스바겐 그룹의 팁트로닉에 이어 현대?기아 등 대다수 브랜드들이 자동 8단의 다단화 변속기를 사용하게 된 것. 자동 9단 변속기의 개발은 7단에서 8단으로 가는 것보다 늦었다. 2014년 지프 체로키가 자동 9단 변속기를 얹으며 자동 9단 변속기의 시대를 열었다. 벤츠는 한발 늦었지만 현재 자동 9단 변속기를 라인업에 더하는 중이다.
 

반면 유럽시장의 변속기 경쟁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북미시장에서 전통적인 자동변속기 다단화 경쟁이 이뤄졌다면, 유럽시장은 효율 높이기 위한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도입이 승부를 갈랐기 때문. 효율과 운전의 편의를 동시에 갖고자 하는 시도는 늘 있었다. 클러치 페달 없는 수동 변속기(세미-오토매틱)가 도입되었던 이유다. 하지만 정교하게 다룰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클러치를 붙이는 시점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보니 언덕길에서 세밀한 조정이 어렵다. 이후 전자제어를 통해 클러치를 붙였다 떼는 전자유압식 싱글 클러치 자동변속기가 도입된다. BMW의 SMG, 알파로메오의 셀렉스피드, 페라리 355의 F1 미션, F430 등이 이와 같은 변속기를 사용했다. 수동보다 편하면서도 효율은 수동과 같았기 때문.
 

하지만 폭스바겐이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들고 나와 판을 뒤집었다. 변속 품질이 더 뛰어나고, 속도도 더 빠른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유일한 단점은 더 비싼 원가일 뿐이었다. 처음으로 이를 장착한 양산차는 2003년 등장한 폭스바겐 골프 4세대 R32 모델이다. 갑작스러운 등장이라지만 이미 충분한 기술은 있었다. 폭스바겐 그룹의 포르쉐는 1980년대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적용한 레이스카 956과 962를 선보인 적 있다. 20년이 지나 레이싱카의 최첨단 기술이 양산차로 적용된 것. 현재로는 대부분의 유럽차들이 DCT를 선택하는 추세. 일반적인 다단화 자동변속기에 비해 크기가 작고, 동력 전달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소형차에 DCT를 맞물리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퍼포먼스 모델들이 수동변속기보다 더 빠른 성능을 위해 DCT를 달고 있기 때문. 페라리는 수동변속기를 이제 사용하지 않는다.
 

자동변속기의 진화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는 자동 10단 변속기의 양산 대결이다. 10이라는 숫자의 상징성 때문인지 각 제조사들의 경쟁이 아주 뜨겁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렉서스. 2017년 양산될 LC500을 공개하며 자동 10단 변속기를 달 것이라고 밝혔다. 혼다는 자동 10단 변속기를 2018년식 모델부터 적용할 것이라 공표했고, GM 또한 마찬가지. 세 기업이 자동 10단 변속기를 단 차를 출시할 시점은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누가 첫 자동 10단 변속기 양산 승용차의 명예를 안게 될 것인지, 그리고 패자는 또 어떤 기술로 반격할 것인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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