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차시장의 돌개바람, 신형 말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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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차시장의 돌개바람, 신형 말리부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6.07.0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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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자동차시장의 추세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완성과 혁신 모두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더 중요시하는 것은 혁신이 아닐까?’ 익숙한 것보다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네 일상이 건조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세먼지로 숨쉬기 힘든 요즘의 공기 같다. 그런 일상의 숨통을 틔워주는 존재는 중형 세단이다. 가장의 출근, 가정의 이동 등 일상을 함께하는 중형 세단은 평범하기에 오히려 위대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요즘 국산 중형세단 시장의 분위기는 좀 남다르다. 완성과 혁신이 극과 극으로 맞붙는 모양새다. 그만큼 시장경쟁 또한 뜨거워지기 마련. 신형 쉐보레 말리부 또한 극적인 변화를 거쳐 돌아왔다. 경쟁자 모두를 앞서는 구성으로 시작부터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이다. 신형 말리부가 준비한 가장 큰 무기는 ‘모든 것을 바꾼 혁신’이다. 
 

미디어 시승회에서 한국GM은, “신형 말리부는 중형 세단이지만 현대 그랜저보다 크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신형 말리부의 크기는 길이 4,925mm, 너비 1,855mm, 높이 1,470mm, 휠베이스 2,830mm다. 기존 모델에 비해 길이 60mm, 휠베이스 93mm가 늘었다. 더 커졌지만 디자인은 날렵해졌다. 쉐보레의 새로운 패밀리룩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상위 모델인 임팔라가 쓱 그은 직선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면, 말리부는 좀 더 둥글어진 느낌이다. 그러나 두 모델이 주는 느낌은 비슷하다. 패밀리룩의 힘일 것이다. 쉐보레는 말리부의 신형 그릴이 새로운 패밀리룩을 상징한다고 했다. 날렵하게 빚은 헤드램프가 입체적인 캐릭터 라인과 맞물려 스포티한 분위기를 낸다. 완만하게 꺾은 지붕선과 살짝 솟아오른 트렁크 끝자락은 공기역학을 위한 것이다. 커다란 덩치의 세단이지만 스포츠 쿠페 감각을 입혔다는 설명이다.
 

실내 또한 새롭다. 기존의 U자형 곡선 대시보드에서 벗어나 마치 날개를 펼친 듯한 모습으로 꾸몄다. 엠보싱 플라스틱과 가죽을 사용해 안락한 분위기도 더했다. 알루미늄 소재와 푸른색 조명의 대비는 쉐보레 브랜드 인테리어의 특성 중 하나. 센터페시아를 중심으로 운전석과 조수석이 대칭 구조를 이루는 구조도 마찬가지다. 쉐보레를 포함한 여러 브랜드들이 이와 같은 구조를 택하고 있지만, 쉐보레는 대시보드에 굴곡을 더해 조종석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특징이 있다. 브랜드 내 모든 자동차에 적용한 정체성이다. 쉐보레는 이를 ‘듀얼 콕핏’(Dual Cockpit) 디자인이라 부른다. 이중 조종석이란 뜻이다.
 

센터페시아의 크기가 줄어든 점이 맘에 든다. 마이링크 시스템을 적용해 멀티미디어 조작부의 크기를 줄이고 버튼을 최소화한데다, 에어컨 조작부 또한 크기를 대폭 줄였기 때문. 깔끔해진 디자인 외에도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해진 것이 가장 큰 이점이다. 또한 센터페시아 아래를 지갑 등을 놓을 수 있는 수납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기어레버는 P-R-N-D-L의 직렬 구성이다. 토글스위치는 여전하지만 배치를 세로형으로 바꾸고 쓰기 편하도록 기어레버의 위치를 조정하는 등 개선을 더했다. 패들 시프트를 적용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토글스위치가 쉐보레 차종에 공통 적용되는 구조 중 하나라고. 전 모델에서도 패들 시프트가 없음을 지적하는 의견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GM은 밝혔다. 뒷좌석 다리 공간은 키 180cm의 성인 남성이 정자세로 앉았을 때 적당한 수준. 휠베이스가 90mm 늘어 아주 널찍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자료를 보면 뒷좌석 다리 공간은 33mm 늘어났다. 직접 운전하는 중형 세단인 만큼, 앞뒤 좌석 공간 두루 넓히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형 말리부는 직렬 4기통 1.5L 터보, 직렬 4기통 2.0L 터보의 두 종류로 출시됐다. 1.5L 터보 엔진이 기존 2.0L 자연흡기 엔진을 대체한다. 최고출력은 166마력으로 5,400rpm에서, 최대토크는 25.5kg?m로 2,000~4,000rpm에서 나온다. 연비는 13km/L(신연비 기준)이다. 터보 엔진이라고 자연흡기 엔진보다 시끄러울 것 같다는 편견은 버릴 때다. 조용한 차체를 만들기 위해 흡차음재를 쓰고, 기본형 모델부터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ANC) 기능을 달아 조용한 실내 만들기에 힘썼다.
 

2.0L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253마력을 5,300rpm에서 낸다. 최대토크는 36kg?m로 1.5L 엔진과 같은 2,000rpm에서 시작되나 5,000rpm까지 유지한다는 점이 다르다. 성능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1.5L 터보에 얹었던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 기능을 적용하지 않았다. 두 모델 모두 자동 6단 변속기를 맞물려 앞바퀴를 굴린다. 연비는 10.8km/L다. 하반기에는 하이브리드 모델도 출시될 예정이다. 직렬 4기통 1.8L 엔진에 모터 2개를 맞물린 구성. 시스템 출력 182마력을 내며 연비는 국내 기준 17.1km/L다.
 

시승차는 2.0L 터보 엔진 모델. 엔진의 회전질감이 인상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요즘 4기통 터보 엔진 중 독특한 질감을 자랑하는 엔진은 사실 찾아보기 힘들다. 일상적으로 탈 중형 세단답게 무난한 세팅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저회전부터 빠르게 힘을 끌어내는 것이 좋다. 세밀하게 다루기가 편해져서다. 속도를 낮춰 시내를 달릴 때 유리한 부분이다. 터보 랙은 약간 있지만 의식할 정도는 아니고 자연스럽다. 전반적으로 자연흡기 엔진과 비슷한 느낌을 만들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물론 터보 엔진의 특성인 중간 회전대의 강력함은 살아있다. 토크를 많이 유지하니 그렇다. 특정 회전대에서 힘을 거세게 뿜어내는 타입은 아니다. 큰 변동 없이 꾸준히 힘을 유지하다보니 고회전으로 달릴 때도 부담이 없다.
 

가속은 호쾌하다.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빠르게 가속해 대열에 합류한다. 넉넉한 힘을 갖춘 엔진이 주는 이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주행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언제든 원하는 대로 튀어나갈 수 있으니 가속에 신경 쓸 일이 없어져서다. 다만, 분명히 해둘 점은 가속이 짜릿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가속도가 늘어나는 만큼 가속감이 꼭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형 말리부는 언제나 차분하다. 주어진 조건 내에서 최대한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중형 세단에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스포츠 세단 콘셉트를 취하지 않는 한 말이다.
 

다시 빠르게 속도를 높이며 변속기 반응을 확인했다. 말리부의 미디어 시승회에서 한국GM은 부끄러운 과거를 스스로 들췄다. 성능이 떨어지는 자동변속기를 얹어 ‘보령 미션’으로 불리웠던 일이다. 이번에는 3세대 변속기를 사용하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엔진의 힘을 올곧게 전하는 감각이 분명하다. 변속 시간은 보통이고, 변속 충격은 느끼지 못했다.
 

다만 신형 말리부의 등장을 고대하던 이라면 북미 시장용 자동 8단 변속기에 미련이 남을 수도 있겠다. 이에 대해 한국GM은 자동 6단 변속기를 채택한 것은 경쟁력 있는 가격 책정을 위한 것이며, 주행에는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편의장비를 충분히 갖추고도 적당한 가격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항속 주행에서는 자동 8단 변속기에 육박하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이점을 찾는다. 6단 기어비가 상당히 길기 때문. 19인치 휠을 끼운 시승차 기준으로, 항속 시 엔진회전수는 시속 90km에서 약 1,500rpm이다. 시속 110km에서는 약 1,800rpm이다. 어느 정도 속도를 높여 달려도 연비 주행이 가능한 이유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이야 정속을 유지하고 달릴 때 가장 유용하지만 의외로 가고 서기를 반복하는 정체 구간에서의 쓸모도 크다. 속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낮아지거나, 정지했을 때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해제되는 차종도 있지만 다행히도 말리부의 것은 속도가 낮아지거나 멈춰서도 해제되지 않는다. 출발이 조금 늦다 싶으면 가속 페달을 툭 건드리면 다시 알아서 간다. 앞차와의 간격을 잘 유지하며 움직이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구비진 산길로 향했다. 스포티한 디자인이지만 스티어링 감각은 묵직하다. 대신 어떤 상황에서도 정확한 움직임을 보인다. 좌우 연속으로 스티어링 휠을 몰아치듯 달려도 빠르고 정확하게 방향을 바꾼다. 신형 말리부에는 보쉬의 R-EPS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이 적용됐다. 그 외에 노면 진동을 읽어 스티어링의 감각을 스스로 조절하고, 강풍 등 주행 환경이 일정치 않은 상황에서는 자동으로 조타각까지 보정하는 등 다양한 기능이 탑재됐다.
 

서스펜션의 세팅도 인상적이다. 앞은 맥퍼슨 스트럿, 뒤는 멀티 링크 타입이다. 기존 모델보다 좀 더 물러진 인상임에도 도로를 잡는 실력은 더욱 좋아졌다. 속도를 한껏 높여 달려도 불안함이 없다. 대부분의 노면 충격을 부드럽게 되돌리는 매너도 괜찮다. 다만 특정 노면에서 댐핑이 증폭되는 느낌을 받았다. 고속 코너링 시 차체 기울임은 약간 있는 편이다. 다른 중형 세단에 비하면 슬쩍 무른 승차감을 위한 세팅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안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미국 브랜드 쉐보레의 대표 중형 세단이라는 것에서 오는 선입견인지, 말리부는 고속도로가 참 잘 어울리는 차란 생각이다. 안정적인 순항 능력이 특히 돋보여서다. 새 플랫폼을 장착한 중형 세단 대부분이 뛰어나다지만 말리부는 그 중에서도 남다르다. 높은 속도에서도 아주 여유롭게 달릴 수 있다. 그 비결 중 하나는 단단한 차체다. 신형 말리부는 앞으로 GM이 선보일 다양한 중형 모델과 차체를 공유한다. 그만큼 좋은 차체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말리부 글로벌 개발 담당임원인 제레미 쇼트(Jeremy Short)는 신형 말리부의 개발은 전적으로 ‘스마트 엔지니어링’에 바탕을 뒀다고 말했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의 발전을 통해 차체의 기본 설계 과정을 포함한 모든 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사례의 시험이 가능했다고.
 

그는 일례로 공회전시 진동 시뮬레이션을 들었다.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차체의 진동폭이 적기 때문에 영향을 강하게 받는 부위를 알기 어렵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을 통해 움직임을 수천배 이상 증폭하면 차체 어디에 진동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한편, 최적의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핸들링을 개선하고, 강성을 높이기 위한 보강 부위를 결정했다. 신규 부품 적용, 부품 개선, 재질 변경 또한 마찬가지다. 신형 차체의 크기를 키우고 강성을 높이면서도 전체 중량에서 130kg를 덜어낸 비법이다. 그 결과 말리부의 무게는 1.5L 터보 1,400kg, 2.0L 터보 1,470kg로 가벼운 편이다.
 

무게는 줄었을지언정 안전성은 늘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의 안전성 종합평가 부문에서 최고등급을 받았다. 안전 장비를 대폭 보강한 것도 인상적이다. 신형 말리부는 전 모델 공통으로 8개 에어백을 단다. 앞좌석과 뒷좌석 모두 사이드 에어백을 추가해서다. 옵션으로 드라이빙 팩을 달면 안전 사양이 크게 늘어난다. 전방 보행자 감지 및 제동 시스템, 전방 충돌 경고, 자동 긴급 제동 시스템 등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약 120만원 대의 추가 비용을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다. 사고를 한 번이라도 피할 수 있다면 제 값을 하는 것 아닐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도 시승차는 최고 등급인 LTZ 프리미엄 팩에 스마트 드라이빙 옵션을 추가한 모델. 말리부의 모든 안전 장비를 달았다. 구성은 저속 자동 긴급제동, 차선 이탈 경고, 차선 유지 보조, 전방거리 감지, 전방 충돌 경고, 전방 보행자 감지 및 제동, 지능형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자동 긴급제동, 차선변경 경고, 사각지대 경고, 후측방 경고 등 다양하다. 차체 전체를 감싸는 360˚에 달하는 감지 범위가 자랑거리. 초음파 센서 17개, 장/단거리 레이더, 전후방 카메라를 달아 사전에 위험 요소를 찾아낸다는 이유에서다.
 

시승차를 통해 안전장비의 위력을 실감했다. 차선이 빈 것을 확인하고 차선 끝으로 스티어링을 슬쩍 향하자 미세한 반발력이 느껴진다. 슬쩍 스티어링을 원상 복구하는 것. 브레이크를 최대한 늦추면 경고음과 함께 자동 제동이 시작된다. 완전히 멈추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경고음 때문인지 절로 발이 브레이크 페달을 꽉 밟게 됐다. 보행자 감지 및 제동 기능이 놀라웠다. 좁은 왕복 2차선 도로에서 갑자기 경고음이 삑삑 울린다, 차도 가까이 붙어선 보행자를 보고 경고를 울린 것. 보행자가 가까이 접근 시 알아서 멈춰서는 기능도 있다. 다만 점심시간의 번화가 같이 차도로 많은 보행자들이 다닐 경우 정신이 살짝 사납다. 길가에 자리한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려 후진을 하니, 다가오는 차를 향해 커서를 띄우고 경고음을 낸다. 뒤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후진을 해야 할 때 더욱 유용할 것이다.
 

이젠 신형으로 돌아온 말리부의 가치를 새로 돌아볼 때다. 기존 말리부는 기본기가 뛰어난 차로 인정을 받았다. 현대·기아가 대세인 중형 세단 시장에서 멋이나 편의장비는 좀 모자랄지언정 충실한 자동차를 원하는 이들이 선택하는 차였다. 경쟁자들이 멋진 디자인과 다양한 편의장비로 승부할 때, 말리부는 고집스럽게도 저만의 가치 하나만으로 승부한 셈이다. 하지만 혁신을 택한 신형 말리부의 등장은 이 구도를 완전히 바꿔버릴 듯하다. 유력한 경쟁자 둘이 완성을 택해 기존의 무기를 더 갈고 닦았다면, 말리부는 이제 멋과 다양한 편의장비, 경쟁자들이 갖추지 못한 최첨단 안전장비 등 새로운 무기를 더했다. 기존의 장점을 유지한 채로 새로운 무기를 더한 것. 쉐보레의 자신감처럼 중형차 시장의 판은 완전히 새로 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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