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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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심장이 뛴다>
  • 아이오토카
  • 승인 2011.04.3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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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심장, 두 목숨

ㅇ ㄱ ㅈ ㅇ ㅈ ㅈ. 예은이가 보낸 문자다. 네비를 찍어 근처까지 온 것 같기는 한데 이 여섯 초성이 의미하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피가 마른다. 온몸이 잔뜩 긴장해서 터져 버릴 것만 같다. 휘도라는 이 남자는 아픈 아이를 납치한 파렴치한. 이제 8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 천사처럼 착하고 예쁜 아이, 심장이 약해 쓰러지면 큰일 나는 아이인데 그런 아이를 병원에서 몰래 데리고 나가다니. 예은이는 강한 심장이 필요한 것뿐인데. 거의 뇌사나 다름없는 사람의 심장을 기증받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일까? 그래. 갈 데까지 가보자. 난,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있어.

연희라는 이 여자. 장기매매업자를 데리고 나타나 나를 골탕 먹이더니 엄마를 데리고 있다고? 내가 평생 엄마 등골을 빼먹고 엄마를 무시하고 살아온 나쁜 놈인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숨이 붙어있는 엄마의 심장을 꺼내자는 데 동의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엄마에게 간을 이식하면 조금 나아질 지도 모르는데. 나도 할 데까진 해보겠단 말이다. 지금까지는 없는 것보다 나은 아들이었을지 몰라도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심장을 지키고 싶은 것뿐이야. 그래. 갈 데까지 가보자구. 난, 당신의 딸을 데리고 있어.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두 사람이 있다. 부유하고 안온한 세계에서 착하고 단정하게 살아온 여자 연희. 연희가 소유한 차는 혼다 레전드다. 정직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연희의 차답다. 출발부터 가속까지 페달을 밟는 대로 받아주는 혼다, 출렁거림이나 물컹거림 없이 도로의 표면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우직함을 간직한 혼다. 속이는 것, 야비한 것, 눙치는 것, 뒤통수를 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세계에서 살아온 연희, 모든 현상과 사람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희와 꼭 닮은 차, 혼다 레전드. 거칠고 악하고 앞과 뒤의 얼굴이 너무나 다른 배신의 세계에서 야비하게 살아온 남자 휘도. 휘도가 모는 차는 그랜저 TG. 앞에서 아부하고 돌아서서 바로 욕을 하고 누군가를 짓누르고 흔들어대며 살아온 휘도처럼 이 차는 ‘허’ 넘버를 달고 있다. 그마저도 누군가에게 빌린 차, 이기적이고 무엇 하나 성실하고 정직한 것과는 거리가 먼, 허식 가득하고 거짓과 위선으로 뒤덮인 휘도의 삶과도 같다.

그런 두 사람이 동시에 하나의 심장을 원하게 되면서 양극에서 접점을 향해 달려온다. 연희는 장기매매업자들에게 부탁해 휘도를 협박하고 휘도 어머니를 빼내온다. 휘도의 집 창문을 깨고 들어가 방을 뒤지기도 하고 휘도의 뒤통수를 가격한다. 생전 처음 세상의 무섭고 추악한 면과 마주친 그녀는, 예은에게 이식할 심장 하나를 위해 용감하게 다른 세계로 뛰어든다. 거칠고 단순하고 욕을 달고 살아온 휘도는 쓰러진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난생처음 양심이 찔리는 것을 느낀다.
 
어린 예은이를 보면서 마음 한 구석 아려오기도 하고 연희의 눈물을 보면서 마음이 약해지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와 마주친다. 생전 처음 깊은 곳에서 흐르는 눈물과 마주친 그는,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 엄마의 심장을 꺼내지 못하도록 막는다. 두 사람 모두, 긴박하고 절박한 이유가 있다. 그 심장을 원하는 이유가. 당신이라면 누구의 편에 설 수 있을까?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싶을까? 함부로 누구 편에 설 수 있을까? 영화는 점점 두 사람의 첨예한 대립으로 치달아가면서 쉴 새 없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져댄다.

그리고, 막다른 골목에서 한 호흡 들이마시고 시야를 조금 넓혀준다. 그리고 연희도 휘도도 예은이도 엄마도 관객들도 동의할 수 있는 결말을 이끌어 내준다. 다행이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 두 사람의 세계를 덮는 평안과 두 사람의 세계를 이어주는 새로운 접점을 보게 된다.

글 · 신지혜(아나운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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