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십 스파이더, 포르세 718 박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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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십 스파이더, 포르세 718 박스터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6.06.0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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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본질이다. 모든 것을 바꾸고 돌아온 718 박스터에서 바뀌지 않는 포르쉐의 본질을 찾았다

718 박스터의 글로벌 시승을 위해 12시간하고도 3시간을 더 날아야 했다. 목적지는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 도착한 것은 늦은 밤이었다.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시내로 향하는 길. 동화 속 삼각 지붕 얹은 작은 집들의 거리를 지났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키가 작았다. 신기하게도 커다란 나무를 마당에 심은 집이 많았다. 크게 자란 야자수를 보며 남국에 왔음을 다시 실감한다.


헤드폰을 꺼내 ‘파두’(Fado)를 들었다. 파두는 포르투갈의 전통 가요. 애달픈 소리가 마음을 적신다. 님에 대한 그리움이리라. 한국을 대표하는 정서가 ‘한’과 ‘흥’이라면 포르투갈은 ‘사우다드’(Saudade)라고. 우리말로 바꾸면 ‘향수’와 비슷한 단어다. 우리와 비슷하게도 바다를 끼고 있는 포르투갈. 그중에서도 수도인 리스본은 ‘대항해시대’의 시작점. 모험과 행운을 찾아 수많은 이들이 바다로 떠났다. 남자는 선원이 되어 떠났을 것이다. 여자는 돌아오지 않는 그를, 남자는 두고 온 사랑과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이것이 향수라는 정서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지용의 시에서만 있는 단어가 아니다. 어른이 된 우리가 돌아갈 수 없는 빛나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도 향수 아닐까. 과거 속 빛나던 소녀를 그리워하듯.


문득 향수란 단어 속에 과거에 대한 애착이 있음을 실감한다. 떠난 자동차를 그리워하는 것도 같을까. 기자의 마음속 최고의 차는 코드네임 981의 박스터 GTS. 수평대향 6기통 자연흡기 엔진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차체의 궁합이 끝내주는 차였다. 하지만 이제 포르쉐는 터보 엔진의 시대를 열었다. 자연흡기 엔진 시대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다. 이제 새로운 박스터를 맞이해야 한다. 화장 고치고 돌아올 줄 알았더니, 엔진을 바꾸고 돌아온 ‘718 박스터’다.
 

포르쉐의 프로덕트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인 토마스 해그(Thomas Hagg)는 “박스터 1세대는 1996년 등장했습니다. 올해는 박스터의 20주년이지요. 이를 맞아 포르쉐는 박스터의 새로운 미래를 열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더욱 강력하고 효율적인 수평대향 4기통 엔진으로 박스터의 미래를 열겠다는 것. 이는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을 얹고 자동차 경주를 휩쓴 포르쉐 미드십 로드스터의 역사를 이어나가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신형 박스터의 이름 앞에 ‘718’이란 숫자를 더했고, 이제는 ‘718 박스터’라고 불러달라 했다.


718은 550의 후속작이자 포르쉐 역사 속 하나의 이름. 718은 1957년 첫 등장해 타르가 플로리오, 르망 24시, 세브링 12시간 내구 레이스 등 수많은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을 안긴 전설적인 차다. 그런 이름을 새로 태어난 박스터에 물려준 이유는 둘의 공통점 때문이다. 작지만 강한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을 얹은 미드십 스파이더라는 것. 선대 모델인 718은 최고출력 142마력의 수평대향 4기통 1.5L 엔진을 차체 가운데 얹어 뒷바퀴를 굴렸다. 크기는 작아도 570kg에 불과한 공차중량 덕분에 덩치 큰 경쟁자들을 마구 추월한 작고 강한 로드스터다.
 

선대 모델 718의 이름을 박스터에 더한 것은 그런 차가 되길 바라는 소망과도 같을 것이다. 대신, 시대가 지났으니 무게와 출력 모두 2배 넘게 늘었다. 718 박스터는 수평대향 4기통 2.0L 터보, 718 박스터 S는 보어를 늘려 배기량을 키운 2.5L 터보 엔진을 얹는다. 각각 최고출력은 300마력과 350마력. 기존 모델에 비해 35마력이 늘었다. 완전 신형 엔진이지만, 르망에서 우승한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의 노하우를 반영했다고 포르쉐는 밝혔다. 열 관리를 위해 냉각 시스템의 구조를 개선하는 강수를 뒀다고. 또한 엔진 반응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흡기와 배기 캠샤프트 모두의 각도를 조절하는 배리오캠 플러스(Variocam Plus)를 적용했다. 특히 박스터 S에는 911 터보에만 사용했던 가변형 웨이스트 게이트 터보차저 기술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터보차저의 구동력이 되는 배기가스의 흐름(유속)을 조절해 언제든 터보차저가 효율적으로 가동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상당히 많은 기술들이 적용됐지만, 이 기술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간결하다. 토크의 상승과 빠른 엔진 반응이다. 성능으로 모두를 설득하겠다는 자신감의 원천이다. 실제로 718 박스터는 기존 모델에 비해 엄청나게 빠르다. 터보차저를 달아 최대토크가 크게 늘어난 데다, 저회전부터 최대토크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718 박스터의 최대토크는 38.75kg·m으로 기존 모델에 비해 35%나 늘었고, 718 박스터 S의 최대토크는 42.82kg·m로 17%가 늘어났다. 두 모델 모두 최대토크를 뽑아내는 구간이 1,950~4,500rpm으로 같다. 하지만 회전수를 끝까지 올려도 토크의 하락이 거의 없다. 어떤 엔진회전수에서도 충만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세팅을 목표로 했다고. 그 결과 가속이 상당히 빠르다. PDK 변속기를 단 718 박스터의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4.9초, 718 박스터 S의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4.4초다. 기존 모델에 비해 각각 0.8초, 0.6초 더 빨라진 것.
 

이국에서의 운전은 늘 설렌다. 기존에 달려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을 달리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한 길보다는 새로운 길이 주는 묘한 기대감이랄까. 왼손으로 키를 끼워 시동을 걸었다. 머리 뒤에서 묵직한 소리가 울린다. 엔진을 차체 가운데에 실은 미드십 로드스터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하늘은 흐렸지만 다행히 비는 아직 내리지 않았다. 제대로 운전을 즐기겠다는 다짐을 하며 지붕을 열었다.


엔진에 열기가 오르는 동안 바뀐 부분을 꼼꼼히 찾아봤다. 사실 디자인 변화는 크지 않다. 하지만 거의 모든 곳에 새로운 부품을 쓸 정도로 디테일적인 부분에 상당한 신경을 썼다고. 차체 곳곳을 파고드는 선을 좀 더 선명하게 다듬어 차의 성격을 좀 더 드러낼 수 있도록 했다. 718 박스터만의 성격 강조에 힘쓴 셈. 멋을 위해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양쪽 도어, 리어 스포일러 등 다양한 부분을 다시 디자인했지만, 이 모두가 동시에 공기역학성능을 끌어 올리는 데 일조한다고. 실내 또한 마찬가지. 전반적인 느낌은 비슷한데, 대시 패널 상단을 바꾸며 입체감을 더했다. 또한 인포테인먼트 기능이 대거 늘어났다. 스마트폰을 연결할 수 있는 커넥트 모듈로 무선 인터넷 접속, 정보 내비게이션 등의 온라인 기능을 추가했다.


한국에선 늘 아쉬움을 남기던 포르쉐 내비게이션이었는데, 여기서 오리지널 내비게이션을 써보니 깔끔하고 단순한 기분이다. 이제 왕복 약 450km의 거리를 달려야 한다. 리스본의 도심을 빠져나와 외곽에 있는 포르투갈 공군 공항을 다녀오는 코스다. 협조를 받아 활주로 하나를 빌려 성능 시험 구간을 만들어뒀다고 했다.
 

오늘 처음 만난 이상 천천히 익숙해질 생각으로 여유롭게 도로를 달려 나간다. 일상적인 활용성은 어떨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엔진의 회전 질감이 아주 매끄럽다. 4기통 엔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저회전 토크. 낮은 rpm에서도 늘 힘이 충만하게 느껴진다. 빠르게 힘을 끌어내는 엔진 덕분에 회전수를 낮춰 달려도 부담이 없다. 천천히 달릴 의사를 확인했는지 자동 7단 PDK 변속기도 빠르게 윗단으로의 변속을 거듭했다. 터보랙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반응하는 엔진 덕분에 흐름에 맞춰 달리기 편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고속도로에 들어왔다. 엔진도 제 컨디션을 찾은 지 오래다. 이제 부담 없이 달려볼 차례. 본선 합류를 위해 가속페달을 꾹 밟았다. 순식간에 모든 힘을 쏟아내듯 속도를 올린다. 상당히 균일한 힘의 분출이 놀랍다. 회전수에 따라 토크가 변하는 세팅이 아니라, 일정한 수준의 토크를 계속 유지하며 회전수를 올리는 감각이다. 그래서 회전수에 따른 힘의 팽창이 아주 균일하게 느껴진다. 엔진의 한계 회전수는 7,500rpm. 터보 엔진임에도 기존과 같은 고회전 세팅을 적용한 것이 반갑다. 회전수를 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짜릿함을 포기하기 싫은 이들에게는 희소식일 것이다. 물론 7,500rpm을 향할 때의 감각만은 다르지만. 7,500rpm까지 힘을 줄이지 않고 몰아붙이는 것은 또 다른 쾌감이다.


슬슬 유리창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딱 맞게도 톨게이트가 보이기에 천천히 속도를 낮춰 지붕을 닫았다. 시속 50km 이하에서 지붕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것의 이점을 실감했다. 지붕을 닫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거세게 쏟아졌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달렸다. 승차감이 아주 편안한 것이 인상적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스포츠카 기준이지만. 차체를 고치고 서스펜션의 세팅을 바꾼 덕분이다. 스태빌라이저의 강성과 서스펜션의 스프링 레이트를 높여 차체의 기울임을 최대한 줄였다. 또한 리어 서브프레임을 강화해 측면 강성을 높였다. 코너링 성능과 안락함 모두 잡는 세팅이다. 또한 액티브 서스펜션의 댐핑이 아주 뛰어났다. 노멀 모드에서는 충격을 부드럽게 삼키며 달리다가도, 스포츠 모드에서는 노면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게 도로를 눌러댄다. 포르쉐를 산다면 무조건 더하고 싶은 장비다.
 

오래도록 고속도로를 달린 끝에 공군 공항에 도착했다. 준비된 특별 프로그램은 슬라럼, 차선 변경, 직선 가속, 브레이크였다. 마음껏 달려보라는 구성이었지만, 비가 멈추기는커녕 폭우로 바뀐 탓에 속도를 줄여야 했다. 그래도 아쉽지 않았다. 718 박스터는 코너링을 위한 차니까. 한계 영역의 코너링 성능을 슬쩍 들여다보기에는 빗길이 오히려 달갑다.


빗길의 슬라럼이라지만 718 박스터는 조금도 균형 감각을 잃지 않았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방향을 바꿨다. 그래서 스티어링 휠의 다이얼 스위치를 돌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 플러스로 바꿨다. 좀 더 적극적으로 뒷바퀴를 미끄러트리며 달릴 수 있는 모드다. 속도를 높여 다시 슬라럼 섹션에 진입했다. 드디어 차체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코너링 중 어설프게 가속페달을 밟아 몰아칠 때면 약간 언더스티어가 나다가도 금세 빠르게 차체제어시스템이 개입해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 나간다. 박스터는 미드십 로드스터. 뒷바퀴를 굴린다고 오버스티어만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앞바퀴에 하중을 몰아주지 않거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에서 거세게 가속페달만 밟다가는 언더스티어가 날 수 있다.


뒷바퀴를 미끄러트리며 멋지게 코너링을 하고 싶다면 방향을 제대로 잡고 힘을 실어야 한다. 이번에는 제대로 뒷바퀴를 미끄러트리며 달릴 수 있었다. 원하는 방향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가듯 움직이는 718 박스터 S.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 움직임은 여전했다. 아니. 좀 더 세련되게 바뀌었다. 연속으로 좌우를 향해 몰아쳐도 빠르게 방향을 바꾸는 몸놀림 또한 마찬가지. 운전자의 부족한 점을 정확히 채우면서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해주는 최고의 차 중 하나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 구름이 걷히더니 해가 떴다. 다시 지붕을 열고 길을 떠났다. 돌아가는 길의 여정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휘감는 도로. 돌아갈 때는 박스터 S 대신 박스터를 탔다. 박스터 S가 강력한 느낌을 계속 어필하는 데 비해, 박스터는 다루기 쉬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50마력의 차이만이 아닌 전체적인 지향점의 차이일 것이다. 구불대는 산길에서 자유롭게 달렸다. 직선 구간이 펼쳐질 때면 부드럽게 가속하고, 코너를 만나면 속도를 줄여 스티어링 휠을 휘감길 반복하면서 재미를 찾는다. 단순한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반응의 묘미에 빠져 수도 없이 이를 반복했다. 머릿속에 그리던 궤적을 따라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 운전의 진짜 재미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니까. 자동차 경주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종종 만나는 오래된 마을은 옛 레이스를 떠올리게 했다. 햇살이 내려앉은 언덕의 돌담길을 따라 올라갈 때면 타르가 플로리오를 상상했다.


하지만 마음속 한 켠에는 자연흡기 엔진에 대한 미련이 약간 남았다. 좋은 추억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자연흡기 엔진만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감성은 분명 있으니까. 그래서 718 박스터의 개발자들에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 718 박스터가 최고의 차인 건 맞아. 하지만 포르쉐의 상징이라 생각하는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이 사라졌다는 것이 못내 아쉬워. 하지만 여전히 이 차는 포르쉐답더라고. 도대체 너희가 생각하는 포르쉐 DNA는 뭐야?”
 

“포르쉐의 DNA라… 두 가지가 있지. 선대 모델부터 내려온 아름다운 스타일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게 중요해. 포르쉐는 아름다워야 하잖아. 그리고 뉘르부르그링 노르드슈라이페 랩타임이야. 언제나 신형 모델은 기존 모델의 벽을 뛰어넘어야 해. 계속 자기 자신에게 도전하고, 계속 빨라진다는 것. 그것이 포르쉐 DNA야”


포르쉐 DNA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듣고 718 박스터를 완전히 인정하기로 했다. 사람도, 차도 시간이 갈수록 변한다. 하지만 본질이란 그대로 남아 있기에 우린 변화를 인정하는 것일 테다. 변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 테니. 그런 생각으로 새로운 터보 엔진을 받아들이려 한다. 포르쉐는 718 박스터로 새로운 스포츠카의 시대를 제시했다. 토크를 만끽하며 달리는 ‘토크 스포츠’랄까. 정말 능률적이고, 아주 빠르고, 반응성도 뛰어난 엔진이니까. 718이라는 이름을 더한 박스터는 여전히 운전이 즐겁고, 누구나 쉽게 몰 수 있을 만큼 편하지만, 실력 좋은 운전자의 손에 맡기면 진짜 무기가 되는 차다. 이것이 바로 변치 않는 박스터의 본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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