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글로리데이 - 한국GM 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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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글로리데이 - 한국GM 다마스
  • 신지혜
  • 승인 2016.06.0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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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끊임없는 잔소리와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결국 재수를 선택하게 된 지공, 할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살다가 얼른 군대에 다녀오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입영 신청을 해버린 상우, 소질도 재능도 없는 야구로 간신히 대학에 입학한 두만 그리고 형의 카센터를 도우며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딘 용비. 눈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지만 아직 채 무르익지 않은 청춘이라는 시간이 있기에 네 친구는 현실이 어떻든 상황이 어떻든 즐거울 수 있고 희망이라는 걸 품어볼 수 있다. 절친이 군대를 간다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고… 하여, 이 네 친구는 짧은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상우가 포항에서 입대를 해야 하므로 목적지는 포항. 형의 카센터에서 차를 빼내올 수 있으므로 용비는 차를 끌고 나왔고 엄마의 감시를 피해 창문으로 도망쳐 나온 지공과 아빠가 코치로 있는 대학 야구팀에서 잘하지도 못하는 야구연습을 하며 좌절하고 있던 두만까지 네 친구는 청춘의 싱그러운 기운을 내뿜으며 포항으로 내달린다. 하지만 그 들뜨고 즐겁고 활기찬 친구들의 시간은 한 여자를 도와주는 것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휘청대며 꼬여버린다.
 

이 젊다 못해 어린 친구들은 진심으로 그 여자를 도우려고 했을 뿐이다. 비겁하지 않았던 불의하지 않았던 용비와 친구들이었지만 상황은 오히려 그들을 조금씩 구석으로 내몰아 간다. 여자는 정직하지 못했고 진실하지 못했으며 상황을 좋지 않게 이용해 버렸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말이다. 경찰들은 신중하지 못했고 신뢰하지 못했으며 상황을 엉망으로 비틀어버렸다. 단지 이 아이들이 그렇고 그런 아이들이라는 편견으로 말이다. 보호자들은 또한 그들 나름대로 행동한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 아니 어쩌면 아이가 잘못될 경우 가족에게 다가올 파장으로부터 얼른 탈출하기 위해서 말이다.

스무 살의 친구들은 진실만을 말했고 사실만을 말했다. 있는 그대로 같은 말을 했지만 조서를 꾸미는 어른들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다. 이미 머릿속에 꾸며진 조서에 맞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단어와 문장만을 남길 뿐이다. 보호자들은 처음엔 서로에 대해 불신과 대립각을 세우지만 점차 빠르게 서로를 탐색하고 누구와 손을 잡고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으면 사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 결론을 내린다.
 

그 상황 속에서 네 청춘의 글로리데이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버리고 친구들 사이에도 균열이 생긴다. 이 균열은 또한 금세 강력해지고 커져버린다. 돌 하나가 연못에 던져져 일으킨 파장은 적당한 시점에서 멈추지 않고 점점 더 큰 파문을 불러오고 그 파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네 친구를 태우고 열심히 달린 차는 한국 GM 다마스. 1991년에 경상용차로 출시되어 많은 사람들의 발이 되어준 차종이다. 이 다마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형의 카센터에서 끌고 나온 차 다마스. 용비의 형이 운영하는 카센터가 그리 크거나 이윤을 많이 남기지 못하는 곳일 것이라는 것, 이제는 낡디낡아 고속도로를 달려주기만 해도 고마울 정도이니 네 친구의 에너지 가득한 행동을 다 담아주기에는 부족할 것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마스에 몸을 싣고 환호를 지르며 즐거워하는 네 친구는 글자 그대로 청춘이라는 것. 그리고 덧붙여서 무언가 일이 생겨버렸을 때 ‘다마스’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관객들은 어렴풋이 알아버린다.
 

아니, 다마스는 바로 그런 힌트를 영화 초반부터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속도를 낼 수 없는, 이제는 여기저기 삐걱거리며 덜컹거리는, 이제는 젊디젊은 어린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낡아버린 다마스. 네 친구들이 겪게 되는 사건과 그 이후의 파장은 그래서 예견된 것인 듯 아프게 아리게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스무 살. 얼마나 풋풋하고 싱그럽고 아름다운 단어인가. 그들의 망가져버린 글로리데이는 그래서 더욱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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