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동차를 잇는 감성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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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동차를 잇는 감성공학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6.03.30 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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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동차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당신은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가 달린 최신형 메르세데스-벤츠의 운전대를 처음 잡았다. 그런데 앞 유리에 HUD 이미지가 비치지 않는다. HUD가 꺼져 있는 게 분명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가장 먼저 ‘커맨드’ 시스템의 차량 설정 메뉴를 확인해볼 것이다. 그런데 메뉴를 샅샅이 뒤져봐도 HUD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다음에는 계기판 메뉴를 확인해본다. ‘설정’에 들어가니 HUD 항목이 있다. 유레카! 그런데 여기서는 HUD의 내용, 위치, 밝기만 설정할 수 있다. 혹시나 하고 선택해봤더니 먼저 HUD를 활성화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이런 문제에 봉착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실은 시스템에 원인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지 심리학자이자 사용자 경험(UX) 디자인 분야의 개척자이기도 한 도널드 노먼 교수는 그의 저서 『디자인과 인간심리』에서 “잘못 설계되거나 디자인된 물건을 사용할 때 실수를 범하게 된다”고 했다. 
 

1988년 출시한 닛산의 소형 MPV ‘프레리’는 뒷문이 슬라이딩 방식이었는데, 연료 주입구를 열면 뒷문을 열 수 없었다. 반대로, 뒷문을 열면 주유구를 열지 못했다. 자동차 개발과정이 고도화되면서 이런 황당한 사례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의 기능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기능은 크게 ▲인체 치수(키·몸무게 등) ▲신체적 기능(힘·자세 등) ▲감각적 기능(시각, 청각, 촉각 등) ▲인지적 기능(기억력, 주의력, 정보처리능력 등)으로 나뉜다. 이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 인간공학 또는 휴먼 머신 인터페이스(HMI)의 역할이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로 오래전이다. 미국의 산업디자이너 헨리 드레이퍼스는 인간의 신체적인 특성을 과학적으로 고려해 형태에 반영하는 이른바 ‘인체공학적 디자인’의 선구자다. 그는 저서 『인간을 위한 디자인』에서 “제품과 사용자가 만나는 순간 충돌한다면 디자이너는 실패한 것”이라고 했다. 
 

운전석은 자동차에서 HMI가 가장 집중적으로 적용되는 곳이다. 먼저 인종·성별·연령 등을 반영한 인체 치수를 활용해 표준 운전 자세를 정하는데, 이때 단순히 평균값만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항목에 따라 가장 작은 사람 또는 가장 큰 사람에 해당하는 치수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운전석의 너비는 몸집이 큰 사람의 치수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렇게 결정한 표준 운전 자세를 바탕으로, 각종 조작 장치의 위치와 크기 등을 결정한다. 인간의 힘과 인체 관절의 동작 범위와 함께 정서적인 측면도 고려해 구체적으로 설계한다. 이때 사용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자연스러운 대응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간적인 유사성을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창문이 달린 도어에 윈도 스위치를 달아두는 것처럼 조작 스위치를 조작 대상과 가깝게 배치하거나, 스위치를 위로 당기면 창문이 올라가고 누르면 내려가게 만드는 것이 모두 공간적인 유사성을 이용한 예다. 
 

윈도 스위치를 도어에 두는 것은 이제 상식이지만,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센터콘솔에 윈도 스위치가 달린 차들도 제법 많았다. 창문을 열려고 자연스럽게 도어로 손을 뻗지만, 스위치는 반대쪽에 있는 것. 지금도 페라리 등 일부 차종은 센터콘솔에 윈도 스위치를 두고 있다. 

자동변속기 레버의 수동 모드 방식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대부분의 메이커는 시프트업(+)을 위(자동차 앞쪽 방향), 시프트다운(-)을 아래로 설정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위가 플러스, 아래가 마이너스인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관성의 영향으로 가·감속에 따라 몸이 앞뒤로 쏠리게 된다는 점이다. 몸이 뒤로 쏠리는 상황에서 기어 레버를 앞쪽으로 밀어야 하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빚어진다. 그래서 BMW/미니와 재규어 등 일부 메이커는 반대로 시프트업을 아래, 시프트다운을 위에 두고 있다. 신체의 움직임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포르쉐도 신형 911과 718에서는 이 방식으로 바꿨다. 
 

전동식 시트 조절 스위치는 직설적인 대응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등받이를 조절하려면 등받이 모양을 한 스위치를 조작하면 된다. 벤츠나 현대, 기아차처럼 도어에 스위치를 다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공간적인 유사성보다 가시성(visibility)을 중시했다는 뜻이다. 

오늘날 자동차에는 수많은 기능이 있기 때문에, 만약 1:1 대응으로 버튼을 달았다면 자동차 실내는 항성 간 우주선 콕핏처럼 복잡해졌을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장치가 차량용 통합 인포테인먼트(IVI) 시스템이다. 앞서 말한 벤츠의 커맨드나 BMW ‘iDrive’ 등이 대표적인 예다. 

최신 iDrive에는 기존 음성, 터치, 필기 인식에다 새로 동작 인식 기능까지 추가됐다. 그런데 현재 가장 진보된 IVI임에도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주소를 정확히 입력하는 것은 아직도 까다로운 일이다. 
 

그래도 15년 전 iDrive가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는 훨씬 사용하기 쉬워진 것이다. 다이얼 하나가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던 그땐, 운전하면서 라디오 주파수를 바꾸는 것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최근에는 사양이나 기술에 큰 변별력이 없어지면서 감성적인 부분이 중요시되고 있다. 인간의 감수성을 기계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은 1970년대에 일본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됐다. 히로시마대학교 나가마치 미츠오 교수는 이를 감성공학이라는 용어로 정리하면서, ‘이미지나 느낌을 물리적인 요소로 해석해 디자인에 반영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감성공학을 처음 도입한 자동차 메이커는 마쓰다였다. 야마모토 켄이치 당시 기술연구소장(훗날 사장에 오른다)은 요코하마 기술연구소 내에 감성연구실을 설치했고, 이곳을 모태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자동차 MX-5가 탄생했다. MX-5는 세계 최초로 감성공학을 적용한 자동차 사례로 꼽힌다. 
 

현 폭스바겐 그룹 CEO인 마티아스 뮐러는 포르쉐 CEO로 재직하던 지난 2011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감성이 없는 차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오감을 사로잡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세심한 색상·소재·마감(CMF)은 기본이고, 광도계와 측광기 등을 사용해 수많은 실내 부품들의 색조와 반사도를 일정한 값으로 통일하는 것도 이제는 업계 상식이다. 

버튼, 스위치, 다이얼 등 각종 조작 장치는 압력 반응 측정기나 스위치감(感) 시험기, 답력계, 토크 시험기 등 각종 계측기를 통해 스위치 스트로크나 클릭 점을 설정하거나 작동 특성을 세심하게 결정한다. 메이커마다 정량화된 고유의 작동감(感)을 가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리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소비자는 문 닫는 소리에 주목하진 않지만,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창문 떨림, 금속성 소음이 들려선 안 되고, 닫히는 순간 차체의 견고함이 느껴지는 듬직한 소리를 내야 한다. 토요타는 최신형 4세대 프리우스를 의인화하면서 문 닫는 소리를 캐릭터로 만들기도 했다. 

노먼 교수는 저서 『감성 디자인』에서 “세차를 하고 반짝반짝 광을 냈을 때 운전이 더 잘되는 것 같지 않은가?”라며, 심미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 사용성 측면에서도 만족감을 준다고 주장했다. 우리 속담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와도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아참, 벤츠의 HUD 버튼은 대시보드 왼편, 헤드램프 스위치 위쪽에 있다. 온/오프 버튼이 따로 있고, 설정은 계기판 화면에서만 바꿀 수 있으며, 커맨드 시스템에는 HUD 항목이 없는 것이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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