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소설 속의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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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소설 속의 자동차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6.03.1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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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한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자동차들은 소품으로의 역할과 동시에, 모델이 가진 특성으로 소설 속 사건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도구로 기능한다. 그의 작품인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통해 자동차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을 엿본다. 

 

“1Q84” : 토요타 크라운 로얄살롱 
1984년에서 1Q84년으로 가는 도구이자 복선
 

1Q84의 시작점은 일본 도쿄의 수도 고속도로에 멈춰 선 개인택시 속. 차종은 토요타 크라운 로얄살롱이다. 보통의 차는 아니다. 등장인물인 아오마메를 1984년에서 1Q84년(일본어로 숫자 9는 알파벳 Q와 발음이 같다)으로 나르는 매개체인데다, 당시 시대를 고려한다면 택시로 좀처럼 볼 수 없을 고급 모델이기 때문이다.
 

크라운은 토요타를 대표하는 고급차 중 하나다. 1955년 등장해 지금의 14세대까지 꾸준히 인기를 끌어왔다. 1Q84에는 1983년 출시된 7세대 모델이 등장했다. 로얄살롱은 7세대 모델부터 추가된 최고급 등급. 크라운의 크기를 늘리고 온갖 편의장비를 달아 최상위 모델 역할을 했다. 국산차와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굳이 따지자면 1세대 현대 그랜저 V6 3.0L를 들 수 있다. 당시 누렸던 카리스마가 비슷해서다. 지금은 상위 모델에게 자리를 내준 것도 같다. 

하루키가 등장인물을 통해 내리는 평가를 살펴보자. “실내는 고급스럽고, 시트 쿠션은 뛰어나다. 바깥 소음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음향장비의 음질이 뛰어나다. 무엇보다 정말 조용하다. 방음 장치를 한 스튜디오 안에 있는 것 같다. 차음에 관해서라면 토요타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술을 갖고 있다”란 평을 남긴 것이 흥미롭다. 조용한 실내를 중시하는 토요타의 차 만드는 성격을 꿰뚫고 있어서다.
 

그리고 토요타 크라운 로얄살롱의 편의 장비 중 하나가 고급 오디오이기도 했다.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역시 이 소설에서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 그 외에도 듀얼 에어컨, 6개 스피커, 오토매틱 헤드램프, 전동 스티어링 조정 버튼, 메모리 기능 전동 시트, 네비컴 등 다양한 편의장비를 갖췄다. 뒷좌석 장비 구성이 재미있는데. 암레스트에 에어컨과 오디오 조작 버튼을 달아놓고도, 양쪽 좌석에 카세트 오디오를 하나씩 달았다. 헤드폰 연결해서 원하는 음악 들으라는 이유에서다. 

혹시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 1Q84의 택시를 경험하고 싶다면 비슷한 대안이 있다. 바로 일본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택시다. 현재 일본의 택시는 1995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토요타 컴포트(크라운 컴포트)이기 때문. 실용성 및 낮은 가격을 위해 실내를 싹 플라스틱으로 바꾼 탓에 고급스러운 맛은 없고, 오래된 설계는 요즘 차에 비할 것 아니지만, 고풍스러운 감각을 내세우는 디자인 앞에 마음이 누그러진다.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랄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렉서스 
소설 속 만남의 장소이자, 실제로 자리하는 장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하: 순례의 해)에서, 쓰쿠루는 16년 만에 옛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그중 한 명이었던 아오(오우미 요시오)는 나고야 시내의 렉서스 딜러 세일즈 부문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때문에 순례의 해에서는 렉서스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한다. “렉서스는 신뢰할 만한 최고의 차라고 하지”-사라와의 대화 중. 
 

다양한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 중 왜 렉서스를 선택했을까? 먼저 지리적 이유를 손꼽을 수 있다. 쓰쿠루와 친구들의 고향은 나고야다. 나고야는 토요타와 렉서스의 본고장. 이들의 공장이 있는 지역이다. 협력업체 또한 대다수 나고야에 자리하고 있다. 국내와 비교하자면 현대차와 울산시의 관계를 떠올리면 쉽다. 

하루키는 순례의 해에서 토요타와 렉서스에 대해 꽤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련된 쇼룸의 분위기, 예의 바른 리셉션의 응대 및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 소비자층을 렉서스 오너로 바꾸는 것이 목표라는 것을 상세히 소개했다. 화자의 말을 빌려 이야기한 렉서스는 다음과 같다. “나 역시 줄곧 렉서스를 탔어. 아주 좋은 차야. 조용하고 고장도 없고. 시험 코스를 운전했을 때 시속 250km나 나왔지만 핸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어. 브레이크도 터프하고, 대단한 놈이야…(후략)”  
 

그렇다면 아오의 차는 무엇일까? 렉서스가 일본 판매를 시작한 것은 2005년이다. IS 2세대와 GS 3세대가 출시된 해. 이 둘 중 하나를 골랐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모델명은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대신 아오가 일하는 렉서스 쇼룸을 찾아보기로 했다. 몇 가지 힌트가 있는데, 나고야 성에 가까운 한적한 장소에 있으며,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다.  

나고야 성 근처의 렉서스 딜러를 살펴보니 답은 쉽게 나왔다. 딜러명은 렉서스 다카오카다. 다카오카 지하철역 4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앞에 있는 곳. 유리로 전체를 감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렇다면 쓰쿠루와 아오가 만난 스타벅스는 어디일까? 스타벅스 사쿠라도리 오츠점이다. 렉서스 다카오카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사쿠라거리와 오츠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나고야에는 토요타 박물관, 토요타 공장, 토요타 에코 타운 등 자동차 마니아라면 보고 배울 수 있는 다양한 명소가 있다. 만일 나고야에 갈 일이 있다면, 『순례의 해』를 들고 떠나는 것은 어떨까? 렉서스 다카오카에 가서 소설 속 대사인 “오우미 씨를 찾아왔습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응대할지 궁금해진다. 변함없이 친절할까? 분명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텐데 말이다. 살짝 아리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한 잔 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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