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내부자들 - GMC 사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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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내부자들 - GMC 사바나
  • 신지혜
  • 승인 2016.03.0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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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 안상구의 마음을 들어준 차, GMC 사바나 
 

그들은 각자 마음에 품은 것이 있다. 그것을 꿈이라 불러도 야망이라 불러도 상관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욕심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큰 것을 손에 쥐려는, 모든 것을 손아귀에 움켜쥐려는 그것은 욕심일 뿐이다. 그 욕심들이 부딪히며 갈라서기도 하고 야합하기도 하고 협박을 하기도 하며 슬슬 구슬리기도 하는 것이다. 

정치깡패 안상구. 권력의 언저리에서 힘의 맛을 짜릿하게 맛보며 조금 더 큰 것을 얻고 싶어 하는 그는 이강희의 말대로 여우같은 곰이다. 자신은 여우인 줄 알지만 그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그보다 더 큰 판을 짜는 이강희의 눈에는 그저 곰일 수밖에 없는 그. 
 

그 어떤 연줄도 없어, 성과는 내지만 승진에서 번번이 밀리는 검사 우장훈.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이를 악물고 달려가지만 자기도 무언가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

유력한 일간지의 주간 이강희는 판을 짠다. 손에 펜 하나를 쥐고서, 알 수 없는 가냘픈 미소와 눈빛을 띠고서 그 자신, 크게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결국 그는 실세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라운드에 서 있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이 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내부자들, 이라는 단어가 주는 경직된 위험과 초조와 번민과 방어본능이 이 영화에서 이리저리 슬슬 풀어지며 날카로운 단검처럼 관객들의 마음을 찔러 들어온다. 권력의 핵심, 권력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더 추악하고 두렵게 그려진다.

권력과 결탁해 스스로 큰 권력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재벌은 미래자동차의 회장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는 자동차가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차는 GMC 사바나다. 미래자동차 회장의 자택에서 은밀하고 충격적으로 벌어지는 권력의 핵심들의 회동에 필요한 여자들을 태우고 안상구가 몰던 차, GMC 사바나.
 

그 차 안에서 안상구는 이은하의 ‘봄비’를 부른다. 촐촐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밴의 뒷좌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여자들은 괘념치 않은 채 안상구는 노래를 부른다. 그의 노래는 꽤 그럴 듯하고 그 노래는 짧지 않게 이어지는데 GMC 사바나라는 공간이 그 노래를 은근히 부각시켜준다. 탁 트인 공간에서 그 노래가 불릴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안상구는 정치깡패(또는 그 스스로가 생각하기엔 권력의 언저리에 있는 준핵심 인물)이므로 터진 공간에서 그가 한가하게 노래를 부를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안상구는 그 노래를 술자리든 어디서든 많이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차 안에서 마치 아무도 없는 듯 흘러나오는 가락에 맞추어 무심하게 진지하게 부르는 ‘봄비’는 왠지 마음을 기울여 듣게 된다. GMC 사바나는 바로 그 공간을, 그 분위기를 만들어주며 은근히 안상구를 감싸준다. 
 

그의 전사가 어떤지 우리는 모른다. 어쩌다 깡패가 되었는지, 어쩌다 여우같은 곰이 되어 권력의 맛을 보려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사바나도 알지 못한다. 그저 어느 때부터 안상구가 운전대를 잡으면 그와 동행하였고 그가 노래를 부르면 들어주었고 그가 누군가를 태우면 함께 동행했을 것이다.

GMC 사바나는 그렇게 안상구와 함께하는 순간부터 그의 행동에 시비를 걸지 않고 그저 그를 가만히 지켜보아 주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상구는 그 차 안에서만큼은 아무런 경계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계략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그 차 안에서 부르는 안상구의 노래가 그렇게 애잔하게 들린 것은 아니었을까.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내부자들>은 날카롭고 세밀하게 현실에 메스를 들이댄다. 작가가 미처 완결하지 못한 이야기. 그것을 영화는 영화로 이야기한다. 

글 · 신지혜 (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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