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사다, 페라리 캘리포니아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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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사다, 페라리 캘리포니아 T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6.03.0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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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달려온 나에게 아주 특별한 새해 선물을 주기로 했다. 페라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구입을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페라리는 주문제작 방식이기 때문에 재고의 개념이 없다. 재고 리스트에서 내게 맞는 차를 선택하는 게 안 된다는 뜻이다. 페라리 신차를 구입하려면 따로 주문을 넣어야 한다. 

고민 끝에 캘리포니아 T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부담스럽지 않게 탈 수 있고 가끔 오픈 에어링도 즐길 수 있는 고상한 페라리 GT를 원해서다’, 라는 건 거짓말이고, 사실은 ‘WAF’가 높기 때문이다. ‘wife acceptance factor’, 즉 아내가 허락할 확률이 더 크다는 말. 
 

아무래도 새빨간 2인승 페라리보다는 (비록 사람이 앉을 자리는 못되어도) 뒷자리 있는 차가 아내에게 훨씬 설득력 있지 않은가. 게다가 기본가격이 2억8천만원대로 페라리에서 가장 저렴한(?) 브랜드 입문 모델이기도 하니, 설명이 쉬워진다. 비록 리어 시트에 ISOFIX는 없지만,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주문을 위해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전시장을 방문했다. 국내에 하나뿐인 페라리 전시장으로, 페라리를 주문하려면 전국 어디에서든 이곳으로 와야 한다. 주소에 90년대 V12 GT카를 떠올리는 숫자 ‘456’이 붙었는데, 아마 우연일 것이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전시장 안쪽에 마련된 ‘컨피규레이터 룸’(Configurator Room)으로 갔다. 이 방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미 최소 한 차례 이상 전시장을 방문해 상담과 시승을 마쳤고, 구입할 모델과 대략적인 선택품목도 정해뒀다는 뜻이다. 보통은 계약금도 지불한 상태다. 즉 이탈리아 본사에 주문을 넣기 전에 선택품목을 최종적으로 조율하고 결정하는 자리인 것이다. 

선택품목을 고르는 것은 페라리를 구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과정이다. 매우 다양한 선택품목을 제공하지만, 테일러 메이드(Tailor-made·맞춤 제작)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리스트에 없는 것도 만들어준다. 사실상 선택의 폭이 무한대인 셈이다. 
 

담당 세일즈 이그제큐티브(판매사원)와 함께 벽면에 걸린 화면을 보며 ‘나만의 페라리’를 만들어간다. 선택한 요소가 3차원 컴퓨터그래픽 모델에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실내외를 360° 돌려보며 검토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페라리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와 같지만, 그래픽 품질이 더 좋고 선택품목의 세밀함에도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웹사이트의 컨피규레이터도 예습하기엔 아주 유용하다. 고품질 그래픽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가상의 그림. 이해를 돕기 위해 방 안에는 시트, 가죽, 페인트 등 다양한 샘플들이 구비되어 있다. 
 

가장 먼저 외장 색상을 고르게 된다. 크게 솔리드, 메탈릭, 히스토리컬, 스페셜 등 네 가지 테마로 나뉜다. 솔리드와 메탈릭 페인트는 무료지만, 히스토리컬과 스페셜 페인트는 추가 비용이 든다. 색상은 총 28가지. 원하는 색상이 없다면 따로 주문할 수도 있다. 이때는 아주 값비싼 조색 비용을 받는다. 

고민 없이 메탈릭 페인트인 그리지오 잉그리드(Grigio Ingrid)를 골랐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이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선물하려고 특별 주문한 원오프 페라리에서 유래한 색상. ‘잉그리드 회색’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론 연한 금색 빛이다. 
 

페라리의 상징인 빨간색(Rosso Corsa)이나 청아한 파란색(Blu California)도 탐났지만, 캘리포니아 T는 우아하고 고급스런 느낌으로 타고 싶다. 하드톱 전체를 다른 색상으로 칠하는 투톤 보디 페인팅을 선택할 수도 있다. 검정색(Nero Pastello)으로 칠해 멋을 부려본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벌써 2천만원이 더해졌다. 

휠은 19인치와 20인치 두 가지가 있다. 의외로 선택의 폭이 좁다. 대신 유광, 무광, 크롬, 다이아몬드 커팅 등 다양한 마감을 고를 수 있다. 원하는 색상으로 휠을 칠하거나, 휠 가장자리에 포인트 컬러를 넣는 등 스페셜 오더도 가능하다. 기본 휠은 볼품이 없어서 20인치 단조 휠을 골랐다. 재질은 표준 알루미늄을 선택했다. 
 

다음은 브레이크 캘리퍼 색상을 고를 차례. 일반적으로 차를 구입할 때 캘리퍼 색상을 무슨 색으로 칠할지 고민할 일은 없지만, 페라리에는 캘리퍼 색상이 9가지나 된다. 오랜 고민 끝에 노란색(Giallo Modena)을 골랐다. 프런트 펜더에 붙은 ‘스쿠데리아 페라리’ 실드와 휠 캡이 노란색이니 색상을 통일하는 게 어떻겠냐는 세일즈 이그제큐티브의 조언을 따랐다. 

선택품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세일즈 이그제큐티브의 역할은 판매원보다는 조언자 역할에 가깝게 느껴진다.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안 설 때는 전문가인 그들의 안목을 믿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상 용도로 자주 탈 차이기 때문에 보다 나은 승차감을 위해 ‘마그네라이드 듀얼 모드 서스펜션’(자기유도식 어댑티브 댐퍼)을 넣었다. 특이한 점은, 방대한 옵션 리스트 가운데 성능에 관한 것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퍼포먼스에 있어선 더 이상 손댈 곳 없는 완전체라는 자신감의 표현일까. 

‘스포츠 배기 시스템’이 선택품목에 있지만, 머플러 팁만 티타늄으로 바꿔주는 것이어서 엄밀히 말해 배기 시스템은 아니다. 변속기는 자동 7단 듀얼클러치, 브레이크는 카본세라믹이 기본이다. 
 

추가 항목에서 라디에이터 그릴 크롬 가로줄(격자로도 선택할 수 있다), 후방 카메라, 눈부심 방지 미러, 트렁크에 붙는 자그마한 이탈리아 국기 배지 등을 선택하고 외장 선택을 마쳤다. 여기까지 추가된 비용은 총 4천만원. 

실내에 적용되는 선택품목은 외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가죽 색상, 시트 디자인, 트림 소재는 물론, 심지어 스티치 두께도 고를 수 있다. 캘리포니아 T의 실내는 기본이 투톤 색상. 따라서 실내 전체를 같은 색상으로 통일하고 싶다면, 거꾸로 ‘듀얼 컬러’를 선택해 색을 맞춰줘야 한다. 
 

가죽 재질은 한 가지다. 이탈리아 최고급 가죽 브랜드 ‘폴트로나 프라우’ 제품. 색상은 총 15가지로 듀얼 컬러를 선택하면 225가지 조합이 나올 수 있다. 카탈로그에 없는 색상이나 소재로도 주문이 가능한데, 당연히 비용이 따른다. 

화면으로는 가죽 느낌이 잘 전해지지 않아서 가죽 샘플을 보고 만지며 골랐다. 그 이름처럼 정말 가죽다운 색상인 황갈색(Cuoio·이탈리아어로 가죽이란 뜻)으로 선택했다. 여기에 베이지색(Beige Chiaro) 스티치와 파이핑을 넣었다. 
 

검정색인 대시보드 하단부와 도어 트림 중앙을 황갈색으로 바꾸고, 알루미늄 페달을 선택했다. 8가지 안전벨트 색상에 대한 고민까지 마치고 나니, 실내는 내가 원한 고급스런 분위기로 완성됐다. 그래도 페라리인데, 라는 아쉬운 마음에 계기판 중앙의 엔진회전계 바탕은 강렬한 빨강색으로 바꿨다. 

총액을 확인해보니 선택품목 가격이 BMW 520d 값이다. 차의 총 가격은 3억4천만원이 조금 넘었다. 너무 욕심을 부렸나보다. 이제 예산에 맞춰 다시 빼기 시작할 차례. 무엇을 뺄지도 고민이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옵션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걸 넣을 걸 그랬나, 이건 뺄 걸 그랬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주문을 넣은 뒤 선택품목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은 약 2주 정도다. 본사에서 주문이 확정되면 옵션 수정은 불가능하다. 

차가 만들어지는 동안 미리 등록한 이메일로 총 3차례 사진을 받아보게 된다. 공장에서 내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사진이다. 또한, 내가 주문한 사양을 그대로 반영해 실차와 똑같이 만든 1:43 크기의 정밀모형도 받는다. 
 

본사에 주문을 넣고 제작이 완료되기까지는 최소 6개월이 걸린다. 일단 제작이 끝나면 금방 만나볼 수 있다. 컨테이너 선박에 실려 오는 일반 수입차와 달리, 페라리는 모두 항공편으로 모셔오기 때문이다. 

6년 같은 6개월이 지나고 나면, 마침내 화면을 보며 만들었던 페라리의 실물과 마주하게 된다. 전시장은 나를 위한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바뀌고, 이탈리아산 명마(名馬)는 빨간색 옷을 곱게 차려입고 주인을 기다린다. 이날만큼은 수백 수천 번 지나갔던 집으로 가는 길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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