듬직한 패밀리 SUV, 메르세데스-벤츠 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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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직한 패밀리 SUV, 메르세데스-벤츠 GLE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6.02.2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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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M클래스였던 메르세데스-벤츠의 미드사이즈 SUV가 GLE클래스로 이름을 바꾸고 눈길에서 놀라운 안정성을 보여주었다

시승차를 받기로 한 날, 서울에는 오후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평소 같으면 하얀 눈 덮어쓴 밖을 보며 한숨이 늘어졌겠지만, 이날은 걱정 없었다. 듬직한 네바퀴굴림 SUV가 퇴근길에 내 발이 되어줄 것이었으니까. 

꽁무니에 ‘GLE’라는 새로운 이름표가 붙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차는 아니고 3세대 M클래스(W166)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새로운 명명법에 따라 기존 M클래스는 GLE클래스가 됐다. 새 규칙은 간단하다. SUV 모델명은 모두 ‘GL’로 시작하고, 기반 모델이나 해당 클래스를 뜻하는 알파벳 A, C, E, S가 뒤에 붙는다. 즉 GLE는 ‘E클래스급 SUV’라는 뜻이다. 
 

GLE클래스가 속한 프리미엄 미드사이즈 SUV 시장은 경쟁이 극심하다. GLE클래스와 함께 원년 멤버로 3세대까지 진화한 BMW X5와 렉서스 RX가 있고, 후발주자로 현행 2세대인 포르쉐 카이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볼보 XC90, 아우디 Q7 등이 합세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이다. 

외관은 고든 바그너가 새로 정립한 메르세데스-벤츠의 최신 디자인 문법을 적용한 모습. 앞을 살펴보면, 눈매가 또렷해진 헤드램프, 크기가 커지고 돌출된 라디에이터 그릴, 보다 입체적으로 멋을 낸 범퍼 등이 이전 M클래스와 달라진 부분이다. 뒤에서는 테일램프와 범퍼를 손질했다. 
 

실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센터 페시아다. 최근에 나온 메르세데스-벤츠 모델들처럼 태블릿PC를 닮은 고해상도 8인치 스크린을 달았고, 스크린 주변부도 새로 다듬었다. 풍구 디자인을 입체적으로 바꿨고, 센터 페시아 버튼도 세련되게 손질했다. 

필기를 인식하는 터치 컨트롤러가 이전 것을 몰아내고 센터 콘솔에 자리 잡았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최신 버전인 ‘커맨드 온라인’으로 업그레이드됐지만, 유저 인터페이스는 여전히 복잡한 느낌이다. 
 

그밖에 새로운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을 달고, 실내 곳곳에 금속 장식을 추가하는 등 실내 전체에 걸쳐 업데이트를 실시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X5 실내보다 덜 매력적이고, 올해 국내에도 출시될 최신형 XC90이나 Q7에 비해서는 시대에 뒤떨어져 보인다. 

시트는 M클래스 때와 같다. 앞뒤 좌석 모두 쿠션재(材) 조율이 잘 됐다. 적당히 푹신하고 체중이 골고루 분산돼 오래 앉아 있어도 편안하다. 모든 방향의 시야가 좋고, 안 보이는 곳은 ‘능동형 사각지대 어시스트’와 고해상도 360° 카메라 ‘서라운드 뷰’가 커버해준다. 
 

리어 시트는 폴딩 기능 때문에 바닥면과 등받이가 모두 짧은 편이지만,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시승차에는 선택품목인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달려 있었다. 10인치 스크린 2개와 DVD/CD 플레이어로 구성되어 있고, RCA 커넥터를 갖추고 있어서 휴대용 게임기나 비디오카메라 등 외부 기기를 연결할 수도 있다. 

GLE클래스는 국내에 3개 모델로 출시됐다. 4기통 2.1L 디젤 GLE 250d(8천430만원), V6 3.0L 디젤 GLE 350d(9천580만원), V8 5.5L 휘발유 AMG GLE 63(1억5천200만원)이 있다. 557마력을 내뿜는 AMG 모델은 다음에 만나보기로 하고, 이번엔 국내서 주력 모델이 될 350d를 먼저 만났다.

GLE 350d에 들어간 배기량 2,987cc OM642 엔진은 최고출력 258마력, 최대토크 63.2kg.m을 발휘한다. 이전 ML 350 블루텍과 비교해 토크가 아주 약간 오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엔진이며, 출력은 이전과 같다. 여전히 스로틀 반응은 느긋하고, 힘의 배출은 진중하다. 

기술적 하이라이트는 엔진보다 변속기에 있다. ‘9G-트로닉’이라고 하는 새로운 9단 자동변속기는 GLE 350d를 마음을 느긋하게 해주는 편안한 차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다이렉트 시프트’라고 하는 칼럼식 레버인 것은 이전과 같다. 
 

잘게 쪼갠 다단화로 인해 고속으로 순항할 때 엔진회전수가 놀라울 정도로 낮다. 9단을 물고 시속 100km로 달릴 때 불과 1,200rpm을 약간 밑돈다. ML 350 블루텍은 7단 1,800rpm에서 같은 속도를 냈다. GLE 350d는 9단에서 1,800rpm을 유지하면 시속 130km로 달린다. 

국내 제한속도 범위 내에서 항속해보면 거의 모든 영역에서 1,200rpm 안팎을 유지한다. 덕분에 엔진은 시종일관 잔잔한 소리를 낼 뿐이다. 프리미엄 디젤 SUV의 중요한 조건으로 실내 쾌적성과 정숙성을 꼽는다면, GLE 350d는 맨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차다. 
 

변속은 최상급 듀얼클러치 못지않게 대단히 빠르고 매끄럽다. 엔진회전계 바늘이 정신없이 빠르게 오르내릴 뿐, 변속 충격은 ‘0’에 가까워서 언제 변속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최신 하드웨어인 만큼 최종 평가를 내리긴 이르지만, 메르세데스-벤츠가 굉장한 물건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하다. 

변속 제어 또한 만족스럽다. 스로틀에 대한 응답 속도와 상황 판단이 빨라서 더 큰 힘을 필요로 할 때면 머뭇거림 없이 곧장 3~4단 아래로 건너뛴다. 패들시프트 반응속도도 빠르지만, 수동 변속이 재미를 주진 않는다. 단수가 너무 많아서 변속이 번거롭고, 순간적으로 최적의 기어를 선택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서스펜션은 늘어날 때와 줄어들 때가 균일하게 잘 조율됐다. 승차감은 부드럽고, 노면이 어떻든 충격을 날카롭게 전달하는 법이 없다. 상태가 안 좋은 도로에서도 웬만한 충격은 모두 집어삼키며 편안하게 달린다. 

코너에서 2,350kg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핸들링이 좋은 편이다. 다만, 롤과 피치가 큰 편이기 때문에 연속된 코너를 빠른 속도로 달리거나, 차선을 빠르게 바꿔보면 기우뚱거리며 허둥대는 움직임을 보인다. 크기와 몸무게를 감안하면 상식적인 수준이며, 종합적인 보디 컨트롤은 나쁘지 않다. 몸놀림이 산뜻하진 않아도 스티어링 반응은 정확하고 빠르다. 스티어링에 풍부한 느낌이 실려 있진 않지만, 노면 정보를 적당히 전해주고 센터 부근의 스펀지 느낌도 없다.
 

주행 모드는 센터 콘솔에 달린 ‘다이내믹 셀렉트’ 다이얼로 컴포트(표준), 스포트, 인디비주얼, 슬리퍼리, 오프로드 등 다섯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엔진, 변속기, 스티어링, 서스펜션 등의 세팅이 바뀌고, 그 차이는 확연히 느껴진다. 

컴포트 모드에서 한 박자 느리게 반응하던 스로틀은 스포트 모드에서 날이 바짝 선다. 서스펜션은 꽉 조여지고, 변속 제어 또한 공격적으로 바뀌어 감속에 따라 적극적으로 단수를 내리고 회전수도 보상한다. 스포트 모드에 두면 X5보다 스포티하다. 
 

시승 첫날부터 둘째, 셋째 날까지도 눈이 많이 내린 덕분에 트랙션 성능을 충분히 확인해볼 수 있었다. 뒷바퀴굴림 차를 타는 나에게 겨울철 눈만큼 싫은 것도 없다. 윈터타이어를 끼워놨지만 눈 내리는 날에는 가족을 태우기 꺼려진다. 

그런데 GLE 350d의 운전대를 잡고 눈길을 달려보니 모든 것이 너무나 쉽다. 시승차에는 표준사양인 썸머타이어가 끼워져 있었는데, 그저 가속페달을 밟고 있기만 하면 어떤 길이든 올라갔다. 

눈길을 올라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과정에서 불안함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러 전자제어 장치들이 열심히 일을 하는 게 느껴졌지만, 차체가 옆쪽으로 흔들리진 않았다. 눈길 내리막에서 미끄러지고 있을 때조차 마찬가지였다. 
 

눈이 쌓인 완만한 내리막에서 사거리에 정차하기 위해 일찌감치 감속을 시작했다. 그런데 차가 하릴없이 쭉 미끄러졌다. 다행히 앞쪽에 신호 대기 중인 차가 없어서 스티어링 조작은 하지 않고 브레이크만 밟았다. ABS가 굉장한 진동을 내며 안간힘을 썼지만, 속도는 생각만큼 줄지 않았다. GLE 350d의 질량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정지선을 조금 넘으며 겨우 멈춰 섰는데, 수십 미터 미끄러지는 동안 자세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진행 방향을 유지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컨디션이 나쁜 곳에서 오히려 진가를 발휘하는 이런 차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궁지에 빠졌을 때 운전자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는 것도 기술이다. GLE클래스의 각종 운전자 보조 장치들은 상황을 견지하는 수준이 매우 높지만, 자신이 가진 기술을 결코 과시하지 않는 설정이어서 오히려 믿음직하다. 

GLE 350d는 오감을 자극하는 차는 분명히 아니다. 그렇지만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몰아도 피로하지 않은 그랜드 투어러로서의 가치가 돋보이고, 각종 안전 장비들로 듬직하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거친 날씨에도 안심하고 가족을 태울 수 있는 자동차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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