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품격, 페라리 테스타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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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품격, 페라리 테스타로사
  • 앤드류 프랭클 (Andrew Frankel)
  • 승인 2016.02.1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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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페라리 테스타로사는 <오토카>의 비교시승에서 최고의 스타였다. 27년이 지난 지금, 프랭클이 다시 찾아내어 힘차게 몰아붙였다

되돌아보면 1988년 영국에서 페라리를 시승하는 것은 환상적인 사건이었다. 맥라렌 이외의 다른 팀이 F1에서 우승하는 경우에 비길 수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타당하지만 결코 가능한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의 페라리 수입사인 인치케이프는 언론계의 구더기들이 페라리에 덤벼들지 못하게 막았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당시 페라리의 플래그십 테스타로사를 보자. 1984년에 시장에 나왔지만 4년이 지난 1988년에도 영국에서는 5.0L V12 수평대향 엔진의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선배인 복서보다 빠르지만 못생겼고, 감칠맛이 적다는 평판이 돌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한 것은 없었다. 
 

나는 1988년 6월 <오토카>에 입사했다. 당시 나온 어떤 잡지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 무명의 나는,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한 구명줄이 절실했다. 내가 <오토카>에 필수적인 인력임을 증명해야 했다. 그리고 이 차, 테스타로사가 내 구명줄이 됐다. 우리 아버지가 테스타로사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버지는 자신에게 주는 은퇴 선물로 테스타로사를 구입했다. 

아버지는 내가 <오토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아슬아슬한 처지에 있다는 걸 알았다. 때문에 자신의 테스타로사를 빌려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후 우리는 란치아 델타 인테그랄레와의 대결을 벌이기로 했고, 나는 그 두 차를 모두 운전하면서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줬다. 결국 테스타로사가 나를 살렸다.
 

그로부터 27년 뒤, 바로 그 테스타로사가 다시 나타났다고 알려준 사람은 전직 <오토카> 에디터 벤 올리버였다. 그가 그레이폴 클래식 카즈 웹사이트에 아버지의 테스타로사가 18만5천 파운드(약 3억2천만원)에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한 것(매물 설명에 나와 아버지를 언급하며)이다. 나는 곧바로 그레이폴의 로빈 심프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아버지는 몇 천 킬로미터를 탄 뒤, 테스타로사를 그레이폴에 팔았다. 그 차를 사들인 오너는 거의 장식용으로 차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28년 사이에 겨우 13,000km를 달린 뒤 그레이폴에 다시 판매했다. 그레이폴이 다시 도로에서 달릴 수 있도록 수리한 것 이외에는 1988년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내가 그 차를 다시 보게 됐다니, 정말 기적과도 같았다. 내가 앉아본 유일한 테스타로사.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손가락은 자동으로 사이드 스트레이커 아래쪽 도어핸들을 찾아냈다. 보닛과 엔진커버를 열었고, 조금 엉뚱한 핸드 브레이크를 찾아냈으며, 3스포크 스티어링을 조절했다. 아울러 변속기 오일이 차가울 때는 저속 더블클러치 변속으로 2단밖에 쓸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키를 돌리자 모두가 힘차게 되살아났다. 보쉬의 기계식 분사 장치가 12개의 기통을 일제히 점화시켰다. 너무나 매끈해서 24기통이어도 문제가 없을 듯했다. 진정한 ‘복서’는 아닌데, 서로 반대되는 피스톤이 다른 쪽이 아니라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180° 기울기의 V12다. 출력은 390마력에 불과(?)하다. 오늘날 배기량이 겨우 1.3L 더 큰 F12 tdf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세련된 품격이 놀랍다. 지금까지 그 부분에서는 이 엔진을 앞선 경우가 없었다. 더불어 너무나 정숙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테스타로사의 승차감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를 자극한다. 클래식 페라리는 도로의 모든 물결과 함께 숨을 쉬었다. 
 

하지만 빠르다는 느낌이 들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빨리 달릴수록 클래식 페라리의 괴력이 살아났다. 시속 130km를 넘어서자 그때까지 눈에 보이지 않게 잠겨 있던 족쇄가 풀리며 황홀하게 빠른 느낌을 선사했다. 테스타로사는 탁 트인 공간을 갈망하는 차다. 그리고 3단과 4단으로 노를 저어가며 묘하게 쓸리는 소리를 내는 기어변환을 감상했다. 오늘날 슈퍼카 드라이버가 잃어버린 모터링의 즐거움을 찾았다. 

이는 숫자가 좌우하는 세계가 아니다. 뉘르부르크링 랩타임이나 0→시속 100km 가속시간 또는 최대 횡G 포스로 따질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스티어링 림에 전달되는 노면의 감촉과 실험실에서 합성된 것이 아닌, 엔진의 연소실에서 연주되는 장쾌한 음악이다. 유일한 트랙션 컨트롤은 드라이버의 오른발뿐이고, 그립의 한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드라이버가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서 직접 모든 것을 연출한다. 
 

1988년 당시 <오토카>를 이끌었던 하워드 리스(지금은 고인이 된)는 이렇게 말했다. “테스타로사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차다. 훌륭한 성능, 완벽한 매너와 뛰어난 시야를 자랑했다. 차가 너무 크다는 말은 모두 헛소리다. 9만 파운드(약 1억6천만원)의 가격에서 단 한 푼도 허실이 없는 순수한 품질의 차다.” 

당시 나는 리스가 더욱 화끈하게 찬사를 보내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표현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도 테스타로사는 가장 위대한 슈퍼카에 들지 않았고, 지금도 사상 최고의 페라리 톱10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충분히 좋은 자동차이고, 지금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좋은 차만이 나이가 들수록 원숙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경험한 테스타로사는 단순히 좋은 차일 뿐 아니라 경이롭기까지 했다. 사운드, 스타일, 개성, 그리고 느긋한 매너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이 차를 돌려줄 때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는 슬픔이 내 가슴을 쓸었다. 그리고 나는 이 차를 영원히 잊을 수 없으리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글 · 앤드류 프랭클 (Andrew Frankel) 
사진 · 스탠 파피오르 (Stan Pap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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