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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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챔프>
  • 아이오토카
  • 승인 2011.11.0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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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불가능을 뛰어넘는다


위너스 대회가 치러지는 경기장, 선두를 달리는 말의 다리에선 쉴 새 없이 피가 흐르고 우승을 목전에 둔 기수는 눈물을 흘리며 말에게 그만 달리자고 소리친다. 하지만 경주마는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대회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오히려 속도를 붙이며 달린다. 그리고 기수는 스스로 말에서 손을 놓고 떨어진다.

관중들의 환호는 비명으로 변하고 감동적인 우승을 기대하던 표정은 순식간에 눈앞에서 펼쳐진 믿지 못할 광경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의 이름은 이승호. 기수다. 한때 최고의 기수로 대접을 받으며 우승가도를 달리던 그였지만 끔찍한 사고로 아내를 잃고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명예도 잃고 이름도 잃었다.

말의 이름은 우박. 경주마다. 최고의 우승마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는 영리한 백마였지만 끔찍한 사고로 새끼를 잃고 한쪽 다리를 절게 되면서 경주마로서의 운명을 잃었다.

경마 준비를 위해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딸을 데리고 마장을 찾았던 승호는 돌아가는 길에 앞서 달리는 트럭을 질러가려다 마주오던 버스를 피하지 못하고 큰 사고를 내고 만다. 그리고 뒤따르던, 우박과 새끼를 태우고 있던 트럭 역시 승호의 차를 피하지 못하고 추돌하면서 더 큰 사고로 이어진다. 그것이 벌써 수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승호와 우박의 운명은 그렇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일까. 사기꾼들의 협박을 피해 제주로 피신한 승호는 기마경찰대에 들어가 우박과 조우하고 서서히 자신과 우박의 운명, 기수와 경주마의 운명을 되찾아간다.

승호가 몰던 차는 그랜저 XG. 촉망받는 기수, 인정받는 기수, 안정된 궤도에 오른 기수 승호의 위치를 보여준다. 어느 정도의 명예와 어느 정도의 지위와 어느 정도의 전도유망함과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그랜저 XG. 하지만 아직 최고는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가 끝은 아니다. 우승행진을 이어가며 조금 더 인정받으면 그랜저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이 허황되거나 멀지 않은 상태. 그래서 그랜저 XG는 승호의 탄탄대로 장밋빛 앞길을 보여주는 지금의 기반이며 이번 경기에서 우승하면 사랑하는 아내와 올리지 못한 결혼식도 할 수 있는 승호의 희망이고, 최고의 기수로서의 명예와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승호의 미래이기도 하다.

그렇게 승호의 모든 것을 걸고 있던 자동차는 큰 사고와 충돌하면서 승호의 모든 것은 파손된 자동차와 함께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만다. 시간을 다시 돌릴 수만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승호는 트럭을 앞지르지 않았을 텐데. 트럭을 앞지르지 않았다면 가족과 함께 타고 달리던 그랜저의 달콤한 꿈을 계속 꿀 수 있었을 텐데.

루나라는 말이 있었다. 선천적 장애로 앞발을 심하게 저는 말. 하지만 마주와 조교사는 루나의 핸디캡을 보지 않았다. 경주마로 태어났으니 경기장을 뛰게루나라는 말이 있었다. 선천적 장애로 앞발을 심하게 저는 말. 하지만 마주와 조교사는 루나의 핸디캡을 보지 않았다. 경주마로 태어났으니 경기장을 뛰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특별한 보살핌과 훈련 끝에 명마로 거듭난 루나는 은퇴경기의 우승까지 13번의 우승을 했다.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챔프>는 그래서 우리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상당히 공을 들린 경마 장면과 혹독한 훈련 끝에 기수로 태어난 배우 차태현. 그리고 굳건하게 영상을 받쳐주는 음악과 감독의 힘 있는 연출은 기적이란 불가능을 뛰어넘는, 편견을 뛰어넘는, 운명을 뛰어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글 · 신지혜(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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