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로드의 야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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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의 야수들
  • 아이오토카
  • 승인 2011.11.11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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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그랜드 체로키는 동급 최고의 오프로드 성능을 자랑한다. 이로써 지프 브랜드의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름난 숲 래드너 포레스트 깊숙한 어느 곳. 진흙탕이 액슬까지 올라오고, 금방이라도 옆으로 넘어질 듯 기울어졌다. 불길한 예감이 폭죽 터지듯 터져 나왔다. 동급의 오프로더 가운데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4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일까? 최신 폭스바겐 투아렉은 본격적인 오프로더라기보다는 아이들 등하교를 책임지는 엄마에 더 어울리는 소프트로더인가? 지프 그랜드 체로키 신형도 난처한 차일까?

앞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야말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한마디 해두자. 지금까지 우리가 몰아본 가장 잘난 지프를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신형 그랜드 체로키는 벤츠 M클래스와 같은 플랫폼을 깔고 있다. 구형 M클래스도 아니고 신형도 아닌, 차세대 M클래스. 아직 시판되지 않은 차다.

당연하지만 그랜드 체로키는 중요한 항목에서 모두 개선됐다. 오싹한 승차감, 끔찍한 패키지, 음울한 성능과 싸구려 품질은 사라졌다. 그 대신 더 크면서도 더 가볍고, 한층 민첩하면서도 안락하고, 보다 빠르면서도 경제적인 SUV. 겉모습, 좋지 않은 옛날에서 넘어온 사소한 유산은 제외하자. 그러면 구형과 같은 곳에서 태어났다고 믿기 어렵다.

우리 시승차인 3만6천795파운드(약 6천330만원)의 리미티드 모델은 엔트리급. 그리고 4만3천995파운드(약 7천570만원)의 오버랜드는 높이조절 에어 서스펜션을 추가했다. 그러나 오버랜드도 4만1천760파운드(약 7천190만원)의 투아렉 이스케이프 모델 다음으로 싸다. 폭스바겐은 이 차를 오프로더로 권장한다. 하지만 투아렉을 오프로드로 몰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폭스바겐의 입발림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맹목적인 장비 대신 이스케이프는 저회전대에도 강력한 변속기, 중앙과 뒤 디퍼렌셜 록, 한층 높은 지상고, 하체보호와 거대한 100L 연료탱크를 갖추고 나온다. 갖추지 못한 것은 높이조절 에어 서스펜션. 다만 옵션으로 고를 수 있다. 2천40파운드(약 350만원)짜리 에어 서스펜션이 실제로 얼마나 필요한가를 고민하겠지만….

디스커버리 4에는 그런 문제가 없다.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차, 최고 버전 HSE는 5만785파운드(약 8천740만원)지만 3만6천785파운드(약 6천330만원)의 기본형 GS도 에어 서스펜션을 갖추고 있다. 라이벌 중 가장 비싼 버전의 모든 오프로드 성능을 즐긴다.

최근에 오프로더들은 다른 어떤 유형의 차보다 멀리 달려왔다. 20년 전 이 장르에는 사다리 섀시, 라이브 액슬과 4기통 엔진을 얹은 차로 가득했다. 이 경우 4기통은 기계적으로 세련된 요소를 모두 받아들여 마법의 조합을 이뤘다. 지금 이런 차들은 정교한 모노코크, 위시본이나 멀티 링크 서스펜션과 매끈한 V6 디젤 엔진을 갖췄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경이적 성능과 연비를 자랑한다.

흥미롭게도 지프는 벤츠 플랫폼을 받아들였지만 벤츠 엔진을 쓰지 않았다. 대신 이탈리아의 VM 모터리가 3.0L V6을 만들었다. 이 배기량2,987cc가 거대한 보닛 아래 기대했던 벤츠 엔진과 대등한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하지만 나름대로 좋은 엔진이고 라이벌의 엔진보다 약간 조잡하지만 강력하고 상당히 경제적이다. 각기 디스커버리와 투아렉의 6단 또는 8단 변속기보다 훨씬 기어가 적은 구식 5단 변속기를 달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더욱 인상적이다. 공교롭게도 랜드로버도 가을에 8단이 나온다.

우리는 온로드로 간다
웨일스로 가는 길에 타야할 차를 가리기는 어렵지 않았고, 지프는 아니었다. 적어도 섀시와 엔진 기술진이 예상밖의 좋은 승차감, 품위 있는 세련미와 칭찬받을 성능을 마련하는 탁월한 일을 해냈다. 하지만 딱딱하고 거친 표면과 금속을 위장한 플라스틱이 드러나 지나치게 값싼 인상을 주는 실내가 그 성과를 흐렸다.

예상대로 폭스바겐은 탁월했다. 3대 라이벌 중 가장 세련됐고, 메이커의 스펙에 밝히지 않았지만 지프를 누르는 성능을 자랑했다. 더구나 수술하듯 정확하게 실내를 다듬었다. 게다가 변함없이 운전위치도 완벽에 가깝다. 객관적으로 이 비교시승에서 비난하기 어려운 차다. 하지만 주관적으로 너무 청결한 분위기가 마음에 걸린다. 마치 인체공학적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실내에서 개성을 완전히 배제한 인상을 준다. 게다가 개조형 이스케이프 강철 서스펜션의 결과인 듯 놀랍게도 빈약한 승차감이 걸린다.

랜드로버는 그런 걱정이 없다. 공기 쿠션에 앉아 M4를 달려갔다. 운전자에게는 오만한 시야를 제공하고, 콕핏은 폭스바겐에 모자라는 위엄이 있다. 뭉툭한 스위치기어, 계기의 큼직한 숫자와 튼튼한 대시보드는 마초적인 분위기다. 폭스바겐만큼 기계적으로 세련되지 않았지만 큰 차이가 없고, 트리오 중 승차감은 최고다. 우리가 가족이었다면 관점이 달랐겠지만, 약간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트리오는 한결같이 5명을 편안히 앉힐 수 있다. 지프가 인상적인 뒷좌석을 마련했고, 투아렉은 황당하다고 할 만큼 뒷좌석이 넓다. 반면 디스커버리는 알맞은 정도. 사실 스타디움 좌석 덕택에 뒤쪽에서 내다보는 시야가 가장 뛰어나다. 하지만 다리 위치가 그보다 낮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값싼 버전의 디스커버리도 기본적으로 7인승이다. 하지만 가장 비싼 그랜드 체로키와 투아렉 버전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리고 트리오의 뒷좌석을 접으면 지프와 투아렉은 랜드로버가 3분의 2도 차기 전에 솔기가 불쑥 솟아난다.

고속도로와 숲 사이에서 앞장선 차는 투아렉이었다. 솔직히 브랜드 가치가 암시하듯 지프와 랜드로버는 오프로더와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폭스바겐은 로드카와 같았다. 그처럼 높고 무거우면서도 투아렉의 핸들링은 괄목할만했다. 그 디자인에 들어간 상당한 포르쉐 DNA에 공적을 돌릴 만하다. 가장 빨랐을 뿐 아니라 단연 운전성능이 가장 뛰어났다. 재래식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재미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상당한 덩치를 요리하는 가당찮은 능력을 늘 칭찬해왔다. 시승 트리오의 최저와 최강 사이에는 겨우 5마력의 차이밖에 없다. 따라서 실제로 도로상의 성능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는 각 모델의 무게. 심지어 디스코의 유리한 토크도 차상위 지프보다 300kg이나 많은 무게를 상쇄할 수 없다. 0→시속 100km 가속에 폭스바겐보다 2초나 느리다. 솔직히 10분의 1초 차이도 뚜렷이 느낄 수 있다.

오프로드가 보내는 메시지
그렇게 우리는 래드너 포레스트로 달려갔다. 이런 차들은 오프로딩보다는 견인용(트리오가 모두 최고 3,500kg을 더 실을 수 있다)으로 더 많이 쓰인다. 이런 능력이 도로 밖으로 나간 적이 별로 없는 오너들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재능은 고객들이 사는 브랜드에 이미 담겨있다. 따라서 그런 성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빠질 때 그럴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갖고 있어 믿음직하다.

여기서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을 찾아냈다. 어느 경우에나 디스커버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정찰활동을 할 때 으레 랜드로버를 투입했다. 어느 차에도 구조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진창에 갇히지 않을 차를 골랐고, 결코 실망을 주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차가 진흙탕과 바퀴자국을 얼마나 잘 빠져나오는가를 찬양하는 글을 끝없이 써왔고 여전히 놀랍고 경탄할 능력을 갖고 있었다.

다른 두 라이벌도 놀랍다. 투아렉은 이스케이프라 불릴만한 이유가 있다. 심지어 첼시 트랙터도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갔다가 대단히 침착하게 빠져나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디스커버리의 황당한 트랙션에 맞먹을 수는 없었다. 같은 장애물을 디스커버리만큼 수월하게 접근하거나 이탈하고 넘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근접했다. 가장 험악한 지형이 아니면 바싹 뒤따를 수 있었다.

체로키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지프가 오프로드에서 폭스바겐에게 밀려나는 슬픈 날이었다. 체로키는 쉽게 바닥을 긁어 기분을 망쳤고, 다른 두 라이벌과 같은 트랙션을 찾지 못했다. 상당히 가파른 비탈에서 랜드로버는 아스팔트처럼 가볍게 달렸고, 폭스바겐은 용감하게 노면을 할퀴며 올라갔다. 그러나 지프는 밑바닥에서 버둥거렸다. 요컨대 폭스바겐은 생각보다 훨씬 잘 달렸고, 지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랜드로버는 어떤 곳이든 잘 소화했다.

진흙탕에서 판가름이 난 승패
어떤 학교에서는 노력과 성취도에 따라 학생들의 등급을 매긴다. 만일 이 비교시승의 결과를 이 조건에 따라 결정한다면 지프가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몰라보게 달라진 겉모습만큼 성능이 개선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 비교시승의 라이벌들 앞에서도 고개를 들 수 있었다는 사실로 미뤄 지프가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모기업 크라이슬러는 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 차를 구상하고 제작·출시한 데 대해 찬사를 들을 만하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과 긴 장비 목록에도 불구하고 3위. 그래도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승자를 결정하기는 더 어려웠다. 도로에서 투아렉은 디스커버리를 압도했다. 그러나 숲속에서도 그런 위력을 발휘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사실 우리는 이번 시승에서 가장 뛰어난 5인승 풀사이즈 SUV의 왕좌에 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디스커버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투아렉보다 느리고 더 거추장스럽지만, 더 실용적이고 편안했다. 하지만 그게 핵심은 아니었다. 랜드로버는 오를 때마다 다가오는 모험의 팽팽한 긴장을 느꼈다.

폭스바겐에 오르면 덩치를 키운 골프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투아렉은 SUV의 감각을 모두 제거했지만, 그를 대체할 독자적인 개성을 찾을 수 없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디스커버리는 그 전통과 장르를 얼싸안았고, 폭스바겐이 결코 알 수 없는 마력과 개성을 담았다. 투아렉은 눈앞의 과제에 애써 적응한 세단 같은 느낌이지만, 디스커버리는 타고난 오프로더라는 느낌이 든다. 궁극적으로 그게 승패를 갈랐다.

글 · 앤드류 프랭클(Andrew Frank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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