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동차 마니아, 맥라렌 CEO 마이크 플루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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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동차 마니아, 맥라렌 CEO 마이크 플루이트
  • 오토카 코리아 편집부
  • 승인 2016.01.1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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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렌 오토모티브 CEO 마이크 플루이트는 진정한 자동차 마니아다. 또한, 그는 맥라렌의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오토카>가 그와 하루를 함께 보냈다. 
 

맥라렌 오토모티브 총수 마이크 플루이트는 포드 부사장 시절, 영국의 자동차산업을 크게 허무는 역할을 했다. 영국에서 소형차를 만드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고 믿고, 그 결정을 내리는 데 앞장선 것.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영국에서 포드의 소형차 제작을 중단하게 된 사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플루이트는 포드와 롤스로이스에서 보낸 생활을 무척 소중하게 여기지만, 지금은 맥라렌에서 새로운 라인업을 만드는 일에 훨씬 보람을 느끼고 있다. 최근 맥라렌은 상승세를 타고 있기도 하다.
 

그는 2012년 중반 12C 문제(디테일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장 두드러진 사례의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영업총괄 COO로 영입됐다. 그리고 1년 뒤 CEO로 올라섰다. 

지난해 맥라렌 오토모티브는 1천649대(2013년에 비해 18% 증가)를 판매하며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겨우 4년이 된 기업으로서는 뛰어난 실적이다. 그리고 판매 볼륨을 높일 스포츠 시리즈 모델 2대를 출시했다. 바로 540C와 570S다. 이후 한정판 675LT(Long Tail의 약자)를 발표했다. 플루이트는 그동안 융통성이 부족했던 맥라렌을 고객중심 체제로 개방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8:00 am 
우리는 플루이트를 만나기 위해 '맥라렌 트랙데이' 행사가 열리는 실버스톤 서킷으로 출발했다. 맥라렌 트랙데이는 맥라렌을 더 잘 운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미래의 고객과 기존 오너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열리는 행사다. 나는 오전에 행사에 참가한 뒤, 플루이트 부부와 함께 런던으로 돌아가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열리는 만찬에 참석하기로 했다. 맥라렌의 창업자 브루스 맥라렌이 뉴질랜드의 젊은 혁신가들에게 영감을 줄 오클랜드 대학교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경축하는 자리였다. 

8:30 am 
숨 막히는 교통체증에 짜증을 내면서도 맥라렌의 리무진 같은 승차감에 놀랐다. 650S의 나긋한 범프 흡수력과 거의 완벽한 보디 컨트롤은 완전히 단절돼 있었다. 유압 파워식 스티어링은 우리 집에 있는 로터스 엘리스의 파워 지원 없는 스티어링보다 더욱 '자연스러운 느낌'을 줬다. 이를 위해 맥라렌 기술진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9:45 am 
실버스톤 도착했다. "스티브 씨인가요?" 맥라렌 유니폼을 입고 패독에 있던 명랑한 사나이가 말을 걸었다. 들고 있는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아내고 하는 말이었다. 또 다른 맥라렌이 바싹 다가왔고, 운전대를 잡은 드라이버 역시 경쾌하고 다정했다. 우리는 검사장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거기서 기술자들이 타이어를 점검하고 두루 잘 살펴본 뒤 윈드실드를 닦아 줬다. 뒤이어 우리는 평소에 F1 드라이버들이 차지했던 피트 개러지 한곳에 주차했다. 
 

9:55 am 
바로 옆 칸막이 너머에는 널찍한 현대식 라운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편안한 소파와 테이블에 다과와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더불어 책상에는 모니터가 있어 자신의 텔리메트리 기록을 살펴볼 수 있었다(누구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기록과 프로 드라이버의 것을 비교했다). 그리고 '브루노를 이겨라'라는 드라이빙 게임도 있었다. 브루노는 F1의 전설 , 아일톤 세나의 조카다. 그는 맥라렌 팀 소속으로 기존 오너와 잠재적 고객의 드라이빙 테크닉을 지도하고 있다. 
 

10:50 am 
플루이트는 일찌감치 트랙 주행을 마쳤지만 여전히 드라이빙 수트를 입고 있었다. 자동차 메이커의 보스치고는 드라이빙 수트가 잘 어울리는 드문 인물이다. 알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는 주말마다 취미로 레이스에 참가한다. 스웨덴 출신의 부인 미아와 클래식 로터스 엘란을 각각 타고 레이스에 출전한다. 부인 미아는 과거 볼보 엔지니어였다. 플루이트가 TWR-볼보 합작회사에 있을 때 함께 일하면서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미아는 두 가지 이유로 이 행사에 참가한다. 첫째, 운전 실력이 보통이 아니고 675LT을 운전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런 행사에서 불편하거나 불안하기 마련인 여성 오너와 고객들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그만이다. 
 

11:00 am 
나는 플루이트와 대화를 나누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에 열중하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차를 팔기보다는 사람들과 운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요즘 우리는 570S와 675LT를 아직 보지 못한 미래의 고객과 기존 오너들을 이런 자리에 초청하고 있다. 오직 원하는 사람들만 온다. 맥라렌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행사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책임감 있게 고속을 즐기는 데 역점을 둔다. 따라서 마초적인 분위기를 과장시키거나 거만한 거동을 부추기지 않는다. 우리는 프로답게 이 행사를 진행할 뿐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거나 경쟁을 부추길 의도는 없다." 
 

11:30 am 
맥라렌 트랙데이 행사는 물론 영국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이미 벨기에의 스파프랑코샹과 독일의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도 열렸다. 곧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서킷도 찾아갈 것이다. 한편, 중동에서도 F1 서킷이 점차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국에서는 38명의 P1 오너 가운데 30명이 트랙데이 행사에 참가했다.  

11:40 am 
맥라렌의 수석 테스트 드라이버 크리스 굿윈이 자신의 1966 맥라렌 M1B의 시동을 걸었다. 그 순간 대기를 찢는 폭음이 터졌고, 장내에 활기가 넘쳤다. 맥라렌 트랙데이에는 특별한 차량들도 종종 등장한다. 얼마 전에는 전직 F1 드라이버이며 두 번 챔피언을 차지한 미카 하키넨의 F1 머신을 타고 나온 적도 있다.

12:00 pm 
점심시간. 플루이트와 미아, 그리고 모든 드라이빙 코치들이 고객과 오너, 기자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맛있고 알찬 뷔페에 곁들여 오전에 있었던 짜릿한 체험담이 쏟아졌다. 그중에는 포르쉐 카레라 GT 오너였다가 918 스파이더를 몰아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 맥라렌 P1을 구매한 사람도 있었다. 그도 나처럼 팔과 눈이 둘 뿐이었고, 머리카락은 왼쪽으로 가르마를 탔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왜 그럴 돈이 없는지 의아했다. 
 

1:30 pm 
플루이트가 나를 태우고 직접 675LT를 운전해 트랙 몇 바퀴를 돌았다. 차를 무섭게 몰아붙였지만 결코 거칠지 않았고, 코너를 매끈하게 돌아나간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플루이트는 자기 아내가 "진짜 실력자"라고 유쾌하게 시인했다. 부인 미아는 675마력의 슈퍼카를 몰아붙이는 보기 드문 재능을 자랑했다.

주행 중, 우리는 공력 장비를 걸고 푸는 어느 쪽이 좋은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공력 장비를 걸었을 때가 안정됐으나 더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걸지 않았을 때는 엉덩이가 더 가볍고 조정력이 뛰어났다. 나는 뛰어난 드라이버는 공력 장비를 해제하는 쪽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3:00 ~ 06:30 pm 
우리는 플루이트의 자가용 BMW M5를 타고 호텔로 가서 뉴질랜드 대사관 리셉션에 적합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런던 중심부로 들어갔다. 교통체증은 끔찍했지만 여유 있게 뉴질랜드 하우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유명한 맥라렌의 '아버지와 아들' 오스틴 세븐 스페셜을 봤다. 대사관 건물 꼭대기에 있는 펜트하우스에 올라가자 탁 트인 전망이 눈앞에 펼쳐졌다. 
 

8:30 ~ 10:30 pm 
나는 약 80명의 귀빈들과 자리를 같이하게 되어 영광스러웠다. 그곳에는 브루스 맥라렌의 미망인, 여동생과 일단의 독실한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아주 훌륭한 식사를 즐기며 뉴질랜드 대사 로크우드 스미스 경의 애정 어린 연설을 들었다. 뒤이어 플루이트, 오클랜드 대학 대표와 브루스의 친구이며 레이스 동료 하우든 갠리가 연설했다.
 

모든 연설은 한결같았다 겸손한 지도자 브루스를 알면 알수록 드라이버와 엔지니어,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삼 깨닫는다고 했다. 브루스는 "인간의 일생은 업적으로 판가름 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럼에도 실내를 가득 메운 귀빈들에게 32세로 끝난 브루스의 일생은 실로 숙연한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행사가 끝난 뒤, 나는 런던 시가지를 조용히 누비며 집으로 돌아갔지만 플루이트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는 다시 미니밴에 올라 내일 실버스톤에서 있을 행사를 준비하러 갔다. 일찍부터 서킷을 찾는 고객들을 따뜻이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글 · 스티브 크로플리 (Steve Cropley)
사진 · 스탠 파피오르 (Stan Pr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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