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경지에 오른 달력, 피렐리 캘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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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경지에 오른 달력, 피렐리 캘린더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6.01.1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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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타이어회사 피렐리가 매년 한정판으로 선보이고 있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50년 전통의 특별한 달력. 그런데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특별하다 
 

피렐리 달력은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누드 및 세미누드 사진으로 유명하다. 1964년 피렐리 영국지사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어, 영국을 대표하는 북디자이너 데릭 버솔과 비틀스 전속 사진가 로버트 프리먼이 함께 작업한 것이 피렐리 달력의 시초다. 

매년 소량 제작되어 배포되는 피렐리 달력은 수집가들이 탐내는 아이템이다. 그러나 모두가 피렐리 달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렐리가 비매품으로 만들어 전 세계 2만 명의 VIP들에게만 선물로 증정하기 때문이다. 상품이 아닌 예술품이라는 이유에서다. 
 

피렐리 달력에 모델로 서는 것은 패션잡지 〈보그〉의 표지나 샤넬 광고, 또는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 등장하는 것만큼 특별한 의미가 있다. 모니카 벨루치, 나오미 캠벨, 하이디 클룸, 제니퍼 로페즈, 케이트 모스, 지젤 번천, 아드리아나 리마 등이 피렐리 달력을 거쳐 간 인물이다.

2016년도 피렐리 달력은 미국의 유명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Annie Leibovitz)가 맡았다. 레보비츠는 존 레논이 부인 오노 요코 옆에서 나체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롤링 스톤〉 표지 사진과 〈베니티 페어〉 표지에 실린 만삭의 데미 무어 누드사진으로 유명하다. 이 두 사진은 지난 2005년 미국 잡지편집인협회에서 뽑은 ‘지난 40년간 가장 유명한 표지 사진’ 1, 2위에 올랐다. 2009년에는 미국 의회도서관이 ‘살아 있는 전설’로 꼽기도 했다. 
 

레보비츠가 만든 이번 달력은 지금까지의 피렐리 달력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강조한 누드 사진을 내세우는 전통을 깨고, 사회적 성취를 이룬 여성들을 사진에 담은 것. 지난 10월 여성의 누드사진을 싣지 않겠다고 선언한 〈플레이보이〉처럼, 피렐리도 섹시한 여성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미국 고급차 시장에서는 구매자의 50%가 여성이고, 구매자의 75%가 여성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여성은 차가 마음에 들 때 평균 20명에게 알리는 반면, 남성은 겨우 2명에게만 말한다고 하는 조사결과도 있다. 고급차 시장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갈수록 여성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데, 벽에 여성 누드사진을 거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레보비츠는 신체 사이즈가 아닌 이력으로 여성의 매력을 평가했다. 모델 중에서 전문 모델은 자신의 아이를 품에 안고 1월 지면을 장식한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유일하다. 보디아노바는 올해까지 다섯 번이나 피렐리 달력에 등장한 톱모델이지만, 이번에 섭외된 것은 그녀의 미모 때문이 아니다. 뇌성마비와 자폐를 앓는 동생과 함께 노동자 집안에서 자란 보디아노바는 톱모델로 활동하며 지난 15년 이상 장애 아동을 돕는 자선단체를 운영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밖의 모델로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테니스 여제 세레나 윌리엄스, 12살 때 패션 블로그를 열고 현재 잡지 에디터로 활동 중인 태비 게빈슨,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회장이자 조지 루카스 감독의 부인인 멜로디 홉슨, 영화 〈셀마〉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감독 에바 두버네이, 루카스필름 대표이자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총괄하는 캐서린 케네디, 중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 중인 영화배우 야오 첸, 존 레논의 부인이자 아티스트인 오노 요코 등이 있다. 
 

13명 모델들의 나이는 19세(태비 개빈슨)부터 82세(오노 요코)까지 평균 50세로 피렐리 달력 역사상 가장 고령이다. 12월 모델인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는 트위터에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아름답고, 역겹고, 강인하고, 날씬하고, 뚱뚱하고, 못생겼고, 섹시하고, 구역질나는, 완벽한 여성”이라고 트윗했다. 

애니 레보비츠는 2000년에도 피렐리와 달력을 만든 적이 있다. 그때는 전통적인 누드사진이었다. 앞으로 피렐리 달력에서 핀업 걸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지수다. 내년엔 다른 사진작가가 얼마든지 예전으로 되돌릴 수도 있기 때문. 적어도 올해는 진취적 여성상을 제시하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변해가는 문화를 반영할 가능성은 열어둔 셈이다. 2016년도 피렐리 달력은 문화적 변화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 캘린더 속 인물 (흑백 사진 / 위부터, 왼쪽부터) 
1-1. 사디 레인 호프-군트(왼쪽) 아그네스 군트(오른쪽) 
1-2. 야오 첸
2-1. 패티 스미스
2-2.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3-1. 오노 요코
3-2. 세레나 윌리엄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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