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블라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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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블라인드>
  • 아이오토카
  • 승인 2011.10.0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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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오감을 총동원하라


그녀의 이름은 수아.
재능 있고 뛰어난 실력으로 촉망받는 경찰대생이었던 그녀는 사고로 시력을 상실한다. 하지만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활용하며 씩씩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택시를 탄 수아는 자꾸만 말을 걸며 음료수를 권하는 운전사에게서 좋지 않은 기운을 느끼는데 그녀의 직감대로 그는 사고를 내고 그 사이 수아는 도망한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진술한다.

“40대 중반에 키는 175.6cm? 다부진 체형이었어요. 소독약 냄새가 났고 모범택시였어요.”
담당형사 희봉은 앞이 보이지 않는 수아의 이런 진술을 믿지 않지만 곧 수아의 뛰어난 감각이 시각을 대체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전적으로 그녀를 신뢰하게 된다. 그리고 수아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가 진행되는데

그의 이름은 기섭.
조금은 삐딱하고 조금은 반항적인,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겪고 있는 그는 뺑소니 사고를 목격한다. 현상금이 걸린 현수막을 보고 돈을 받을 생각으로 경찰서를 찾아 자신의 눈으로 본대로 사건을 진술한다.

“검은 색 외제차였어요. 난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요.” 하지만 기섭의 진술은 수아의 그것과 상반된 것이었고 기섭은 자신은 두 눈으로 본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수아는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말이 옳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기섭의 이런 진술 때문에 수사는 방향을 잃는 듯한데 형사 희봉은 상반된 두 사람의 주장을 면밀하게 분석하다가 기섭의 시각과 수아의 청각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뺑소니차가 검은색 외제차임을 밝혀낸다.

검은 색 푸조 307.
낮에는 산부인과 의사지만 밤에는 거리로 나가 여성을 유린하는 명진이 모는 차. 밤에 외출한 수아를 보고 접근해 다음 희생자로 삼을 예정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 수아를 놓쳐버려 꼬리가 잡혔다. 시각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수아는 자신 앞에 차가 섰고 타라는 말을 듣고는 푸조 307이 택시인 줄 알고 탔던 것이고 사고 현장을 목격한 기섭은 정확한 차종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외제차라는 것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푸조 307은 이렇게 이중적인 면을 가진 명진의 도구인데 그 이중적인 면은 수아와 기섭의 진술처럼 상반되면서도 둘 다 진실인, 접점이 되는 오브제이다. 수아에겐 촉각을 통해 ‘택시’로 는 시각을 통해 ‘외제차’로 각인되어 수사를 흐트러뜨리지만 결국 의 청각을 통해 창문 여닫는 소리로 그 실체를 찾게 되는, 그래서 의 방향을 제대로 잡게 되는 확실한 증거물이 된다.

당신의 오감을 활용하라.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이제부터 당신은 시각뿐 아니라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영화를 보아야 한다. 수아의 입장에서 느껴지는 세계를 구현한 영상, 사건에 휘말려 위태롭게 된 수아와 기섭이 함께 오감을 이용해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 안내견 슬기와 수아의 교감 등 큰 틀뿐 아니라, 바람에 날리는 꽃향기, 손목시계줄소리, 바닥에 닿는 빗방울 소리 등 당신이 섬세하고 세밀하게 모든 감각을 동원해 수아와 함께 느껴야하는 영화이고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 ‘인간’을 느끼게 하는 간만에 보는 웰메이드 작품이다. 감을 곤두세우라.

글 · 신지혜(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제작 및 진행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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