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바퀴굴림 소형차의 조상, 1955 폭스바겐 EA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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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바퀴굴림 소형차의 조상, 1955 폭스바겐 EA 48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11.1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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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폭스바겐 EA 48 -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세계 최초로 적용한 앞바퀴굴림 소형차의 조상 
 

1953년 여름, 폭스바겐은 비틀 아래에 배치할 새로운 엔트리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구트브로트(Gutbrod)에서 이제 막 폭스바겐으로 자리를 옮긴 하인리히 자입트(Heinrich Seibt)가 프로젝트를 맡았다. 프로젝트 명 ‘EA 48.’ 독일어로 ‘제48 개발과제’라는 뜻이다. 

EA 48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1953년 10월 1일에 시작됐다. 폭스바겐 최초의 자체 개발 프로젝트였다. 자입트는 독일 쾰른의 포드 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구스타프 마이어(Gustav Mayer)를 프로젝트 2인자로 영입했다. 마이어는 22살 때 800cc BMW 모터사이클 엔진을 가져다가 혼자서 로드스터를 만든 인물이었다. 
 

당시 비틀은 폭스바겐에서 신성불가침의 존재였다. 비틀과 다른 것은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시장에서 대히트를 쳤고, 포르쉐 가문의 입김도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자입트와 마이어는 엔진이 앞에 있고 앞바퀴를 굴리는 자동차로 방향을 잡았다. 리어 엔진·뒷바퀴굴림인 비틀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엔진으로는 공랭식 수평대향 2기통 두 가지를 개발했다. 하나는 플라이휠에 레이디얼 팬(radial fan : 판 형태의 날개를 방사형으로 단 환풍기)이 달린 700cc 엔진. 다른 하나는 액시얼 팬(axial fan : 원통 속에 회전 날개를 설치한 환풍기)을 달고 밸브를 V형으로 배치한 594cc 엔진이었다. 

자입트가 디자인 부서에 요구한 사항은 단 한 가지였다.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하라는 것. 개발진은 실내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매우 작은 휠을 달았고, 앞 서스펜션에는 최신 방식을 도입했다. 맥퍼슨 스트럿이다. 
 

GM 기술자였던 얼 스틸 맥퍼슨(Earle Steele MacPherson)이 고안한 맥퍼슨 스트럿은 이미 4년 전에 개발된 것이었다. 이를 실제로 적용한 것은 EA 48이 처음이었다. 맥퍼슨 스트럿은 구조가 단순하고 콤팩트하며 가격이 저렴해 오늘날 대부분의 승용차가 쓰고 있는 방식이다. 

EA 48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트렁크 해치조차 달지 않았다. 마이어는 지난 2011년 폭스바겐과의 인터뷰에서 “트렁크는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차체 설계는 1954년 4월에 마쳤으나, 엔진 개발이 늦어져 우선 다른 엔진을 달아 주행시험을 시작했다. 

엔진은 12월에 완성됐는데, 테스트 도중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났다. 효율적이고 힘도 적당했지만, 회전이 거칠고 진동이 심했다. 또한, 냉각팬 성능이 너무 약해 3,000rpm에서 오일 온도는 이미 120℃를 넘어섰다. 
 

개발진은 냉각성능 개선을 위해 다방면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포르쉐 타입 171 엔진의 팬을 달았을 때 냉각공기 유량이 증가하고 안정적인 성능을 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포르쉐 타입 171은 1941년에 개발한 상륙정용 엔진으로, 1955년 당시에는 완전히 잊힌 존재였다. 

이후 EA 48 개발은 순조로이 진행됐고, 본사 주변 도로에서 2,600km 이상 달린 뒤 주행시험을 마쳤다. 1956년 2월 2일의 일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2주 뒤 EA 48 프로젝트는 폐기되고 팀은 해체됐다. 안방에서 비틀과 집안싸움을 벌이는 걸 원치 않은 내부사정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독일 정부였다. 

당시 경제장관이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인물로 이후 총리에 올랐다)가 EA 48 개발을 중단하라고 압력을 넣은 것. 신형 폭스바겐 소형차가 보르크바르트(Borgward)나 로이드(Lloyd) 같은 다른 독일 자동차회사들을 고사시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스타프 마이어를 비롯한 폭스바겐 기술자들은 EA 48이 시장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믿는다. 하지만 몇몇 자동차 역사가들은 그보다 훨씬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소형차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비록 EA 48은 양산화에 실패했지만, 마이어는 맥퍼슨 스트럿을 적용한 공로로 1957년 회사로부터 감사편지와 함께 상여금 50 독일 마르크(현재 화폐가치로 약 210만원)를 받았다. 그는 그때 받은 편지를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 

20년이 흐르고 비틀 후속 모델로 골프가 나왔다. 프런트 엔진, 앞바퀴굴림,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으로 EA 48과 같았다. EA 48은 현재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아우토슈타트 내 폭스바겐 자동차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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