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투어러의 기준, 애스턴 마틴 DB9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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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투어러의 기준, 애스턴 마틴 DB9 GT
  • 맷 프라이어 (Matt Prior)
  • 승인 2015.11.1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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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 마틴 DB9의 최종 버전인 540마력 GT. DB9가 아직도 특별할 수 있는 이유를 찾으러 마지막 드라이브에 나섰다

어떤 자동차의 마지막을 기하는 ‘굿바이’ 드라이브는 그 모델과 약간이라도 관련된 곳에서 진행되기 마련이다. 애스턴 클린튼에 있는 애스턴 마틴 기념비에서 사진을 찍거나, 007 스카이폴 영화에 나온 도로에 가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나는 복잡한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여기로 가서, 이 포즈로 사진을 찍자” 같은 허튼 수작을 부릴 수 없었다. 애스턴 마틴 DB9는 내가 늘 즐기던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난 그저 드라이브에 나서면 된다. 여행을 즐기고 노을을 만끽한 뒤, 집에 돌아오면 그만이다. 간단하다. 
 

애스턴 마틴은 내년에 DB9의 생산을 중단하고, 마지막으로 DB9의 최고치를 증명하기 위해 DB9 GT를 내놓았다. DB9 GT는 12년간 이어온 DB9 여정의 결과이자 말 그대로 ‘최고’ 버전이다. 애스턴 마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모델인 DB9은 알루미늄 기반의 VH 아키텍쳐로 만든 첫 번째 작품이고, 그 이후로 애스턴 마틴은 어떠한 자동차라도 컴포넌트들의 수직적, 수평적 조합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었다. 

VH 아키텍쳐는 매우 다재다능하다. 그래서 이것을 단순히 플랫폼이라고 부르면 애스턴 마틴은 싫은 티를 냈다. 12년 된 플랫폼을 아직도 쓴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니까. 사실, 최신 DB9과 2004년도에 출시된 DB9을 벗겨놓고 보면 베이스가 매우 다르게 보이긴 하다. 
 

아키텍쳐의 장점은 많다. 일단,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다. DB9, 밴티지, 뱅퀴시, 라피드, 비라지, DBS 모두 동일한 아키텍쳐에서 탄생했다. 아울러 모델 업그레이드에도 용이하다. 애스턴 마틴처럼 자원이 한정된 회사에게 상당히 중요한 점이다. “애스턴 마틴은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고 CEO 앤디 팔머가 말하지 않았는가. 지난 몇 년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향상되었고, 실내도 재단장했고, 엔진들도 더 깨끗하고 강력해졌으며, 차체도 더 단단하게 개선되었다.
 

하지만 단점도 따랐다. 만약 당신이 큰 관심이 없는 고객이라면, 애스턴 마틴의 모델들은 모두 비슷한 성향을 가진 비슷한 자동차로 보일 테니까. 애스턴 마틴에 따르면, 앞으로 앤디 팔머 산하에서는 변할 것이라고 한다. VH 아키텍쳐는 그대로 남지만, 모든 모델은 각각의 뚜렷한 성격을 드러낼 것이라고. 이는 애스턴 마틴이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내놓을 크로스오버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DB9의 후속 모델인 DB11이 실험대에 오를 예정이다. 
 

만약 DB11의 태도와 성격이 DB9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나는 사실 조금 기뻐할 것 같다. 오리지널 버전이 가장 완전하고 최고인 예는 흔하다. 내 기준으로는 DB9이 첫 번째 VH 모델이고, GT 성향의 자동차이면서, 가장 애스턴 마틴답기 때문이다.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고 객관적인 일에 관여하는 걸 더 선호하지만, 이번만은 예외를 적용시켜야겠다. DB9은 아직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생긴 차다. 
 

오늘날 DB9 GT는 검정색의 프론트 스플리터와 디퓨저를 달고 나온다. 요즘 스포츠카라고 불리는 것들이라면, 이런 치장을 하나도 안 붙일 경우 공장에서 출고조차 못하지 않은가. 그래도 새벽에 내 집 앞에 DB9 GT가 들어온다면, 난 잠깐 서서 마냥 쳐다볼 테다.

나는 아무 계획이 없다고 했지만, 사진가 루크 레이시는 약간의 계획을 세워놓았다. DB9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그리고 DB11은 얼마나 좋을지 가늠하기 위해 웨일즈로 가서 한적한 길을 달린 후, 해변가에서 일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물론 영국의 우중충한 날씨에 노을이 보이기나 할진 모르겠지만. 
 

하지만 날씨가 DB9의 그랜드 투어링 능력을 테스트하려는 우리의 의도마저 막지는 못할 것이다. 옥스포드셔에서 엘란 밸리까지 가는 길이 딱히 ‘그랜드’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실 당연하다. 노면은 젖었고, 곳곳에는 공사판이 벌어져 있으며, 가족들을 태운 SUV들이 즐비할 테니까. 그래도 결국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운전하는 것은 레디치를 지나는 M42 국도에서나, 상트로페로로 이어지는 A8 고속도로에서나 똑같은 결과를 낸다. DB9은 어떠한 긴 여정에도 적합하다는 걸 이해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제일 처음 DB9이 출시되었을 때, 전동식 버튼들은 죄다 플라스틱이었고 볼보에서 가져온 내비게이션은 그 당시에도 형편없었다. 전반적인 실내 설계는 비슷하게 유지된 듯 보이지만, 애스턴 마틴이 조금씩 개선해왔다는 건 분명하다. 가장 최신작인 DB9의 중앙 콘솔은 햅틱 기반의 터치 제어 스위치들로 변경되었고, 시트 조절 버튼들은 알루미늄이며, 터치스크린 중심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사용하기도 쉽다. 
 

이쯤이면 소규모 자동차 회사들의 예산 규모가 확연해진다. 예전에는 주력 모델에 수공업을 가미하면 잘 팔렸지만, 이제는 신차 출시 주기가 짧아졌기 때문에 결국 최신 기술을 탑재한 차들로부터 몰살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DB9 GT는 사랑스러울 정도로 잘 디자인되었다. 또한, 제일 처음 모델과 실내 마감 품질을 비교하면,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DB9의 가장 특별한 점은 이 차의 주행 성격인데, GT 역시 마찬가지다. 난 DB9 GT의 절제되고 평온한 느낌이 좋다.(일부에서는 그랜드 투어러치고는 너무 딱딱하다고 하지만, 난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DB9 GT는 진실하다. 기존 모델은 최고출력이 510마력이었지만, GT는 540마력으로 업그레이드되었고, 12기통 5,935cc 엔진은 커다란 자연흡기 심장이 갖춰야 하는 면모를 모두 뿜어낸다. 예측 가능하고, 믿음직스러우며, 고출력 구간에서 생동감 넘치면서(최고치는 6,750rpm에서 발휘된다) 저출력 구간에서는 기분 좋을 정도로 반응이 즉각적이다. 자동변속기는 6단에 불과하지만, 파워가 너무나도 고르게 분배되어 있어서 단수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은 생기지 않는다. 심지어 섀시 밸런스조차도 만족스럽다. 
 

물론 프론트 엔진 방식이고, 거대한 차체에 무게는 1,785kg이나 되어서 날렵함은 기대할 수 없지만, DB9의 스티어링 조작은 자신감 넘치고, 지나친 피드백은 사라졌다. 핸들링은 신뢰감을 증폭시키고, 예측 가능하며, 매우 즐겁다. 상대적으로 페라리 F12는 과도하게 활동적이고, 포르쉐 911은 차갑게 느껴지며, 벤틀리 컨티넨탈은 상당히 묵직하다. 모든 GT 자동차 중, 애스턴 마틴만큼 만족스러운 핸들링 밸런스를 갖춘 차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대형 쿠페가 어떠한 주행 스타일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책을 집필한다면, 분명 DB9를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글 · 맷 프라이어 (Matt Prior) 
사진 · 루크 레이시 (Luc Lac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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