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고 상냥한 그대, 렉서스 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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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고 상냥한 그대, 렉서스 ES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5.11.0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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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렉서스 ES는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돌아왔다. 더 한층 강렬하고 부드럽게…

렉서스의 중심 모델인 ES가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올 뉴 ES로 돌아왔다. 언제나 안정적인 운전 감각을 뽐내는 ES지만, 이전 모델의 디자인은 좀 심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전 디자인의 날 서지 않은 단아함도 마음에 들었지만, 화장을 고치고 돌아온 올 뉴 ES는 한층 매력적으로 바뀐 디자인을 뽐낸다. 물론 여전히 ES답게 우아하다. 

변화의 폭은 좁은 듯 크다.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기 위해 수정한 부분은 많지만, 어디까지나 ES의 디자인 방향을 유지하는 선 안에서 이뤄졌기 때문. 주요 부분의 디자인을 모두 바꿔 역동성을 강조했다고 렉서스는 밝혔다. 하지만 오밀조밀한 선들이 균형 이룬 우아함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스핀들 그릴의 크기가 더 커졌다. 안쪽은 날카롭게, 바깥쪽은 둥글게 부풀렸다. 그릴을 감싸는 면과 모서리를 다듬어 입체적인 시각 효과를 더했다. 그릴과 맞물린 헤드램프의 디자인에는 날이 섰다. IS에 적용된, 화살촉 모양의 주간 주행등을 기반으로 하되 ES의 고급스러움에 맞게 다듬었다고. IS의 것은 분리된 형태지만, ES의 것은 통합형이다. 로우빔을 LED 타입으로 바꿔 광량도 높였다. 최상위 모델인 이그제큐티브에는 LED 하이빔도 적용된다. 

테일램프의 디자인도 좀 더 날렵하게 바뀌었다. 위치도 기존 ES에 비해 낮다. 테일램프 사이에 트렁크 가니시 라인을 추가했는데, 차체가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이는 디자인의 무게중심을 낮추기 위한 노력 중 하나라고 렉서스는 밝혔다. 범퍼도 좀 더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끝자락에 수직형 LED 안개들을 달아 기존 ES에 비해 한층 눈길을 끈다. 옆에서 바라보면 그 차이는 더 도드라진다. 한껏 기울여 다듬은 면의 굴곡이 드러난다. 기함인 LS에 쓰이는 스크래치 복원 페인팅도 적용했다. 클리어층 위에 탄력적인 복원 소재를 얇게 코팅한 것이 비결이다. 흠집이 생겼을 때, 소재가 다시 펴지면서 손실을 줄여준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이기 때문에 실내 구조는 기존과 같다. 고급감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 세부적인 부분을 꼼꼼히 살펴 디자인과 질감, 사용성을 높였다. 예를 들면 시트 부분의 끝부분을 소프트 패드로 바꿔, 몸에 닿는 부분의 질감을 더욱 부드럽게 했다. 이런 세부적인 부분을 최대한 다듬는 것은 렉서스의 특징 중 하나란 생각이다. 어떤 렉서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고급스럽고 안락하며 모난 부분이 없다. 
 

시승차의 실내 색은 토파즈 브라운. 밝고 진한 갈색의 조화가 산뜻하다. 실내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준다. 바뀐 스티어링 휠의 디자인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홈패드의 크기를 줄이고 버튼의 배치와 구성을 바꿔 엄지손가락으로 다루기 더 쉬워졌다. 변속 레버는 가죽을 감싼 부츠 타입으로 바꿔 손에 감기는 맛이 좋다. 계기판은 바늘의 길이를 늘려 시인성을 키웠고, 더 커진 4.2인치 컬러 디스플레이를 가운데 달았다.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조절하는 마우스 모양의 RTI는 옆면에 엔터 버튼을 더해 좀 더 다루기 쉽게 했다.  
 

‘시마모쿠’ 우드 트림도 ES 최초로 적용됐다. 렉서스 특유의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소재다. 나무를 절묘하게 다듬어 쓰는 것은 다른 럭셔리 제조사도 마찬가지지만, 렉서스는 좀 유별나다. 38일간 67개 과정을 거쳐 원목을 부품으로 바꾼다. 부품을 만들기 전 색을 살리는 데만 1주일이 걸린다. 기계를 이용하는 부분도 있지만, 기본은 어디까지나 장인의 손맛이다. 정밀한 접착, 사포와 붓질로 살린 나무의 질감은 그 어떤 합성소재도 따르지 못한다. 
 

바뀌지 않은 것은 구동계. ES300h는 직렬 4기통 2.5L 앳킨슨 엔진과 전기모터를 합쳐 달린다. 압축비보다 팽창비를 높인 엔진은 최고출력 158마력, 최대토크 21.6kg·m을 낸다. 모터출력은 약 143마력. 둘을 합쳐 시스템 출력 203마력을 낸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달아 공차중량은 1,685kg로 V6 3.5L 엔진에 비해 55kg 더 무겁다.
 

출발은 언제나 매끈하다. 배터리 전력량이 충분하다면 전기모터로 출발하기 때문. EV모드 버튼을 눌러 전기로만 달릴 수도 있다. 이때의 가속도 더디지 않다. 모터 출력이 뛰어난데다, 27.5kg·m의 토크를 회전과 거의 동시에 내기 때문. 이는 토요타 하이브리드 특허 중 하나인 컨버터 덕분이다. 모터에 더 많은 전력을 보내기 위해 전압을 높이는 기술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압을 높이면 더 많은 전력이 가고, 그만큼 모터의 힘이 강해진다. 이를 이용해 주행 모드에 따라 모터에 가는 전압을 바꿔 에너지를 아끼기도 한다. 

가속페달을 조금 더 깊게 밟자 엔진이 깨어난다. 그러나 힘을 갑자기 더하는 느낌은 아니다. 엔진은 배기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력이 낮다. 힘보다 연비를 택한, 앳킨슨 사이클 방식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공기를 압축, 폭발시켜 더 강한 힘을 내려드는 엔진들과 다르게, 앳킨슨 사이클은 좀 더 적은 공기를 압축하려 든다. 토크를 줄이는 대신 연비를 얻기 위해서다. 
 

이런 세팅을 일반적인 휘발유 차에 적용하면 힘이 부족해진다. 하지만 올 뉴 ES300h는 하이브리드. 엔진의 토크를 줄인다 하더라도, 언제든 힘을 보태는 전기모터 덕분에 힘의 부족을 느낄 수 없다. 남다른 하이브리드 구조 덕분이다. 대부분의 하이브리드는 모터가 하나다. 구성이 간단한데다, 힘을 더하기 좋은 구조이기 때문. 하지만 토요타·렉서스의 하이브리드는 두 개의 모터를 단다. 하나의 모터는 엔진과 맞물려 힘을 전하고, 또 다른 하나는 변속기 역할을 맡는다. 구동력과 운동 에너지를 통해 언제든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서다. 
 

그만큼 전기모터가 작동하는 범위가 늘어난다. 그래서 연비도 차급 이상이다. 휘발유를 넣고서도 공인연비 16.4km/L을 내고, 부드럽게 달릴 때면 실주행 연비는 그 이상이다. 물론 디젤 엔진 얹은 세단이 더 연비가 좋다지만 소음과 진동이 있다. 반면 렉서스 하이브리드는 동급 세단 중 가장 조용하다. 조용하고 안락한 성능과 승차감,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이런 연비를 내는 차가 또 있을까 싶다. 물론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모터로 변속기를 사용하다보니, 변속기가 CVT처럼 작동하기 때문. 그래서 렉서스는 이를 E-CVT라 부른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먼저 엔진회전수를 올리고 달려 나가는 감각이 자동변속기와는 다르다. 그래서 처음에는 생경하게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여유롭게 달릴 때에는 이질감을 느끼기 어렵다. 오히려 고요한 실내의 여운을 즐기며 이점을 즐기게 된다.
 

아쉬운 점은 거칠게 몰아붙일 때의 감각이다. 가속이 아주 맹렬하다. 엔진회전수가 오르내리는 토크 컨버터형 자동변속기와는 달리 E-CVT는 높은 회전수를 계속 유지하기 때문. 그래서 엔진 소리가 꽤 들이치는 약점은 있다. 순식간에 속도가 올랐다. 하지만 속도감이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뛰어난 균형이 돋보였다. 일본차 특유의 세팅인 도로 위를 떠가는 감각은 여전하지만, 그 정도는 약간 줄었다. 일본차의 특징 중 하나는 아주 단단한 차체에 부드러운 서스펜션을 조합하는 것. 노면의 충격을 부드러운 서스펜션으로 흡수하되, 단단한 차체를 통해 버텨내는 것이다.

예전 ES도 그랬다. 하지만 올 뉴 ES는 조금 다르다. 승차감이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 여전히 충격흡수력은 최고 수준이다. 요철이 연속되는 구간을 통과했음에도 불쾌한 충격이나 진동을 느낄 수 없었다. 행여나 싶어 쇼크업소버의 움직임을 살폈다. 움직이는 구간은 충분히 여유를 뒀지만, 눌리고 펴지기를 반복하는 과정에 군더더기가 없다. 부드럽게 눌리고 슬며시 펴진다. 그래서 기울임을 크게 느낄 수 없다. 단단하게 중심 잡고 버티는 차체도 제몫을 한다. 렉서스는 올 뉴 ES의 차체 보강을 위해 구조용 접착제의 사용을 크게 늘렸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여유로움과 안정감이다. 좀처럼 이루기 어려운 조합이랄까. 속도를 높여 코너에 진입할 때도 불안감이 없다. 차체는 약간 기울지만, 그 과정이 부드럽고, 기운 뒤에는 제대로 자세를 잡는다. 빠릿하게 움직이며 ‘나 잘하고 있어요’를 강조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저 시종일관 정확하고 안정적이다. 그렇게 신뢰를 쌓는다. 재미란 단어가 살짝 드러날 듯하다. 스릴을 찾아 코너링 중 가속페달을 끝까지 다그치면 주행 궤적이 부풀며 바깥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영민한 VDC가 금세 자리를 다잡고 안으로 이끈다. 이를 기반으로 한계에 가까운 주행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ES는 그렇게 타는 차가 아니다. 올 뉴 ES의 디렉터, 아사히 토시오씨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운전 재미가 뛰어난 IS 250 F-스포트의 세팅을 염두에 두되, 더욱 젠틀하게 세팅했다고. 
 

재미는 쫓되, ES에 어울리는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담아냈다는 이야기다. 핸들링의 재미란 부분에서 접근하면 IS의 느낌은 희미하다. 그렇다고 ES의 핸들링이 부족하단 것은 아니다. 정확히 방향을 잡고 움직이기에 신뢰할 수 있다. 절로 느긋해진다. 원하는 대로 부드럽고 정확하게 움직이기에, 운전자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것을 계승하되, 장점을 더욱 명확히 한 변화라는 생각이다. 기존의 ES300h 또한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차였기 때문에, 이번 변화가 드라마틱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완성도가 올랐다는 생각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의 뒷좌석은 비행기를 떠올리게 했다. 운전석이 기장을 위한 공간이라면, 뒷좌석은 승객을 위한 공간일 테다. 키 180cm의 성인남성이 앉아도 여유로운 충분한 구성이 돋보였다. 뒷창의 전동 차양막을 올리고, 양쪽 창문의 차양막을 올리니 남들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아늑한 공간이 됐다. 시트의 촉감은 부드럽고, 쿠션의 양도 적당하다. 대신 착좌감은 약간 딱딱하다. 승차감은 앞좌석에 비해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 차체 뒤쪽이 단단해져서인지 모른다. 고요한 실내가 어색해 뒷좌석 암레스트의 컨트롤러로 음악을 틀었다. 이지러지는 생각처럼 소리가 마음을 파고든다. 선명한 소리를 내는 렉서스의 마크 레빈슨 시스템은 언제나 만족스럽다.
 

사람이 만든 것에는 철학이 담긴다. 렉서스는 세계시장을 노리는 차지만, 일본의 정취가 분명하다.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어도 이 부분만큼은 변치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심심한 차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렉서스만의 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올 뉴 ES300h는 최고의 차가 된다. 독일차 이상의 품질, 사소한 부분까지 다듬는 꼼꼼함, 자극적이진 않지만 언제나 편안해 스트레스 없는 주행감각, 장인정신을 살려 정교하게 다듬은 실내, 한발 앞선 하이브리드 기술까지. 이런 렉서스만의 특징을 그대로 담은 올 뉴 ES300h에 마음이 간다. 차분하고 상냥해 자꾸 마음이 가는 조용한 그대랄까.  

글 · 안민희 에디터 (minhee@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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