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카이엔 S E-하이브리드, 제도가 발목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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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카이엔 S E-하이브리드, 제도가 발목을 잡는다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8.1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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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구동계로 강력한 성능과 친환경성을 동시에 갖춘 포르쉐 카이엔 S E-하이브리드. 시대에 뒤떨어진 국내 인프라와 제도가 발목을 잡는다

폭넓은 엔진 라인업, 덩치에 비해 스포티한 주행감각, 처음으로 뉘르부르크링을 7분대에 주파한 SUV(터보 S), 온 가족이 짐을 잔뜩 싣고 타도 여유로운 공간, 질 좋은 소재와 훌륭한 조립 품질, 방대한 선택품목, 포르쉐에 고수익을 안기는 효자상품…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포르쉐 카이엔이다. 여기에 완전히 새로운 종의 카이엔이 나타났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V) 카이엔 S E-하이브리드다. 
 

최근 세계적으로 PHV 수가 늘어나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메이커 하나에 PHV 모델이 하나 있을까 말까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카이엔 S E-하이브리드는 918 스파이더와 파나메라 S E-하이브리드에 이은 세 번째 포르쉐 PHV다. 이로써 한때 한두 종의 스포츠카만 팔았던 포르쉐는 전 세계 모든 자동차회사 가운데 가장 많은 PHV 모델을 보유한 메이커가 됐다. 수랭식 수평대향 엔진 시대의 개막이나 1세대 카이엔 데뷔가 아직 20년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마치 선사시대 이전의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지난해 부분 변경을 계기로 카이엔 S 하이브리드가 S E-하이브리드로 진화했다. 이전에는 일반 하이브리드 자동차(HEV)였다. 구동계는 앞서 데뷔한 파나메라 S E-하이브리드와 공통점이 많다. 파나메라와 마찬가지로 V6 슈퍼차저 휘발유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했고, 토크컨버터 방식의 8단 자동변속기를 짝지은 것도 같다. 

배터리 용량은 10.8kWh로, 파나메라의 9.4kWh보다 약간 크다. 구동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파나메라가 뒷바퀴굴림인 반면, 카이엔은 네바퀴굴림이라는 점이다. 이전 카이엔 S 하이브리드와 비교하면, 엔진은 같고 전기모터는 2배 이상 강력해졌다. 새로운 리튬이온 배터리는 이전 니켈수소 배터리(1.7kWh)보다 10배 이상 용량이 늘어났다. 
 

겉모습은 여타 카이엔들과 다르지 않다. 4개의 박력 있는 배기파이프가 달린 것도 같다. 배지와 브레이크 캘리퍼, 계기판 바늘 등에 쓰인 형광 연두색(포르쉐는 ‘애시드 그린’이라고 부른다)이 신세대 구동계를 암시할 뿐이다. 애시드 그린은 포르쉐 하이브리드의 테마 색이다. 
 

카이엔 S E-하이브리드도 다른 포르쉐 차들과 마찬가지로 왼쪽 키 박스에 키를 꼽고 돌려서 시동을 건다. 어딘가 이 차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전통이니 그러려니 한다. 시동을 걸어도 실내는 정적만이 감돈다. 요즘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흔한 탓에 이런 경험이 새롭진 않지만, 포르쉐라서 색다르게 다가온다. 포르쉐라면 시동을 걸었을 때 우렁차게 숨을 토해내며 깨어나는 모습이 으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파워 게이지의 ‘READY’에 걸려 있는 바늘만이 차가 출발 준비를 마쳤음을 알려준다. 
 

시동을 걸면 자동으로 E-파워(power) 모드가 선택된다. 카이엔 S E-하이브리드에는 전기모터만 돌리는 ‘E-파워’, 모터와 엔진을 따로 또는 함께 자유자재로 쓰는 ‘하이브리드’, 적극적으로 엔진을 돌려 배터리를 충전하는 ‘E-차지(charge)’, 주행성능을 우선하는 ‘스포트’ 등 네 가지 주행 모드가 있다. 스포트 크로노 패키지를 선택하면 여기에 스포트 플러스 모드가 추가된다.

초기설정은 E-파워 모드이기 때문에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는 조용히 전기모터로만 움직인다. 이후 견인력이 더 필요하면 엔진이 깨어난다. 전기 주행 시 실내는 매우 조용하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기모터가 내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오는데, 모터 특유의 일반적인 고주파 음과는 미묘하게 다른 미래적인 감각의 기분 좋은 소리다. 
 

카이엔 S E-하이브리드에는 대용량 배터리, 고성능 모터, 냉각장치, 고압 배선들이 추가되면서 270kg이 더해졌다. 그 결과 무게가 2,425kg에 달한다. 2.5톤에 가까운 덩치를 95마력(70kW)의 전기모터 혼자서 움직이기엔 많이 버겁다. E-파워 모드에서는 가속페달을 바닥에 비벼도 가속이 더디다. 전기모터에만 의지할 때는 차가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 

제원표에는 전기모터로 최고시속 125km까지 낼 수 있다고 나와 있지만, 시속 100km 정도가 실용적인 한계다. 그 이상으로 속도를 높이려면, 아주 긴 직선도로와 영원과 같은 시간을 견뎌낼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시속 80km까지는 무난히 가속하기 때문에 시내 주행에는 아쉬움이 없고, 고속도로에서 흐름을 따라가는 데도 문제가 없다. 
 

배터리 완충 시 계기판에는 주행 가능 거리가 18km로 표시된다. 가속페달을 누르는 힘을 잘 조절하면 실제로는 약 2~3km당 1km씩 줄어든다. 용인에서 강남까지 약 30km 거리를 전기만으로 이동하고도 배터리에는 2km의 여유가 있었다. 운전 방법에 따라 30km 이상도 거뜬하다는 얘기다. 

순수 전기차와는 달리 배터리 잔량을 보면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전기가 소진되더라도 엔진으로 주행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PHV가 순수 전기차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카이엔 S E-하이브리드 보닛 아래에는 아우디에서 가져온 V6 3.0L 슈퍼차저 엔진이 들어있다. 
 

5,500~6,500rpm에서 333마력, 3,000~5,250rpm에서 44.9kg·m을 발휘하는 이 엔진은 전기모터의 도움 없이도 카이엔을 이끄는 데 부족하지 않다. 전기모터와 힘을 합하면 최고출력 416마력, 최대토크 60.2kg·m의 힘을 내뿜는다.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5.9초로 박스터보다 0.2초 느릴 뿐이고, 최고시속은 243km다. 응답성이 좋은 슈퍼차저 엔진과 즉각적으로 최대토크를 내는 전기모터로 언제든 쉽게 도로의 흐름을 이끌 수 있다. 

가속페달을 바닥에 붙여 급가속하면 저장해둔 전기에너지를 몇 초간 쏟아내며 터보 엔진의 오버부스트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하지만 그 느낌은 토크 곡선의 영향을 받는 재래식 내연기관과는 완전히 다르다. 특히, 고속에서 가속할 때 순간적으로 앞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가속감이 인상적이다. 
 

90% 이상 전기모터로 운행했을 때 평균연비는 17.9km/L였다. 2.5톤에 육박하고 400마력이 넘는 네바퀴굴림 SUV가 100마력도 안 되는 디젤 소형차 폭스바겐 폴로보다도 연비가 좋다. 하지만 반대로 엔진을 주로 쓰자 평균연비는 8km/L 이하로 곤두박질했다. 연비를 올리기 위해선 전기 사용 비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고, 결국 효율적인 배터리 관리가 필수적이다. 
 

카이엔 S E-하이브리드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세 가지 경로로 충전된다. 플러그를 연결해 외부 전원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거나, 엔진을 발전기 삼아 직접 전기를 생산하거나, 회생제동장치로부터 운동에너지를 회수해 전기에너지로 변환하기도 한다. 엔진이나 회생제동장치를 통해 얻는 전력은 크지 않고, 충전 속도도 더디다. 따라서 PHV의 장점을 살려 외부 전원에 연결해 직접 충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 관공서와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전기차 충전시설을 서서히 늘려가고 있다. 이러한 공공 충전시설에서 산업용 전기를 사용하려면,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이 발급하는 ‘전기자동차 공공충전인프라’ 회원카드가 필요하다. 전기차 소유주는 ‘충전인프라 정보시스템’ 웹사이트(http://evcis.or.kr)에 들어가 회원 가입 후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6월 4일) PHV는 해당되지 않는다. 
 

한국환경공단 자동차환경정책팀에 문의한 결과, 안전성 인증 성능 평가를 통과한 차의 소유주에게만 회원카드를 발급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모델로는 레이 EV, 쏘울 EV, 스파크 EV, SM3 Z.E., i3, 리프 등 현재 국내에 판매되고 있는 주요 전기차들이 있다. 그러나 카이엔 S E-하이브리드 등 최신형 PHV는 해당 모델 목록에서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공공충전인프라 회원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고, 공공 충전소를 이용할 수도 없다. 
 

현재로썬 가정용 전원에 연결해 충전하는 방법뿐이다. 포르쉐가 제공하는 차량 탑재형 충전기(온보드 차저)를 220V 콘센트에 연결하면 3.6kW 모드로 충전을 시작하고, 완전히 충전하는 데 3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스마트폰에 ‘포르쉐 카 커넥트(PCC)’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해두면 배터리 충전 상태나 완충까지 남은 시간, 주행 가능 거리 등을 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PCC를 이용할 수 없다. 
 

카이엔 S E-하이브리드의 유럽 기준 연비는 29.4km/L나 된다. 반면, 국내에선 복합연비 9.4km/L(도심 8.8km/L, 고속도로 10.2km/L)로 에너지소비효율등급 4등급을 받았다. CO₂ 배출량 역시 유럽 기준은 79g/km인 데 반해, 국내 기준은 188g/km로 큰 차이가 있다. 이는 전기만으로 장거리를 달릴 수 있는 PHV의 특성을 무시하고 HEV와 같은 기준으로 측정한 결과다. PHV를 위한 인프라 구축 및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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