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최후의 럭셔리 밴, 에스파스
상태바
르노 최후의 럭셔리 밴, 에스파스
  • 힐튼 홀로웨이 (Hilton Holloway)
  • 승인 2015.08.12 12: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형 르노 에스파스는 죽어가는 프랑스 고급차의 마지막 도전자라 할 수 있다. 과연 프랑스가 럭셔리카의 매력을 되살릴 수 있을까? 

프랑스 럭셔리카 업계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자동차계는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영광을 되찾으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같은 길을 뱅글뱅글 돌았을 뿐이다. 프랑스는 여전히 세계 패션계와 보석 가공업의 선두주자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프랑스 럭셔리카를 되살리려는 수많은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도대체 그 까닭이 무엇일까?

2차 대전 직후 프랑스는 ‘퐁스 플랜’에 착수했다. 1945년 프랑스 정부는 중앙집권적 경제계획에 열을 올리면서 자동차공장 재건과 현대화를 갈망했고, 해군 엔지니어 폴-마리 퐁스에게 자동차산업 ‘합리화’ 감독권을 맡겼다. 여기서 ‘합리화’란 생산 활동을 임의로 배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대가로 자동차 메이커들은 퐁스의 처방을 받아들여야 했다. 먼저 22개 승용차 메이커와 28개 트럭 메이커의 일부를 통합했다. 나아가 어느 메이커가 어떤 차종을 만들어야 한다는 정부의 지시가 떨어졌다. 르노와 시트로엥은 독자적인 생산 활동을 할 만큼 크다고 봤다. 하지만 푸조는 출력이 일정 범위 안에 들어가는 전후 모델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아울러 정부는 강철 공급량을 통제하여 자동차산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더하여 정부는 복잡한 출력세를 새로 만들었다. 결국 메이커는 소형 엔진 개발에 목을 매달게 됐고, 소형 엔진은 소형차 생산으로 이어졌다.
 

2차 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들라즈, 호치키스, 부가티와 탈보라고를 비롯한 프랑스 럭셔리카 브랜드는 전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하지만 전후의 정부 계획에 따라 이들은 수출용 모델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유럽시장의 태반이 폐허가 되고 미국 진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가 돌파구를 찾기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용감한 신세계’를 갈망하는 절대 권력을 틀어쥔 각국 정부가 유럽대륙 재건에 뛰어들었다. 때문에 1930년대에 머물고 있는 프랑스 브랜드와 코치빌더들의 기술과 미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가 직면한 문제는 만만치 않았다. 국내 메이커는 출력세에 묶여 대용량 최신 엔진을 공급할 수 없었다. 그 결과 2차 대전 이전까지 프랑스가 지배했던 럭셔리 시장이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 따라서 이전의 럭셔리 브랜드는 망각의 세계로 사라지고, 시트로엥은 프랑스의 럭셔리카를 재발명하는 일에 착수했다. 대단히 혁신적인 1955 DS는 전후 10년간 시트로엥 기술진이 정력을 쏟은 산물이었다.

DS는 20년간 연명했고, 그에 못지않게 개성 있는 후계차 CX는 1991년 숨을 거뒀다. 그 뒤를 각진 XM이 이었고,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대형 C6이 등장했다. 하지만 C6은 겨우 24,000대를 세상에 내놓은 뒤 2012년 시장을 떠났다. 
 

시트로엥의 력셔리카는 DS가 보여줬듯이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반면 르노는 1970년대 중반 20과 30 해치백으로 대형차 시장에 돌아왔다. 심지어 전후 최초의 V6 엔진(푸조+볼보와 함께 엔진 메이커를 차렸다)을 얹고 나왔다. 1984년 르노는 30을 바탕으로 대형 25 해치백을 만들었다. 실내의 눈길을 끄는 모더니즘과 공간이 유럽의 중역형 모델이 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시트로엥의 DS 이후 모델처럼 25는 사프란 해치백으로 변신했고 판매량은 뚝 떨어졌다.
 

당시 르노의 디자인 총책 파트릭 르 퀘망은 대형차 재생계획에 박차를 가했다. 2차 대전 이전 프랑스 모델이 자랑했던 혁신적이고 아방가르드적 정신을 주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벨사티스'와 '아방팀'은 비참한 실패를 맛봤고, 기능적이고 공간이 넓은 '에스파스'만이 살아남아 사실상 프랑스 자동차계의 플래그십으로 자리 잡았다. 1984년 고도로 기능적인 ‘모노박스’로 태어난 에스파스는 다시 르퀘망의 휘하에 들어가 4세대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지금 르노의 사내 전문가들마저 모노박스 MPV는 급속히 시들어가는 콘셉트라고 말한다. 르노에 따르면 기존의 에스파스 고객들은 여전히 에스파스의 DNA로 밝은 실내와 안락함을 바라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더 큰 운전 재미와 '강력한 정서'를 찾는다고 한다. 
 

그 결과, 기묘한 혼합형 럭셔리카가 태어났다. 한마디로 SUV와 MPV 디자인이 섞였다. 실제로 에스파스의 하반부는 SUV 디자인(대형 휠과 높아진 승차고)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유리 면적이 큰 실내는 그대로 지켰고 높은 운전 위치와 탁 트인 윈드실드를 자랑한다. 더불어 60년 전의 DS처럼 에스파스도 4기통 엔진과 뒷바퀴굴림을 받아들였다.
 

신형 에스파스는 독자적인 럭셔리카를 개발하려는 프랑스의 길고도 힘겨운 전후사를 반영하고 있다. 현대적인 산업 디자인, 혁신과 독창성을 추구하는 강철 같은 의지를 형상화했다. 하지만 DS, 벨사티스와 아방팀처럼 에스파스는 지나치게 프랑스적이다. 정통 SUV도 아니고, 클래식한 프리미엄 왜건도 아니다. 대체로 프랑스다운 개성을 추구했으나 안타깝게도 많이 팔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퐁스 플랜과 대형 엔진을 얹은 대형차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헷갈리는 자세가 프랑스 자동차산업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프랑스는 2차 대전 이전 럭셔리카 디자인의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는 세계 자동차산업의 이익이 두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되찾으려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 밖의 모든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지배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실로 역설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글 · 힐튼 홀로웨이 (Hilton Holloway)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