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의 새로운 비전, 전기차 레이스 포뮬러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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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스포츠의 새로운 비전, 전기차 레이스 포뮬러 E
  • 제레미 테일러 (Jeremy Taylor)
  • 승인 2015.06.0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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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레이스 포뮬러 E는 모터스포츠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고 자랑한다. 과연 재미있을까? 그 실상을 밝히기 위해 싱글시트 레이서의 운전대를 잡았다

미국의 홈스테드-마이애미 스피드웨이는 언제나 나스카(NASCAR) V8 엔진의 포효와 6만5천 팬의 환호성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전기경주차를 몰고 속삭이듯 서킷 마셜을 지나갔다. 모든 마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포뮬러 E 머신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플로리다 마셜들은 머리를 긁적였다. 850마력 헤미 엔진의 우렁찬 소리와 테일파이프에서 빠져나오는 불길은 어디로 갔을까? 포뮬러 E는 귀청을 찢는 폭음을 토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속 230km의 콕핏에서는 순수한 흥분이 온몸을 감쌌다.
 

나는 런던에서 선샤인 스테이트로 불리는 플로리다까지 7,240km를 날아갔다. 미국에서 포뮬러 E 머신을 몰아보는 영국 최초의 기자가 되기 위해서. 미국은 자유의 땅이지만 엄격한 경기규정에 막혀 마이애미 도심을 펜스로 막아 설치한 도로 서킷을 달릴 수 없었다(마이애미 ePrix의 승리는 니콜라스 프로스트에게 돌아갔다. 프랑스의 F1 영웅 알랭 프로스트의 아들이다).

그 대신 나는 3.54km의 홈스테드 도로코스를 달렸다. 나스카 서킷의 뱅크 오벌 일부가 들어 있는 구간. 14개 커브와 전속 코너가 들어 있는 서킷은 나와 같은 풋내기의 피를 끓이기에 충분했다. 나는 피트레인을 전속 돌파했다. 그러자 내 멘토인 전직 포뮬러 1 드라이버 넬슨 피케 주니어가 충고했다. “카본 브레이크를 조심해. 너무 쉽게 잠기니까. 서서히 가열하고, 코너에 들어갈 때 일찍 브레이크를 밟아야 해.”
 

포뮬러 1 머신과의 대조는 뚜렷했다. 헬멧을 뒤흔드는 바람 탓에 머리를 제대로 가누기 어려웠다. 콕핏은 중세 고문실의 장비들이 모두 갖춰져 있는듯 했다. 그리고 코너의 정점을 돌파할 때마다 팝아이의 팔뚝 힘을 끌어내느라 기를 썼다.

2001년 포뮬러 1 머신을 몰아본 적이 있다. 그때 난 용솟음치는 파워와 싸우느라 몸부림쳤다. 지금 몰고 있는 포뮬러 E 머신은 3초에 시속 97km를 돌파한다. F1에도 참가하는 윌리엄스가 개발한 800kW 배터리는 광적인 재미를 안겨줬다. 심지어 2단 헤어핀의 뒤늦은 브레이킹에도 18인치 미쉐린 타이어는 트랙을 힘차게 거머쥐었다. 힘껏 액셀을 밟으며 직선코스에 들어가자 떨어져 나온 타이어 조각 몇 개가 내 헬멧과 HANS(머리+목 보호장치)를 후려쳤다.

나는 5랩째에 들어갔다. 착탈식 스티어링에는 패들이 4개밖에 없었지만 훈련이 필요했다. 너무 바싹 붙어 있었기 때문에 잘못 건드릴 위험도 있었다.
 

위쪽 2개 패들은 4단(최신 포뮬러 E 머신은 5단) 고정 기어박스를 통해 가감속을 조작한다. 아래쪽 2개 패들은 포뮬러 E만의 독특한 장비다. 아래 오른쪽 패들은 제동 시 에너지 재생기능을 맡는다. 머신의 배터리팩을 재충전하고 에너지를 보전한다. 그리고 네번째 패들에는 팬부스트(FanBoost)라 적혀 있다. 팬들이 경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온라인 투표장치다. 최다득표를 얻은 드라이버는 팬부스트를 작동시켜 30kW(40마력)의 파워를 더 얻고, 최고 270마력으로 달릴 수 있다. 추가 파워 사용 시간은 5초에 불과하지만 추월 확률이 낮은 좁은 서킷에서는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중앙 LCD 모니터 아래에는 3개의 로터리 다이얼이 달려 있다. 2개는 제동 시 에너지 재생 기능을 맡고, 나머지 하나는 레이스 중 토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콕핏 안은 정말 조용했다. 액셀을 바닥까지 밟으면 아득히 먼 곳을 날아가는 전투기 소리가 났다. 하지만 모두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저속에서 트랜스미션이 내는 소음은 브리티시 레일랜드(영국 기차) 기어박스를 닮았다.

포뮬러 1과 포뮬러 E에서 적어도 이것 한 가지만은 똑같았다. 무더위에 땀이 나고 불편했다. 5점 벨트를 풀자 내 방화내의와 레이싱 수트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고, 기회를 준다면 기꺼이 5랩을 더 달릴 자신이 있었다. 그 뒤 나는 피케에게 포뮬러 E와 포뮬러 1 머신이 얼마나 닮았느냐고 물어봤다. 현재 피케는 차이나 레이싱 소속 포뮬러 E 드라이버로 활약하고 있다. 피케의 설명을 들어보자.
 

“두 머신은 같아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둘을 비교할 수는 없다. 포뮬러 1 기술은 70년간 발전해왔다. 그러나 12개월 전만해도 포뮬러 E 머신은 태어나지도 않았다. 두 머신은 핸들링 기능이 비슷하다. 하지만운전 테크닉은 완전히 다르다. 포뮬러 E는 시가지 서킷에서만 경기를 하고 전천후 레디알 타이어한 세트를 쓸 수 있을 뿐이다. F1과는 달리 타이어 교환 작전보다는 에너지 보전에 전력을 집중한다.”

피케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콕핏 내부도 다르다. F1의 경우 KERS 세팅을 조작하고, 윙 각도를 조절하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포뮬러 E는 에너지 보전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특히 성능에 영향을 주는 배터리팩 주변의 온도에 신경을 쓴다.”
 

피케가 포뮬러 E에 합류하기 전 몰아본 유일한 전기차는 테슬라였다. 2시간 동안 시승한 것이 전부라고 한다. “그전에는 전기차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포뮬러 E에 사용하는 기술이 도로용 전기차 개발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포뮬러 E가 훨씬 순수한 레이스 방식이다. 드라이버가 팀의 끊임없는 피드백에 조종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포뮬러 E 드라이버는 일단 서킷에 나가면 독자적으로 작전을 세운다.” 피케가 소감을 밝혔다.

포뮬러 E는 창설과 동시에 모터스포츠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무려 50개 도시가 2015~2016 시즌의 후보지로 나섰다. 올 시즌 열 번째 레이스는 6월 27일 런던의 배터시 e-Prix로 절정에 이를 것이다. 50만 명이 넘는 팬들이 현장에서 관람하고, 수천만 명이 TV를 시청한다.
 

현재 모든 포뮬러 E 머신은 모두 같은 스펙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E 시리즈에 뛰어들어 전 세계 첨단 메이커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배터리 수명은 길어지고, 스피드는 더욱 빨라진다. 그리고 피트레인으로 이끌려 오는 팀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누가 알까? 머지않아 F1이 어깨 너머로 1인승 모터스포츠의 장래를 재검토할지를….

■ 포뮬러 E의 놀라운 사실들

1. 포뮬러 E에는 현재 10개 팀과 20명의 드라이버가 활약하고 있다. 한 레이스는 40랩. 드라이버는 경기 중반 피트레인에 들어가 완전히 충전된 똑같은 2호차를 몰고 후반을 달린다.
 

2. 포뮬러 E 머신의 사운드는 80데시벨까지 올라간다. 일반 자동차보다 약간 더 크다.
 

3. 글리세린 발전기로 E 머신을 충전한다. 글리세린은 바이오디젤 제품의 부산물로 탄소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얼마나 순수한지 사람이 마실 수도 있다.
 

4. 각 팀은 머신 1대에 스페어 휠 2개를 쓸 수 있다. 그중 한 개는 앞쪽에, 나머지는 뒤쪽에 써야 한다. 이 같은 규정으로 운영비를 크게 줄였다.
 

5. 포뮬러 E는 BMW i8을 세이프티 카로 받아들였다. 트랙에서 유일하게 엔진을 함께 쓰는 차량이다.

글 · 제레미 테일러 (Jeremy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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