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캘리포니아 T, 생동감 넘치는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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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캘리포니아 T, 생동감 넘치는 GT
  • 닉 캐킷 (Nic Cackett)
  • 승인 2015.05.1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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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V8 터보 엔진을 얻은 캘리포니아는 여전히 페라리의 영혼을 지니고 있을까?

영국 〈오토카〉에서 ‘목적에 알맞은 것’ 이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는 없다. 〈오토카〉가 내리는 모든 결론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자동차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들은 엄격한 수치로 따질 뿐이다. 그들은 소규모 전문가 집단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찾고 구현하며, 비교하는 일에 전념한다. 그리고 화성 탐사선의 임무를 계획하듯 섬세하게 제품 포지셔닝에 관해 고민한다. 실패할 때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다만 폭탄이 터진 후 생기는 버섯구름처럼 뚜렷한 흔적을 남기는 대신, 작은 어깻짓으로 실망을 표현할 뿐이다.

이전의 페라리 캘리포니아가 그런 식이었다. 페라리 최초의 완전 접이식 하드톱과 듀얼클러치 자동변속기, 프론트 배치 V8 엔진 등 ‘페라리 최초’라는 수식어가 뷔페처럼 모여 있었다. 하지만 이 뷔페에는 정말 먹음직스럽고 공들여 만든 음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일부러 만들어낸 느낌이 역력했다.
 

캘리포니아 후속 모델 개발작업도 페라리로서는 또 다른 ‘최초’의 의미가 있다. 거의 30년 만에 처음으로 과급 엔진을 쓴 것이다. 터보차저는 고출력을 더 쉽게 이끌어낼 수 있지만, 캘리포니아가 갖고 있던 문제점은 아니다. 캘리포니아에게 부족한 것은 성능보다 설득력 있는 개성이었다.

여러가지 부분에서 더 강력해진 V8 엔진이 문제점을 해결했는지(또는 희석시켰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페라리 캘리포니아 T를 두 라이벌과 함께 시승해보기로 했다. 첫 상대는 GT로서의 당당함과 전천후 능력을 비교할 수 있는 포르쉐 911 터보 S 카브리올레, 다음 상대는 운전의 재미 측면에서 비교할 수 있는 원초적인 차, 애스턴 마틴 V12 밴티지 S 로드스터다.
 

비교의 시작
런던과 웨일즈 주를 잇는 M4 고속도로를 포르쉐 911 터보 S 로 달리는 중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차들 가운데, 911 터보 S만큼 편안한 친구 같다가도 금세 폭발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차가 또 있을까? 911 터보 S는 560마력의 수평대향 6기통 트윈터보 엔진에 포르쉐의 최신 비대칭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어우러져 있다. 911이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점잖은 차에서 슈퍼바이크를 무색케 할 가속력을 발휘하는 차로 바뀌는 것은 자신감 넘치고 매끄러우며 매우 능숙하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해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탓에, 나는 인상을 쓰며 애스턴 마틴으로 옮겨 탔다. 그리고 차를 바꿔 타자마자, 911의 ZF제 PDK 변속기가 얼마나 뛰어난 성능을 지녔는지 더욱 분명히 느껴졌다. 듀얼클러치 변속기의 매끄러움과 밴티지에 쓰인 스포트시프트 7단 변속기의 차이는 엄청나게 컸다. 애스턴 마틴은 윗단으로 올릴 때 대단히 빠르지만, 자동 모드에서 아랫단으로 내려갈 때에는 차체가 머리를 흔들 정도로 덜컹거린다.
 

변속기와 맞물린 AM28 엔진은 훌륭하다. 12개의 화려한 실린더는 포르쉐보다 토크가 많이 부족하지 않고, 573마력의 최고출력은 호사스럽다. 덕분에 밴티지의 무게는 가볍게 넘길 수 있지만, 이따금 거칠어지는 승차감이나 이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나이는 어쩔 수 없다. 거슬리게 삐걱거리는 실내는 그렇다 치고(수제작이라 그렇긴 하다), 불친절하게 배치된 스위치들, 불편하기로 이름난 LCD 스크린은 차의 가격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들이다.

마골(Magor)에서 갈아탄 캘리포니아 T는 모든 면에서 앞선 모습이다. 독자적인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던 페라리가 드디어 모든 기능을 갖춘 6.5인치 터치스크린을 달았다. 심지어 선택사항으로 애플의 카플레이(CarPlay)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다. 아울러 하드톱과 안락의자 같은 좌석은 장거리 주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페라리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물론 아주 좋아하기는 어려운 세팅이다. 하지만 다행히 스티어링 휠과 엔진 회전계는 기대만큼 만족스럽다. 스티어링 휠은 여자 친구의 손보다 더 잡기 좋고, 계기판은 8,000rpm이 되어서야 빨간색으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최신 3.9L V8 터보 엔진은 어떻게 다루든 관계없이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그중 4분의 1은 첨단 기술의 특이함에서, 4분의 3은 전통적인 플랫 플레인 크랭크 방식 V8 구조에서 비롯된다. 엔진은 아주 많은 공을 들여 만든 만큼 그 자체만으로도 정교하다는 느낌이 든다. 회전수는 흥분하듯 올라가고, 회전수가 올라가는 만큼 우렁찬 소리도 커지면서 코르셋을 입은 사람처럼 세련되게 호흡한다.

이 엔진에 쓰인 가변 과급압 제어(Variable Boost Management) 시스템은 대단히 영리한 소프트웨어로, 높은 단 기어에서 회전을 점진적으로 높인다. 이 시스템은 고속도로에서 매우 유용하다. 뛰어난 F1 듀얼클러치 변속기의 최고단 기어비가 (대배기량 엔진의 넉넉함을 지닌) 밴티지와 대등한 수준의 초고속 정속주행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승차감 면에서는 캘리포니아가 밴티지를 능가한다. 밴티지는 지붕을 떼어내면서 스포츠카다운 특성이 상쇄됐지만 캘리포니아는 그렇지 않다. 더불어 페라리의 최신 자기유동식 댐퍼의 역할도 크다. 컴포트 모드에서 요철에 대응하는 캘리포니아의 움직임은 여기 모인 차들 가운데 가장 그랜드 투어러의 성격에 가장 가깝다. 그에 비하면 911은 마치 장판 위를 달리는 느낌이다. 충격흡수와 소음억제는 놀랍지만, 가벼운 스티어링 때문에 손에 계속해서 진동을 준다. 캘리포니아는 한 손으로 스티어링 휠을 쥐고도 정확하게 가고자 하는 곳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다.

본격적인 시승
그러나 녹아내린 눈과 지저분한 겨울의 흔적이 도로를 뒤덮고 있는 브레컨즈 산 밑자락에 도착하자 전혀 다른 장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만 이 차들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피렐리 타이어(캘리포니아에는 겨울용 소토제로, 밴티지에는 여름용 코르사)가 끼워져 있어, 핸들링을 완전히 공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캐터필러가 필요할 만큼 까다롭지는 않았다.
 

지붕을 열고 운전석에 앉으면, 엄청난 돌풍 속의 작고 조용한 주머니 속에 담긴 기분이 든다. 그리고 목 근육에 계속 힘을 주게 된다. 캘리포니아의 폭력에 가까운 가속력을 제대로 표현하기엔 0→시속 100km 가속 3.1초라는 수치로는 부족하다. 스티어링, 브레이크, 지능형 섀시, 다이내믹 마운트, 디퍼렌셜, 클러치, 구동력 제어 시스템 등, 차를 달리게 하는 모든 것의 대단한 능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 차의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이 될 것이다. 본능적으로 흥분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운전 실력만큼이나 담력도 커야 한다.

반면, 밴티지를 운전할 때 필요한 용기는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무모함 쪽에 가까울 것이다. 이상적인 주행조건에서조차 밴티지는 성능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보다, 일부러 이끌어내야 하는 차의 성격을 나타낸다. 트랙 주행에 어울리는 타이어를 끼우고 석양이 내리는 도로를 달리는 동안, 밴티지는 노면에 대단히 조심스럽게 대응하도록 반응을 전달한다.
 

캘리포니아는 모든 면에서 믿음직하기 때문에, 더욱 빠르게 달리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물론 타이어 특성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차의 세팅 방식 역시 많은 영향을 주었다. 페라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변함없이 날카로운 주행특성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차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분명하다. 이런 주행 특성이 현 세대 페라리의 특징을 대변한다.

눈이 내린 노면에서도 페라리는 코너를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려는 모습이 탁월하게 발휘됐다. 비교하자면 밴티지의 70% 수준의 노력만 들여도 훨씬 더 수월하게 달릴 수 있다. 놀랄 만큼 공을 들인 F1-트랙 시스템 덕분이다. 911만큼 확실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V8 엔진의 최고출력은 7,500rpm의 높은 영역에서 나오고, 터보 랙은 포르쉐에서 느껴지는 것보다 훨씬 적다고 할 수 있다. 차의 성능을 90% 정도 끌어냈을 때 겨우 느낄 수 있었던 단점은, 밴티지에서 드러난 자연스러움을 캘리포니아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다는 것과, 상대적으로 더딘 차체 움직임과 가벼운 스티어링, 든든함이 부족한 차체 앞쪽이 균형을 다소 위태롭게 한다는 점이다.
 

최종 결론
모두 훌륭하고 개성 있는 차들이지만, 그만큼 순위를 가리기는 어렵다. 출시된 지 오래됐고, 거칠다는 것이 단점인 밴티지는 눈이 남아 있는 노면에서 고전했다. 더 좋은 주행 조건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은 밴티지가 지닌 본질적인 카리스마와 쌓아놓은 특허의 한계를 모두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점이 밴티지 고객의 폭을 근본적으로 좁혀놓는다. 물론 차의 성격에 자신을 맞춘다면, 날씨와 도로 상태가 모두 뛰어난 곳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면서 멋지게 달릴 것이다. 특히, 12기통 엔진이 빚어내는 화려한 느낌은 대신할 차가 없다.

하지만 현실 세계로 돌아와 1년 내내 사용할 차를 생각하면, 페라리 캘리포니아로 마음이 기울 듯하다. 최종 분석 과정에서 캘리포니아는 타오를 듯 밝게 빛을 발하지는 않았지만, 최신 V8 엔진과 날카로운 핸들링을 지닌 덕분에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밴티지가 이따금 운전자의 애를 태우는 것과 달리, 캘리포니아는 페라리 본연의 색깔을 지닌 제품으로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하지만, 캘리포니아가 밴티지를 눌렀던 것과 같은 기준에 의해 캘리포니아는 911에게 밀렸다. 시승을 하면서 우리가 911을 두고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무기’였다. 그만큼 강렬했고, 차의 성격을 제대로 표현하기에 가장 알맞은 단어였다. 나는 다음날 차를 운전해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날씨가 도왔다면 911을 몰고 런던은 물론, 네덜란드 앤트워프와 독일 뒤셀도르프까지도 즐겁게 달려갔을 것이다. 물론 차체 강도를 약하게 만드는 접이식 루프가 아니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결국 모든 시승이 끝난 뒤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내가 선택한 차는 911이었다.

글 · 닉 캐킷 (Nic Cackett)
사진 · 스탠 파피오르 (Stan Pap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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