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투아렉, 기대 그대로의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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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투아렉, 기대 그대로의 만족
  • 이경섭
  • 승인 2023.03.23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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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딱 한 대만 골라야 한다면 리스트 상단에 올려놓고 싶다

웬만하면 다 아는 이야기: 투아렉(Touareg)은 북아프리카 사하라 지역의 부족 이름이다. 이름부터 터프하다. 20년 전, 새로운 SUV를 개발하면서 폭스바겐은 투아렉으로 프리미엄 브랜드 반열에 펄쩍 뛰어오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투아렉은 성공했고 대중차의 상징 폭스바겐의 이미지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투아렉은 브랜드 최상위 모델로 폭스바겐의 품질 가치를 견인하는 얼굴이다.

20년 전, 투아렉을 처음 시승했다. 기억으로는 첫 국내 공식 미디어 시승이었는데 오래된 원고 파일을 뒤져보니 2003년 여름이었다. 비닐을 방금 뜯어낸 투아렉을 끌고 당시 오프로드 마니아의 성지 유명산에 갔고 감동한 나머지 시승기 마지막을 이렇게 장황하게 썼다.

‘젖은 풀밭과 물웅덩이, 굵은 바윗돌이 깔린 급경사, 미끄러운 진흙 내리막길에서 투아렉의 성능을 만끽했다. 한 바퀴에만 접지력이 걸리면 동력을 집중시켜 위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능이나 최고 45도 경사까지 오를 수 있는 등판 능력은 시험해볼 기회가 없었지만, 쿵쾅거리는 산길과 미끄러운 숲길을 스트레스 없이 달려본 것만으로 충분히 투아렉은 감동스러웠다. 오프로드용 타이어가 아닌 온로드용 타이어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차체에 온통 진흙을 묻힌 채 돌아오는 길, 붐비는 올림픽 대로에서 느끼는 뭇 차들의 시선이 더없이 뜨거웠다.’

당시엔 오프로드 성능을 경험하는 데 중점을 뒀기에 반짝이는 새 차를 몰고 거침없이 돌밭과 진흙탕 길로 돌진했다. 그때는 그게 자연스러웠다. 비록 그때도 1억 원이나 하는 차였더라도 말이다.

 

개발 당시, 모든 브랜드가 뛰어든 SUV 전쟁의 후발 주자로서 폭스바겐이 투아렉에 건 기대는 컸다. 정통 오프로더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럭셔리 세단의 편안함은 물론, 스포츠카의 핸들링과 달리기 성능을 그대로 제공한다는 원대한(또는 무리한) 목표. 욕심이 컸는데 투아렉의 열망은 미국의 유명 자동차 전문지 선정 ‘2003 최고의 럭셔리 SUV’에 오르며 의미 있는 첫 성과를 거뒀다. 매체가 밝힌 선정 이유는 ‘투아렉과 경쟁할 만큼 빠른 차 혹은 오프로드 성능이 비슷한 차, 투아렉만큼 편안한 차는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부분을 만족시켜주는 모델은 투아렉뿐이다’라는 지극한 상찬이었다. 브랜드가 원한 바로 그 목표. 지난 20년 간 SUV는 오프로더에서 라이프스타일 비클로 옮겨가는 추세였고 지금은 완전히 그런 세상이 되었다. 그렇더라도 모든 도로, 모든 주행조건에서 모든 탑승자를 만족시키는 성능은 고급 SUV로서 가져야 할 기본 조건이며 투아렉은 이 원칙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프리미엄이 되어야겠다.’ 이 명확한 목표 아래 탄생한 투아렉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완성도를 높여왔다. 폭스바겐 그룹 내에서 포르쉐 카이엔, 아우디 Q7을 포함하여 최근에는 벤틀리 벤테이가와 람보르기니 우르스까지 플랫폼을 함께 쓰며 당초 가졌던 과도해보일 만큼 우람하던 어깨 힘도 적절히 누그러뜨렸다.

프리미엄 SUV의 한 자리를 차지하려 애쓰던 폭스바겐은 초기에 V10 TDI 엔진을 얹은 모델을 내놓기도 했다. 지금이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프리미엄을 향한 폭스바겐의 의지와 기세는 대단했다. 이도 모자라 한때 W12 6.0L 450마력 가솔린 모델을 500대 한정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지금도 인상적인 장면으로 떠오르는 것이 1세대 투아렉 V10 5.0 TDI 모델이 보잉 747 점보 제트기를 견인하는 이벤트 동영상이다. 힘 세고 강인한 차라는 이미지를 굳건하게 각인시킨 이벤트에 쓰인 투아렉은 최고출력 313마력에 최대토크 76.5kg·m 로 시중 판매모델과 동일한 모델이었고 국내에는 2006년 선보였다.

독일 출장길, 군부대를 개조해 만든 오프로드 코스에서 오프로드 성능을 진하게 체험했고, V10 엔진을 얹은 차 조수석에 타고 드레스덴에서 볼프스부르크까지 달릴 때 가졌던 웅장하고 호쾌한 기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강력한 터보 디젤의 폭발적 가속감으로 아우토반을 거칠 것 없이 달리는 내내 유지하던 평온한 안정감. 고속열차에 앉아 여행하는 기분이랄까. 시속 200km 이상의 속도로 계속 달리는데도 긴장과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다. 물론 운전대를 잡은 본사 홍보팀 젊은 여성이 실연의 아픔을 스피드로 풀어버렸다고 고백하는 바람에 다같이 웃음을 터뜨린 기억도 있다. 이렇듯 개인의 추억을 길게 소환하는 이유는 투아렉에 대한 친근한, 그리고 인상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다. 브랜드가 플래그십을 통해 소비자에게 기대하는 효과가 이런 것이다.

 

2023년형 투아렉은 기존 모델에 다양한 옵션을 추가해 상품성을 높였다

2010년 2세대 풀체인지를 거쳐 현행 모델은 2018년 뉴욕오토쇼에 선보인 3세대다. 오늘 시승하는 2023년형 투아렉은 프리미엄 SUV의 기본 조건에 충실한 기존 모델에 새로운 심장을 얹고 상품성을 강화했다는 말로 요약된다. 효율적이고 환경친화적인 트윈 도징 테크놀로지가 적용된 V6 3.0 TDI 엔진을 탑재하고 기존 모델 대비 다양한 안전장비와 편의사양을 추가해 상품으로서의 매력을 듬뿍 담았다는 게 폭스바겐의 설명이다.

디자인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기존 프레스티지 트림에 들어갔던 다양한 옵션이 기본으로 적용되었다. 이전 최상위 모델이던 V8 4.0 TDI에만 적용되던 IQ 라이트 LED매트릭스 헤드램프와 LED 주간 주행등이 대표적이다. 이 첨단 조명 시스템은 첨단 인터랙티브 라이팅 시스템으로 총 256개의 LED 모듈이 멀티펑션 카메라와 GPS에서 수집되는 정보와 주행 속도 등을 종합해 주행상황에 최적화된 조명을 제공한다. 도로 상황과 주변 환경, 낮과 밤, 기후조건을 고려해 자동으로 상향등과 하향등의 조명을 최적화해 더 먼 곳을 더 밝게 비춰주는 ‘다이내믹 라이트 어시스트’, 코너링 시 차량 진행 방향에 따라 헤드라이트를 비춰주는 ‘다이내믹 코너링 라이트’ 그리고 전방 및 후방 다이내믹 턴 시그널이 포함된다.

한 해만 지나면 묵은 느낌이 날 만큼 디자인 변경이 심한 요즘 이미 5년이 지난 모델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외관 디자인이 깔끔하다. 투아렉은 원래부터 균형미가 좋았다. 세대를 지나며 세련미가 더해졌다. 앞면은 크롬 그릴이 분위기를 압도하면서 당당한 인상을 강조한다. 프런트 그릴과 매끈하게 연결된 LED 매트릭스 헤드라이트는 폭스바겐의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자리잡았다. 스포티하고 유연한 측면 라인과 우람한 휠 하우징은 차를 한층 볼륨감 있게 만들고 후방 L자형 라이트 역시 차폭을 넓게 강조해 존재감을 더한다. 최고 사양인 R-Line 모델에는 전면과 측면에 R-Line 배지, 블랙 라인이 적용된 에어 스트립 라인과 R-Line 범퍼 디자인 및 21인치 스즈카(Suzuka) 블랙 알로이 휠을 적용해 다이내믹한 감성을 더하고 있다.

왕년의 V10, V8 엔진의 추억을 떠올리며 페달을 밟아본다. 폭발적이라기보다는 매끈한 느낌. 이 큰 덩치를 한 번에 쭉 뽑아주는 쾌활함이 대단하다. 3.0 TDI 엔진에 8단 자동변속기 조합, 최고출력 286마력. 공차중량 2271kg이니 마력당 무게는 약 7.9kg. 차고 넘치는 힘이다. 낮은 rpm에서 최대토크를 뽑아내는 특성답게 갑갑함이 없다. TDI 엔진의 매력. 이번 모델에 적용된 엔진에는 두 개의 SCR 촉매 변환기가 장착된 혁신적인 ‘트윈도징(twin dosing) 테크놀로지’ 시스템이 적용돼 질소산화물을 최대 80%까지 줄여준다고 한다.

 

제원상의 복합연비는 10.8km/L이지만 ‘컴포트’ 모드와 ‘스포츠’ 모드를 주로 쓴 2박3일 시승에서 300km 가량을 달린 후 실 연비는 12km/L 이상이었다. 연료 탱크 용량이 90리터나 되기 때문에 가득 주유하면 1000km 이상을 달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어디든 훌쩍 떠날 여행에 이만한 파트너가 또 있을까 싶다.

속도계를 보면 빠른데 빠르게 느껴지지 않는 건 수준 높은 주행 안정성 덕이기도 하지만 한층 신경 쓴 정숙성 때문이기도 하다. 디젤인데 저속에서도 조용하다. 힘이 충분해 가속페달을 자꾸 밟는데 고속에서도 노면 소음과 바람소리가 거슬리지 않는다.

285/45 R 20 타이어를 앞뒤에 장착했다. 4륜구동이며 뒷바퀴가 조향에 간여하는 4륜조향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앞바퀴와 함께 뒷바퀴 스티어링 각도를 조절하는 ‘올 휠 스티어링’ 시스템은 시속 37km 이하의 저속에서는 앞바퀴와 뒷바퀴가 반대방향으로 조향돼 차량 회전 반경이 줄고 조작성이 향상된다. 시속 37km 이상에서는 앞바퀴와 뒷바퀴가 같은 방향으로 조향돼 고속에서도 민첩성과 주행 안정성을 담보한다. 당연하게도 실제 달리기에서 체감되는 부분이다. 골목길과 도심에서 차를 다루기 편하고 고속에서 우람한 차체를 이리저리 몰아갈 때 차체 움직임을 가늠해보면 핸들링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즉각적인 차선 변경과 예리한 코너링. 좀 더 밀어붙여도 되겠구나 싶은 안심 또는 신뢰. 운전이 편안하고 재미있다.

프리미엄급 안전장비가 대거 추가된 것도 포인트. 전 트림에 기본 적용된 운전자 보조 시스템 ‘IQ.드라이브’의 대표적인 시스템인 ‘트래블 어시스트’는 카메라 및 센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레인 어시스트 같은 주행 보조 시스템을 통합해 능동적으로 주행을 보조해준다. 시속 0 ~ 250km 구간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사실상 주행 상황 전구간에서 개입한다. 따라서 운전자의 피로도를 낮춰 사고 위험성을 낮춘다.

 

실내는 넓고 시원시원하며 거주성이 좋다

250m 전방까지 차와 자전거, 보행자를 감지하고 교차로 전방 사각지대와 차선 변경 시 보이지 않는 영역의 차를 감지하고 경고하며 필요에 따라 차를 세우고 스티어링을 보조해주는 기능을 포함해 사고 위험을 감지하면 안전벨트를 조여주고 창문과 선루프를 닫아 탑승자를 보호하는 안전 기능이 기본 탑재됐다.

프레스티지 트림부터는 360도 뷰 카메라를 비롯해 스티어링, 기어변속,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조절이 모두 자동으로 진행되는 ‘파크 어시스트 플러스’에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으로 주차와 출차가 가능한 ‘리모트 파킹 어시스트’ 시스템이 추가되는데,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면 블루투스로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에어 서스펜션은 주행 모드에 따라 차체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 도로환경과 주행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매우 유용한 기능이다. 센터콘솔에 있는 로터리 스위치로 ‘드라이빙 프로파일 셀렉션’ ‘에어 서스펜션 컨트롤’을 활성화하면 전면 디스플레이를 통해 모드를 설정할 수 있다.

드라이빙 프로파일 셀렉션으로 선택한 주행모드에 따라 총 5가지 레벨 모드를 지원한다. 로드(Road) 레벨 모드에서는 시속 120km 이상 주행에서 공기저항을 줄이고 핸들링 성능을 돕기 위해 차체가 15mm 낮아지고, 오프로드(Off-Road) 레벨 모드에서는 차체 높이를 25mm 높여주며, 진창과 바윗길 등 험난한 지형에서도 주행이 가능하도록 차체를 70mm까지 높일 수 있는 오프로드+(Off-Road+) 레벨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SYNC 모드’를 선택하면 주행 환경에 따라 자동으로 최적의 차체 높이를 세팅해준다. 여기에 앞뒤를 각각 25mm, 40mm 낮춰주는 로딩(Loading) 레벨 모드를 선택하면 무거운 짐을 싣고 내리기 편하다.

 

‘트윈도징 테크놀로지’가 적용된 V6 3.0 TDI 엔진이 탑재됐다

언제부터인가 외관 스타일보다 내부 인테리어가 중요해졌다. 가만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데, 자동차가 하나의 방, 움직이는 개인 공간으로서 가치가 커졌기 때문인 듯하다. 운전할 때의 조작 편의성뿐 아니라 운전하지 않을 때의 거주성(Dwelling ability) 즉, 쾌적하고 넓은 실내와 감각적인 인테리어, 오디오와 조명,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같은 감성적 요소는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차에 타면 일단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실내도 넓지만 인테리어가 시원시원하고 개방감이 크다. ‘이노비전 콕핏'(Innovision Cockpit)이라 이름한 운전자 맞춤형 디지털 인터페이스는 상당히 직관적이다. 12.3인치 디지털 콕핏과 한국형 내비게이션을 포함한 15인치 대화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윈드실드 헤드업 디스플레이로 구성된 운전석은 시각적 만족감과 함께 사용 편의성이 좋다. 꼭 필요한 물리적 스위치만 간결하게 구성하고 손을 디스플레이에 가까이 하면 활성화되는 핸드제스처 기능으로 다양한 조작 스위치를 전부 디지털로 전환했다.

앞좌석 시트는 18방향으로 조절이 가능해 가장 편하고 안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고 통풍과 히팅은 물론 8가지 모드로 서비스하는 호사스런 마사지 기능도 포함돼 있다. 전 트림에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과 앱커넥트, 파노라마 선루프가 적용됐으며, 프레스티지 모델부터는 4존 클리마트로닉 자동 에어컨이 들어간다. 요즘 중요한 어필 요소인 앰비언트 라이트는 30가지 컬러로 제공된다.

신차 시승은 대개 한 나절, 어떤 경우에는 몇 시간에 그쳐 아쉬운데 2023년형 투아렉과는 모처럼 2박3일을 함께했다. 오래 전, 1세대 투아렉을 만났을 때의 경탄은 ‘폭스바겐이 이렇게까지?’였던 기억인데, 이제 투아렉에서 자연스레 누리게 된 건 기대한 그대로의 만족이라고 할까. 이런 게 프리미엄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합리적이라거나 가성비라거나 하는 말로 감상을 맺기에 표현이 한참 부족하다. 달릴 때도 달리지 않을 때도 아쉬움 없이 편안하고 만족했다. 아쉬움은 그저 반납의 아쉬움. 1억을 손에 쥐고 딱 한 대 고르라 한다면 고민 없이 리스트 상단에 올리고 싶다.

 

Fact File | Volkswagen Touareg 3.0 TDI Prestige

가격(VAT 포함) 9782만7000원 크기(길이×너비×높이) 4880×1985×1710mm
공차중량 2271kg 엔진 EA897 evo3 V6 2967cc TDI
최고출력 286마력/3500~4000rpm 최대토크 61.2kg·m/1750~3250rpm
변속기 8단 자동 서스펜션(앞뒤) 모두 멀티링크 브레이크(앞뒤) 모두 V디스크
연비(복합) 10.8km/L CO2배출량 180g(g/km) 타이어(앞뒤) 285/45 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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