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강남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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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강남 1970
  • 신지혜
  • 승인 2015.03.3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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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크라운, 포드 M20 : 욕망의 뒤틀린 분출


종대와 용기. 두 사람은 서로에게 모든 것이었다. 가족을 포함해 소유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두 청년에게 서로는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대상이며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이며 하나뿐인 마음의 지지대였다. 가진 것이 없고 돕는 손길도 없어 무허가 판잣집에서 떨며 지내고 넝마를 주우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는 두 사람에겐 그래도 꿈이 있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따뜻한 집에서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을 거라는, 그러고 싶다는 소박하고 원초적인 꿈.


어느 날 무허가 판잣집은 철거되고 오갈 데 없던 종대와 용기는 우연히 야당의 선거유세를 방해하라는 의뢰를 받은 용역 무리에 끼어든다. 겁을 먹고 주춤거리던 종대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해지자 본능적으로 각목을 휘두르고 이 모습이 길수의 눈에 띄게 된다. 그 소동의 와중에 종대는 용기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종대는 대가를 치르고 조직을 떠난 길수와 함께 지내며 생전 처음 ‘가족’을 갖게 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종대가 민 마담의 눈에 띄면서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되는 강남의 땅을 주무르게 되고 3년 전 헤어진 용기와 조우한다. 이제 서로의 조직에서 서로를 지키며 서로 의기투합한 종대와 용기의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유하감독의 ‘거리 3부작’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를 거쳐 〈강남 1970〉까지 이어지는 행보에서 우리는 감독 자신이 고교시절에 가졌을 법한 (혹은 1970년대의 남고생들이 가졌을 법한) 일종의 환상과 로망을 엿보게 된다. 또래 그룹에서 영웅시되는 캐릭터의 전형, 누군가의 조직과 곁에서 그 조직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뒤섞인 욕망을 거쳐 이제는 돈과 권력이 뒤엉키고 뒤틀린, 아름답지 않은 겹겹의 사회 속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두 청년의 이야기다. 결국 몰락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수순을 보여주며 누구라도 쉽게 갈 수 없고 누구라도 (사실은)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주는 매혹을 소년의 심경으로 보여준다. 그 길이 어떤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 불을 보고 뛰어들 수밖에 없는 나방처럼 종대와 용기는 모든 것을 담보로 욕망을 분출해 버린다.
 

만약에, 종대가 민 마담과 함께 ‘반지를 돌리기 위해’ 신문사 차량으로 위장한 토요타 크라운을 타지 않았더라면 그의 운명은 그가 걸어간 그 길과는 다른, 조금을 빗나간 각도의 다른 길로 접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나이를 먹고 언제나 꿈꾸었던 따뜻한 방이 있는 화목한 가족이 있는 집에서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용기가 유 의원과 함께 포드 M20을 타지 않았더라면 그의 운명은 그가 지나간 그 길과는 다른, 조금을 다른 방향의 다른 길로 접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나이를 먹고 언제나 꿈꾸었던 온기가 있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즐겁게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70년대. 이제 막 강남의 땅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던 그 시대. 신진에서 조립 생산하던 토요타 크라운은 가짜 취재차량이라는 껍데기를 가지고 종대가 접어드는 위험한 길의 입구가 되었고 현대자동차가 조립 생산하던 포드 M20은 함께 용기에게 장밋빛 미래와 탄탄한 대로를 속삭이며 용기가 선택하는 나락의 길의 입구가 되었다.

1970년대. 누군가에겐 아련한 추억의 시간이며 누군가에겐 먼먼 역사 속의 시간이며 누군가에겐 욕망과 야망의 시간이고 누군가에겐 아무런 상관없는, 그저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이었을 그 시대. 그때 종대와 용기가 있었다.

글 · 신지혜 (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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