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킷에서 만난 GR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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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에서 만난 GR86
  • 나경남
  • 승인 2022.06.0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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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GR86이 등판했다. 게임을 시작할 때다
사진 김성원 Vehicle Photography

머지않은 미래에 자동차 소유자를 ‘운전자’라고 말하지 않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그저 ‘승객’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자동차에서 차와 운전자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거나 그 성취에 대해서도 논할 일이 없어질 수도 있다. 물론 스포츠의 영역에서는 그래도 여전히 우리가 ‘운전자’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만난 GR86은 운전 재미를 원하는 운전자를 위한 차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했다. 어쩌면 점점 희미해져 가는 '운전의 즐거움'이라는 본능을 깨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2세대로 구분되는 GR86은 당연히 현대적이며 이전 세대와 완전히 차별화되는 새 모델이다. 2012년 토요타 86의 국내 출시 이후 딱 10년 만이다. 너무나 오랜만이기 때문일까? 새로운 GR86을 기다렸던 이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GR86이 정식으로 공개된 이후, 사실상 6개월가량 남아있는 2022년의 판매 목표 수량은 이미 모두 계약되었고 그 이상으로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사전 계약한 이들이 GR86을 이미 시승했을 가능성은 많지 않겠지만 믿는 구석은 확실해 보인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GR86만의 차별화된 요소들이 가장 결정적이다. 자연흡기 방식의 박서 4기통 엔진과 경량화된 차체, 그리고 수동 6단 변속기의 스포츠카라니. 스포츠카의 가치는 결국 스포츠 주행에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토요타코리아에서 이번 시승회를 서킷에서 준비한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수동변속기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더구나 GR86은 명성 있는 모델이자, 스포츠 드라이빙을 위한 그야말로 순수 스포츠카다. 수동변속기를 사용해서 서킷을 달린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도 독특하고 특별한 일이다.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긴장감이 생긴다. 인스트럭터와 함께 동승하여 가이드를 받고 스티어링 휠을 건네받았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스스로 꽤나 경직된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바퀴를 채 돌기도 전에 긴장감과 부담감은 가볍게 날아갔다. 수동변속기 조작에 대한 부담이 덜어진 것은 상당 부분 클러치감과 변속감이 부드럽고 매끄러우면서도 정확했기 때문이다. 클러치 페달을 밟아 동력을 끊고 볼 타입 변속기 레버를 빠르게 움직여 변속을 마치고 곧바로 클러치 페달을 놓고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발랄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해주는 자연흡기 엔진의 매력은 확연히 드러난다. 

GR86의 공차 중량은 겨우 1285kg. 가벼운 무게 덕분에 경쾌함이 돋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엔진 배기량이 이전 세대보다 커지면서 토크가 더 높아진 것이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의 차체 움직임 변화와 운동 성능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한다. 엔진 회전수 7000rpm에서 발휘되는 최고 231마력은 사실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단순한 가속감이나 속도 그 자체에서는 터보 엔진을 사용하는 경쟁 차종과 비교해서 앞선다는 느낌을 받긴 어려웠다. 주행을 하는 동안 속도보다는 엔진 회전수를 체크하면서 각 구간과 그 구간들의 연결에서 최적화된 기어와 엔진 회전수, 그리고 변속 타이밍을 찾아내고자 하는 그 자체가 훨씬 즐거웠다. 

달리는 순간, 집중력을 발휘하여 가능한 모든 상황들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주행을 위해 직접 엔진 회전수를 매칭하여 수동으로 기어를 변속하는 그 모든 과정 그 자체가 어쩌면 스포츠의 본질이 아닐까 싶었다. 적어도 국내에서 판매되는 이 새로운 GR86에서는 수동변속기 이외에 선택은 없다. 과감한 결정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서킷 내에서의 주행은 사실 거의 모든 부분이 예상을 크게 웃돌만큼 인상적이라고 느꼈다. 스티어링 조작감은 물론 전반적인 핸들링은 후륜구동 차답게 참 맛깔나다. 겨우 몇 바퀴에 불과한 트랙 주행이었지만 조금씩 주행이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 또한 이 핸들링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빠르고 기민하며 가볍게 회전해나가는 특성 덕분에 아직 주행 감각을 끌어올릴 영역이 충분히 남아있다고 느껴졌다.  

차츰 페이스가 올라갔다. 연석을 밟아나가면서 좀 더 공격적인 라인을 그렸다. 여기서 또 한 번 놀라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 흔히 스포츠카의 서스펜션을 생각하면 딱딱하다고 느낄 만큼 단단한 세팅을 갖는 것이 일반적인데, GR86은 오히려 상당히 부드러우면서 표용력이 높았다. 연석을 깊게 밟고 떨어지는 순간에도 그 충격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서스펜션 자체뿐 아니라 섀시 전반의 유연함도 돋보였다. 

오해가 있을 순 있겠지만 유연함과 강성이 서로 대치되는 개념은 아니다. 사실 섀시의 강성과 유연함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같은 방식으로 얘기했을 때, GR86의 섀시 감각은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고 느꼈다. 물론 한계 지점까지 몰아붙이고 그 결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수한 핸들링 감각만으로도 섀시의 완성도는 충분히 평가할 만한 것이다. 

서킷 주행 이후에 진행했던 슬라럼을 포함한 짐카나 주행과 드리프트 체험 세션 등도 GR86의 매력을 더 돋보이게 하는 요소였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드리프트는 직접 주행하는 방식이 아닌 인스트럭터와 동승해 간접 체험하는 방식이었고, 짐카나 주행은 좀 더 짧은 구간에서의 움직임을 체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짧은 가속 구간을 지나 이어진 슬라럼에서는 이전 세대 보다도 더 낮게 깔린 차체의 무게 중심 덕분에 차체는 상당히 안정적이면서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짐카나 주행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작은 원을 연달아 두 번 그리고 또 하나의 원을 그리면서 쭉 탈출하는 숫자 8과 6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GR86의 이름을 떠올려 설정한 코스라니 그 의미도 적절했다. 짐카나 주행 테스트는 또한 퍼포먼스 파츠들을 적용한 버전과 그렇지 않은 일반 버전을 번갈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차량 외부에 장착된 파츠들을 비롯해, 엔진룸 쪽에서도 섀시 강성과 유연성을 제어하는 퍼포먼스 댐퍼가 장착됐다. 길어야 40~50초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양쪽의 차이를 확실하게 짚어내기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짐카나 주행 테스트의 장점은 역시 기록 계측으로 그 성과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역시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퍼포먼스 파츠의 장착 유무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확실했다. 

새롭게 출시되는 GR86의 미디어 테스트에서 집중한 것은 역시, GR 브랜드로 전개되는 새로운 86의 중심 가치인 ‘스포츠'였다. 차체의 디자인이나 스타일링, 주행 보조 기능이나 인포테인먼트 등에 대한 정보가 따로 제공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스포츠 주행을 위한 도구로서, 본인의 의지와 노력을 기울여 자동차를 더 잘 다룰 수 있길 원하는 ‘운전자'에게 GR86이 어필할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서킷에서 GR86은 마치 나와 한 몸처럼 움직이며 '스포츠'를 보여주었다. 재미있게 놀았다. 

 

TOYOTA GR86

가격(VAT 포함) 4030만 원(Standard), 4630만 원(Premium)
크기(길이 x 너비 x 높이) 4265 x 1775 x 1310mm 휠베이스 2575mm 무게 1545kg
엔진 자연흡기 수평대향 4기통2387cc, 가솔린 변속기 수동 6단
최고출력 231마력 / 7000rpm 최대토크 25.5kg·m / 3700rpm
연료 탱크 용량 50L 연비(복합) 9.5km/ L 타이어(앞/뒤) 215/40 R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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