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존 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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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존 윅
  • 신지혜
  • 승인 2015.03.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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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작 - 포드 머스탱 보스 429

한때 그의 이름은,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에게 의뢰된 임무는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고 그에게 불가능한 임무란 없었다. 5년 전 그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톡톡한 대가를 치른 뒤 자신의 세계를 떠나 평범하고도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다시 이 세계로 끌어들이기로 작정한 것처럼 한꺼번에 그의 것을 빼앗아간다. 사랑하는 헬렌, 그녀가 남기고 간 강아지, 그리고 그의 차. 존 윅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남자는 그래서 복수를 다짐하고 묻어두었던 무기를 꺼내들고 옛 동료인 비고의 아들 요제프를 찾아 나선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느와르다. 무겁게 깔린 공기 위로 언뜻 언뜻 나타나는, 바짝 긴장한 얼굴들, 수년간 훈련된 민첩한 몸놀림, 아주 짧은 시간의 틈도 허용되지 않는 긴박감. 범죄조직을 움직이는 보스, 그리고 그의 철없으며 경거망동하는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만용과 허세, 그리고 그로 인해 틀어져버린 운명의 향방 속으로 다시금 뛰어드는 주인공.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이 타올라버린 복수심과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이 옥죄어드는 촉박함으로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바로 존 윅의 자동차였다. 1969년식의 포드 머스탱 보스 429. 강렬하고도 인상적인 이 차를 몰며 그는 슬픔을 삭이고 자신의 마음을 다진다. 머스탱은 그에게 이전 세계와의 결별, 사랑하는 아내와의 추억, 삶과의 연결고리이자 자신을 발산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운명의 그날, 아내를 잃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그때, 아내가 남긴 강아지에게 막 마음을 쏟아버린 그때 주유소에서 요제프 일당과 마주친다. 분명 어디선가 못된 짓을 하고 돌아오는 길임이 뻔해 보이는 요제프 일당은 BMW 750Li를 타고 나타나 시끄럽게 떠들다가 존 윅의 자동차에 눈길을 둔다. 탐욕스런 눈으로 기고만장한 태도로 요제프는 존 윅에게 차가 얼마냐고 묻고 파는 차가 아니라는 대답을 들은 후 입가에 비열하고도 묘한 미소를 남긴다. 그리고 그날 밤 그들은 존 윅의 집에 침입한다. 요제프 일당의 무지와 허세, 악과 욕심은 그렇게 존 윅을 이 세계로 다시 불러낸다.

존 윅의 포드 머스탱 보스 429. 미루어 짐작컨대 그 차는 존 윅에게 단순한 차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부기맨’을 처단하러 보내는 자였을 정도로 강력했던 그가 그 긴장감과 고통과 어두운 삶의 무게를 버텨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아무도 없는 툭 터진 공간에서 마음껏 굉음을 울리며 질주하도록 머스탱을 풀어놓는 것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차는 헬렌과의 추억이 가득 담긴 차였겠지.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가 아플 때 그녀가 어디론가 바람을 쐬러 가고 싶을 때 그녀를 병원에 데려갈 때 아마도 머스탱과 함께 했을 것이다. 그러니 머스탱 보스는 존 윅에게 단순한 차 이상의 의미, 자신의 삶의 일부분과도 같은 무엇이지 않았을까.
 

아니, 아니다. 어쩌면 존 윅에게 머스탱은 빌미가 되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헬렌의 죽음으로 모든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 때,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어디엔가 쏟아야 했을 바로 그때 요제프가 그의 머스탱을 보았고 탈취했으며 그에 대해 사적인 복수라는 이름으로 존 윅은 자신의 내면에서 폭발하는 무언가는 쏟아부을 상대를 찾아냈는지도 모르겠다. 머스탱은 그러기 위한 빌미였는지도 모르겠다.

글 · 신지혜 (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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