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로 그린 레이싱의 명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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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로 그린 레이싱의 명장면들
  • 오토카코리아 편집부
  • 승인 2022.07.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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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브룩스는 1959년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우승자인 스털링 모스가 두 선수를 모두 따라 잡으면서 로이 살바도르를 앞섰다<br>
1959년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스털링 모스가 경쟁자를 따돌리고 있다

그림을 시작하는 데 늦다는 건 없다. 전직 광고 감독이자 드라이빙 인스트럭터인 닐 콜린스(Neill Collins)가 증명한 것처럼 말이다. 

닐 콜린스는 은퇴 이후, 수채화 화법을 익혔다. 그리고 최근 로열 자동차 클럽(Royal Automobile Club, 이하 RAC)에서 열린 자동차 아트 전시회에서 그의 화려한 작품들이 인기를 끌며 판매되었다. 

어린 시절 콜린스의 학업 전망은 부모님을 실망시켰다. 그가 원하는 건 자동차, 비행기, 그리고 카우보이를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 콜린스의 아버지는 자동차에 대한 드라마틱한 경험을 가진 은행 매니저였다.

“아버지는 종종 불을 끄러 나갔죠” 콜린스가 회상했다. 

“한 번은 아버지의 라일리가 몰에서 연료가 떨어졌을 때, 아버지는 성냥을 사용해 연료 탱크가 비었는지 확인했습니다. RAC 밖에서 불이 붙었는데, 운전기사가 뛰쳐나와 자신의 장갑으로 불길을 잡았죠. 이후에 또 한 번은 정원에 있는 내 페달 차에서 올려다보니 아버지의 스탠다드가 불이 붙어 있었습니다. 전자기 문제였던 거 같은데 나무 바닥을 홀라당 태워 먹었죠.” 

1955년 그랑프리에서 메르세데스-벤츠 W196을 탄 모스가 그의 멘토 판지오를 쫓아 모나코 거리를 누볐다

1962년 굿우드로 여행을 떠나면서 자동차 경주에 대한 가르침이 시작됐다. ”흥분이 시작되기도 전에 좌절을 맛봐야 했어요“ 그가 말했다. ”굉장히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털링(모스)이 사고 났을 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짐작했죠. 부모님은 내가 그저 과잉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다음날 그 일은 신문 머리기사로 나왔습니다. 나는 굿우드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히스토리컬 레이싱은 매번 좋아지고 있습니다. 멤버스 미팅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죠.“ 

수채화는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빛을 표현하는 데 좋다. 1957년 루엔 페독에서의 페라리 팀처럼<br>
수채화는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빛을 표현하는 데 좋다. 1957년 루엔 페독에서의 페라리 팀처럼

15세에 다니던 학교를 떠나, 콜린스는 서튼과 침 스쿨 오브 아트 앤 크래프트에서 멋진 4년을 보냈다. 그리고 런던 칼리지 오브 프린팅 대학에 갔다. “타이포 그래프가 저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미대 졸업 이후 명성 있는 디자인 그룹에서 일도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런던은 즐거웠죠. 캐스트롤과 버마 오일 등 자동차 업계 잘나가는 기업이 우리 클라이언트가 됐죠.” 

콜린스는 결국에는 모터스포츠 스폰서십에 전문성을 갖춘 CSS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에이전시에 합류하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배리 길과 함께 앤드류 메리오트와 포토그래퍼 마이클 티와 함께였다. “마치 천국 같았죠. 꿈에 그리던 포뮬러 원에서도 러브콜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실버스톤 피트에 우리 부스도 있었어요. 당시 클라이언트는 로터스와 윌리엄스 만셀/피아젯 에라였죠.”

블루버드-프로테우스 CN7과 도날드 캠벨은 이미 1964년 호주 레이크 에어에서 신기록 달성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관리자 역할이나 컴퓨터로 개발하는 일 등은 콜린스에게 맞지 않았다. 콜린스는 50세에 말 그대로 잉여 직원이 됐다. “드라이빙 인스트럭터가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됐죠. 그때 재능 있는 예술가인 친구 수 쿡(Sue Cook)이 수채화를 소개해줬습니다. 처음에는 형편없었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죠.” 

“2016년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제 직업이 되어야 하고 그 일에 매진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원한 전부였어요. 그리고 지금은 작곡하는 일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타지오 누볼라리는 1930년식 타르가 플로리오의 캄포펠리체를 통해 알파 6C-1750을 발사했다<br>
타지오 누볼라리는 1930년식 타르가 플로리오의 캄포펠리체를 통해 알파 6C-1750을 발사했다

“수채화는 효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물감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까다로운 매개체죠. 지금은 목표의 1/3 정도 왔다고 할까요? 풍경화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그림을 화폭에 담는다는 것은 모든 게 빛과 분위기입니다. 1950년대와 60년대 초기는 제가 좋아하는 소재의 시대입니다. 안타깝게도 후안 마누엘 판지오는 놓쳤지만, 짐 클락은 나의 영웅이었습니다. 그의 타고난 능력과 겸손함은 남다르죠. 크리스탈 팰리스는 우리의 주요 활동구역이었습니다. 돌아가 보니 거대한 포드 갤럭시가 한때 레이스를 펼쳤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죠.”

오랫동안 클래식은 콜린의 미래가 됐다. “나와 내 동생은 모두 TR을 갖고 있었어요. 웨스트필드는 재밌었지만, 젖은 노면에서 까다로웠습니다. 요즘 저는 닛산 370Z를 즐기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셸리 월시 힐 클라임을 타고 올랐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TR6를 가져보는 게 소원입니다.” 

판지오의 마지막 전성기: 페라리의 마이크 호손과 마에스트로의 마세라티 250F의 피터 콜린스의 화려했던 1957년 독일 GP 격돌
판지오의 마지막 전성기: 페라리의 마이크 호손과 마에스트로의 마세라티 250F의 피터 콜린스의 화려했던 1957년 독일 GP 격돌

 

ⓒ월간 오토카코리아 2월호 I classic & sports 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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