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카 126년 역사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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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카 126년 역사를 돌아보다
  • 크리스 컬머(Kris Culmer)
  • 승인 2022.03.08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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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창간 이후, 오토카는 자동차 산업의 프리즘을 통해 세계 주요 사건들을 기록해 왔다. 크리스 컬머가 126년 간의 출판물을 들춰봤다
1987 페라리 F40 : “페라리의 왕관을 노리는 자들은 훌륭하고 진솔했다. 마라넬로는 여전히 가장 빨리 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갖고 있다. 발표에서 제품 총책 니콜라 마테라치는 ‘F40은 현재와 과거 사이 이상적인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피아트가 일 카포라토레에게 바치는 그 이상의 헌사는 생각하기 어렵다.”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통해 현재를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이 말은 그냥 유머에 불과하다. 2020년 3월 침울한 나의 트위터를 살펴보면 코로나19 펜데믹이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분석해야 하는 지를 알려준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오토카>에 있는 우리 모두가 내뱉는 일일 보고 형식의 기사들이 전부 역사적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펜데믹에도 불구하고, 사실 전쟁이나 오일 쇼크, 핵심 자동차 출시, 기술적 혁신, 회사 파산, 노동자 해고, 그리고 법규 강화는 주요 제조사에서 볼 수 있던 것들이다. 위의 모든 단어는 우리가 보도했던 기사에 포함돼 있다. 지워질 수 없는 사실의 가치로서, 그리고 동시대의 시각으로 해석되어 있다. 

 다임러 4hp는 우리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첫 번째 장기 시승이다
 다임러 4hp는 우리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첫 번째 장기 시승이다

1897년의 헨리 스터미가 됐다고 상상해 보자. 2년 전 그는 <오토카>를 출간했다. 새로운 다임러를 몰아보고 여러 가지 원리를 알게 됐다. 오른쪽 발 아래에서 4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조향을 위해 틸러를 잡아당긴다. 제법 괜찮은 상상이다. 더욱 정교하게, 더욱 파워풀하게, 편안하고 빠르게,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이동 수단으로 활용했던 말보다는 더욱 순종적인 자동차를 만날 수 있다. 

1914년 <오토카>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차를 군용으로 빌려주도록 설득했다
1948년 그리고 모터쇼는 활기를 되찾았다

“자동차를 타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라고 그는 매거진에 쓸 것이다. 첫 번째 장기 시승기에서 말이다. “아직 타보지 않은 모든 이들은 자동차의 편안함에 기뻐할 거라고 표현한다. 그 누구도 실용적인 물건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에 자동차를 사는 것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자동차의 급격한 발전, 이를 중심으로 확장한 산업, 전 세계의 무차별적 변화, 수백만 사람들의 해방 – 또는 보이지 않는 환경파괴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백만 년 전에는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불과 몇 년 만에 지나갔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스터미는 고작 3세대밖에 거치지 않았다. 그리고 <오토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발행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은 이 잡지의 일생에서 처음으로 겪은 주요 사건이다. 전쟁이 선포되자마자 우리는 평소처럼 책을 발간하지 않고 말 그대로 한 무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운전자들이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이냐고 군에 물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독자들에게 “빠르고 편리하게 군과 물자를 이동하는 기계”를 빌려줄 수 있겠냐는 양식을 만들어 돌렸고 이를 키치너 경에 전달했다. 

1948 모리스 마이너 : “뉴 모리스 마이너는 박수갈채를 받을 거다. 완전히 새로워진 디자인에 잘 만들어진 8마력 엔진과 4단 기어 박스를 얹었다. 2도어에 4인승, 넓어진 차체로 뒷좌석에 3명이 앉을 수 있다. 앞쪽에 독립 서스펜션이 달렸고 주행 질감도 생동감이 넘치며 매우 훌륭하다.” 
뛰어난 기술 도면이 추가되며 <오토카> 로드테스트의 신뢰도가 높아졌다

평화가 찾아오고 자동차도 민주화를 이뤘고 <오토카>의 판매 부수도 급증했다. 1928년 우리의 첫 로드테스트가 시작됐을 때 자동차 업계에서는 오스틴 세븐과 같은 대량 생산 및 저렴한 가격의 차들이 출시됐다. 성능, 승차감, 핸들링이 당시 취재에 우선 순위는 아니었다. 그저 차가 잘 굴러가고 고장도 나지 않으며 저렴한 가격이면 충분했다. 

저자의 기술적, 설계적, 그리고 매우 상세한 기술 도면과 더불어 우리가 쓴 글들은 신빙성을 얻었다. 모터스포츠는 최고 수준의 레이싱 드라이버가 썼다. 거기 노트에는 ”루이스 경, 2022년 이후의 계획은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적혀 있었다. 

또 다른 주요 이정표는 1939년에 일어난다. 그리고 이후 5년 동안 우리는 파시즘 타도를 위해 독자들을 인도하려 노력했다. WAAF(공군여성보조대)이 하는 일부터 블리츠(런던 대공습) 속 어둠 속에서 어떻게 운전해야 하는지, 그리고 사용하지 않고 처박혀 있던 차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등 국내 전선에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한 모든 것을 다뤘다. - 폭탄으로 발생한 불길을 찾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상기시켜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했다. 

 미니는 1959년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70년대 중반, 그리고 우리는 병든 자동차산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힐먼 민크스: 그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만들지 않는다

1950년대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영국 자동차 산업은 아마도 황금기를 거쳤다. 자동차 가격은 모든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가격으로 싸졌으며, 모터 레이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인기를 끌었다. 항상 다룰 수 있는 취재 소스들은 넘쳐났다. 

미니는 1959년에 출시됐다. “트라이엄프 헤럴드에 이어 이번에는 영국 자동차 회사에서 두 번째로 뛰어나고 독창적인 소형 자동차 디자인이 나왔다”라고 당시 에디터는 이렇게 적었다. “알렉 이시고니스와 그의 팀의 만들어낸 850cc 설계는 기본적으로 독창성이 강하면서도 친근하다. 엔지니어든 비전문가든 이 차를 보고 모두 감탄했다. 로드테스트는 많은 이들을 기쁘게 해줄 것이라 장담한다.”

1932 RAC 랠리: 모터스포츠 뉴스를 진심으로 다루기 시작한 시점이다<br>
1932 RAC 랠리: 모터스포츠 뉴스를 진심으로 다루기 시작한 시점이다

1961년 제네바 모터쇼가 개최됐다. “재규어 팬들은 회사에 새로운 2인승 스포츠카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패셔너블하면서도 퍼포먼스까지 갖춘, 그리고 장거리 여행에 필요한 널찍한 공간도 포함해서 말이다. 동등한 중요도로 최고시속과 도심에서 활개를 펼 수 있도록 유연성과 민첩함도 요구 사항에 들어간다. 이런 요구는 이제 새로운 ‘E’ 타입을 탄생시켰다. 기존 재규어 정책에 따라 신차 가격은 제공되는 성능에 비해 매우 낮다.”

람보르기니 쿤타치는 페라리 테스타로사를 승부차기에서 만났다 

1970년대는 여러모로 영국의 위기였다. 1968년 영국의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브리티시 레이랜드로 합병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솔직히 브리티시 모터 홀딩스는 엉망이다. 시장 점유율이 감소하고 가까운 미래에 기대할 것이 거의 없는 혼란에 빠졌다. 도널드 스톡스 경은 도움을 청하기엔 이미 때를 놓쳤다. 브리티시 레이랜드는 이제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제조사와 수출 기업이 됐다. 이제 우리는 이 회사가 잘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잘못된 경영과 투자, 세계적인 석유 파동, 인플레이션과 불안한 정치적 문제들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진 이러한 문제들로 1975년 브리티시 레이랜드는 파산했고 국유화를 선언했다. 거의 300만 파운드의 공금이 투입되면서 이 회사는 완전히 사라졌다.

<오토카>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1973년 인쇄업자들의 파업으로 인해 적어도 20주 동안 뉴스스탠드에 신문이 오르지 않았다. <모터> 매거진과 같은 경쟁사도 시장에 진입하며 경쟁 우위를 약화시켰다. 

재규어 F1 머신이 파가니 존다를 만났을 때 진행한 트윈 테스트 
랠리 레플리카는 1990년 황금기를 누렸다

매거진은 1980년대 초 회계사들에게 목숨까지 위협받았으나 과감한 재창간으로 다시 한 번 구독자 수가 늘어났다. 1990년대에 새로운 세대의 젊은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바통을 넘긴 뒤 새로운 경쟁자인 <카위크>가 수백만 파운드의 투자를 감행하며 효율적인 집필이 가능해졌다. 황금기를 맞이한 것이다. 

다음 큰 도전은 인터넷 시대의 도래였다. 오랫동안 영유해온 인쇄 매체에 대한 사형 선고였다. 그렇게 대중들은 믿었다. 그리고 그중 많은 부분이 현실이 됐다. 하지만 <오토카>는 인내심을 갖고 뉴스와 리뷰를 실을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그리고 2010년 후반에 이르러서는 매거진 판매와 지속적으로 독자들을 확보하며 갖은 풍파를 이겨냈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자동차 세계가 급변하는 만큼 우리는 발 빠르게 그 소식들을 전하고 독자들을 이끌어 갈 것이다. 여러분의 손자 손녀들이 자율주행, 전기차, 공유 포드, 그리고 언제나 연결되어 있는 모빌리티를 다룬 8000번째 로드테스트를 볼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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