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계의 록스타, 톰 차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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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계의 록스타, 톰 차르다
  • 고탐 센(Gautam Sen)
  • 승인 2022.03.2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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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이탈리안 자동차 디자이너 톰 차르다(Tom Tjaarda)는 인상 깊은 자취를 남겼다
차르다 사진 - 레이톤 피스오르

공상에 빠져있던 톰 차르다는 문득 자신이 기차를 잘못 탔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떡 일어나 승객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겠다는 생각을 버린 그는 여행 가방이 따라오기를 바라며 창문 밖으로 기어나가 토리노로 바로 갈 기차를 찾으러 갔다. 4시간 후 피에몬테의 수도에 도착한 차르다는 포스트 르네상스의 웅장한 포르타 누오바 역에서 나와 유령 도시로 들어갔다. 지친 그는 가식적이지는 않지만 점잖게 보이는 호텔 리거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방에 들어가고 나서는 즉시 녹아 떨어져 죽은 사람마냥 잠을 잤다.

 

그가 남긴 걸작, 데 토마소 판테라 

다음 날 아침, 차르다는 호텔 안내데스크에 카로체리아 기아로 전화를 걸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월요일까지 휴가 중”이었다. 그리하여 1958년 8월 18일 월요일 아침, 스티븐스 톰슨 차르다 반 스테르켄부르크, 간단히 줄여 톰 차르다는 카로체리아 기아에서 사전 연락 없이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40세 안팎의 나이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이 회사의 전설적인 사장 루이지 세그레는 차르다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제 당신이 올 때가 됐어요. 우리는 당장 당신이 할 프로젝트가 있어요.”

 

피아트 124를 포함해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 중 하나다

1934년 7월 23일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차르다는 지난 60년간 토리노의 자동차 디자인 거장들 중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미시간에서 이탈리아까지 이어지는 차르다의 가파른 궤도와 자동차 디자인 경쟁의 세계로 깊이 뛰어든 이야기는 그야말로 전설이다.

1939년 부모가 이혼했을 때 차르다는 아직 다섯 살도 되지 않았다. 누나 엘리자베스(1984년 세상을 떠난 베티), 어머니 아이린 톰슨과 함께 검소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대한 그의 기억은 대부분 단란한 가족과 함께 보낸 행복한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그가 가족의 조기 해체로 고통을 받았는지 물었을 때, 차르다는 항상 자신이 그러한 감정들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했고, 아버지의 부재를 자연스레 대신하는 매우 결단력 있는 여성인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피난파리나에서 작업한 코베어 쿠페

아버지 이름은 요한 ‘얀’ 차르다 반 스테르켄부르크였는데, 나중에는 그냥 존 차르다로 불렸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전 가장 중요한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다. 네덜란드계 미국인 비행사이자 디자이너인 존은 1897년 아른헴에서 태어났다. 1923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 자동차 디자인으로 인생 2막을 열기 전 이미 네덜란드 공군과 KLM에서 비행했고,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항공 분야 경력을 쌓았다.

3년 후, 차르다는 ‘스테르켄부르크 시리즈’라고 명명한 공기역학적, 자립적 모노코크 차체를 디자인했다. 또한 듀센버그를 포함한 여러 회사들, 특히 할리우드 세트를 위한 호화로운 차체를 스타일링 했다. 그러나 존 차르다의 가장 유명한 디자인은 링컨-제퍼로 진화한 브릭스 드림카(Briggs Dream Car)였다.

 

 멋진 페달카에 올라 앉아 있는 차르다를 그의 누이 베티가 밀고 있다
차르다의 아버지 존이 그의 혁신적인 브릭스 드림카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26살의 차르다는 파올라 브론지오네에서 74년 결혼식을 올렸다

존 차르다는 1962년 3월 20일 사망했는데, 그때 겨우 65세였고, 아버지와 아들이 다시 연결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톰이 건축학을 공부하던 미시간 대학에서 졸업 논문을 위해 자동차 디자인 프로젝트를 고려하기로 결심하도록 영향을 미친 것은 아마도 아버지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가 성공적으로 완성해낸 혁신적인 슈팅 브레이크는 교수인 아레 라티로 하여금 그를 기아의 세그레에게 추천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차르다는 1958년 8월 토리노에 있게 됐다. 

 

현대식 슈팅 브레이크의 디자인은 차르다가 대학에서 작업한 프로젝트에서 탄생했다. 오래전부터 패션감각이 남달랐다. 여기 2013년 렌더링이 있다. 오리지널 모델로 제작된 차는 현재 코르라도 로페르소토라는 수집가가 가지고 있다

24번째 생일이 지난 지 한 달도 안 된 차르다는 직장 생활 첫 날, 혼자서 새 차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할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을 얻었다. 인노첸티 스파이더의 디자인은 성숙한 작품이며, 조반니 미켈로티나 피에트로 프루아 같은 노련한 전문가에게서 나올법한 형태와 스타일이었다. 획기적이지도 않았고, 걸작도 아니었지만, 정교하고, 세심하게 고려되고, 매우 우아한 균형을 이루는 작품이었다.

기아에서 2년이 조금 넘는 짧은 기간 동안, 차르다는 모노레일, 고카트, 어린이들을 위한 페달 자동차를 포함한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디자인했다. 이러한 작업들에서 그의 스타일은 이상한 것에서부터 최근의 복고풍까지 다양했지만, 아직 그 자신의 독특한 기질을 확립하지 못했다.

 

2대의 잘 알려진 디자인
세레니시마 기아 GT(위)와 ‘프로젝트 울프’(아래)는 이후 포드의 피에스타가 된다

차르다가 다른 것과 구분되는 형태 언어와 미묘한 표면 처리를 확립하기 시작한 것은 피닌파리나에서였다. 이것은 몇 가지 디자인과 스타일링 트렌드에 영향을 미쳤다. 피닌파리나를 위한 그의 첫 번째 자동차 디자인은 당시까지 미온적인 반응을 얻었던 이탈리아 디자인 하우스의 콘셉트를 업데이트한 코베어 쿠페 스페치알레이다. 차르다의 재작업은 훨씬 더 잘 균형 잡힌 것으로 드러났지만, 타원형의 비스듬한 4중 헤드램프 처리 덕분에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이 주제가 페라리 330GT 2+2로 부활하자 더 큰 비판에 휩싸였지만 2세대 쉐보레 콜베어를 시작으로 미국 자동차 디자인에서 인기를 끌게 될 스타일이었다.

훨씬 더 큰 영향은 차르다가 1963년 멋진 쉐보레 콜벳 론딘 콘셉트로 선보인 ‘스왈로우테일’ 후미 처리였다. 이것은 그의 명함 중 하나가 된 자동차인 피아트 124 스포츠 스파이더뿐만 아니라 플래그십 페라리 365 캘리포니아, 란치아 플라미니아 스페치알레 3C 콘셉트 디자인에도 사용되었다.

 

기아코비 차르가 신디시스의 최근 스케치는 미국인 피터 기아코비와 함께 한 사적인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피닌파리나에 있는 동안 차르다는 카로체리아의 ‘패밀리 룩’을 따라야 했다. 이는 세르지오 피닌파리나 사장이나 디자인 매니저 프랑코 마르티넨고와 같은 사람들에게 어떤 개인주의보다 더 중요했다. 그래서 차르다나 그의 스튜디오 동료 알도 브로바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디자인은 부드럽게 둥글린 피닌파리나 스타일을 갖게 됐다. 다만 론딘과 124 스파이더의 세련된 차르다 스웨이지 라인은 미묘하게 구분되어 측면 중앙에서 시작하고 뒤 펜더를 압도하며 스왈로우 테일과 합쳐졌다.   

1968년 기아로 돌아온 차르다는 날카로운 모서리와 미묘한 선, 곡선으로 잘 정의된 측면 등 그의 독특한 디자인 시그니처를 제대로 정의하고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스타일의 첫 번째 예는 1968년의 세레니시마 기아 GT이다. 이러한 경향들 중 많은 것들이 그의 동시대 사람들, 특히 마르첼로 간디니와 차르다의 좋은 친구이자 기아 동료인 조르제토 주지아로에 의해 이미 확립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차르다는 이 날카롭고 쐐기형인 새로운 형태 언어에 일정한 균형감과 우아함을 가져왔다.

 

피아트 2300 카브리올레 스페샬레, 1963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베일을 벗었다. 스케치는 2013년에 그려졌다
이스즈에서 내 놓은 스포츠 왜건 콘셉트 기아, 1971년 공개됐다

이스즈를 위한 그의 세 번째와 네 번째 디자인(벨렛 MX1600과 스포츠 왜건)에서, 이 새롭고 더 날카로운 스타일은 차르다와 훌륭한 디자인 하우스의 특징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알레한드로 데 토마소가 카로체리아를 인수하고 포드로부터 상당한 자금을 지원받으면서, 기아와 35세의 외국인 디자이너의 재능은 번창했다.

1968년부터 70년대 중반까지는 차르다의 절정기였고, 뛰어난 디자인을 연이어 탄생시켰다. 그 중 하나는 진정한 자동차 이정표인 위대한 데 토마소 판테라이다. 람보르기니 쿤타치와 마세라티 기블리가 간디니와 주지아로의 정점이었다면, 판테라는 톰 차르다 디자인의 결정판으로서 자동차 신전에서 그의 자리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차르다의 걸작 1968년 기아의 란치아 풀비아 HF 콤페티치오네 삽화, 슬프게도 단 하나만 남아 있다

또한 판테라는 대서양 양쪽에 있는 잡지들에 특집기사로 게재되면서 차르다에게 국제적인 명성과 인정을 가져다 준 차였다. 차르다는 변덕스러운 알레한드로 데 토마소와 함께 잘 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지만, 그가 회사를 포드에 넘기자 결별을 선택했다. 차르다는 기아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편안함을 느꼈고 평생의 짝인 파올라 브론지노를 만났다. 가정의 안정도 결정적인 요소였다.

기아에서의 마지막 기간과 피아트에서 보낸 4년은 그가 프로젝트와 팀들을 관리하는데 집중했기 때문에 디자인 면에서는 덜 생산적이었다. 피아트 그룹의 복잡한 기업 미로 속에서 불만을 품은 차르다는 소규모 스튜디오 스타트업인 레이튼-피소르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이곳의 유일한 디자이너였다.

 

차르다에 의해 실행된 엇박자의 제안들. 오토 조디악토 다마카 듄 버기, 싱글-모듈 피아조 마이크로마치나

이는 스타일리스트에게 비옥한 시기의 시작을 알렸다. 몇몇 프로젝트를 디자인하고 개발했으며, 그 중에는 새로운 고용주인 레이튼-피소어 매그넘을 위한 또 다른 중요한 작품도 있었다.

그 결과, 1984년 차르다가 스스로 독립을 결심했을 때, 그는 토리노의 디자인 거인 중 한 명으로서 명성뿐만 아니라 자동차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포트폴리오 중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프로젝트는 쉽게 이루어졌지만, 그들 중 많은 것들은 애스턴 마틴, 비터, 새로 회춘한 부가티, 이소타 프라스키니와 스파이커, 그리고 유사한 전문 스포츠카 제조사들과 같은 작은 업체들을 위한 것이었다.

 

위에서: 데 토마소 스파이더 1600은 피아트 X1/9 스포츠 쿠페와 비슷하다는 논란이 있었다.
사브 바이킹 레이튼 피소오르가 제시한 디자인이다

그러나 새 천년에 접어들면서 차르다는 각종 콩쿠르, 세미나, 디자인 경연대회에 출연하면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1991년에 설립자 프랭크 만다라노를 만나 좋은 우정을 쌓은 그는 매년 캘리포니아 카멜에서 페블 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에 며칠 앞서 열리는 콩코르소 이탈리아노에 헌정 강연이나 심사위원으로 고정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토론토 레인보우 라군 파크, 독일 슈베칭겐, 그리고 아버지의 출생지인 네덜란드 아펠도른의 웅장한 팔레이스 헤트 루에서 열리는 콩쿠르에서도 정기적으로 특별 손님이나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2006년, 차르다는 BBC 톱기어 인디아의 디자인 경연대회 심사위원으로 임명되었고  곧 단골이 되어 여러 번 인도를 방문했다. 

 

2+2 쿠페형 신디시스 프로젝트의 초기 작업물들이다

2014년 2월, 차르다는 파리에서 열린 레트로모빌 쇼 동안 프랑스 경매 회사인 아트큐리얼과 그의 개인 기록물을 파는 특이한 조치를 취했다. 친구이자 팬인 코라도 로프레스토가 그것들을 구입했는데,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자신의 특별한 자동차 컬렉션과 자료 보관소에 이 문서들과 그림들을 추가했다. 로프레스토는 란치아 플라미아 스페치알레 3C와 마리카, 데 토마소 판테라 II/몬텔라, 그리고 두 대의 이소타 프라스키니 T8/T12 같은 차르다의 세상 하나뿐인 디자인 작품 다섯 종을 소장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 그는 이 위대한 인물의 그림도 보존하고 있다.

차르다는 인기 많고 접근하기 쉬운 인물로, 그를 따르는 팬들만큼이나 그들과의 만남을 즐겼다. 명민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항상 행사에서 자동차 애호가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자동차 디자인 과정을 차의 주인들과 공유하면서 자신의 시간에 관대했다. 디자인계의 록스타인 그는 종종 미국인들이 멋진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그에게는 그런 이야기들이 부족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2017년 6월 1일 82세의 나이로 끝이 났지만, 그의 유산은 계속 커지고 있다. 

이미지·파올라 브론지오네 차르다 아카이브

『차르다: 마스터 오브 프로포션 by 고탐 센』은 달튼 왓슨 파인 북스에서 출간됐다 (£110; ISBN 978185443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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