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안 사는 젊은층, 애니메이션 파는 일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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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안 사는 젊은층, 애니메이션 파는 일본차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5.03.0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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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사지 않는 일본 젊은 층을 겨냥해 일본차 회사들은 애니메이션을 자동차 광고에 활용하고 있다. 어른의 장난감인 자동차를 사서 어른이 되라는 메시지다

자동차 산업의 최고 위기론 중 하나는 젊은 층에서 차를 구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자동차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면, 지금의 세대는 전자기기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하단 생각이 든다. 비싸고 유지하기 어려운 차를 사느니, 지금의 행복과 현실에 더 투자하겠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아직 한국에서는 그런 위기감을 찾아보긴 어렵다. 대부분이 성인이 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갖고 싶어 하니 말이다. 그런데, 옆 나라 일본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젊은이들이 운전면허를 따지 않고, 점점 자동차 사기를 망설이는 추세다.

지난 4월에 일본 자동차 공업협회가 발표한 ‘2014 일본 승용차 시장 조사’를 살폈다. 주제는 고령 운전자의 증가였다. 일본 운전자 중 약 1/3이 60대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차가 없다. 생활 여건에 따른 분류를 살폈다. 일본 거주 독신자 기준, 거의 절반인 49%가 차가 없다. 차가 없는 이들 중, 차를 사겠냐는 질문에는 49%가 차를 사겠다고 대답했고, 사지 않겠다는 대답은 34%, 고려한다는 17%를 기록했다. 차가 없는 집도 차를 살 생각이 없다. 차가 없는 가구를 상대로 한 추후 자동차 구매 여부 질문에는 62%가 차를 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유는 돈 문제다. 독신자든 기혼자든 마찬가지다. 차를 안 사는 이유를 물으니, 기름값, 주차비, 구매와 유지비용 부담이 합쳐 60%를 넘었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운전면허 따기 어려운 실정도 한 몫 한다. 일본의 운전면허 학원에는 특이하게도 합숙 옵션이 있다. 면허 따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의 허가를 받은 학원에 등록해 학과 10시간을 듣고, 학원 내 코스 15시간 정도를 돌고 도로주행 연습을 위한 시험을 친다. 이후 도로주행 19시간, 학과 16시간을 이수해야 졸업 시험을 치룰 수 있다. 졸업으로 끝이 아니다. 졸업증을 들고 운전면허시험장에 가서 또 시험을 쳐야 한다. 학과 26시간, 실기 34시간을 치루는 셈. 당연히 운전면허를 따는 데 드는 비용도 비싸다. 한화로 치면 300만~400만원이 든다. 돈 없는 젊은이들이 면허 따기 위해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러다보니, 일본 자동차 업계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다. “자동차를 가지면 좋다, 운전면허를 따라”라 권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광고에는 잘 쓰이지 않는 만화가 사용된다는 점이다. 일본 사회에서 만화가 갖는 위치를 고려하면 이해가 간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장기 연재되는 만화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국내에서도 방영됐던 〈도라에몽〉이 있다. 1969년 연재를 시작해, 지금까지도 새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만화 하나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셈이다. 토요타가 도라에몽을 소재로 광고를 내건 이유다.
 

잠시 토요타의 도라에몽 광고 시리즈를 살펴보자. 만화에선 10살이던 주인공들이 20년 후, 나이 서른이 되었다. 서른은 더 이상 신기한 물건에 의존할 수 없는 나이. 여전히 주인공 노비타(국내명 : 노진구)는 샌님이다. 운전면허도 없다. 차를 몰 수 없어 곤란한 상황에 여러 번 빠지면서도 게을러 면허시험을 보지 않는다. 그런 못난 주인공이 여자 친구 시즈카(국내명 : 신이슬)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면허시험에 도전하며 어른이 되어 간다는 이야기다.

토요타 도라에몽 광고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면허 따고, 차를 사서, 어른이 되어라.” 어른에게만 허락된 장난감인 자동차를 누리라는 것이다. 재미있고 좋은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토요타 아키오 사장의 이야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젊은이들을 홀릴 전자제품보다 재미있는 차를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는 부족하다 여겼는지 토요타는 오타쿠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구매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타쿠는 애니메이션 및 게임 등의 문화에 열광적인 마니아들을 뜻하는 단어다. 이들의 특징 중 하나를 꼽으라면 엄청난 소비다.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작품이나 캐릭터에 관련된 제품을 모을 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관련됐다는 이유로 차를 수집할 정도다.

이들의 아이콘을 꼽는다면, 구세대는 기동전사 건담, 신세대는 하츠네 미쿠다. 건담은 1979년 등장한 거대 로봇물. 전쟁의 암담함과 욕망의 암투를 그려내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하츠네 미쿠는 악기 브랜드 야마하가 개발한 목소리 합성 시스템의 캐릭터다. 사용자의 입력에 따라 목소리를 내는 프로그램에, 전자 세상에서 사용자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디바란 설정과 캐릭터를 더해 큰 히트를 쳤다. 토요타는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재미있는 일을 벌였다.
 

기동전사 건담을 바탕으로 가상의 회사인 ‘지오닉 토요타’를 세우고 인터넷으로 사원이 되라며 가입을 촉구했다. 그리고 원하는 자동차가 어떤 것인지 물었다. 자동차에 뿔을 달고 붉은 색으로 칠해 달라는 등 여러 아이디어가 들어왔다. 이를 바탕으로 야리스를 튜닝해 특별판으로 내놓고, 전용 광고를 선보였다. 또한, 하츠네 미쿠 캐릭터를 코롤라 광고 모델로 내세워 전 세계에 내놓는 파격을 저질렀다. 3D 캐릭터가 코롤라를 타고 콘서트장으로 향한다는 짧은 광고였지만 충격적이었다. 그간 이런 시도를 한 자동차 기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지금은 꽤 많이 보인다. 스바루의 경우 자사 브랜드 홍보를 위한 애니메이션을 방영했고, 마쓰다는 홍보를 위해 캐릭터를 동원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노력을 보니 한편으로 씁쓸해진다. 우리에게도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때가 되면 과연 우리의 자동차 브랜드들은 무엇으로 젊은이들에게 다가설까?

글 · 안민희 에디터 (minhee@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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