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넘어선 걸작, 히스파노 수이자 J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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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넘어선 걸작, 히스파노 수이자 J12
  • 믹 웰시(Mick Walsh)
  • 승인 2022.03.0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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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부언 차체의 히스파노 수이자 J12는 90년이 흐른 지금 보기에도 눈부신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걸작이다
사진 · 올건 코달(Oolgun Kordal)

전설적인 히스파노-수이자 J12의 라디에이터에서 날아오르는 우아한 크롬 황새만큼 자동차 캐릭터와 어울리는 마스코트가 있을까? 끝이 없어 보이는 180cm 길이의 보닛을 닮은 긴 목과 아래로 향한 날개는 V12 9.4L의 강력한 토크를 강조한다. 웨이더의 웅장하고 넓은 비율은 프랑스 작품의 면모를 충실하게 강조해준다. 

뛰어난 스위스 엔지니어 마크 버키트는 세 가지 상징적인 히스파노-수이자를 설계했다. 알퐁소, H6, 그리고 J12이다. 히스파노-수이자 전문가들은 어떤 것이 가장 위대한지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을 벌이겠지만, 1932년부터 1938년 사이 120대 제작된 J12는 당대 최고라는 거의 신화에 가까운 지위에 올랐다. 까다로운 버키트는 90년 전 시제품을 직접 운전하곤 했다. 리프 스프링의 라이브 액슬 섀시는 보수적이었지만, 고도로 발전된 아이디어와 탁월한 품질을 자랑하는 설계였다. 

이 걸작의 심장부에는 새로운 V12가 얹혔다. 실린더 뱅크 사이 싱글 캠샤프트가 짧은 푸시 로드와 로커 밸브기어를 작동시켜 정숙함을 보장했다. 실린더 블록은 60도 각도로 설정되었으며, 보어 100mm, 스트로크 100mm의 스퀘어 형상으로 9425cc 배기량을 만들었다. 버키트는 1차 세계대전 중 SPAD와 SE5 전투기를 통해 공중전 성능을 입증한 수랭식 오버헤드캠 V8 항공기 엔진으로 인정받은 V 엔진 전문가다. V12 항공기 설계도 구상됐지만 양산에 이르지 못했다. J12 이전까지 그의 자동차 엔진은 직렬 4기통 아니면 6기통이었다. 

 

화려하고 매끄럽고 완벽하게 완성된 V12 9.4L 엔진

V12는 깨끗하고 우아해 보인다. 일체형 블록과 헤드는 알루미늄으로 주조됐지만 그의 항공 엔진과 마찬가지로 검정 에나멜로 마감되었다. 공장제 트윈 초크 카뷰레터가 목마른 포트에 연료를 공급하고 두 개의 신틸러 자석과 SEV 디스트리뷰터, 대시보드 스위치로 작동하는 트윈플러그 등 모든 것이 쌍으로 장착되었다. 

길쭉한 보닛을 들어 올리면 유리 같은 배기 매니폴드를 포함한 깔끔하고 유혹적인 블랙 마감이 드러난다. 멋진 엔진의 목적에 어울리는 화려함을 증폭시킨다. 

‘질서와 단순함의 걸작’, 작가이자 역사가인 더글라스 ‘버니’ 터브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6:1의 압축비를 가진 시제품 타입 68은 느긋한 3000rpm에서 200마력을 만들어냈다. 하얀 코끼리 부가티 로얄을 제외한 당대 모든 그랜드투어러를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특권층을 위한 이 괴물을 잡아 세우기 위해 J12에는 최고급 드럼 브레이크가 장착되었다. 변속기를 단속하는 버키트의 진보된 서보 덕분에 페달 조작은 가볍다. 웜 앤 휠 스티어링은 유압으로 완충되었으며, 일단 출발하고 나면 쉽고 정확한 제어가 가능했다. 

 

앞이 무거운 라이벌 롤스로이스 팬텀 III와 달리, J12는 라디에이터와 V12가 뒤쪽으로 잘 세팅되어 균형 잡힌 섀시 레이아웃을 만들었고, 이는 1930년대 최고의 코치빌더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완성된 차체는 브로셔를 장식한 아름다운 그림과 일치했다. 사우칙, 그래버, 페르난데즈 다린도 J12를 위한 환상적인 맞춤형 차체를 만들어냈지만 가장 우아한 라인을 그려낸 것은 반부언이다. 1934년, 이러한 공학적 장엄함과 드롭헤드 차체의 조합은 엄청난 가격에 팔렸다. 영국 기준 3500파운드였는데, 최신 팬텀 3보다 거의 두 배 비싼 가격이었다. 

1931년 격조 높은 그랑팔레에서 열린 파리 살롱에서 J12를 출시할 당시 라비 오토모빌의 저명한 자동차 저널리스트 샤를 파루가 시승차를 요청했다. 히스파노-수이자의 호화판 플래그십을 타고 1700km 주행 테스트를 진행하겠다면서. 회사가 이에 동의해 파루는 10월 파리에서 니스까지 J12를 몰고 갔다가 돌아왔다. 그는 이 귀하고 이국적인 차를 최대한 열심히 몰았다. 200마력 중 한 마리 말의 힘도 아끼지 않았을 정도로. 파리에 돌아온 J12는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회사 전시장으로 반납됐다. 섀시 아래에는 긴 백지가 놓여 있었는데, 놀랍게도 전시 기간 동안 기름 한 방울, 물 한 방울도 종이를 더럽히지 않았다. 프랑스 회사가 새 플래그십 모델을 얼마나 세심하게 조립했는지를 이보다 더 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었을까?

버키트는 파루의 거친 도전에 대한 결과에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직전 여름에 부아콜롱브 공장에서 스위스 베르수아의 제네바 호숫가에 위치한 자택까지 시제품을 몰고 가봤기 때문이다. 섀시 아래 종이를 대는 시험도 그가 파리로 돌아올 때 이미 해봤을 것이다. 

당시의 암울한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귀하디귀한 J12는 부유한 구매자들을 유혹하는데 성공했다. 부가티 로얄은 완전히 실패했는데 말이다. 루마니아의 왕, 세 명의 마하라자, 페르시아의 샤, 재무가 앤서니 드 로스차일드, 에밀 두보네트, 파블로 피카소가 주문자 목록에 올랐다. 하지만 궁극의 J12는 레이싱 드라이버 휘트니 스트레이트와 카운트 펠리스 트로시를 위해 제작된 차다. 부가티 로얄 프로젝트와는 반대로, 이 J12는 250마력 11.3L 엔진으로 업그레이드됐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히스파노-수이자 철도차량에서 유래한 설계다. 1933년, 당시 프랑스 국영 철도 운영자였던 라울 도트리는 미슐랭(고무 타이어) 철도 차량에 사용할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히스파노-수이자와 계약을 체결했다. 버키트는 V12뿐 아니라 히스파노의 항공기 및 자동차 엔진과 부품을 공유하는 플랫-12 타입 86 시제품을 만들었다. 

프랑스 산업계가 다시 군사 계약에 집중하면서 히스파노 철도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V12로 구동되는 철도 차량 한 대가 한때 쿤밍-하이퐁 철도를 운행했던 중국 윈난 성에서 살아남았다. 1934년 꿈의 부가티와 히스파노가 벌인 스피드 테스트를 상상해보자. 그랜드 투어러들과 유선형 철도 차량을 매치시켜 보자!

페블 비치 콩쿠르에 앞서 몇 대가 1번 고속도로를 따라 달린 것 외에는 J12를 도로에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J12를 소유한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은 놀라운 정교함과 부드러운 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11.3L 사양은 더욱 그랬다. 

영국의 J12 소유자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유명한 수집가이자 부가티스트인 피터 햄튼이다. 그는 사우칙 차체의 2인승 로드스터를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차들 중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아내 롤라와 함께 정기적으로 떠나는 장거리 여행에 돼지가죽으로 치장된 푸른 미녀를 타고 다녔다.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코트다쥐르까지 다녀왔다. 

 

검정색 비너클이 다이얼을 더 반짝거리게 만든다
명확한 기어 게이트

햄튼은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파편에 중상을 입어 팔이 불편하다. 하지만 J12는 톱기어에서 넓은 범위의 토크를 제공해 변속기를 다루는 데는 문제 없었다. 1973년 햄튼은 “만약 내가 무인도로 차를 한 대만 가져갈 수 있다면 그것은 V12 히스파노-수이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주인인 미국인 톰 퍼킨스도 부가티 타입 57SC와 알파로메오 8C 2.9를 포함한 자신의 슈퍼차저 컬렉션에서 J12를 최고로 꼽았다. 그의 놀라운 전쟁 전 차량 수집 세트는 랄프 로렌에게 팔렸는데, 201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J12만은 놓아주지 않았다. 마린 카운티의 아름다운 날이 시작되면 그는 아침 일찍 히스파노를 타고 인적이 드문 해안도로를 달렸다. 캘리포니아 부두의 파란 로드스터는 그의 멋진 대서양 횡단 요트들을 완벽하게 보완해 주었다.

추앙받는 기자 로날드 ‘스테디’ 바커는 1960년 새로 개통된 M1 도로에서 속도 제한 없이 J12를 시험했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세인트알반스 근처 하트버드셔 직선로에서 바커는 <오토카>의 전기 시험 속도계를 이용해 평지 시속 166km, 경미한 내리막길 시속 169km를 기록했다. 2.5톤인 J13는 왕래 드문 고속도로를 전력으로 달리는 동안 휘발유 1L당 3.19km 연비를 보였다. 겨울날 아침 루턴 인근에서 지붕을 내린 히스파노가 위풍당당하게 신형 복스홀 빅터들을 스쳐 지나가는 모습은 꽤나 볼만했을 것이다. 

1960년 1월 1일 발행된 <오토카>에서 바커는 ‘큰 토크, 작은 스토크(황새)’라는 제목을 붙인 시승기를 통해 ‘버키트의 V12는 도서관처럼 조용하다’고 묘사했다. "4개의 배기장치와 8개의 소음기를 가진 히스파노는 배기음이 들릴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오직 최대 크랭크샤프트 속도에 도달할 때만 운전석에서 엔진을 느낄 수 있다. 브레이크는 완전한 자신감을 주고 고속 주행에서도 차축이 쿵쿵거리는 기미가 없다."

 

히스파노-수이자 배지를 위해 스페인 국기와 스위스 국기가 결합되었다
우아하게 떠다니는 황새 마스코트

승차감은 ‘카트 스프링으로서는 최고 수준’이고, 운전석에서 조절 가능한 듀플렉스 댐퍼는 탁 트인 대로나 간선도로를 달리기에 이상적인 옵션을 제공했다. 

현 소유주인 피터와 멀레 멀린이 광범위한 조사를 했지만, 놀랍게도 반부언 차체의 1935년 J12는 첫 번째 주인이나 초창기 역사가 여전한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히스파노-수이자 소사이어티는 ‘14004’에 대해 아무 결과를 얻지 못했다. 다만 이 섀시는 처음에 페르난데즈 다린의 리무진 스타일 차체를 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곧 반부언의 보다 세련된 드롭헤드 디자인 차체로 바뀌었다. 반부언이 제작한 8대의 오픈 J12 중 하나이다. 

1910년 아킬 반부언이 설립한 차체제작 회사는 파리 교외 쿠르베보에 위치했다. 1919년 MJ 다스테가 인수해 사일런트블록 차체 구조에 대한 특허를 다수 취득했다. 다스테는 결국 히스파노-수이자 자동차 사업부의 수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반부언은 특히 카브리올레 스타일의 차체를 위한 실질적인 차체 공급업체로 계속 자리를 지켰다.

최근 밝혀진 프랑스 기록에 따르면 이 드롭헤드 J12는 1937년 파리 서부 부유한 교외 생클루의 19 Quai du Président Carnot에 위치한 영화촬영 연구소(Laboratoires de Tirage Cinématographe)에 등록됐다. 연구소는 갱스터 스릴러 '망향'(Pépé le Moko)과 장 르누아르가 감독한 반전 걸작 '위대한 환상'(La Grande Illusion) 등 전쟁 전 몇 년간 가장 성공적인 프랑스 영화들을 작업했다. 비록 2년이 지났다 해도 여전히 비싼 최고급차를 영화 연구소 경영자가 어떻게 구입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J12의 압도적인 모습에서 긴 보닛은 일부일 뿐이다

전쟁 전의 많은 이국적인 차들처럼 반부언 차체의 히스파노는 나중에 캘리포니아로 넘어갔고, 1950년대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중고차로 발견되어 결국 리차드 페인의 수집품에 속하게 됐다. 메인의 마운트 데저트 아일랜드에 위치한 실 코브 오토 뮤지엄의 설립자인 그는 J12를 주로 브라스기(brass-era)의 다양한 자동차들과 함께 전시했다. 페인은 성공적인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했고 처음으로 미국에 사브를 수입한 이들 중 하나였다. 

수집가 존 모차르트로부터 좋은 거래를 제안받은 페인은 거절할 수 없었다. J12는 다시 서해안으로 향했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자동차 컬렉션에 대한 완벽주의자였기에 J12를 콩쿠르 기준으로 복원했다. 퍼킨스의 J12를 정비했던 캘리포니아 소재의 역사적인 경주용 차 전문가 필 라일리에게 강력한 엔진의 재건을 의뢰했다. 짙은 파란색 외관으로 복원된 반부언 카브리올레는 페블비치에 네 차례 출품됐고 1992년 피터 멀린에게 팔렸다. 캘리포니아 옥스나드에 있는 프랑스제 코치빌트 명작들을 위한 그의 환상적인 박물관에서 이 차는 스타 중 하나가 됐다. 

이후 J12는 콩쿠르 오브 아메리카에서 디자이너스 초이스, 몬테시토 콩쿠르 델레강스에서 베스트 오브 쇼 등 콩쿠르에서 정기적으로 수상을 하게 됐다. 

작고한 가구 디자이너이자 히스파노-수이자 소사이어티 회장, 페블비치 콩쿠르 구세주인 쥘 휴만만큼 J12에 대해 열정을 가졌던 이도 드물다. 생전 그는 반부언의 포우 카브리올레 차체를 얹은 카운트 트로시 이후의 11.3L 숏 섀시 J12 등 몇 대의 히스파노 차들을 소유했다. 휴만은 “짐승 같은 힘과 고상한 정숙함에 관한한, 위대한 J12의 만족스러운 운전 경험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변속기가 3단밖에 되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차들은 엄청난 토크를 가졌다. 이 차들은 톱기어 자동차다. 기어를 2단으로 낮출 일이 거의 없다.”

 

슬래트 엔진 커버는 V12에 적합한 냉각 기능을 제공한다
명판은 이전 소유주의 노력을 기념한다

휴만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히스파노를 몰면서 고속도로에서, 특히 언덕을 오를 때 현대적인 차들을 추월하며 매우 즐거워하곤 했다. “거대한 야수가 지나갈 때 경악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운전의 즐거움은 정교한 엔지니어링, 모든 부품의 우아한 디자인, 전체적으로 뛰어난 품질 수준과 일치한다. 이 차들에 대한 대부분의 기계 작업을 직접 하다 보니, 여러 가지 부품을 다룰 때 몇 번이고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마크 버키트는 천재였다.”

1934년 <오토카>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부제는 ‘놀라운 가속력과 성능 용이성’이었다. 브룩랜즈에서 측정한 로드테스트 수치들은 <오토카>가 기록해온 양산차들의 테스트 데이터들을 능가하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이 유명한 J12들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 왜냐하면 훌륭한 자동차들에 대한 책들과 다양한 모형 자동차들을 통해 늘 다뤄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여름 오후, 이 드롭헤드의 멋진 운전석에 오른다는 것은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스티어링 컬럼에 달린 레버들 - 점화 타이밍, 초크, 핸드 스로틀, 마그네토가 모두 정확히 설정되고 연료펌프가 작동한 상태에서 J12의 시동장치를 누르는 순간이 마침내 찾아왔다. 9.4L V12는 부드러운 부르릉 소리와 함께 깨어나는데, 공회전 중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무거운 스티어링 동작과 깊고 육중한 3단 기어 게이트 분할로 인해 운전 초반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번거롭다.

 

크롬 헤드라이트 프레임보다 높은 라디에이터 그릴

요잉 비율 차이와 크고 무거운 내부구조로 인해 1단에서 2단으로의 변속은 천천히 하는 편이 좋다. 터무니없이 높은 1단 기어는 시속 80km, 2단 기어는 130km, 3단 기어는 직선주로일 경우 160km를 넘어설 수 있다. 1934년 브룩랜즈 주변을 전력질주 하는 것과 달리 비좁은 에섹스 차로를 달리는 것은 이 고귀한 2.5톤 슈퍼 투어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3단에 들어가면 J12는 샤펠론 증기기관차처럼 걷는 속도에서 벗어난다. 심지어 회전교차로를 빠져나갈 때도 부드러운 엔진이 쉽게 속도를 끌어올린다. 보다 트인 길에서는 스티어링이 가벼워짐에 따라 긴장을 풀고 우수한 만듦새를 감상하기가 더 쉬워진다. 흰색 밴이 참을성 없이 끼어들자 다행히도 인상적으로 보조되는 브레이크가 J12를 훌륭하게 감속시킨다. 

기사에게 운전을 맡겼던 대부분의 원래 소유주들은 이 차의 멋진 운전 경험을 놓쳤다. 보닛과 유명한 황새를 시야에 넣고 걸작을 통제하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 J12는 오늘날 봐도 인상 깊지만 1930년대에는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자동차로서 이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었다. 심지어 이 차의 겸손한 설계자도 파리의 일터에서 리브 블루의 집까지 560km를 몰고 갈 때 혼자 미소 지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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