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온 슈퍼카, 람보르기니 쿤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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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온 슈퍼카, 람보르기니 쿤타치
  • 리처드 헤즐틴(Richard Heseltine)
  • 승인 2021.08.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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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온 슈퍼카" 적어도 람보르기니 쿤타치가 등장했던 1971년에는 바로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50년이 지났지만 전율은 여전하다

람보르기니 쿤타치를 이해하기 위해 꼭 이 차를 몰아봐야 할 필요는 없다. 매번 차가 당신을 압도할 테니까.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람보르기니 쿤타치는 1970년대 전 세계 청소년들이 침실 벽에 붙여놓고 꿈꾸는 슈퍼카였다. 생각해보니 1980년대에도 상당기간 그랬다. 다른 어떤 자동차도 쿤타치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순수한 경이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 차는 지금도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에게서 원초적인 반응을 유발한다. 그만큼, 4대에 걸친 쿤타치를 한자리에 모아, 각각을 보고 듣는 것은 숨막히는 경험이다. 

이만큼 특별한 분위기를 몰고 다니는 차는 거의 없다. 현재 쿤타치가 이국적으로 보인다면, 1971년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오리지널 LP500 프로토타입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어떤 반응이었을지 상상해 보라. 미국 자동차 잡지 <로드&트랙>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쿤타치는 토리노 고유어로 “어머나 세상에” 또는 “하느님 맙소사”를 뜻하는 감탄사이다. 그리고 이 차는 확실히 그 말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이 극적인 자동차의 잠재력은 시속 300km에 이른다. 만약 양산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러고도 남을만한 요소들을 가졌기 때문이다.’

 

황소들의 질주를 선도하는 LP400과 뒤따르는 5000S, LP400S, 애니버서리

하지만 쿤타치는 양산에 돌입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람보르기니는 페라리에게 은유적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다. 5년 앞서 미우라로 그리 했던 것처럼. 필요성은 타협의 어머니이지만, 쿤타치는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다수의 스쿠프와 덕트를 적용했다. 이러한 추가 요소들은 다른 세계에서 온 탈것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를 동시대 물건들과 정말로 차별화시킨 것은 놀라운 외관의 안쪽에 숨어있는 것이었다.

다관형 스페이스 프레임은 추가 튜브 구조로 알루미늄 차체를 지지하는 동시에 롤 케이지 역할을 했다. 앞쪽 서스펜션은 위시본과 코일이고, 유사한 배치의 뒤쪽 서스펜션은 좌우에 각각 트윈 코일오버 유닛을 적용했다. 그리고 올 알루미늄의 V12 쿼드캠 엔진을 탑재했다. 지오토 비자리니가 구상하고 지안 파올로 달랄라가 정제한 이 보석은 가로배치의 미우라와 달리 세로 배치로 얹혔다. 수석 엔지니어 파올로 스탠자니는 엔진 앞에 변속기를 배치했다. 

 

시저 도어는 람보르기니의 상징이 되었다

특이하지만, V12가 연료 탱크 및 라디에이터와 함께 휠베이스 안쪽에 수용되도록 한 것이다. 엔진의 무거운 부품인 플라이휠은 자동차의 무게중심에 가장 가깝게 자리했다. 이는 패키징의 걸작이고, 동일한 기본 템플릿은 2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LP400(Longitudinale Posteriore 4 Litro)이 생산되기 시작할 무렵인 1974년 이탈리아는 심각한 산업 및 정치적 불안 속에 있었고 창업자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도 없었지만 람보르기니는 이를 감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는 1977년까지 약 150대 만들어졌다. ‘우리’ 자동차는 1976년 10월 납품된 한 대다. 멋진 마론 메탈리자토(메탈릭 브라운) 색조로 찬란하게 빛나는 이 차는 상상했던 것처럼 1970년대 쾌락주의의 완벽한 상징으로서 놀라운 자부심을 풍긴다. 예상 밖인 LP400의 크기는 사진을 통해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쿤타치는 큰 차다. 하지만 요즘의 ‘작은’ 해치백 대부분과 비교하면 확실히 아담해 보인다.

 

V12는 새로운 슈퍼카를 위해 90도로 틀어졌다
각진 운전석

LP400은 충격을 줄 수 있는 힘을 잃지 않았다. 이 무리에서는 가장 정갈한 차지만, 이 차를 그렇게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스타일링의 순수함이다. 다른 플라스틱 부록은 말할 것도 없고, 다음 모델부터 반복 적용된 돌출 범퍼가 없는 이 차는 여전히 오리지널 제네바 쇼카를 연상시킨다. 베르토네의 수석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는 이 차에 전부를 걸었고, 그의 초기 알파로메오 카라보 콘셉트의 요소들이 여기에 맞게 걸러졌다. 그는 이미 정해진 자동차 디자인 규칙을 무시하거나 어기고 있었다. 그의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조각된 리어 휠 아치가 딱 들어맞는 사례다. 

그리고 양 측면에는 NACA 덕트가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도어 열림 버튼과 도어를 위쪽으로 기울일 때 지지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한다. 이런 디테일을 넋을 잃고 보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렇긴 하지만 LP400 실내에 들어서면 미칠 것 같다. 기계적인 패키징을 우선시한 타협의 결과가 너무나 명백하다. 실내가 비좁다.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은 차체와 섀시를 결합한 후에야 서로 상의를 시작한 것 같다. 

머리공간은 협소하고 얇은 패딩 시트의 각도 조절은 도움 되지 않는다. 리어 벌크헤드가 딱 붙어있다. 풀다운 도어의 하단 아래에 위치하는 엉덩이는 도어 실과 높은 중앙 콘솔 사이에 단단히 끼이게 된다. 바퀴집도 실내를 파고든다. 즉, 페달들이 거의 겹치다시피 놓여있고 수직에 가까운 스티어링 휠은 사실상 무릎 위로 자리한다. 중요한 건, 일단 타고 나면 탄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3929cc 엔진이 깨어나는 소리만 들어도 LP400의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 

키를 돌리면 트윈 전기 연료 펌프가 요란하게 재잘거린다. 그 소리가 잦아들 때 반 바퀴를 더 돌리면 우당탕! 이 자동차의 모든 면과 마찬가지로 람보르기니에서는 미묘함이란 없다. 설사 375마력의 출력이 약간이나마 부풀려진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LP400 또는 더 나아가 어떠한 쿤타치든 간에 저속으로 운전하는 것이 고역이라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다. 랙 앤 피니언 스티어링은 엄청난 무게 때문에 힘들다. 그리고 클러치는 강하고 점진적인 물림을 가지고 있지만 그 무게 때문에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작동거리가 긴 스로틀도 무거운데, 여기에는 여러 개의 카뷰레터 트럼펫이 연결되어 있다. 

 

LP400S의 적극적인 변신은 1980년대 이 차의 스타일링 방향을 예고한 것. 한편 타이어가 두꺼워지면서 접지력이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중요한 ‘하지만’ 이다) 일단 그것을 움직이게 하면 LP400의 무게감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놀랍도록 다루기 쉬우며, 가차 없는 가속력과 선형적인 토크 증대가 특징적이다. 낮은 회전수 영역부터 분출되며, 여섯 쌍의 트윈 초크 베버 카뷰레터가 빨아들이고 콸콸거리는 소리에 취하게 만든다. 2000rpm 이후 엔진은 부드럽고 매끄러운 출력을 제공하며, 성능이 매우 우수하다. 속도가 붙을수록 도그 레그 변속기가 묵직해지지만 변속 동작은 명확히 정의되어 있다. 브레이크 역시 두 번째로 사용할 때 더 빨리 반응하긴 하지만 강력하다.

LP400은 운전자의 절대적인 관심을 요구한다. 그것에 대해 잘 알게 되면 보상받을 것이다. 핸들링의 경우, 후속 버전에 비해 사이드 월이 높은 타이어를 끼우고도 꽤 정밀하다.

요란해진 5000S는 LP400의 순수함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여기서는 신경이 뒤섞이지 않는다. 이전에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 모델은 시속 210km에서도 똑바로 날아간다. 튀거나 앞이 들뜨지 않는다. 최고 기어에서는 1000rpm마다 42km/h씩 높아지니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사실 람보르기니도 이게 시작이었다. 뒤이어 과격한 LP400S를 내놓았다.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세 번째로 제작된 쿤타치가 오스트리아 출신 캐나다인, 월터 울프에게 인도되었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고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그는 달랄라로 하여금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도록 하는 동시에, 오랫동안 기다려온 저편평비 P7 타이어를 완성토록 피렐리를 졸랐다. 간디니를 고용해 휠아치를 확장하고 새로운 스포일러 및 범퍼를 구성토록 했다.

 

V12 4.0L 엔진을 계속 탑재했다
S의 저편평 타이어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78년 제네바 살롱에 출품된 쿤타치는 울프의 F1 자동차들처럼 어두운 청색과 금색으로 치장되었으며, 그의 특별한 5.0L V12(오리지널 쿤타치 프로토타입에 사용된 것처럼)를 탑재했다. 이보다 조금 덜 급진적인 사양의 LP400S 양산 모델이 같은 해 출시됐는데, 예고편 역할을 했다. 물리적 변형 외에도, 이 새로운 모델은 당시 최첨단 타이어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안티롤 바 및 평행 링크 리어 서스펜션을 재배치했다.

LP400S는 추가 요소 부착의 시대를 열었으며, 이것이 많은 이들에게 쿤타치의 모습으로 각인됐다. 사진의 1979년형 차는 람보르기니 브라보 쇼카의 것을 모방한 아름다운 캐스트 마그네슘 캄파뇰로 휠과 생생한 빨간색 차체가 마치 침실 벽을 장식하던 환상의 자동차를 맨눈으로 보는 것 같다. 성공적인 손질인지 아닌지는 당신의 미적 감성에 달려있다. 그러나 이 차의 도발적인 자세는 부인할 수 없다. 

실내는 아주 사소한 인체공학적 수정 외에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운전 자세는 여전히 무릎이 스티어링 휠에 닿은 상태에서 ‘쿤타치 스쿼트’ 자세를 취해야 하며, 환기가 충분치 않고 시야도 가려진다. 이전 모델과의 차이는 속도를 내야 알아챌 수 있다. LP400S가 더 가볍게 느껴지는데, 이것은 인지가 현실을 흐리게 만드는 한 예이다. 실제로는 오리지널 차량의 놀라울 정도로 작은 1300kg보다 50kg정도 무겁기 때문이다. 

시동과 가속 추진력은 원작처럼 극적인데, 훨씬 더 떠들썩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더 팽팽하게 느껴진다. 차체가 쏠리는 기미조차 없지만, 좋지 않은 노면에선 평정을 잃어 굳어진 아스팔트에 세게 부딪치고 흔들거린다. 그래도 스티어링은 놀랍다. 숨 막히게 즉각적인 반응이 이전 차량보다 훨씬 좋다. 

1980년대엔 높은 날개가 필요했다. 하지만 최고속도를 떨어뜨렸다

1980년대 초, 람보르기니가 파산 직진이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자본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1982년 LP500S(5000S로도 알려짐)를 공개했다. 마세라티에서 온 줄리오 알피에리의 엔지니어링 실력에 힘입어 쿤타치는 슈퍼카 세계에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V12는 보어와 스트로크를 늘려 4753cc가 됐고 압축비가 낮아졌으며 더 큰 베버 45DCOE 카뷰레터가 적용됐다. 북미 시장 요구도 충족시켰다. 

블루 아카풀코로 마감된 ‘우리의’ 1984년 차는 물리적으로 LP400S와 유사하며, 실내 아키텍처도 거의 변경되지 않았다. 다만 사각 비너클의 계기판 레이아웃이 다르다. 계기는 여전히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다른 이유로 재배치되었다. 에어컨도 생겼다. 옵션이지만 실내가 밀폐된 듯 해서 필수였다. 

 

아키텍처는 변함없지만 5000S의 실내는 더 럭셔리하게 느껴진다

이전 모델보다 더 긴 기어가 적용되고 약간 더 무거워졌지만 차이점을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97km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4.8초로 여전히 격렬하게 빠르다. 요즘 기준으로는 그리 빨라 보이지 않지만 예전과 마찬가지로 쿤타치가 가속하는 광경은 인상적이다. 그리고 플랫 플레인 크랭크 소리를 가진 대다수의 현대적 슈퍼카들과 달리 쿤타치는 합창 같은 소릴 낸다. 대략 3000rpm부터 목을 풀기 시작해 3500~5500rpm에서 진성을 들려준다. 이론상으로는 8000rpm까지 돌릴 수 있지만 그전에 대화가 힘들어진다. 

LP400S와 마찬가지로 그립 수준은 대단하다. 제동력과 몹시 재빠른 조향도 여전하다. 식별 가능한 유일한 차이점은 스로틀 페달 하중이 보다 고르게 배분되어 조절이 쉬워졌다. 종합적으로는 여전히 구식 슈퍼카임이 분명하지만 후속 차량은 정말 흥미로운 점이 있다. 

 

25주년 애니버서리는 5000S보다 후미가 두툼하다

콰트로발보레. 페라리는 1984년 390마력으로 알려진 테스타로사를 내놓아 맞불을 놓았다. 람보르기니는 황급히 대응했고, 알피에리는 V12의 배기량을 5167cc로 높이는 한편 헤드에 실린더당 4 밸브를 넣는 요술을 부렸다. 

일부 다른 개량과 함께, 이 변경된 엔진은 7000rpm에서 순수한 455마력의 출력을 내고, 5200rpm에서 51kg·m의 토크를 실현했다. 1985년 제네바 살롱에서 소개된 이 새로운 변종은 진가를 진정하게 발휘했다. 그러나 람보르기니는 멈추지 않았다. 25주년 애니버서리 차례다. 1987년 6월 크라이슬러가 람보르기니를 인수한 직후 이 주제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8년부터 90년까지 660대가 판매되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쿤타치 자리에 올랐다. 

 

품절 모델에 달린 복잡한 분할 림의 휠

여기 사진에 있는 자동차는 검은색 차체가 확실히 불길하게 보이고, 이것이 바로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변신을 담당하는 팀은 호라시오 파가니가 이끌었고 슈퍼카 스타일링의 모든 상투적인 표현이 쿤타치에 던져졌다. 필수적인 스트레이크들이 적용된 앞범퍼와 스포일러는 비교적 재미없게 보인다. 냉각 스쿠프는 후면 데크 위에 위치하며 (이전 미국 사양 차량에 사용된 것처럼) 수정된 테일라이트 클러스터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사이드 스커트에 더 많은 스크레이크가 있고, 뒷범퍼는 두툼하다. 

변덕스러움은 실내에도 계속된다. 럭셔리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최신 모델은 폭이 넓고 전동 시트를 갖추고 있어 약간 덜 까다로운 운전 자세를 찾을 수 있다. 아, 그리고 운동이 쉽지 않은 이들을 위해 톨게이트 전용 창문은 전동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25주년 애니버서리 모델은 48밸브 엔진 덕분에 운전이 상당히 재미있다. 이전 쿤타치들에 비해 소리가 약간 부드럽게 들리지만, 여전히 신중함과는 거리가 멀다. 기어에서 나오는 고음의 윙윙거림과 함께 흡기 굉음과 배기 팡파르가 중첩되어 있다. 한번만 운전해보면 모든 폭발 행정이 구분되어 들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내는 단색이다
개량된, 더 커진 48밸브 V12를 위한 공기는 덜 우아한 덕트를 통해 공급된다

예상대로, 이 차 역시 리무진 같지 않은 승차감에 시달린다. 기대하지 않았겠지만 고무 인슐레이션이 없다. 하지만 25주년 애니버서리 모델은 형님들보다 지형적인 불쾌감에 더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이전 모델과 비교하면 서스펜션 변경은 상대적으로 적은데, 대부분은 좀 더 현대적인 피렐리 P 제로 타이어를 채택한 것과 관련 있다. 노면을 타는 경향이 나타난다. 저단 기어로 굽잇길을 돌 때는 언더스티어가 확연하지만 스티어링은 다른 차들처럼 멋지게 설정됐다. 브레이크는 페이드 걱정 없이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유지된다. 

쿤타치와 함께 람보르기니는 “고장 나지 않았다면 고치지 말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그리고 설사 그것이 약간 고장 났다고 해도, 너무 많이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것은 회사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긴 해도 올바른 접근이었다. 쿤타치는 자연 수명보다 더 오래 지속된 탁월한 성능의 자동차였으며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쿤타치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여전히 많은 책임을 맡고 있었던 1969년 고안되었고, 연이은 소유권 변경과 부도를 견뎌냈으며, 밈란가의 관리 하에 훌륭하게 변신했고, 크라이슬러 산하에서 마지막 만세를 누렸다.

대중문화에도 스며들게 되었고, 그 속에서 일류로 자리 잡았다. 쿤타치는 1970년대와 80년대 아이들에게 차 이름을 올바르게 발음하는 방법에 대해 논쟁하며 시간을 보낼 기회를 제공했다. 그것에 대해, 우리는 영원히 감사할 것이다.

이제 50번째 생일을 기념하게 되었으니 쿤타치가 운전하기에 최고의 슈퍼카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넘어가자. 최고는커녕 가깝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차는 운전하기 가장 위대한 슈퍼카의 후보다. 그것은 미묘한 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두드러진 차이이다.  

 

전설의 증언 :
간디니가 말하는 쿤타치의 탄생

마르첼로 간디니는 자동차 디자인의 거물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자신의 경력에 대해 말을 아끼기로 유명한 그이지만, 쿤타치에 대해서는 큰 애정을 갖고 있다.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졌다.”라고 그는 회상한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미우라를 대체할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가 어떻게 미래를 지향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는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우리 베르토네 사람들은 그의 바람에 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각진 선과 표면을 구성하는 새로운 스타일링 트렌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 그리고 모든 공적을 람보르기니가 가져간 이유는 다른 콘셉트 카들이 그러지 못할 동안에 쿤타치는 양산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그는 말을 이었다. “(1971년 3월) 제네바에서 LP500을 선보이기 전 약 8개월간의 작업 기간이 주어졌다. 우리는 내내 시간을 다투었지만, 그것은 지극히 일상적이었다. 기술적인 레이아웃과 혁신적인 무언가를 원하는 페루치오의 바람만 제외하면, 나는 완전히 자유롭게 작업했다. 오리지널 시제품은 가장 아름다운 쿤타치였지만 도로용으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개조가 필요했다. 이로 인한 변화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쿤타치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해 간디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지막 두 글자에 중점을 둔 그 단어는 피에몬테어 방언으로 된 감탄사이다. 문자 그대로 ‘전염성’을 의미하지만 긍정적인 놀라움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LP500 프로토타입을 ‘프로파일링’하는 일을 하는 베르토네의 한 남자가 이 말을 자주 했다. 여기도 쿤타치, 저기도 쿤타치, 하는 식이다. 나는 우리가 이 차를 다름 아닌 ‘쿤타치’로 불러야 한다고 농담하기 시작했다. (전설적인 테스트 드라이버) 밥 월리스가 거기 있었기에 우리는 영어 발음도 확인했다. 하지만, 농담으로 시작된 일이 더 심각해졌다. 나는 그 이름이 이 차에 완벽하게 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치오 베르토네, 파올로 스탠자니에 이어 마지막으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를 설득해 이 이름을 사용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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