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페라리 전 몬테제몰로 회장 인터뷰
상태바
다시 보는, 페라리 전 몬테제몰로 회장 인터뷰
  • 오토카 코리아 편집부
  • 승인 2021.06.11 14: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페라리의 새 CEO에 반도체 전문가 베데데토 비냐를 영입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루카 디 몬테제몰로 전 회장이 떠올랐다. 20여년 간 페라리의 황금시대를 이끈 그는 2014년 페라리를 떠났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이 드리워져 있다. 이제 페라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다음 인터뷰는 2011년 오토카에 실린 것이다.(편집자)

페라리 회장, 루카 디 몬테제몰로와의 대담에서 페라리 이외의 정치문제는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64년 생애는 대부분 본능적이고 능란한 정치가였다. 그는 겨우 26세에 창업자 엔초 페라리의 보좌역으로 페라리에 들어왔다. 그로부터 1년 뒤, 유명한 페라리 그랑프리팀을 넘겨받아 니키 라우다와 손잡고 1975년과 1977년 F1 세계 타이틀을 따냈다.

 

몬테제몰로와 마주 앉으면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날 화제는 정치였지만, 어디까지나 F1 그랑프리 정치. 언제나 F1 운영방식에 대해 강력한 소신을 갖고 있는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악명 높은 페라리식 KO펀치를 주저 없이 날렸다.

“레이싱이 걱정스럽다” 그는 F1을 서두로 운을 뗐다. “아주 큰 문제다. 경쟁력의 90%는 공력장치가 좌우한다. 최고의 엔진, 최고의 기어박스, 최고의 서스펜션이 있어도 별로다. 최고의 공력장치를 확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최고의 인재를 모아야 한다. 아울러 1주 7일, 날이면 날마다 24시간 풍동 2개를 가동해야 한다. 어쩌면 광적이라 할 수 있다” 몬테제몰로가 다시 말을 이었다.

“레이싱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로드카에도 타격을 준다. 우리 최신 모델을 보자. 기어박스, 바닥 디자인, 드라이브-바이-와이어, 일부 소재와 충돌완화구조―이들은 모두 F1 머신에 아주 가깝다. F1 노하우를 살려 우리 엔진의 효율을 높이고 싶다. 하지만 극히 최근까지만 해도 F1 머신에 4기통 엔진을 도입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페라리 로드카에 4기통 엔진을 얹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럴 사람은 많지 않다. 4기통은 모터사이클 세계 챔피언 발렌티노 로시와 그의 바이크에는 어울리겠지만, 페라리는 아니다.”

 

몬테제몰로는 F1 테스트 금지조치를 더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된 이유를 알고 있다. “다른 어느 프로 스포츠에서 훈련을 불법화하고 있나? 우리에게 무젤로와 피오라노 서킷이 있다. 그렇지만 거액을 들여 시뮬레이터에서 젊은 드라이버를 훈련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하나? 실제로 F1 머신을 운전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어느 젊은 드라이버가 우수한지 어떻게 알 수 있나? 대형팀에는 경주차 3대까지 허용했으면 좋겠다. 중소형팀에 기술을 제공하는 것도 한 가지 해법이다. 그러면 중소형 팀의 경쟁력이 훨씬 올라간다. 나아가 우승하는 경우도 나온다. 나는 영국이나 미국 페라리팀을 만드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한다”
 

우리의 대담이 15분쯤 지난 뒤 문득 이 여윈 64세의 회장과 페라리의 전설적인 창업자 엔초 페라리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초가 40년 동안 군림했던 발자취에 몬테제몰로가 들어섰다. 두 사람은 위상, 배경이나 성(姓)이 같지 않다. 하지만 몬테제몰로는 20년간 기록적인 판매량과 슈마허를 선두로 수많은 F1 세계타이틀을 거둬들였다. 이에 힘입어 엔초에 맞먹는 절대적 권위에 거의 도달했다.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고, 그가 가까이 다가가면 누구나 벌떡 일어나기를 바라고, 실제로 누구든 그렇게 하고 있다. 페라리에 대한 그의 사랑은 젊은이보다 더 뜨겁다. “나는 지난 20년간 한 자동차회사에서 일한 유일한 회장이다. 이처럼 위대한 기업의 회장 자리를 지켜온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몬테제몰로와 엔초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몬테제몰로는 이탈리아를 대변할 수 있는데 반해 그의 멘토 엔초는 과묵하기로 유명했다. 창업자 엔초는 가장 좋아하는 페라리가 뭐냐는 질문을 하자 ‘다음에 나올 차‘라고 대답했다. 루카는 바로 이 유명하고도 답답한 대답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이든 치밀하게 밝히기를 좋아한다.

그에 따르면 로드카는 1990년대 초를 연상시키는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루카가 갓 회장 자리에 오른 시기였다. 그때 페라리는 한 해 기껏 2천500대가 팔렸다. 몬테제몰로는 훨씬 개선된 F355를 구상했고, 프론트 엔진 V12 쿠페에 착수했다. 이로써 페라리의 폭을 넓혔고, 신뢰성을 높였으며, 가격은 좀 더 낮췄다.

이처럼 새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모델을 확대하는 단계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고 루카가 지적했다. 따라서 캘리포니아(타르가 루프의 2+2)와 FF(네바퀴굴림 쿠페-왜건 크로스오버)가 나왔다. 하지만 페라리는 엄격하게 경계를 그었고, 몬테제몰로는 경비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 포르쉐는 세단과 SUV가 생산총량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페라리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내뱉은 ‘노’가 내 귀에 쟁쟁하다. 1980년 사산(死産)으로 끝난 피닌 쇼카의 전통을 이어갈 세단이 나올 가능성마저 없다. “우리 그룹에는 그런 일을 할 마세라티가 따로 있다” 몬테제몰로가 말을 이었다. “콰트로포르테 세단이 있고, 지금 세르지오(마르키오네, 루카와 절친한 피아트 CEO)는 SUV를 내놓는다. 페라리는 앞으로도 새로운 차를 만들지만, 언제나 전통의 경계를 굳게 지켜나간다”
 

하이브리드는 어떤가? 지금까지 페라리는 소재와 신기술 실험에 빨랐고, 제동력을 추진력으로 바꾸는 수많은 KERS(운동에너지회수 시스템) 노하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차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겠다고 루카는 다짐했다. “페라리는 파워, 성능과 엔진 사운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우리의 주류 버전과 함께 간다. 어느 시장에서는 중요하지만, 다른 시장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페라리 충성파와 새 고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핵심은 기존 모델을 현대화하는 것이다. ‘맞춤복’과 같은 주문형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GTO․챌린지․엔초와 같은 특별 모델을 만들었다. “내년 말 엔초의 후계 모델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작명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신분을 숨기는 대부호 고객을 위해 소량 생산한다. 페라리는 새 시장으로 영역을 넓힐 때에만 생산량을 늘릴 뿐 쇼룸 모델을 극도로 제한한다. 올해와 내년의 물량은 기록적인 7천 대가 예상되고, 뒤이어 8천 대로 올라간다. 1만 대에 도달하려면 ‘여러 해’가 지나야 한다. 극도의 희소성과 대기자 명단이 너무 길지 않게 균형을 잡고 있다. “18개월은 괜찮다. 하지만 그 이상 끌게 되면 다른 차를 사게 된다”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페라리는 거북한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최근 피닌파리나의 약체화. 지난 수십 년간 피닌파리나는 전통적인 페라리 디자이너였지만 얼마 전 차 생산시설을 팔아야 했다. “다행히 피닌파리나 가문은 디자인 부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대로 그마저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몬테제몰로의 말. “나는 이 회사의 주식을 사려고 생각해봤다. 하지만 페라리는 서로 경쟁을 붙여 큰 혜택을 봤다. 그래서 아쉽다. 내가 페라리에 돌아온 1990년대 초 한동안 그 점을 아쉬워했다. 세르지오 피닌파리나는 나 때문에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내가 주지아로에게 일부 제안을 내도록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닌파리나가 결국 경쟁에서 이겼다. 현재 우리는 독자적인 디자인 부서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피닌파리나와 페라리 사이에 창의적인 긴장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과거 오랜 세월에 걸쳐 인터뷰를 하면서 몬테제몰로를 좋아하게 되고 존경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멈칫하게 할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기를 좋아한다. 여기 그 질문을 밝힌다. 

만일 피아트가 갖고 있는 페라리 주식 90%를 팔면 부채를 완전히 갚을 수 있다고 널리 알려졌다.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나?
 

실제로 몬테제몰로가 멈칫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1년 전까지 피아트 회장이었다” 그는 내가 한마디 한마디를 똑똑히 듣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봤다.

“그때까지 나는 절대로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다짐했다. 여전히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믿는다. 팔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페라리는 피아트를 위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아울러 기술을 창출하고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앞으로 어느 때 피아트가 페라리를 증시에 상장하고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마저 전망은 제로다. 실제로는 제로 이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